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13:48:03

강감찬(고려 거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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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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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고려거란전쟁_현종_neat_ver.jpg
파일:고려거란전쟁_강감찬_neat_ver.jpg
파일:고려거란전쟁_양규_neat_ver.jpg
그 외 등장인물 및 특별출연은 등장인물 (고려·거란·기타 국가) 문서 참고.
[ OST ]
||<tablewidth=100%><tablebgcolor=#676767><tablecolor=#ffffff><width=25%>
파일:고려 거란 전쟁 OST Part 1.jpg
||<width=25%>
파일:고려 거란 전쟁 OST Part 2.jpg
||<width=25%>
파일:고려 거란 전쟁 OST Part 3.jpg
||<width=25%>
파일:고려 거란 전쟁 OST Part 4.jpg
||
[[고려 거란 전쟁/음악#s-2.1|
Part 1

비상]]
서도밴드
2023.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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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폭풍]]
김장훈
2023.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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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동
(붉은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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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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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에
나는
]]
IYAGI (이야기)
2024. 02. 03.
그 외 오리지널 스코어는 음악 문서 참고.
[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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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70707><colcolor=#fff> 고려군 상원수 겸 서북면 행영도통사
강감찬
姜邯贊
파일:고려거란전쟁_강감찬_neat_ver.jpg
캐릭터
지위 충주 판관 (2 ~ 4회)예부시랑 (4 ~ 16회)
한림학사승지[1] (16 ~ 17회, 21 ~ 23회)
동북면 행영병마사 (23 ~ 24회[2])
→ 중추사 (25~ 29회)
→ 상원수·서북면 행영도통사[3] (1회[프롤로그], 29 ~ 32회)
가족 강감찬 처 (배우자)
강행경 (아들)[5]
등장회차 1프롤로그 ~ 32회
배우
최수종

1. 개요2. 배우3. 작중 행적4. 인간관계5. 묘사6. 총평7. 어록8. 여담

[clearfix]

1. 개요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고집 센 70의 늙은 문관.

단 한번이라도 이 늙고 보잘 것 없는 신하에게 고려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기꺼이 목숨을 바쳐 그 일을 해낼 것이다.

KBS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등장 인물. 배우는 최수종이다.

2. 배우

배우 최수종은 본작이 KBS 대하드라마 네 번째 출연이다.[6] 역대 대하드라마 중 태조 왕건의 주인공 왕건, 대조영대조영, 대왕의 꿈김춘추로 모두 타이틀 롤이었으며, 이번에는 단독 주인공은 아니지만 현종, 양규와 함께 공동 3인 메인인물로 출연한다.[7] 고려 거란 전쟁 캐스팅이 확정된 이후, 2023년 4월 26일에 방송된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밝힌 비화에 의하면,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보면, 장보고, 대조영, 강감찬, 서희가 한 소절 안에 같이 등장하는데, 본인은 장보고, 대조영을 이미 연기해봤고, 이번 작품을 통해 강감찬까지 연기하게 되었으니 서희[8] 역까지 연기해서 한 소절 안에 등장하는 위인들의 배역을 모두 맡아봤으면 좋겠다."는 개인적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당 드라마에서도 서희의 특징이 부분적으로 반영되었다. 특이점으로 최수종이 맡은 KBS 사극 배역 중 유일한 백면서생 캐릭터라는 거다. 이전에 나온 사극 캐릭터 중 대왕의 꿈의 '김춘추'조차도 삼국시대라는 시대적 특성과 화랑도의 풍월주를 맡았다는 점 때문에 본인 몸 지킬 수 있을 정도의 무력[9]을 갖춘 반면, 대놓고 '무예에 소질이 없었다'라고 『고려사』에서 못 박은 강민첨만큼은 아니어도, 메이킹 영상에서도 나왔듯이 강감찬은 귀주 대첩으로 대표되는 제3차 여요전쟁 이전까지는 한 번도 갑옷을 입지 않은 문신이다.

또한 드라마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제2차 여요전쟁 기준 배우의 나이대가 매우 유사한 배역으로 강감찬은 강조의 정변 당시 기준으로 이미 환갑이 넘은 진갑의 노인이었는데, 최수종 또한 2023년 기준 딱 진갑을 맞이한 61세이다.[10] 그런데 최수종이 40대처럼 보일 정도로 엄청난 동안[11]이다 보니 사전에 기사로 본 사람들이나 시청자들 중에선 '강감찬 배역치곤 지나치게 젊은 거 아니냐?'라고 생각하다가 뒤늦게 최수종이 61살이라는 걸 알고 놀랐다는 사례도 많다. 게다가 선배가 있었던 지금까지의 사극과 다르게 이번 작품은 최수종이 고정 출연진들 중에서 최고참인 첫 대하드라마란 점도 특이사항이다.

3. 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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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간관계

