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9 14:41:44

나카지마 쇼야

1 슈사쿠 · 2 사카이 · 3 아츠키 · 4 [[이시하라 히로카즈|이시하라]] · 5 [[마리우스 회이브로텐|회이브로텐]] · 6 [[이와오 켄|이와오]] · 7 히로키.A · 8 요시오 · 9 린센 · 10 [[나카지마 쇼야|쇼야]]
11 구스타프손 · 12 산타나 · 13 료마 · 14 세키네 · 15 아키모토 · 16 니에카와 · 17 솔바켄 · 18 타카하시 · 20 요타 · 21 토모
23 리키토 · 24 미야모토 · 25 카이토 · 27 판야 · 28 숄츠 · 29 호리우치 · 30 코로키
31 · 35 토모야 · 38 나오키 · 39 준페이 · 47 히데토시 · 66 아유무
감독 파일:폴란드 국기.svg 마치에이 스코르자 · 수석 코치 파일:폴란드 국기.svg 라팔 야나스 · 코치 파일:폴란드 국기.svg 보이치에흐 마코우스키 · 파일:일본 국기.svg 이케다 노부야스 ·
골키퍼 코치 파일:스페인 국기.svg 후안 미레트
* 본 문서는 간소화한 것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 주세요.
* 타 구단으로 임대 간 선수는 제외했습니다.
파일:나카지마 쇼야 2023.png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No. 10
나카지마 쇼야
[ruby(中島 翔哉, ruby=なかじま しょうや)] | Shoya Nakajima
출생 1994년 8월 23일 ([age(1994-08-23)]세)
일본 도쿄도 하치오지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신체 167cm, 체중 62kg[1]
포지션 윙어, 미드필더
소속 유스 도쿄 베르디 (2004~2013)
프로 도쿄 베르디 (2012~2013)
FC 도쿄 (2014~2018)
카탈레 도야마 (2014 / 임대)
포르티모넨스 SC (2017~2018 / 임대)
포르티모넨스 SC (2018~2019)
알 두하일 SC (2019)
FC 포르투 (2019~2022)
알 아인 FC (2021 / 임대)
포르티모넨스 SC (2021~2022 / 임대)
안탈리아스포르 (2022~2023)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2023~)
국가대표 19경기 5골 (일본 / 2018~ )
SNS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여담7.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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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국적의 축구 선수.

2. 선수 경력

2.1. 프로 입단 이전

6살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여 2004년 도쿄 베르디의 유스팀에 입단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브라질로 3년간 축구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고교 시절, 도쿄도 대표로 전국 체전에서 우승을 경험했고, 2011년 클럽 유스팀 챔피언십에서도 우승에 기여했다. 2012년에는 네덜란드 리그의 AFC 아약스로 단기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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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베르디 유스 시절

2.2. 도쿄 베르디

2012년 2월 프로 1군팀에서도 뛸 수 있는 이중등록 계약을 하고 도쿄 베르디 1군팀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프로 무대에 입성했다.

2012년 9월 천황배 베르스파 오이타전에 교체로 출전하여 1군 경기에 데뷔했고, J2리그 33라운드 아비스파 후쿠오카전에서 리그 데뷔전을 가졌고, 이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팀의 연패 탈출에 기여했다. 10월, 도쿄 베르디와 정식 프로 1군 계약을 맺었고 J2리그39라운드 토치기 SC전에서 18세 59일만에 해트트릭을 기록하여 J리그 최연소 해트트릭 기록을 경신했다.

2013 시즌, 클럽팀 감독이 교체되면서 출전 기회가 줄어들기 시작하여 성적은 21경기 2골에 그쳤다.

2.3. FC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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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베르디에서 만족스런 출장 기회를 얻지 못하면 FC 도쿄로 이적했다. 이적 후 곧바로 나카지마 쇼야의 재능을 높게 산 J2리그의 카탈레 도야마로 6개월간 임대됐다. 도야마에선 윙포워드, 세컨드 스트라이커, 좌측 미드필더등으로 배치되어 뛰어난 스피드의 드리블을 보였지만 결정력 부분에서 부족함을 보이며 리그 28경기에서 2골만을 기록했다. 2014시즌 중반 FC 도쿄로 복귀했다. 주전 멤버가 굳혀진 뒤였기 때문에 주로 후반 조커로 기용됐다.

