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민주주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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構造改革論
1. 개요
1960년대 초 일본사회당 내 개량주의적 정치담론.1960년 일본 총선 시기부터 에다 사부로는 우파사회당 진영의 대표 인물로써[1] 구조개혁론을 일본사회당의 주된 정책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노농파 마르크스주의와 혁명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사회주의 협회 등을 비롯한 좌파사회당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일본 내에서는 '구조개혁론'보다는 단순하게 '구조개혁'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2. 에다 비전
1962년에 에다 사부로는 구조개혁론을 구체화하여 에다 비전(江田ビジョン)을 제시했는데 그는 사회당 집권시 일본이 목표로 삼을 미래상으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제시하면서 이것들을 종합적으로 조정하여 나아갈 때 대중과 연합한 사회주의가 탄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한마디로 의회 투쟁을 통한 개혁으로 사회주의를 점진적으로 추구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민주사회주의적 사회민주주의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3. 좌파의 구조개혁론
일반적으로 구조개혁론은 에다 사부로의 구조개혁론을 말한다. 그러나 한편 나리타 도모미 같은 구조개혁론 좌파도 존재했다. 이들은 "투쟁하는 구조 개혁"을 지지했으며 외교적으로는 친중파적인 성격을 보였다. 마르크스주의를 완전히 버린 에다의 구조개혁론과 달리 나리타의 구조개혁론은 마르크스주의를 사수하였다. 그래도 구조개혁론을 주장하던 이 시기까진 혁명적 사회주의보다는 민주사회주의에 더 가까웠었다.4. 한계
구조개혁파를 결성한 당내 우파인 카와카미파와 와다파, 당외 우파인 민사당 니시오 스에히로 중앙집행위원장을 필두로 중도~우파층에게 고른 지지를 받았으나 사사키파를 필두로 한 당내좌파의 격렬한 반대로 인한 당내 투쟁의 염증의 결과로 1969년 중원선에서 140석의 의석에서 90석으로 추락하고 에다는 중앙집행위원장 선거에서 낙선하게 된다.결국 구조개혁파 출신의 사회당 위원장이였던 나리타 도모미마저 좌파에게 포섭되었다. 이후 사회당은 한동안 혁명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사회당 좌파들이 주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