  • 현종 - 현종의 정치 스승.[12] 급작스럽게 왕위에 올라 통치에 필요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으며, 강조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정치와 국제 관계 등을 알려준다. 8회와 11회 후반에서 드러나듯이 두 사람 모두 서로 의지하고 충성을 바치는 것을 고백하나 때로는 그 고집들로 인해서 갈등을 겪는 등(17회~19회) 나름 입체적인 관계이다. 물론 화해 이후에는 철저하게 현종이 신뢰하는 신하로 나오고 있다.
  • 아내 - 결혼 생활 내내 외방에만 머무는 자신 때문에 바가지를 긁는 아내를 만나면 늘 피해다니거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도 국난이 닥쳐오자 아내가 '죽어도 같이 죽자'라면서 그의 곁을 지키러 개경까지 상경하고, 강감찬의 고충을 이해해주는 걸 보면 벼슬길이 잘 안 풀린 과거와는 별개로 부부 관계는 끈끈해 보인다. 어찌 보면 강조의 처처럼 비단 옷을 입고 귀부인의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강감찬 때문에 일반 백성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입고 집안일도 혼자 다하는 모습이다.[13]
  • 김종현 - 충주에서부터 인연을 쌓은 아랫사람. 충주 시절에는 강감찬이 김종현의 직속상관 격이었다. 강감찬과 김종현은 작중 초반 전형적인 멘토와 멘티 비슷한 관계로 묘사되었으나, 강감찬이 중앙 정계로 진출한 이후에는 그닥 접점이 없었고[14], 강감찬 역시 조정의 일을 전달하거나 받는 역할은 김종현에서 강민첨에게로 옮겨갔다. 그러나 제3차 여요전쟁을 앞두고 다시 만나 중갑기병을 맡는다.
  • 강민첨 - 드라마 중반 서경에서 만나기 전까지는 접점이 없었으나 이후에는 강감찬의 오른팔이 되면서 강감찬과 같이 하는 부분이 많아졌다. 후에 전쟁을 끝장내는 최종전에서 상하관계로 거란에 맞선다. 강감찬과 같은 진주 강씨이긴 하나 사촌간은 아니라 한다.[15]
  • 소배압 - 드라마 오프닝 영상에서부터 고려를 두고 정면승부할 것임을 보여주었고, 9회에서 야율융서에게 친조 의사를 전달할 때부터 소배압은 계속 강감찬을 의심하였는데 결국 거란 황제를 기만한 강감찬이 달아나며 한방 먹는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거란의 발목을 잡는 활약을 하면서 소배압은 "또 강감찬 네놈이냐"라며 학을 뗄 지경까지 왔고, 강감찬 역시 13회 예고편에서 "거란주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자는 그 자뿐"이라는 대사와 함께 소배압과 일대일 대면을 하는 장면까지 나오는 등, 조금씩 서로를 의식하는 묘사들이 나오고 있으며 마침내 최종전에서 지략 대결을 펼치면서 긴장감을 유발한다.
  • 강조 - 조정을 장악한 권력자와 그런 권력자에게 가차없이 직언을 날리는 관계인데, 이를 두고 강조의 측근인 이현운이 저렇게 일침을 가하는 강감찬을 파직할 것을 건의하지만, 정작 강조 본인은 "그(강감찬)는 원래 그런 사람이고, 조정 안에 자기 편도 없으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면서 놔두었다. 이후 전혀 만남이 없었다가 강감찬이 사신으로 거란 진영에 갔을 때 강조의 수급을 보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 최항 - 자신을 조정에 재입성하게 해준 선임.[16][17]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자기 생각을 밝힐 줄 아는 강단 있는 신료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어서 조정 내에서 그나마 강감찬을 이해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강감찬과 달리 어느 정도는 눈치를 볼 줄 아는 편이라[18] 그를 제지하는 역할도 한다. 2차 여요 전쟁 당시에는 입장이 다른 강감찬과 충돌하는 일이 늘어나 오히려 대척점 포지션으로 굳어지기도 했으나,[19] 전후 현종의 지방개혁 건으로 내부 갈등이 심해지는 가운데 최항이 다시 강감찬을 찾아가 정국을 돌파할 방법을 찾으라고 요청한 것을 보면 완전히 대립하는 관계는 아니다.
  • 양규 - 실제 역사에서 접점은 없으나, 드라마에서 강감찬의 행적이 각색되면서 서경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고, 이후 서로가 나라에 가진 충성심을 알아보고 완전히 신뢰하게 되었다.
  • 김은부 - 김은부의 등용 후 '호족 척결과 중앙집권 강화'가 먼저냐, '거란의 재침공 대비'가 먼저냐를 두고 논쟁을 벌이게 된다. 이때 "순서대로 일을 처리해도 7~8년이나 걸린다."[20]고 밝히다가 결국 초반 악감정만 남긴 채 강감찬은 잠시 고향인 금주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두 사람 모두 현종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정책 방향을 두고 서로 논쟁을 할 뿐 앙숙일 일은 없었는지 이후 고향에 내려가 머물던 강감찬이 현종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와중에 궁지에 몰린 김은부를 구해냈고 현종의 중재로 협력 관계로 나오고 있다. 물론 극 중 김은부가 먼저 하차[21]하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는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5. 묘사

원작 소설에서는 현종이 그에 대해 "사람 간의 관계에 서툴지만 부지런하며 맡은 바 임무를 다하는 관료"로 여기고, 세상을 경륜할 인재까지는 아니지만 관료로서 도를 넘지 않고 진정 보신에 능하여 본인에게 딱 좋은 인물로 평한다. 그의 심한 원리원칙주의와 이상주의로 인해 관료들이 그와 가까이 하기를 꺼린다고 설명되며, 거란의 1차 침공이나 강조의 정변 등의 큰 사건을 겪었으면서도 혼자만 자신의 자리에 그대로 남아 파벌을 만들지 않는 인물로 그려지기에 평소에는 과묵하지만 자기가 하고자 하는 말은 원로 대신 앞에서 예법에 어긋나더라도 분명히 하는 태도를 보인다. 또한 원작에서는 현종에 대해 그가 즉위 당시부터 성정이 좋지만 나약한 군주라서 자신의 주장에 호응을 제대로 해줄지도 반신반의했지만, 자신의 예상보다도 현종이 더 적극적으로 그를 추진하자 생각했던 것보다 더 굳건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여기게 되고, 현종 역시 평소에는 말수가 없던 강감찬이 전란 속의 조정에서 강경하게 나오는 것을 보고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인물인가 고민한다.[22]

조연이었던 원작 소설의 강감찬과는 달리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으로 승격되었는데, 담당 배우인 최수종 덕분에 사서의 기록 및 원작 소설에 묘사되어 있는 작은 체구와 볼품없는 외모와는 거리가 먼 인상을 준다. 드라마에서는 원작의 사교성 없는 면모와 괴짜로 보이는 부분이 더 강화되어 사실상 독불장군에 가깝게 묘사되며, 거의 〈정도전〉의 윤소종을 방불케 하는 작중 최고의 독설가다.[23] 등장하는 씬마다 본인의 통찰을 바탕으로 주변인들에게 일침을 때려넣는지라 아내는 이것 때문에 지방을 전전한다며 한이 쌓여 바가지를 긁고, 정변으로 실권자가 된 강조는 "앞뒤 안 가리고 말하는 건 여전하다"며 깐다. 이미 60을 넘은 고령이기에 연륜을 바탕으로 통찰력을 보여주나, 사람 사이에서의 처신은 나잇값을 못하고 서투르다. 아내의 인물 소개에는 아예 '열다섯 살 아이 같다'고 대놓고 디스하고 있다. 오죽하면 본인보다 24살이나 어린데다 역시 강직한 편인 최항에게마저 언행을 교정받을 정도다. 이러한 성격 때문인지 외직을 전전하면서도 존재 자체는 유명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중앙에 있었기 때문에 강조나 최항 같은 웬만한 중신들과도 안면을 트고 있고[24], 실제로 그 덕에 눈앞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최항이 국가적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 중앙의 고관으로 복귀시킨다. 강조도 앞뒤 안 가리고 비판을 쏟아내는 강감찬에 대해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듯 신경쓰지 않는다. 능력은 있고 집안도 금주(광명시)의 호족 가문에 개국공신의 아들이니[25] 본인도 사교성이나 의지만 좀 더 있었다면 출세에는 특별히 문제가 없었을 법도 한데, 존재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괴짜 이미지가 박힌 듯하다.