2015 시즌도 주로 후반 교체자원으로 활용됐고 6월 사간 도스와의 리그전에서 J1리그 첫득점을 기록했다.

2016 시즌 U-22 국가대표팀에서 입은 부상으로 리그 전반 두 경기 출전에 그쳤다. 후반기부터는 주전 선수의 부상으로 좌측 미드필더로 나오기 시작했고, 날카로운 공간 침투와 슈팅을 보여줬다. 최종 성적은 리그 18경기 출전 6득점.

2.4. 포르티모넨스 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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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포르티모넨스 SC로 1년간 임대를 갔다. 9월3일 FA컵 2차전에서 이적 후 첫 경기를 가졌다. 9월 8일 리그 5라운드 SL 벤피카에서 선발로 리그 데뷔전을 가졌다. 열흘 뒤 CD 페이렌스전에서는 멀티골을 넣으며 이적후 첫 득점을 기록했다. 10월부터 11월에 걸친 4경기에서 3득점을 기록하며 월간 리그 MVP에도 선정됐다. 시즌 최종 성적은 29경기에서 21번 선발 출전하여 10득점 12어시스트로 놀랄만한 성적을 남겼다.

2018-19 시즌에는 FC 도쿄에서 완전 이적했고, 등번호는 10번을 받았다. 2018년 10월 기준으로 7경기 4골을 넣으며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포르투, 벤피카 등의 상위 클럽과 EPL의 울버햄튼에서 영입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한 때 카타르로 이적한다는 기사와 설이 돌았으나 이는 포루투칼과 일본 언론 기사에 따르면 나카지마는 유럽에서 계속 뛸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나카지마의 다음 행선지가 궁금해지는 상황이다.

다만 돌연 카타르 스타스 리그알 두하일 SC로 이적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적료는 3,500만 유로, 연봉 350만 유로[2] 기사가 터져 일본 국대 미래 에이스에서 순식간에 돈에 미친 선수로 전락하며 악플 세례를 받았으나, 얼마 전 일본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유럽 리그 외에는 이적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바 있으며, 이적 링크가 나오고 있는 카타르 리그의 알 두하일 SC파리 생제르맹 FC의 위성 구단이기 때문에 위성 구단에 이적시킨 뒤 임대 형식으로 모 구단에 이적하는 방식을 통해 FFP 규정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적하는 것이란 의견도 있다.[3]

하지만 당시 PSG가 FFP에 대해 눈꼽만큼도 신경 안쓰는 막장 행보를 보였던 상황에서 굳이 FFP 위반을 신경써서 우회 영입을 할 정도로 나카지마 쇼야의 몸값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인지[4], 그리고 PSG 정도의 구단이라면 훨씬 잠재력 있는 선수를 컨택할 수 있을 텐데 굳이 나카지마 쇼야를 고르기 위해 이런 번거로운 절차를 진행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어쨌든 FFP규정은 사문화된 규정이 아니라 현재 작동되고 있는 규정인 만큼 제재가 가해질 경우를 대비한 이적 플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5]

또한 나카지마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한부모 가족이다. 아시안 컵 종료 후 인터뷰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 소속팀인 FC 도쿄에 입단하여 받은 계약금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살 집을 도쿄에 마련했다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한 바 있다.

2.5. 알 두하일 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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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3일, 카타르 스타즈 리그의 알 두하일 SC로 이적이 확정됐다. 남태희의 대체자로 이적료는 3,500만 유로(약 430억)로 기존 아시아인 축구 선수 중 최고 이적료 기록(약 400억)을 보유했던 손흥민의 이적료 기록을 경신했다. 등번호는 부상으로 팀에서 제외되어 있었던 남태희의 번호인 10번을 받았다.

그러나, 이 430억의 기록이 "아무리 FFP 때문이라지만 그저 손흥민의 최고 이적료 기록만을 경신하기 위한 허울좋은 기록이 아니냐?" 라면서 비아냥도 받았는데, 일단 손흥민처럼 유럽 5대 리그에서 세운 기록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나카지마 쇼야의 이적료는 유럽 5대 리그가 아닌 카타르 리그에서 세운 기록인데다 파리 생제르맹이 FFP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사실상 편법으로 만든 기록이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기록이다. 덧붙여서 나카지마의 아시아인 축구 선수 최고 이적료 기록은 2023년 7월, 김민재가 이적료 5000만 유로(약 710억원)에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며 경신했다.

