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FECB3><colcolor=#000000> 포르투갈 왕국 주앙 1세의 왕비 랭커스터의 필리파 Philippa of Lancaster | ||
이름 | 영어 | 랭커스터의 필리파 (Philippa of Lancaster) |
포르투갈어 | 렝카스트르의 필리파 (Filipa de Lencastre) | |
출생 | 1360년 3월 31일 | |
잉글랜드 왕국 레스터 레스터 성 | ||
사망 | 1415년 7월 19일 (향년 55세) | |
포르투갈 왕국 사카벵 | ||
배우자 | 주앙 1세 (1387년 결혼) | |
자녀 | 두아르트 1세, 페드루, 엔히크, 이자벨, 주앙, 페르난두 | |
아버지 | 제1대 랭커스터 공작 곤트의 존 | |
어머니 | 랭커스터의 블랜치 | |
형제 | 엘리자베스, 헨리 4세 | |
종교 | 가톨릭 |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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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랭커스터 공작 곤트의 존의 딸이자 에드워드 3세의 친손녀.포르투갈 국왕 주앙 1세와 결혼하여 두아르트 1세, 엔히크 왕자를 낳았으며 아폰수 5세의 친할머니다.
2. 생애
잉글랜드의 랭커스터 가문 태생으로 당대 손꼽히는 학자들과 지식인들에게 과학과 철학, 종교와 문학을 배웠다. 제프리 초서와도 가까운 사이였다고.이후 27세[1]에 필리파의 남동생이자 잉글랜드 국왕 헨리 4세의 주선(周旋)으로 주앙 1세와 정략결혼을 하는데 당시 왕에게는 이미 정부와 그 아이들이 있었다. 이에 필리파는 겉으로는 겸양을 표하며 정치적 의사 표현을 삼가는 등 그들을 적절하게 배려했다. 포르투갈과 잉글랜드 양쪽 모두에서도 그녀의 정치적 판단은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사후에도 그대로 실현되었다.
주앙 1세의 경우 처음에 이 결혼을 탐탁지 않아 했지만 필리파의 훌륭한 인품에 이끌려 점점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3. 가족관계
3.1. 조상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랭커스터의 필리파 (Philippa of Lancaster) | <colbgcolor=#fff3e4,#331c00> 랭커스터 공작 곤트의 존 (John of Gaunt, Duke of Lancaster) | <colbgcolor=#ffffe4,#323300> 에드워드 3세 (Edward III) | |
에드워드 2세 (Edward II) | |||
프랑스의 이자벨[2] (Isabella of France) | |||
에노의 필리파 (Philippa of Hainault) | |||
에노 백작 기욤 1세 (William I, Count of Hainault) | |||
발루아의 잔[3] (Joan of Valois) | |||
랭커스터의 블랜치 (Blanche of Lancaster) | |||
제1대 랭커스터 공작 그로스몬트의 헨리 (Henry of Grosmont, 1st Duke of Lancaster) | |||
제3대 랭커스터 백작 헨리[4] (Henry, 3rd Earl of Lancaster) | |||
모드 차워스 (Maud Chaworth) | |||
이사벨 드 보몽 (Isabel de Beaumont) | |||
제4대 뷰찬 백작 헨리 드 보몽 (Henry de Beaumont, 4th Earl of Buchan) | |||
앨리스 코민 (Alice Comyn) |
3.2. 자녀
자녀 | 이름 | 출생 | 사망 | 배우자/자녀 |
1남 | 두아르트 1세 (Edward I) | 1391년 10월 31일 | 1438년 9월 8일 | 아라곤의 레오노르[5] 슬하 3남 4녀[6] |
2남 | 코임브라 공작 페드루 (Peter, Duke of Coimbra) | 1392년 12월 9일 | 1449년 5월 20일 | 우르헬의 이사벨[7] 슬하 2남 4녀[8] |
3남 | 비제우 공작 엔히크 (Henry, Duke of Viseu) | 1394년 3월 4일 | 1460년 11월 13일 | |
1녀 | 부르고뉴 공작부인 이자벨 (Isabella, Duchess of Burgundy) | 1397년 2월 21일 | 1471년 12월 11일 |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 3세 슬하 1남[9] |
4남 | 포르투갈의 총사령관 주앙 (John, Constable of Portugal) | 1400년 1월 13일 | 1442년 10월 18일 | 바르셀루스의 이자벨[10] 슬하 1남 3녀[11] |
5남 | 아비스 정복자 페르난두 (Ferdinand, Master of Aviz) | 1402년 9월 29일 | 1443년 6월 5일 |
4. 여담
- 필리파의 친손녀 포르투갈의 이자벨[12]은 필리파의 이복여동생 랭커스터의 캐서린[13]의 아들인 후안 2세의 계비가 되어[14] 1남 1녀를 두었는데 그 중 장녀가 이사벨 1세이다. 또한 필리파의 고명딸 이자벨이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 3세와 결혼해서 용담공 샤를 1세를 낳았고 그의 외동딸이 마리 드 부르고뉴이다. 즉, 이사벨 1세와 마리 드 부르고뉴는 필리파의 증손녀들. 이를 통해 현 스페인 왕실과 합스부르크 가문은 모두 필리파와 캐서린 자매의 후손이다.
[1] 당시 기준으로 왕족의 초혼으로는 다소 늦은 나이였다.[2] 필리프 4세와 호아나 1세의 장녀다.[3] 필리프 3세의 손녀이자 카를로 2세의 외손녀다.[4] 헨리 3세의 손자이다.[5] 페란도 1세의 차녀다.[6] 아폰수 5세, 신성 로마 제국의 황후 엘레오노레, 카스티야의 왕비 후아나 등[7] 페로 4세의 외손녀다.[8] 포르투갈의 왕비 이자벨 등[9] 용담공 샤를[10] 주앙 1세의 손녀다.[11] 카스티야의 왕비 이사벨 등[12] 4남 주앙의 딸.[13] 아버지 곤트의 존과 그의 두번째 아내 카스티야의 콘스탄사 사이의 외동딸.[14] 즉, 이자벨과 후안 2세는 오촌 숙부와 조카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