그런데 사극 드라마 캐릭터적인 문제가 발생하는데, 해당 인물인 강감찬 장군은 인생 초중반기에 대한 사료적인 기록이 너무 없고 그나마 지방을 전전했단 것도 설화에 불과하기 때문에 온전히 상상력과 추리로만 그 제2차 여요전쟁 시절이라는 빈 공란을 메워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인물이다.[26] 그래서 2차 여요전쟁 에피소드에서는 전투는 양규가 담당하고, 강감찬은 조정의 정사와 외교에서 두각을 드러내었으며 제2차 여요전쟁이 끝나고 양규가 전사한 이후에서야 본격적으로 갑옷을 입고 처음으로 전장으로 나가 여진족들과 싸우는 모습이 나왔다 . 그래서 일차적으로 위 설화 및 원작의 설정을 각색해 "타고난 자질은 매우 뛰어나나 처세술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거침없이 할 말을 하는 성격 때문에 오랫동안 출세하지 못하고 지방 한직을 전전했다"는 설정을 도입한다. 이는 오랫동안 기록이 없다가[27] 60이 넘은 나이에 갑자기 출세하여 큰 공을 세운 강감찬의 행적과 맞아 떨어지기에 이리저리 개연성을 부여하고 있다.[28]

원작에서는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자기 나름대로 최선의 대책을 도모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정치 및 외교의 측면에서는 일단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 자체는 최대한 막으려고 시도해도 피할 수 없을 경우엔 승리를 위해 도덕적 가치도 제쳐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고려판 마키아벨리로 묘사된다. 거란 성종의 면전에서 거짓말을 늘어놓고 임기응변으로 고인이 된 강조까지 이용해먹는 뻔뻔하고 교활한 외교술을 펼치며, 또한 전쟁 승리를 위해서 백성들에게 패전의 소식을 전하지 않거나 몽진을 주장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향을 보여 백성들과의 신의를 중시하는 현종과 대립하기도 한다. 물론 이 또한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비도덕적, 비윤리적이거나 공감능력이 결여된 것은 절대 아니다. 일례로 고려 백성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몰래 눈물을 흘리는 장면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주장대로 항전을 했을 때에 이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이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그 연장선에서 최항과 채충순 등 다른 신하들의 비판에 반박을 제대로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묘사를 통해 '현종 못지 않은 일종의 성장형 캐릭터'로 볼 여지도 있다.[29]

또한 캐릭터 외적으로는 작중에서 일종의 해설 역할도 맡았다. 승려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즉위해서 국정에 대해 잘 모르는 현종에게 외교, 정치, 행정 등에 대한 각종 배경 지식을 설명해 주는데, 이것은 현종뿐만 아니라 제4의 벽을 넘어 시청자들에게도 작중 시대적 배경 및 상황을 이해시키는 설명 또한 되기 때문이다. 1회 프롤로그 한정으로 김기현이 짤막하게 한 것 외에 드라마에서 배경이나 거란에 대한 정보 일부는 강감찬이 휘하의 김종현이나 강조, 현종에게 설명하는 내용이 전부이다. 그러나 '독설가' + '해설' 역할만으로는 캐릭터성이 빈약할 소지가 있었는데, 제작진은 여기에 '공처가'라는 설정을 추가하여 극적 긴장감이 넘치는 드라마에 소소한 웃음거리를 제공하였다. 작중 말투를 보면, 조정에서는 최수종 특유의 또렷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당당하게 직언을 올리거나 소신을 밝히지만, 정작 아내 앞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쭈뼛거리며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 '공처가' 설정은 작품 전체에도 무겁고 진중한 분위기를 적당하게 풀어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30]

13회까지 오면서 강감찬이 너무 과하게 활약하려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되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생기기도 했다. 사서에 빈 기록을 채운다는 작가의 노력이 무색하게 그 결과가 너무 무리수라는 반응이 많은데, 사실 이 정도로 활약하면 고려사에 기록이 없는 것이 신기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제2차 여요전쟁 당시 강감찬이 한 일은 항복하자는 조정의 여론에 반대해 홀로 몽진 및 항전을 주장했다는 것 뿐이었고, 다른 기록은 전혀 없다.[31][32] 물론 이 부분에 가상의 행적을 더하는 것은 극적 허용으로 볼 수 있으나 그로 인해 주목을 받아야할 또 다른 주인공인 양규나 현종의 존재가 많이 희석된다는 문제도 있거니와, 60대의 문관이 드라마에 묘사된 것처럼 화살을 맞고 심한 고문까지 겪어 살아올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물 개개인에 대한 핍진성의 문제도 심각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33][34] 제작진도 이런 문제를 인지했는지는 몰라도 14~16회 까지는 심한 고문을 당해 부상을 당한 강감찬을 일시적으로 리타이어 시키고 현종의 몽진 과정 및 양규의 대활약에 좀 더 초점을 맞추었다.

17회 이후에 호족 진압 관련 문제로 인해 현종 및 김은부와 또다른 갈등의 양상을 잠시나마 보여주기도 하였다. 세 인물 모두 이상을 꿈꾸지만, 그 중 강감찬은 현실주의자로도 묘사되며, 광종 때 아무리 호족의 세가 약해졌다고 해도 지방에서는 그들이 왕과 다름이 없었기에 제2차 여요전쟁 직후 그들을 당장 제압하기에는 당연히 무리다. 실제로 강감찬은 당장 전쟁이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호족 척결 정책은 필요한 것은 맞지만 지금 당장은 너무 무리수라며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며 김은부와의 논쟁에서도 "순서대로 일을 해결해도 족히 8년은 걸릴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방 호족들의 위세와 백성들의 상황을 직접 목도했던 현종은 이를 빨리 시작하고 싶었고, 이에 계속 반대하다가 결국 파직당하는 전개라 발생한다.[35] 다행히 해당 사건은 19회 후반 강감찬이 죄책감을 씻기 위해 현종에게 김은부 일가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적은 서한을 보내 현종이 이를 실행했고, 이를 들은 김은부가 강감찬을 찾아가 화해하면서 다소 일단락 되었지만, 사실 이러한 전개는 본 드라마 각본의 문제점과 대본 작가의 허술한 각색 능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자 현종 못지않게 본 드라마의 잘못된 인물 묘사의 피해자[36]라고 할 수 있다.