그래서 "중국 슈퍼 리그의 중국 선수 이적료마냥 뻥튀기된 가격이 아니냐?" 같은 반응이 많았는데, 그동안 나카지마 쇼야가 보여준 활약도를 봐도 절대로 430억 이상의 가치가 될 수 없다. 그 정도의 거액이면 유럽 5대 리그의 상위권 구단에서도 주전이자 핵심 선수로 활약해야 되는 매우 높은 가격이다.

당장에 미나미노 타쿠미가 200억 정도 되는 이적료로 AS 모나코 이적을 확정지었으며, 손흥민토트넘 핫스퍼에서 400억 정도 되는 이적료로 영입하여 득점왕을 기록하는 등, 전세계 최정상급의 활약을 보여줬다는 사실을 잘 생각해보자. 실제로, 나카지마 쇼야는 프랑스 리그 1에서도 그럭저럭 활약을 해낸 박주영만도 못한 활약을 보여줬기 때문에 거품으로 가득찬 뻥튀기스러운 이적료가 따로 없다.

기존에 왼쪽 미드필더나 윙어로 활약했던 것과는 다르게 알 두하일에선 중앙 미드필더 역할을 맡았는데, 이 때문인지 포르티모넨스 SC 시절에서 보여줬던 만큼의 기량이 잘 나오지 않는다. 포지션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카타르 리그와는 잘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2월 16일 알 사일리야와의 리그 경기에 선발 출전하며 데뷔전을 치렀다.

3월 1일 알 아흘리와의 리그 경기에서 이적 후 첫 골을 기록했다.

3월 16일 알 힐랄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경기에서 ACL 첫 득점을 기록했다.

2.6. FC 포르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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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중동에 갇히나 싶더니 2019년 7월 5일 FC 포르투로 이적했다. 중간에 카타르라는 엉뚱한 경유지를 지나긴 했지만, 결과적으론 작년에 돌던 소문대로 포르투갈의 상위 클럽으로 갔다. 이적료는 1,200만 유로. 등번호는 또 다시 10번.

알 두하일과 포르투의 공동소유 형태로 계약했다. 바이아웃 금액은 8,000만 유로(약 1,055억원)로, 만일 팔린다면 수익은 두 클럽이 50%씩 나눠 가지게 되었다.

SL 벤피카에서 포르투보다 40% 이상 높은 연봉과 300만 유로 가량 더 높은 이적료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포르투를 선택했다고 한다. 아마 포르투가 좀 더 주전 경쟁이 수월한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또한 전통적으로 포르티모넨스 SC는 포르투와 강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이적 과정에서 구단 및 에이전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8월 챔스 3차 예선 크라스노다르전에 출전하였으나 별다른 활약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졌고, 포르투는 9년만에 챔스 본선 진출에 실패하게 됐다.

9월 16일 포르티모넨스 SC전에 교체 출전하였으나 컨디션이 안좋은 수준을 넘어, 거의 블랙홀에 가까운 경기력을 보여줬다. 경기가 끝난 뒤 경기장 위에서 세르지우 콘세이상 감독에게 욕을 먹었다. 심지어 카메라가 훤히 켜져 있어서 경기를 보는 모든 시청자들에게 감독에게 욕먹는 장면이 찍혔다.# 단순히 주전경쟁에 적신호가 켜진 걸 넘어 감독에게 완전히 찍힌 듯하다.

본인의 부진 탓에 팀이 패배 위기에 몰린 것은 사실이나(팀은 나카지마의 투입 이후 두 골을 실점해 3-2로 신승했다.), 그렇다고 라커룸도 아닌 공개된 장소에서 선수에게 모욕감을 줄 필요는 없었다. 현지 여론 역시 세르지우 콘세이상에게 선수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댓글이 대부분. 의외로 나카지마의 모국인 일본에서는 나카지마의 플레이를 비판하면서 감독이 화낼 만하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다만 나카지마가 대표팀 A매치 경기를 치른 뒤 바로 갖게 된 리그 경기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부분과 상대팀이자 경기 후 전 소속팀이었던 포르티모넨세 선수들과 지나치게 친목질(?)을 나누었던 것이 감독인 콘세이상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한 요인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아직 나카지마의 포르투갈어 및 영어 실력이 좋지 못해 당시 영상을 보면 경기 후 감독이 나카지마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했지만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고개를 돌려 자리를 피하자 감독이 계속 나카지마를 부르다가 쫒아가 돌려세워 일갈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일본 팬들 입장에서는 자국 선수가 포르투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길 기대했으나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결국 서브로 밀려난 상황에서 저런 일까지 터졌으니 불만을 꽤 가지는 모양이었다.[6]

