최근 수정 시각 : 2024-04-16 15:47:41

방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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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설명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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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방관자(傍觀者)는 '옆에서 보고만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주로 학교폭력을 포함한 범죄 등에서 누군가가 위험에 처하거나 잘못된 길을 향하고 있을 때, 도움이 필요해 보임에도 관여하려 하지 않고 지켜만 보는 사람을 뜻한다.

이전에는 집단주의의 영향으로 방관자를 비판하거나 거의 가해자나 마찬가지로 취급하는 일이 많았지만,[1] 현재 사회의 개인주의화와 방관에 대한 인식 개선으로 가해자 편만 들지 않으면[2] 비판받는 일이 없을 정도로 방관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하지만 일부 악질인 인간들은 단순히 방관으로 끝나지 않고, 가해자를 감싸면서 피해자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2. 설명

무리 내에서라면 세 명만 있어도 발생할 수 있는 존재로, 가해자와 피해자 중 어느 포지션도 아니지만 이에 간섭하지 않는 제 3자의 포지션만을 유지하면 방관자라고 간주된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막론하고 있든 없든 크게 상관 없지만,[3] 방관자가 피해자와 가까운 사이였다면 원망감과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4] 다만 방관자 입장에서도 무관심을 고수할수밖에 없는 이유는 많다.
  • 추가로 피해에 휘말리지 않는다 - 방관자가 협자로 변하면 가해자가 본보기로 그 사람도 함께 제 2의 피해자로 만드는 식으로 다른 이들을 동조자가 되게 유도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도 부모 중 한 쪽이 가해자일 경우 다른 한 쪽은 방관자가 되는 일이 은근히 흔한데, 특히 가정 내의 약자라면 자신도 가해자인 배우자의 가해에 휘말리기가 무섭거나 꺼려져서 결국 자식들의 학대를 사실상 방관하는 구도로 흘러가기도 한다.
  • 가해-피해 구도에 간섭할 때 수반되는 소모감이나 부담감을 겪지 않는다 - 똑같이 위계가 평등한 집단 내 소속원이든, 가해행위에 간섭하여 제지할 수 있을 정도로 위계가 높은 소속원이든 간에 일단 가해-피해 구도에 간섭해 제지하고 상황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따라올 여러 사항들에 대한 소모감과 부담감을 느끼기 싫어서 방관자를 택하는 경우도 있다. 방관자는 신경 끄고 할 일만 하면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지만, 한 번 간섭하는 협자가 되면 그 이후의 중재자 포지션으로써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단괴롭힘, 따돌림, 악습 등은 협자가 하나 있다고 해도 쉽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어서 결국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모되는데, 그런 걸 달가워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게다가 간섭한다고 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중재자로써 해결하려고 했던 이들에게도 책임이 돌아갈 여지가 있기에 부담스러워서 방관자를 택하기도 한다. 물론 가해자나 피해자와 일면식이 없거나, 안면이 있다 해도 그것을 통제할 권력과 책임이 없는 일반인이라면 당연히 잘못이 없지만 교사나 학교 운영진, 경찰, 인사팀처럼 관리자 신분인데도 의도적으로 방관한다면 책임이 매우 크다.
  • 자신의 일이 아니니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 방관자는 결국 제 3자이기 때문에 가해-피해 구도라던가 범죄자 등에게 개입하지만 않는다면 웬만해선 피해를 볼 확률이 직접 개입할 때보다 훨씬 낮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태여 해결하려고 들지 않아도 상관 없이 자신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이유 하에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다", "지들 일이니 알아서 하겠지" 하는 식으로 선을 긋고 피해자들이나 범죄를 외면하기도 한다. 다만 어떤 경우엔 가해자가 그렇게 유리하지 않고 충분히 피해자를 도와줄 수 있는 상황임에도 별로 관심이 없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방관하는 사람도 많다.
  • 나서도 이득이 없다 - 위를 보면 알겠지만, 결국 본인이 협자나 중재자 포지션을 자처하여 직접 나서면 나설수록 피해를 볼 확률만 올라가고 귀찮은 일만 자꾸 생기는데 반하여 그에 따른 보상이나 대가는 전혀 없다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물론 사회적으로나 도덕적 관점에서 본다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돕는 게 좋다고 할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관점으로 보면 이 말은 어떠한 보상도 이득도 없이 남을 돕고 그에 따른 리스크도 모조리 감수해야 된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증인보호 프로그램 문서 등을 보면 알겠지만, 우리나라는 내부고발자를 위한 보호 장치도 미비하며, 협자를 위한 보상도 마땅히 없고, 협자가 어떠한 조직에 속해있더라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괜히 시끄럽게 만들었다거나 소속 집단의 평가를 떨어트렸다고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으며,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쁠 피해자가 협자가 피해를 보지 않게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협자가 만족할 만한 보상을 해줄 수 있을 턱이 없다. 따라서 괜히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나서기보다는 가만히 할 일을 하는 게 더 낫다는 것.
  • 소속 집단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을 회피할 수 있다 - 제 3의 내부고발자가 나오거나 피해자 스스로가 내부고발자가 되지 않는 한 가해자 + 피해자 + 방관자 다수의 구도로만 있으면 그 집단의 문제점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으며, 장기적으로 상황을 감추기에 유리하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원조를 구하기가 어려운 피해자는 결국 계속 당하는 포지션으로 고정된다. 그리고 소속집단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거나 외부의 추가개입으로 인해 피해 보기를 꺼리는 다수의 방관자는 해당 상황을 끝까지 감추기를 고수하는데, 그러면 누군가의 고발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외부 개입이 들어오는 등의 불이익을 막을 수 있기 때문. 더 나아가면 아예 높으신 분들이나 집단 내 권력이 강한 가해자, 혹은 집단 내 분위기가 여러 명의 제 3자들에게 방관자가 될 걸 직접/암묵적으로 강조하기도 한다. 작은 사회, 닫힌 사회등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5] 내부고발자가 잘 나오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와도 연계된다. 내부고발을 한다고 해도 계획한 만큼 조직에 타격을 줘서 문제해결이 된다는 보장도 낮으며, 내부고발자가 들킬 경우 원래 방관자였던 이들 중 일부가 '가만히 있던 자신에게까지 피해를 줬다'는 이유로 내부고발자를 린치하는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또 방관자가 처벌받지 않을 수도 있다
  • 개입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 책임자가 아닌 사람들이 개입하지 않는 사실 가장 큰 이유로, 공부에 집중하는 학생이라면 학교폭력에 어떤 방향으로든 개입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직장인이라면 출퇴근에 바빠 화재나 교통사고를 목격해도 신고하지 않거나, 일을 열심히 하느라 직장 내 괴롭힘에 개입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 외에도 친구, 연애, 월급, 시간, 가족, 취미, 투병, 점심 메뉴 고민 등에 집중하여 주변의 범죄 행위에 신경을 꺼 버리는 경우도 많다.