20회에서도 그러한 무리수는 계속 이어졌다. 드라마 각본은 '어떻게든 강감찬의 위기를 그림같이 짠 하고 등장해서 해결하는 멋진 남자 현종'의 구도에 짜맞추기 위해서 호족 회의에서 참지 못하고 자신의 소신을 드러내는 강감찬이라는 전개를 드러냈다. 지금까지 드라마 상에서 강감찬이라는 캐릭터는 어찌 보면 눈치가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남들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소신을 거침없이 말하는 캐릭터성이 있었고, 일의 중요도를 고려해서 감정과 소신도 한 수 접고 어찌 보면 뻔뻔하게 보일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숨겨가면서까지 주변 상황을 거침없이 이용하는 캐릭터성이 공존해 있었다. 그런데, 두 캐릭터성이 상충되는 경우에는 후자를 우선시 해왔다. 강조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을 가졌음에도 국익이라는 중요한 상황 앞에서는 바로 표정을 바꾸고 역적이라고 지칭했었고, 거란군영에서 만난 고려 포로를 보고도 감정적으로 안심을 주고 싶은 마음이 강함에도 정보유출을 막기 위해서 거짓을 말했었다. 그러던 강감찬이 비밀 호족 회합이라는 자리에 갈 기회를 얻었다면, 호족들에게 동조하는 척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그 호족들의 의도와 계책과 안배를 잘 파악해 현종에게 정보를 제공하게 유리한 구도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 뿐이 아니라, 지금까지 강감찬의 행적을 본다면 호족들에게 뭔가 좋은 노림수인 것처럼 소개하여 기만책을 펴고, 그것을 역이용해 현종에게 호족들을 명분으로든 실리로든 압박하고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게 전략을 급조할 수도 있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랬던 강감찬이 그 자리에서 현종을 모독하는 호족들의 언사를 듣고 분을 참지 못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대호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커밍아웃하여서 바로 목숨을 잃을 상황에 스스로 말려들어간다.[37][38]

26화에 최질에게 폭행당한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이것 역시 왜곡인 것이 강감찬은 엄연히 대거란 강경파 문신었고 같은 대거란 강경파인 최질이 강감찬을 폭행한 것은 비현실적이며, 최질 등이 폭행한 황보유의가 오히려 실제 역사상에서 거란과 화친을 주장하였다. 또한 아무리 권신이라고 하더라도 엄연히 재위하는 군주가 주재하는 국정 회의에서 재상을 발로 차는 막장짓을 벌이지는 못한다. 정황상으로도 강감찬 역시 실제로는 황보유의와 장연우의 전시과를 거두어 들이자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을 확률이 더 높은데, 강감찬은 자신의 땅을 군인들에게 직접 주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현종의 드라마틱한 등장으로 인한 그 동안의 성장과 군신의 브로맨스를 묘사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그 의도를 위해서 이 드라마가 해석한 강감찬의 가장 큰 캐릭터성 중 하나를 크게 손상시켜 버렸다. 그나마 29회부터는 상원수 강감찬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면서 그래도 드라마의 마지막 주인공이라는 느낌은 강하게 드는 느낌을 받고 있다. 사전 촬영한 귀주 대첩 부분에서 목소리 톤이 겨울 촬영 때랑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39]

6. 총평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이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스토리 급발진이 심해지면서 급기야 온갖 역사 왜곡 논란 등으로 잡음이 많았지만, 그래도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자타공인 명불허전 사극의 끝판왕인 최수종이었기에 여러 논란 가운데에서도 크게 빛났으며, 완벽히 말아먹을 수도 있었던 작품을 결말 끝까지 하드캐리 하여 시청률이라도 준수하게 나올 수 있게 만든 캐릭터였다고 할수 있다.[40] 물론 귀주대첩의 영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쉬운 대접이며, 담당 배우 최수종 역시 드라마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였다. 여러모로 성공적인 강감찬 캐릭터는 아니었기에 천추태후에서 이덕화가 연기한 강감찬과 비슷하게 아쉬움을 들겠지만, 그마저 없었다면 본 작품이 방영 전에 관심을 받기 어려웠을 것이고, 후반부까지 시청률이 오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7. 어록

중대사께서 자행하신 일거란 황제의 책봉을 받은 고려 국왕을 해친 일이옵니다. 거란이 알면 분명히 이걸 구실로 삼아 전쟁을 일으킬 것이옵니다. 아마도 고려 국왕을 해친 역신을 처단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겠지요.[41]

(강조: 그딴 명분 없어도 전쟁은 예정된 일이오.)

기회를 엿보는 것과 기회를 잡는 것은 다른 일이옵니다. 중대사께서는 저들이 원하는 명분을 만들어주셨사옵니다.
한 사람의 능력으로 막을 수 있다면, 전쟁이라 부르지도 않사옵니다.
온 고려가 총력을 다해야 하는 일이기에 전쟁이라 부르는 것이옵니다!
거란은 이미 수많은 이민족을 정복하고 유학을 받아들인 대제국[42]이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살아온 방식을 고수하는 철두철미한 자들이옵니다.[43][44]
두려워 마시옵소서. 고려의 군사들도 30만의 대군이옵니다. 목숨 걸고 분전하여 반드시 승리할 것이옵니다.
소신이 보기엔 그렇지 않사옵니다. 아직은 군주로서 설익은 면도 분명 있으시옵니다. 허나, 백성들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감수하실 각오가 되어 계시질 않사옵니까. 그것이야말로 황제가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이옵니다. 점차 경험이 쌓이시면, 곧 훌륭한 성군이 되실 것이옵니다.
폐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사옵니다. 황제가 백성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선정은 외적을 격퇴하여 백성들의 터전을 수호하는 것이옵니다.

(현종 : 그럼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어찌해야 하는 것이오? 이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우리 고려는 계속 이어져 나가야 하오. 한데 이미 황제와 백성간의 신의가 무너져 있다면 무슨 힘으로 이 나라를 재건하고 지탱해 나갈 수 있단 말이오?)

그건 승리한 다음에나 생각해야 할 문제이옵니다. 지금 그것까지 챙기시려는 것은 폐하의 욕심이시옵니다.

(현종 : 뭐요?)

지금은 부디 이 전쟁에서 이기는 것만 생각하시옵소서.

(현종 : 백성에 대한 신의를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소. 아니, 오히려 그런 승리가 더 값진 승리일 것이오. 한데 경은 어찌하여 그 중요한 것을 전승의 재물로만 생각하는 것이오?)

폐하, 승리하기 위해 치른 대가가 아무리 크다 해도 패배한 다음에 겪는 고통에는 절대로 미치지 못하는 것이옵니다!

(현종: 패전의 고통이 그 아무리 극악하다 하여도 황제와 백성간의 신의만 살아있다면 이겨내지 못할 것은 없소!)