사실 자국 일본에서도 원래부터 나카지마의 4차원적인 정신세계와 기행을 비판하는 의견이 많았는데[7], 이번 기회에 그 동안 쌓인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셈. 덤으로 같은 경기에서 포르티모넨스의 안자이 코키는 나카지마 덕분에 골을 넣으는 등 안자이랑 비교돼서 더욱 까였다.

이후 감독의 일갈에 정신을 차렸는지 9월 25일 리그컵 경기에서 CD 산타 클라라를 상대로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며 데뷔 골을 넣었다. 예전의 감각을 되찾았다는 평이다.

그러나 9월 29일 리그 히우 아베전에서 경악스런 경기력을 70분간 선보인뒤 교체되었다. 이 후 벤치와 교체출전만 반복하며 커리어에 크나큰 적신호가 발생했다.

포르투갈 리그가 재개 된 후 열린 첫 경기인 파말라카오 전에서는 아예 대기 명단에도 들지 못했다. 게다가 콘세이상 감독의 말에 의하면 3주 가까이 팀 훈련에도 불참했다고 한다. 아예 구단쪽에서 나카지마가 훈련에 나오는걸 거부했다.[8] 가뜩이나 좋은 모습도 보여주지 못하는 와중에 계속 이렇게 불화를 일으키고 있으니 이대로라면 사실상 나카지마의 유럽 생활은 쪽박이 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후론 엄청 입지가 낮아졌다. 몸값은 아시아내 몸값이 8위, 그리고 28경기 출전했지만 스탯은 겨우 1골 3도움이었다. 심지어 5 아닌 포르투갈 리그에다[9] 현역 아시아 선수 몸값 8위 역대 아시아 최다 이적료 1위라는 입지가 무색할 정도였다.[10]

하지만 2020-21 시즌에 들어서 나카지마와 콘세이상 감독이 화해를 한 모양이다. FC 포르투 공식 유튜브 영상에 샹셀 음벰바와 같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였고, 질 비센트 FC와의 리그 제 5라운드 경기에서는 모처럼 선발로 출전하여 거의 1년만에 공식석상에 등장하게 되었다. 나카지마는 이 경기에서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큰 활약을 하였다. FC 포르투 팬들은 드디어 나카지마가 정신을 차렸다며 반가워하는 중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주전을 하지 않아서 주전 경쟁에서 입지가 좁아져서 그런지 교체로 출전하고 있다. 하지만 그 동안의 슬럼프에서 벗어나서 제대로 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 만으로 일단 위안을 삼아야겠다.

1시즌 늦게 들어온 이란 선수 팀동료 메흐디 타레미가 20-21 첫 포르투 시즌에서 리그 16골 15도움 및 컵 대회 5골, 챔피언스 리그 16강전, 8강전에서 1골씩 넣으며 시즌 23골에 18도움을 기록하여 무려 41개의 공격포인트로 숫자만 놓고 보면 손흥민 보다 더 많은 아시아 유럽파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이렇게 타레미가 세르지우 올리베이라와 같이 팀 득점을 같이 책임지다가 시즌을 리그 도움 1위, 리그 득점 3위이자 팀 득점 1위로 맹활약한 거랑 대조적이다. 게다가, 타레미는 전번 시즌 히우아브에서 뛰면서 리그 18골을 기록해 아시아 처음으로 포르투갈 리그[11] 득점 1위까지 차지했음에도 쇼야보다 낮은 이적료로 포르투로 이적해서 훨씬 더 잘하니 더더욱 쇼야의 입지에 타격을 주게 되었다.