대다수의 방관자들은 범죄나 가해-피해 구도에 직접 개입한 것이 없어서 책임질 것도 없다. 가해자들 역시 개입이 없다 보니 피해자에 대한 흥미가 떨어져 폭력을 제풀에 멈추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매우 가끔 이런 점이 미성년/성인 불문하고 특정 집단 내의 괴롭힘이나 따돌림과 맞물릴 경우 위험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적게나마 존재한다. 다만 이들이 딱히 기존의 소속집단 내의 가해-피해 구도 등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방관자 자세를 고수했는데도 추가로 찍혀서 피해자 신세로 전락하는 경우가 아주 없진 않다.[6] 역으로 단순 방관자에서 벗어나 가해자의 동조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제법 발견된다.

집단따돌림이나 집단괴롭힘을 막는 데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존재로 지목된다. 집단 내 가해자와 피해자를 제외한 나머지들이 방관자가 되려는 경향성이 높을수록 집단따돌림/괴롭힘이 발생하고 장기화될 가능성이 심화되지만, 반대로 나머지가 피해자에게 협조하려는 분위기일수록 그런 것들이 발생할 확률이 어느 정도 내려가기 때문. 그래서 집단 내에서도 처음부터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이런 상황들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최근의 학교폭력 예방 교육은 '가해와 가해 동조는 당연히 옳지 않고, 방관이 가해는 아니지만 옳은 방향으로 개입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일이다.' 등의 방법으로 방관자가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돕도록 유도시키려 한다. 이것의 연장선상이 학교폭력 멈춰.