그건 폐하께서 전쟁을 너무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이옵니다! 폐하께서 막연하게 생각하시는 것보다 천 배 만 배 더 고통스러운 것이 전쟁이옵니다. 인간이 살아서 겪는 유일한 지옥이 바로 전쟁이란 말이옵니다!
폐하께서 지금 당장 솔직하게 패전의 소식을 전한다면은 놀란 개경의 백성들이 서둘러 피난길에 오를 것이옵니다. 그럼 남도의 백성들까지 두려움에 휩싸여 도망칠 것이옵니다. 그럴 때 전장에서 군사들을 더 보내 달라 청해 오면 어찌하시겠사옵니까? 후방이 다 무너져내렸는데, 무슨 수로 전장의 장수들을 지원하실 것이옵니까!
폐하께서 지키려는 백성들과의 신의가 오히려 백성들을 지옥에 빠뜨릴 수도 있사옵니다. 전쟁이란 그런 것이옵니다. 제아무리 숭고한 가치도 승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가차없이 버려야 하는 것이옵니다. 그러고도 이기기 힘든 것이 바로 전쟁이옵니다!
폐하. 부디 승리만을 생각하시옵소서. 소신도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신의를 먼저 저버린 것은 거란이옵니다. 어린 아이도 비웃을 거짓 명분을 내세워 이 고려를 침략해온 것이 바로 저들이옵니다. 그런 자들에게까지 공명정대한 외교를 펼칠 이유는 없사옵니다.[45]
예, 폐하. 맞사옵니다. 소신은 미치도록 승리하고 싶사옵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고 싶사옵니다...![46]
승패가 정해져 있는 싸움은 없네! 그건 자네처럼 변명거리만 찾아다니는 자들이나 하는 소릴세! 이 순간만 넘으면 우린 승리할 수 있네. 단 하루만 시간을 벌면 우린 이 서경을 지킬 수 있네. 헌데 그 기회를, 자네 같은 자들이 날려먹고 있는 걸세. 적을 베라고 준 칼로 고려의 폐부를 찌르고 있단 말일세! 자네가 거란 진중에 잡혀 있는 포로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은... 그 간절한 눈빛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은... 절대로 이런 짓은 못할 걸세. 절대로...!
폐하! 폐하, 어리석은 생각 마시옵소서! 폐하를 잃고는 승리할 수 없사옵니다. 황제를 잃은 백성은 싸울 수가 없사옵니다![47] 그것조차 헤아리지 못하시옵니까!

폐하! 폐하, 무엇이 두려워서 이러시옵니까? 백성들의 원망이 그리 두려우시옵니까? 재앙을 몰고 온 황제라는 손가락질이 그리 두려우시옵니까?! 그것까지 이겨내야 하는 것이 바로 황제이옵니다! 헌데... 어디로 도망치려 하시옵니까? 전란에 빠진 백성들을 버려두고 어디에 홀로 숨으시려는 것이옵니까! 폐하! 폐하! 폐하...!

폐하... 폐하는 살아계셔야 하옵니다... 이 고려에는 폐하가 필요하옵니다...! 백성을 위해 죽음을 각오할 줄 아는 황제가 필요하옵니다...! 폐하... 소신에게도 폐하가 필요하옵니다... 이 늙고 고집 센 신하조차 품어주시는 황제가 필요하옵니다...!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군주가 필요하옵니다...! 폐하...!
아니옵니다... 폐하는 잘해 오셨사옵니다. 저는 폐하가 늘 자랑스러웠사옵니다...
오늘의 실수를 가슴에 새기시옵소서. 그리고, 더 단단해지시옵소서. 폐하는 황제시옵니다. 소신의... 마지막 군주시옵니다...![48]
폐하, 절망하지 마시옵소서. 이 고려에는, 폐하가 필요하옵니다. 부디 단단해지시옵소서![49]
무엇이 오든 막아내겠사옵니다. 반드시, 을 전멸시키겠사옵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고려 땅을 침략하지 못하게 할 것이옵니다!
닥치지 못하겠느냐!! 니놈이 아무리 역적이라 해도 이 고려의 백성이다! 백성이 어찌 군주를 팔아넘긴단 말이냐! 니 놈이 그러고도 이 고려의 장수란 말이냐!!
돌격하라! 이것이 모루와 망치다! 다시는 고려를 넘보지 못하게 하라! 검차 돌격!
소신이 없어도 그리 될 것이옵니다. 우리 고려는 거란을 물리쳤사옵니다. 그 승리의 기억이 온 고려인의 가슴에 새겨졌사옵니다. 그 항전의 기상이 온 고려 강토에 스며 있사옵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이겨낼 것이옵니다... 이제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부탁이옵니다.
저도...폐하를 잊지 못할 것이옵니다.

8. 여담

  • 드라마 시작과 끝의 배너 광고를 장식하고 있는데, 전부 본인이 모델인 광고이다. 시작의 연령고지에는 양우내안애, 엔딩 부분에는 상조 회사 광고.
  • 태조 왕건왕건, 해신장보고, 대조영대조영 등 대부분의 사극마다 작중 가장 무예 실력이 출중하고 전투력이 가장 넘사벽인 무신이나 장군으로 나올때나 많았지만 본작에서 만큼은 힘과 무예가 뛰어난 용장 이 아닌 제갈량 같이 지략과 확실히 더 특출난 모사 같은 인물로 그려진다. 실제로 처음 오랑캐들과 싸우는 장면에선 적장에서 무술 실력으로 압도당하여 완전히 발려서 목이 달아날 위기상황을 맞는 등 무술 실력은 많이 부족한 모습으로 나온다. 물론 전장에서 지휘관급 장수는 무예가 아니라 전략 및 지도력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가 상원수에 임명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작품에서 어떻게 강감찬이 고려군의 총 지휘관이 되었는지에 대한 묘사가 많이 부실하였다.
  • 12회에서 거란군을 유인하기 위해서였지만, 황룡포를 입고 잠깐이나마 '황제' 행세를 했다는 점에서 최수종의 왕 역할을 한 작품이 또 하나 추가된 셈이다. 여담으로 <태조 왕건>에서 이미 주인공 왕건을 맡으면서 용포를 입었던 최수종이지만, 황룡포는 태조 왕건 시절 왕건이 즉위할 때 딱 한번 입고, 그 이후 주로 입은 옷은 적룡포였다. 해당 드라마에서 황룡포는 궁예와 견훤, 경순왕이 주로 입었고, 이후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과 <천추태후>에서 자신의 세 아들들(혜종, 정종, 광종)을 비롯한 후계자들이 황룡포를 입었다. 해당 회차에서 거란군을 유인하기 위해 황제 행세를 한 장면이 본인이 출연하였던 태조 왕건신숭겸을 연상케한다는 평들도 있어 일종의 배우 개그가 성립되기도 하였다.
  • 원작에서는 딱히 가족관계가 묘사되지는 않고, 드라마에서는 처와 단둘이 사는 장면만 나온다.[55] 실제로는 강감찬의 직계 포함 후손은 이후의 역사에 많이 등장하므로 슬하에 자녀가 없는 것은 아니다.[56] 다만 그의 자녀들은 마땅히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인물들이었던 것인지, 아버지의 빛에 가려진 것인지 기록이 전해지지는 않기 때문에 본 드라마에서도 굳이 묘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자녀들이 드라마에서 나온다면, 아무래도 모두 출가해 다른 지방에서 본인들의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을 확률이 높고, 실제로 18회에서 강감찬 처의 대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자식들과 손자까지 있음이 언급되었고, 19회에서 고향인 금주에 강감찬 가문의 본가 친지들[57]이 등장했다.
  • 2023 KBS 연기대상에서 최수종은 이 역으로 대상과 베스트 커플상(with 김동준)을 수상했다.
  • 무예와 거리가 먼 노년의 문관으로 묘사되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전투력이 없진 않다. 동북면 행영병마사로 부임했을 때 자신보다 체격도 훨씬 큰 젊은 병사와 대련하는 자리에서 패하긴 했으나 그래도 카운터 한방을 먹이기도 했고, 이후 여진족과의 전투에서도 기습을 당하긴 했지만, 잡졸 한둘 정도는 베어 넘기는 수준은 되었다. 문관 생활 중 틈틈히 무예를 익혔다고 쳐도 환갑을 넘은 나이에 저 정도면 대단한 거다.
  • 드라마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1030년(현종 21년) 문하시중으로 승진하였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다. 다만 강감찬은 이미 1020년에 사직하였으며, 당시 80세가 훌쩍 넘은 연세를 고려하면 실제 수상의 직책을 수행했다기보다는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 동북면 행영병마사로 있을 땐 붉은 색과 짙은 회색이 섞인 갑옷을 입었지만 상원수 • 서북면 행영도통사에 임명되었을 때는 황금색과 은색이 섞인 갑옷을 입었다.