여담으로 포르투는 포르투갈 자국 선수 포르투갈 리그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 선수들과 모두 계약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석현준은 비토리아 세투발에서 리그 9골(한국 선수 포르투갈 리그 최다골이다.)을 기록하고 다음 시즌, 포르투로 기대받으며 들어왔으나 1시즌 만에 떠나야 했고 바로 나카지마도 포르티모넨스에서 리그 10골을 넣으며 일본 선수 포르투갈 리그 최다골을 기록해 기대받으며 들어왔다가 저 모양이 되었다. 3번째로 온 타레미는 리그 18골을 넣으며 이란 선수는 물론이고 아시아 선수 프리메이라 리가 최다 득점 기록까지 세우며 포르투갈 리그 득점 공동 1위가 된 바 있는데 앞선 아시아 2명보다 포르투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비교가 안될 정도로 온갖 각종 기록들을 써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22-23 시즌에는 기어코 프리메이라 리가 단독 득점왕까지 차지하여 아시아 국적 첫 프리메라리가 득점왕 기록까지 세우는 기염을 토했다.[12]

결국 2021년 2월, 아랍에미리트 리그의 알 아인으로 반시즌간 임대를 갔으나 부상으로 별로 뛰어보지도 못하고 시즌 아웃되었다. 그리고 알 아인과의 계약에서 코로나 감염을 숨긴 혐의로 현지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단 보도가 나왔다.

21-22 시즌에도 당연히 포르투에서는 기회를 잡지못해 2021년 8월, 이전에 좋은활약을 펼쳤던 친정팀 포르티모넨스 SC로 임대 이적했다. 그러나 리그 초반 3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하고 바로 벤치 멤버 신세를 면치 못하였고, 결국 시즌 총 22경기 1골 3도움을 기록하여 또다시 지지부진한 활약을 펼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에 포르투갈 언론의 ‘오 조고’ 지는 4월 10일 “나카지마가 비싼 몸값을 잊게하는 활약으로 잊혀졌다."고 대차게 까였다.

이후 22-23 시즌에 다시 포르투로 돌아왔지만, 리그 개막전에는 당연히 명단에도 들지 못하였고, 등번호도 정식으로 못 받는 등 사실상 이도 저도 아닌 신세가 되었다. 이후 튀르키예와 중국 리그에서 정식으로 오퍼가 왔지만 이적료를 더 회수하기를 원하는 포르투 측과 유럽에서 더 도전하길 원하는 선수 측에서 맞물려 거부했다고 한다. #

2.7. 안탈리아스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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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시각 2022년 9월 8일, 2년 계약으로 튀르키예의 안탈리아스포르 이적 오피셜이 발표되었다.# 이로써 3년만에 본인 선수생활의 흑역사였던 포르투와의 인연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현지 시각 2022년 9월 17일, 안탈리아스포르 이적 후 두 번째 출전 경기에서 후반 58분 교체 투입되었는데 투입된지 30초 만에 발목 태클로 비디오 판독 끝에 바로 퇴장당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경기는 0 대 3 완패. 하필 이 경기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관전하러 왔었는데, 나카지마가 퇴장당하자 그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모습이 생생히 나오기도 했다.#

리그 15경기 출전에 무득점으로 여기에서도 주전에서 밀리며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2023년 7월 4일에 계약 해지가 발표 되었다.

2.8.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결국 유럽 생활을 정리한 뒤 2023년 7월 25일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에 입단하면서 J리그로 복귀했다. # 등번호는 유럽에서도 달았던 10번을 계속 사용한다.

3.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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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AFC U-23 챔피언쉽에서 MVP를 수상한 나카지마 쇼야
2011년 멕시코에서 열린 U-17 월드컵에 일본대표로 선발되어 8강 브라질 전에서 득점을 기록했다.

2014년 1월, AFC U-22 챔피언쉽에서 등번호 10번을 달고 출전하여 팀내 최다득점인 3골을 기록하였다. 같은 해 9월에 열린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도 팀내 에이스 역할을 맡았지만 8강 홈팀인 대한민국전에서 패배하며 메달권에는 들지 못했다.

2016년 1월, 리우 올림픽 지역 예선격으로 치뤄진 AFC U-23 챔피언쉽에 출전하여 8강 이라크전에서 2득점, 결승 대한민국전에서 역전골을 어시스트하며 일본의 첫우승에 공헌하였고, 대회 MVP를 수상했다. 이후 리우 올림픽 본선에도 참가하여 조별리그 2차전 콜롬비아전에서도 득점했지만 일본대표팀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만다. 올림픽까지 U-23 공식경기에서 그가 올린 득점은 무려 19득점이었다.