사건이나 사고 현장 같은 곳에서도 방관자 또는 가해자를 감싸는 인간이 많을 경우 피해자가 심각한 피해를 입을 확률이 높지만,[7] 반대로 피해자를 방관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도와주려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고 현장의 해결이 쉬워진다.[8]

3. 관련 문서



[1] 이 탓에 인종차별이나 연좌제도 이런식으로 정당화하는 경우도 많았다. 모든 사람이 전부 그런 게 아니라는 등의 비판을 들으면 하지 않은 쪽은 방관한 것이라는 식.[2] 애초에 제3자라고 무조건 피해자를 도와줘야 될 필요는 없고 피해자를 도와주게 되면 제3자도 그로 인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기에 둘의 싸움에 관여만 하지 않으면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완벽하게 가해자의 편이 아니거나, 가해자를 감싸더라도 사적인 개인 대 개인 선에서 그쳐야 하며, 무비판적으로 가해자를 너무 심하게 감싸거나 피해자 탓을 하면 방관이 아니라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3] 그래도 방관자가 방관자인 채로만 있는 게 가해자에겐 유리하다. 자칫하다가 방관자가 입장을 바꿔서 피해자에게 직, 간접적인 조력을 넣게 된다면 조금이나마 귀찮아지기 때문이다.[4] 의외로 방관자가 피해자의 가까운 친인척이나 지인이고 근거리에 있었는데도 고의적으로 방관자가 되는 사례도 제법 많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왕따 사례에선 의외로 가까운 지인이 피해자의 방관자로만 남은 사례들이 흔히 발견된다.[5] 특정 구역 같은 경우에는 경찰조차도 범죄의 방관자가 되는 경우가 흔할 정도다. 사실 학교에서도 이런 현상은 흔한데, 공론화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의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할 경우 학교 이미지가 나빠지기에 관계자들이 최대한 묵인하면서 고의적으로 방관자 태세를 유지한다.[6] 애초에 대다수의 방관자는 현재의 집단괴롭힘이나 집단따돌림, 악폐습의 피해자보다 안전한 게 분명히 사실이지만, 이런 류의 상황들을 당하는 피해자도 특별히 진짜 당해야 마땅할 큰 이유가 있어서 찍히는 경우는 낮으며, 보통 정말 잡다한 이유로 제3자에서 찍혀서 피해자가 되는 게 부지기수다. (다만, 피해자가 주로 집단 내 강자기보다는 약자일 확률 하나는 매우 높다) 즉 지금은 방관자여도 언제 피해자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집단괴롭힘이나 집단따돌림 가해자들 중엔 그냥 만만해보이는 녀석이나 별다른 모난 짓을 하지 않았음에도 순전히 기분에 거슬리는 녀석이란 이유 하나로 누군가를 자신들의 타깃으로 삼는 사람들도 상당하기 때문.[7] 방관자 효과에 여러 사례가 나와있으니 참고. 이 예시 중 하나인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의 경우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성폭행하고 살해, 시신은폐까지 하는 등 완전범죄를 시도했던 심각한 사건이었던 데다 사정을 아는 이가 사실 100명 이상이었으나 신고조차 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고, 모두 방관자가 되길 택했기에 가해자들이 노리던 것처럼 완전히 은폐될 뻔했다. 심지어 사건이 드러난 것도 방관자 중 하나가 나중에서라도 생각을 바꿔 고발자가 된 것도 아니고, 담당형사의 말실수에 가해자가 반응해서 진상을 터는 데 영향을 준 것이다.[8] 대표적으로 한국 포함 세계 각국에서 종종 보고되는 지하철 사고에서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나서서 몸으로 지하철을 떠밀어 사람을 구하는 사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