[1] 실제 역사에선 좌산기상시와 겸직했으며 임명되기 전에 '국자좨주' 자리에 올랐다. 17회에서 호족 척결 반대로 인해 일시적으로 파직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그런 일은 없었다. 여하튼 21회에서 현종이 금주에서 데려오면서 복직한다.[2] 25회에서도 이자림이 그를 '병마사'로 부르지만, 실제 역사에서 강감찬은 1014년에 중추사로 임하고 있었고, 25회에서 강감찬의 직책도 그렇게 표기되었다.[3] 제3차 여요전쟁이 있기 전 기존 서북면의 군사를 지휘하던 서북면 행영도통사에 있었다가 현종에 의해 '고려 전군의 총사령관'인 '상원수'로 임명되면서 직접 전쟁을 자신의 뜻대로 치르고, 원한다면 개경의 군사까지 차출해가도 좋다고 이야기하며 전권을 위임받았다. 다만, 이후 등장할 때 나온 사령기에는 '서북면 행영도통사'라고 명시되면서 이 직함에 더해서 상원수를 맡은 것으로 보인다.[프롤로그] [5] 18회에서 자식들과 손주들을 보자면서 부인이 언급하기는 했는데, 실제 기록에는 아들 한 명(강행경)만 기록되어 있고, 드라마에는 초반부터 등장하지 않았다. 아마도 고향인 금주나 먼 지방에서 따로 사는 듯 하다.[6] 대하드라마 외에도 조선왕조 오백년-한중록에서 사도세자 역으로 사극에 데뷔했으며, 이후 대원군 편에서 철종 역을 분했고, KBS2 해신에서 장보고, 임진왜란 1592에서 이순신 역을 맡기도 하는 등 사극 배우 경력이 길었다.[7] 배우 개그면으로 보자면 꽤나 아이러니한 상황인데, 자신이 세운 발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했고, 멸망된 발해 유민들을 받아들이고 거란을 적대하라고 훈요십조를 공표한 것 역시 본인이 맡은 왕건이었고, 다시 거란을 상대로 본인이 건국한 나라를 지켜야 하는 강감찬 역할을 맡는다는 요소가 있다. 또한 후삼국 통일 이후의 사건이라 태조 왕건에는 안 나왔지만, 왕건은 생전 거란이 친하게 지내자고 유혹하며 낙타를 보내자 되레 거란 사신들은 유배 보내고 낙타는 모두 굶겨 죽여버린 바 있어 이것까지 포함하면 거란과 대립 관계인 역할은 세 번째다. 마침 강감찬의 부친 강궁진의 경우 왕건을 도와 고려의 후삼국 통일을 도운 삼한공신인데, 따라서 '자신을 도운 신하의 아들로 환생했다.'는 배우 개그 역시 성립되었다. 최수종 역시 이를 아는지 이 작품을 홍보하는 겸 출연한 2023년 방송의 날 특집 '모던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자신을 KBS 공무원이라 자평했다.[8] 비슷한 시대를 다룬 전작에서는 중견 배우 임혁이 맡았는데, 최수종과는 대조영에서 부자 관계로 열연을 펼쳤다.[9] 화랑은 후대에 외모로만 너무 유명해진 감이 있어서 그렇지 엄연히 준군사조직에 가까운 무장 집단으로 그 수장이면 사실상 개인의 무력이나 카리스마, 신분도 동시에 높았던 인물이라는 뜻이다.[10] 실제 나이만 유사할 뿐 고려시대는 40대만 되어도 장년을 넘어 노년으로 취급할 시기였고, 그런만큼 61살(실제 84세까지)을 넘겼던 강감찬은 매우 장수한 편에 속한다. 그에 비해 현재 2020년대는 61세마저 중장년층으로 보는 인식이 짙어졌고, 농산어촌에서는 '청장년'으로 인식하기도 하므로 최수종은 고령이긴 하나 아직 노년층은 아니다. 게다가 얼굴은 전혀 노인 느낌이 없다.[11] 해신에서 함께 했던 배우 중 이원종보다 3살 형이며, 조희봉보다도 9살 형이다. 조희봉이 유독 노안이고 반대로 최수종이 워낙 동안이라서 액면가로만 보면 조희봉이 최수종의 큰형뻘처럼 보일 정도지만, 상술했듯 최수종이 한참 연상이다. 이원종도 37살인 구마적에 40대로 보였으나 지금은 본인의 나이대로 보이지만, 최수종은 그 후 20년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3살 아래인 이원종보다도 액면가가 젊어 보이는 수준이고 20년 전의 이원종과 비슷해보이는 수준이다. 사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30대가 현재 40대랑 비슷해보이는 편이다. 여담으로 라이벌인 소배압 역의 김준배와도 최수종이 7살 이다. 참고로 최수종이 작중 등장한 배우들 중 나이 순서상으로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나이가 생각보다 많다.[12] 여담으로 강감찬 역의 배우 최수종의 대표 배역이 이 캐릭터이다보니 마치 할아버지손자에게 제왕학 공부를 시키는 배우 개그가 자주 느껴진다. 특히 거란 관련해선 그야말로 1타 강사. 아닌 게 아니라, 왕건이 죽기 전 박술희를 통해 남긴 10개의 유언 중 하나가 '거란족을 믿지 말라.'였다. 다만, 이 당시 현종의 스승 역할을 한 신하는 최항이었다. 6회에서 충주에서 올라 온 강감찬의 아내가 '폐하가 스승으로 삼은 재상이 엄연히 따로 있지 않냐'고 하는 대사가 있다.[13] 작품 외적으로 보면 강감찬은 청백리로서의 관료, 강감찬의 처는 관료와 가장 가까운 백성을 대변하기에 행색을 백성과 다르지 않게 착장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상류층 귀부인들은 남편이나 아들들이 참전하기에 그들의 무사안일을 바라지만, 강감찬의 처는 전쟁으로 인해 죽어갈 젊은 생명들과 같이 포로로 잡힌 어린 여자아이들과 백성들을 염려하는 모습이 묘사된다. 이 외에도 최수종 본인은 바가지를 긁혀본 적이 없었기에 아내에게 바가지를 긁히는 장면이 가장 연기하기 힘든 부분이었다고 한다.[14] 김종현도 2차 여요전쟁 이후 공적을 인정받아 조정에 들어오지만, 강감찬과 무관한 중추원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강감찬이 중추원으로 가자 김종현은 어사대 쪽으로 이동하였다고 한다.[15] 진주 강씨 세보에 따른 것으로 강민첨이 15살 아래라고 하며, 진주 강씨의 분파에서도 강감찬은 '금천 강씨'라고도 불리는 '인헌공파(仁憲公派)'의 파중시조(파조는 아버지인 강궁진)이고, 강민첨은 '은열공파(殷烈公派)'의 파조이다.[16] 정작 나이는 강감찬이 24살이나 많아서 강감찬의 아들뻘 되는 사람이다 보니 최항은 강감찬에게 강공이라 부르며 상호존대하며 감정적으로 폭발해서 강감찬을 비난할 때도 강공이라고 존칭을 쓴다.