2018년 3월 말리와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했고 동점골을 넣으며 데뷔골까지 기록했다. 17-18시즌 소속팀에서의 뛰어난 활약을 배경으로 2018 러시아 월드컵 출전도 점쳐졌지만, 새로운 감독 체제로 바뀌면서 월드컵 대표팀에 뽑히진 못했다.

2018 월드컵 이후 새롭게 취임한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은 대표팀에서 나카지마 쇼야를 선발로 기용하고 있어 앞으로 일본 대표팀의 공격을 이끌 주전 멤버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10월 16일 사이타마에서 열린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에서, 왼쪽 윙포워드로 출전해 측면에서 날카로운 스루 패스로 미나미노 타쿠미의 선제골을 어시스트 했다. 이어서 패널티 박스 앞에서 우루과이 수비들 사이로 강력한 슈팅을 시도, 무슬레라의 선방에 막혔으나 오사코 유야가 세컨볼을 차넣으며 추가골에도 기여했다. 이 후에도 수차례 유효슈팅을 기록하며 공격을 이끌었고, 우루과이 상대로 일본이 26년만에 승리를 거두는데 크게 기여했다.

2019년 1월 AFC 아시안컵 대표팀에 뽑혔으나 소속팀에서 입은 부상이 회복되지 않아, 결국 대회를 며칠 앞두고 명단에서 제외됐고 그 자리를 대신하여 이누이 타카시가 추가 선발됐다.

2019년 3월 콜롬비아, 볼리비아와의 친선 경기에 출전하여 볼리비아 전에선 결승골을 기록했다.

2019년 6월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하여 조별리그에서 에콰도르를 상대로 1골을 기록했다. 대회 동안 나름대로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주었으나 일본이 사실상 올림픽 대표팀 수준으로 코파에 참가한 탓에 C조 3위의 성적으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 FC 포르투와의 불화와 그에 따른 출전 기회 감소로 국가대표 차출 기회도 낮아질 전망이다.

2020년 10월에 오랜만에 A매치를 맞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은 "나카지마는 국가대표팀에 합류하기에 앞서 프로 팀에서 신뢰를 받는 것을 먼저 우선시해야 한다." 라고 일갈했을 정도이다.

결국 국가대표에서 포지션 경쟁자들이 많은 상황에서 이들에 비해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는 탓으로 2019년 이후로는 한 번도 국가대표에 차출되지 않고 있으며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선발이 좌절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주로 왼쪽 측면 미드필더나 윙포워드로 플레이하는 반댓발 윙어이다. 킥의 정확성이나 패스 센스가 뛰어나며 빠른 발을 이용한 공간 침투도 위협적.

최대 장점은 전진 드리블 능력으로, 좌우로 흔드는 드리블과 중앙 돌파 모두 가능하다. 그래서 팀 내에서는 전천후 드리블러이자 크랙으로서 공격을 주도할 때 가장 좋은 활약이 나온다. 또한 작은 체격이지만 신체 밸런스가 좋은 편이라 상대가 밀어도 잘 넘어지지 않는다. 어지간한 수비수 2~3명을 쉽게 벗겨내는 탈압박 능력과 킬패스, 상대의 수비를 이겨내며 공을 키핑하는 볼 간수 능력, 중거리슛 능력을 모두 갖췄기에 한때 일본 국가대표에서는 최우선적인 주전이었다.[13]

단점은 제공권과 수비력. 수비 가담은 높은 위치가 아니라도 공을 뺏기면 적극적으로 압박하는 등 평균적인 능력은 보여준다. 하지만 키가 작기 때문에 코너킥 상황이나 공중볼 경합에는 아예 관여하지 않으며, 설령 시도해도 성공하는 일이 드물다. 더구나 공격수인 만큼 수비 가담을 하더라도 수비력 자체가 좋지 못하고, 신체 밸런스가 좋은 것과 별개로 작은 체격 때문에 피지컬적인 한계가 뚜렷하다. 이러한 약점 때문에 유럽 진출 초창기에는 좋은 활약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장점이었던 공격 패턴이 상대 수비에게 파악이 되기 시작하고 피지컬에서도 우위를 점하지 못해 막히는 일이 늘어나면서 결과적으로 공격과 수비 모두 제대로 안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 탓에 포르투 이적 후로는 주전에서 밀렸고, 소속팀에서 부진하면서 국가대표와도 거리가 멀어졌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7.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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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등번호 국적 포지션 한글 성명 일문/로마자 성명 생년월일 체격
1 파일:일본 국기.svg GK 니시카와 슈사쿠 西川 周作 1986.06.18 183cm / 81kg
2 파일:일본 국기.svg DF 사카이 히로키 酒井 宏樹 1990.04.12 185cm / 78kg
3 파일:일본 국기.svg MF 이토 아츠키 伊藤 敦樹 1998.08.11 182cm / 78kg
4 파일:일본 국기.svg DF 이시하라 히로카즈 石原 広教 1999.02.26 169cm / 65kg
5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DF 마리우스 회이브로텐 Marius Hoibraten 1995.01.23 185cm / 77kg
6 파일:일본 국기.svg MF 이와오 켄 岩尾 憲 1988.04.18 175cm / 65kg
7 파일:일본 국기.svg FW 아베 히로키 安部 裕葵 1999.01.28 171cm / 65kg
8 파일:일본 국기.svg MF 코이즈미 요시오 小泉 佳穂 1996.10.05 172cm / 63kg
9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FW 브라이언 린센 Bryan Linssen 1990.10.08 170cm / 64kg
10 파일:일본 국기.svg MF 나카지마 쇼야 中島 翔哉 1994.08.23 164cm / 64kg
11 파일:스웨덴 국기.svg FW 사무엘 구스타프손 Samuel Gutsafson 1995.01.11 186cm / 80kg
12 파일:브라질 국기.svg FW 티아고 산타나 Thiago Santana 1993.02.04 183cm / 81kg
13 파일:일본 국기.svg MF 와타나베 료마 渡邊 凌磨 1996.10.02 176cm / 72kg
14 파일:일본 국기.svg MF 세키네 타카히로 関根 貴大 1995.04.19 167cm / 63kg
15 파일:일본 국기.svg MF 아키모토 타카히로 明本 考浩 1998.01.31 170cm / 65kg
16 파일:일본 국기.svg GK 니에카와 아유미 牲川 歩見 1994.05.12 195cm / 90kg
17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FW 올라 솔바켄 Ola SOLBAKKEN 1998.09.07 186cm / 81kg[1]
18 파일:일본 국기.svg MF 타카하시 토시키 髙橋 利樹 1998.01.20 182cm / 76kg
20 파일:일본 국기.svg DF 사토 요타 佐藤 瑶大 1998.09.10 183cm / 77kg
21 파일:일본 국기.svg MF 오쿠보 토모아키 大久保 智明 1998.07.23 170cm / 62kg
23 파일:일본 국기.svg DF 이노우에 리키토 井上 黎生人 1997.03.09 180cm / 77kg
24 파일:일본 국기.svg DF 미야모토 유타 宮本 優太 1999.12.15 170cm / 70kg
25 파일:일본 국기.svg MF 야스이 카이토 安居 海渡 2000.02.09 174cm / 69kg
27 파일:태국 국기.svg MF 에카닛 판야 Ekanit Panya 1999.10.21 168cm / 68kg
28 파일:덴마크 국기.svg DF 알렉산더 숄츠 Alexander Scholz 1992.10.24 189cm / 84kg
29 파일:일본 국기.svg MF 호리우치 요타 堀内 陽太 2004.07.08 171cm / 66kg
30 파일:일본 국기.svg FW 코로키 신조 興梠 慎三 1986.07.31 175cm / 72kg
31 파일:일본 국기.svg GK 요시다 슌 吉田 舜 1996.11.28 185cm / 83kg
35 파일:일본 국기.svg MF 우가진 토모야 宇賀神 友弥 1988.03.23 172cm / 71kg
38 파일:일본 국기.svg FW 마에다 나오키 前田 直輝 1994.11.17 177cm / 72kg