[17] 실제 역사에서 보면 강감찬은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인 강궁진(姜弓珍)의 아들로 고려 최고 명문 호족 가문의 일원 중 하나이고 최항은 경주 최씨 문벌귀족 출신이기 때문에 경력 상으로 선임일지는 몰라도 위세에서는 밀릴 수 밖에 없는 위치였다.[18] 강조가 은대와 중추원 폐지 및 개편안을 들고 나왔을 때 최항 역시도 침묵했다. 그리고 여기에 이유를 물어본 강감찬에게 위험한 짓하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했다.[19] 최항을 비롯한 재상단의 주된 포지션은 주화파이고 현종과 강감찬 그리고 무신들은 주전파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4회를 제외하고 이후 강감찬이 조정에 서 있을 때 유진, 최항을 비롯한 재상단과 반대편에 서 있다. 다만 강감찬과 대립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드라마에서만 그런 것이고, 원작 소설에서는 몽진의 위험성에 반대한 부분 외에는 서로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다.[20] 공교롭게도 2차 전쟁과 3차 전쟁 사이의 간격이 정확히 8년임을 본다면 강감찬의 예견이 정확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고려에서 전제 지방에 지방관을 파견하는 시기도 딱 3차 전쟁이 일어난 그 해다.[21] 제3차 여요전쟁 이전인 1017년에 사망한다.[22] 이후 현종이 강감찬을 따로 불러 밤새 대화하며, 강감찬은 현종에게 거란군을 상대로는 힘이 아니라 기책을 써야 한다는 등의 말을 한다. 현종은 그에게 지략이 많은데 다들 모르는지 아니면 드러낼 기회가 없었는지를 묻자 이에 대해 의문을 표하며 솔직하게 그저 자신의 직분을 다했을 뿐이라고 답하는 등 청렴한 인물로 묘사된다. 이 대화 도중 강감찬 또한 천추태후에게 굳이 보복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완곡적으로 묻는데, 현종은 이에 군주가 마음 속의 미움을 실천하면 온 나라가 미움으로 쌓일 테니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답한다.[23] 심지어 강조의 반역을 대놓고 비판한 그 최항조차도 지나치다며 한소리 할 정도다. 그런데 강감찬이 하는 말들이 결과적으로 틀린 말은 아닌지라 시청자들 사이에선 팩트폭격기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24] 10회에서 서희의 아명인 염윤을 말해 서희와 친분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서희와 강감찬은 5~6세 정도의 나이 차가 있어 친분이 있다는 설정을 넣어도 어색하지는 않다.[25] 부친인 강궁진이 후삼국통일에 공을 세운 삼한벽상공신이다.[26] 이는 2차 여요전쟁을 다룬 원작 소설에 해당하는 전개인데 원래는 양규와 김숙흥, 그리고 현종이 주인공인 파트이기 때문에 강감찬은 조연으로서 비중이 적었기 때문이기도 하다.[27] 관직 생활 자체는 36세인 983년(고려 성종 2)부터 시작해 제법 오래하였다.[28] 사실 이 때문에 전작인 천추태후에서는 각색해서 연배가 나름 위라 할 수 있는 '경주원군 왕욱'의 친우로 설정하고, 황주 가문(천추태후인 숭덕궁주 황보수 집안)의 문객으로 있다가 조정에 들어가는 등의 설정을 넣었다.[29] 원작에서의 강감찬은 처음에는 일단 백성들에게 고려의 굳건함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이후 서경성에서 지채문의 패배 소식을 듣고서는 현실을 직시하며 우선 나이가 많거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부터 피난을 가도록 하고, 일부 대신들은 지방으로 보내 근위군을 조직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주장을 한다. 드라마에서는 11회 이후에도 이와 같은 성장한 면모를 보이지 않아 어색하다는 반응이 있다.[30] 실제로 강감찬 장군의 가문은 개국공신(삼한벽상공신) 출신이므로 시집 온 입장에서는 그 좋은 배경을 마다하고 아낌없이 베푸는 청백리에 지방직만 전전하는 늙은 남편에게 푸념할 법도 했고, 삼한벽상공신 집안 자제와 혼인한 부인 또한 동급 이상의 명문가 여식일 가능성이 높기에 개연성 있는 설정이다. 당대 권력층의 결혼을 보면 처가의 위세가 더 좋은 경우가 더 많았다. 아들 가진 입장에서는 처가 덕을 보게 하려는 것도 있었고 딸 가진 입장에서는 인재 스카우트 겸 딸의 시집살이를 편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31] 원작 소설에서 추가된 활약은 현종의 어가가 몽진을 위해 떠난 직후 남아있는 20여명의 관리들을 모아 젊은 이들 중 김종현 등을 지휘관으로 임명하여 100여명의 군사들로 최대한 거란군의 남하를 지체시키도록 한 것이 전부며, 그마저도 감악산으로 가는 수천의 부대만 바람과 눈보라 덕분에 막아낼 수 있었다. 훗날 제3차 여요전쟁에서 두 사람의 활약을 빌드업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32] 드라마 상에서는 그의 활약이 대폭 늘어나 거란으로 사신으로 가서 거짓 친조를 요청하고, 탁사정에게 서경의 상황을 알려 항복을 막았으며, 죽으려는 현종을 끌고 나온데다가 현종으로 변장하여 시간을 끌었다. 이후에도 다시 서경으로 가서 왕이 죽지 않음을 알리고, 다시 소배압과 만나 거란이 필요한 명분까지 요구했다. 이중 한가지 일만 하더라도 전황을 뒤바꾸는 일인데, 그런 일을 홀로 5~6개를 해버렸으니 이쯤되면 제2차 여요전쟁 최고의 공신이 양규가 아니라 강감찬일 지경이고, 이런 일들이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 리가 전혀 없다.