39 파일:일본 국기.svg FW 햐아카와 준페이 早川 隼平 2005.12.05 163cm / 65kg
47 파일:일본 국기.svg MF 타케다 히데토시 武田 英寿 2001.09.15 178cm / 68kg
66 파일:일본 국기.svg DF 오하타 아유무 大畑 歩夢 2001.04.27 168cm / 65kg
구단정보
사장: 타치바나 요이치 / 감독: 마치에이 스코르자 / 홈구장: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출처: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 최종 수정 일자: 2024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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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S 로마에서 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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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축구협회 공식 프로필[2] 한화로 약 470억, 45억이다.[3] 위성 구단을 통한 임대 및 이적 방식은 대기업 내에서 자주 벌어지며, 종종 뉴스에서도 거론되는 내부거래의 일종이라 볼 수 있다. 위성 구단에서 높은 가격으로 선수를 구입해 이적시킨 뒤, 모 구단에 다시 싼 값에 임대 또는 이적시키면 모 구단의 FFP 규정 위반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소속 클럽인 포르티모넨스는 이번에 한몫 단단히 챙기려는 마인드로 바이아웃 외엔 이적 자체를 불허하였고, 클럽이 정한 바이아웃 금액 자체도 나카지마의 구매에 적극적이었던 울버햄튼 등 유럽권 리그의 중소 규모 클럽들이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높아 사실상 자금력이 빵빵한 중동,중국 클럽 외엔 답이 없었다.[4] 카타르로 이적하며 아시아 최고 이적료를 찍긴 했지만 이는 유럽에서 뛰던 선수들이 중동 리그로 갈 경우 몸값이 최소 몆 배는 뛰는 걸 감안하고 봐야 한다.[5] 더욱이 PSG(리그앙) 뿐 아니라 맨시티, 첼시(EPL)등 5대 리그 중 2개 리그의 3팀이 연관된 상황이므로 주관기관인 FIFA에서 마냥 손놓고 있을 경우 FFP 규정 자체가 무너져 향후 5대 리그 전체 모든 팀들에 파급될 위험이 있다. 다시 말해 시기와 범위가 문제일 뿐이지 제재는 피할 수 없다.[6] 물론 라커룸이 아닌 공개된 필드 위에서 감독의 행동은 아쉽다는 의견또한 많았다.[7] 9/5일 파라과이와의 평가전 홈경기에서 전반에만 2:0으로 이기고 있던 중, 전반 추가 시간 때 묘기하듯 공을 톡톡 차며 드리블을 하다가 분노한 파라과이 선수의 보복성 태클을 얻어맞아 양측 선수들이 가벼운 언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물론 경기 후 나카지마 선수는 파라과이 라커룸에 찾아가 자신의 플레이에 대해 오해를 풀고 사과를 했다고 한다. 나카지마는 기자회견이나 예능에 출연할때마다 '축구는 즐겁게 플레이하는것이 좋다'는 발언을 자주 해왔는데, 종종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조롱당하는 느낌을 받게 오해를 사는 경우가 있는 편이다.[8] 훗날 밝혀진 일화에 따르면 나카지마는 코로나 사태 이후 가족들의 건강이 염려된다는 이유로 한 달간 경기에 참여하지 않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부탁하는 어이를 상실한 요구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안 그래도 최근 벤피카의 우승행보에 비견하여 부진했던 포르투는 이번 시즌 만큼은 우승에 대한 강박관념이 심했는데 나카지마의 이런 무성의한 태도로 감독과 포르투 선수들은 결국 화가 단단히 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9] 물론 리그 수준은 에레디비시RPL과 더불어 5대 리그 다음가는 리그이다[10] 설상가상으로 FC 포르투는 오랜만에 리그 우승을 맛봤지만 리그 마지막 경기에는 나카지마가 없었고 심지어 시상식에도, 경기 후의 단체사진에도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나카지마를 위한 우승 메달도 준비하지 않았다.[11] 다른 2명과 공동 기록이지만 출전 시간에 밀려 카를로스 비니시우스가 득점왕이 되었다.[12] 참고로 타레미는 리그 올해의 팀 4시즌 연속 선정과 도움왕 및 한 시즌 유럽 리그 아시아 역대 최다 공격포인트 및 40개 이상 공격포인트를 3시즌 연속 기록하며 자신의 아시아 최다 공격포인트 기록을 경신하였다.[13] 이전까지 이러한 역할을 담당했던 혼다와 카가와의 장점을 전부 갖추고 있다. 그래서 나카지마의 출전과 교체아웃 이후의 일본 대표팀 경기력과 볼 소유, 공격 기회의 수가 눈에 띄게 차이가 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