[33] 차라리 서경성에 남아서 양규가 전장에 나가면 서경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겨서 잠시 빠지고, 현종, 그리고 양규의 활약상에 비중을 더 두는 편이 낫다는 의견도 나온다. 애초에 역사대로 전개한다고 해도 강감찬은 제2차 여요전쟁을 끝으로 큰 활약은커녕 언급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 정말 역사에 맞추면 위에 언급된 어마어마한 부상으로 인해 3차 여요전쟁 준비 과정 전까지 작품에서 퇴장해야 하는 것이다.[34] 다만 서경성을 수습하는 정도로는 계속된 승진과 3차 전쟁 때 총사령관 역할을 맡기는 게 어색해 보일 수 있다. 즉 강감찬에게 공적을 만들어주긴 해야 하는데, 어느 선까지 하냐가 관건. 이 문제는 라이벌 포지션인 소배압에게도 있는데, 카리스마를 뽐내다가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능력이 없어 보인다는 평이 많다. 아무래도 본 드라마의 메인 전투가 귀주 대첩이다보니 제2차 여요대전에서 두 인물을 필요 이상으로 부각하려다가 단점만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강감찬과 강민첨 간의 연결고리와 이후 1018년 서경유수가 되는데 이러한 배경들을 본다면 서경에 남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평가들도 존재한다.[35] 전후 국정을 안정시키고 호족 척결은 그 이후에 해야 한다는 강감찬의 입장과 전쟁 중에 호족의 도움 없이는 징발이 안 되어 호족들의 자식을 병부에서 빼 주는 비리를 저질러가며 징발을 하게 된 뼈아픈 상황을 겪음으로써 호족 척결을 해야 한다는 입장의 김은부, 몽진 중 여러 지방에서 호족들의 위세와 그들로 인해 고통 받고 있었던 백성들을 직접 목도했기에 한시바삐 해야 한다는 입장의 현종. 이 세 사람의 입장이 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시각의 차이로 논쟁이 일었고, 이 때문에 감정의 골이 깊어져 간 것이 포인트다. 물론 강감찬의 주장도 틀리진 않았지만, 현종과 김은부도 틀리지 않은 게 호족들의 도움 없이 징발도 안 되며 순서를 따지는 동안에 죽어 가는 것은 백성 뿐이었다. 그런데 호족들을 제압하지 않고 어떻게 재침을 대비할 수 있었을까? 다만 이에 대하여서도 또한 여러 견해들이 쏟아졌는데, 실제 지방 제도 개편을 주도한 수장은 당시 재상 중 하나인 참지정사 최사위였고, 반대로 형부시랑이던 김은부는 비록 자신의 큰 딸이 현종의 후궁이 되었지만, 그렇게 큰 권세를 가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리고 1011년 8월 경주에 여진족이 침공하자 강감찬은 지방으로 군사들과 내려갔고, 이후 1014년까지 개경에 있지 않는 상황이었다.[36] 위에도 언급했지만, 제2차 여요전쟁 당시의 기록의 공백을 메우는 각색으로 정사는 물론 원작 소설에도 없던 활약까지 나오거나 자주 등장을 하고 있어서 필요 이상으로 띄워준 부분이 있지만, 실상은 캐릭터의 설득력이 부족하게 묘사되고 각색된 행적에도 핍진성이 결여된 부분이 많으며, 같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같은 캐릭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앞뒤가 안맞는 행동도 하는 모습이 종종 나왔다. 배우 최수종의 연기력 때문에 캐릭터의 부실함과 부족한 설득력이 커버되기에 망정이지. '다른 인물이었으면 완전 실패작'이라고도 평가해도 제작진은 뭐라 할 말이 없을 것이다.[37] 드라마 전개가 호족 회합 전에 미리 강감찬이 현종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알려 두었다는 해석도 가능한 상황이지만, 거기서 굳이 자신의 목숨을 걸 필요는 없었다. 현종이 언제 도착하는지, 분노한 호족들이 강감찬을 언제 처형할 지 미리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38] 해당 회차에 부인의 입을 통해 호족들 한가운데서 위험한 짓 하지 말라는 말이 나왔는데, 굳이 꾀어맞추자면 강감찬 본인이 말한 대로 '자신을 죽여도 반역은 하지 말라'는 의미였을 수도 있다. 당장 자리에는 강감찬의 혈연들도 있는 데다 본인과 안면이 있는 호족들도 있을 테니 본인이 죽더라도 그들이라도 반역을 그만두길 원했을 수도 있고, 강감찬의 말에 주변에 앉아있던 호족들 몇이 경청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으니 몇몇 호족들이 황제의 정책에 동참하는 빌드업이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너무 허접한 연출이었다.[39] 귀주 전투 장면은 목소리가 쉬어서 그랬다고 치더라도 애초에 톤을 낮게 잡았다가 수정한 걸로 보면 된다.[40] 점점 개연성이 개판이 되어가는 드라마에 그나마 최수종 같은 명품 배우 마저 없었다면 모든 대중들이 등을 돌려 후반부는 거의 아무도 안 보다시피 한 그대로 흑역사로 남게 될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41] 내용도 그렇지만, '자행하다'는 표현을 쓰는 등 단어부터 이미 상급자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존댓말만 쓸 뿐 면전에서 욕하는 거랑 다름이 없다. 강감찬을 제외하면 가장 직설적인 최항도 강조의 앞에서 이 정도의 표현을 대놓고 쓰지는 않았다.[42] 다만 제국이란 말은 사실 구한말 시기에나 등장하는 어휘다.[43] 학계에서는 이를 이원(二元) 체제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작중에서는 이를 의도적으로 보여주듯, 거란족 신하와 한족 신하의 모습이 이전의 사극들보다 뚜렷하게 구분되고, 이들이 함께 있는 장면이 나온다. 소배압한덕양, 오르도(군주의 천막) 안에 황제의 좌우로 앉아있는 거란족 신하와 한족 신하들, 현종을 만나러 오는 거란의 사신인 한족 한기와 그를 말 밑에서 호위하는 거란족 병사 등이 그 예시. 한기 등은 복장도 붉은색 관복을 입어, 복장만 보면 옆에 있는 고려인 신하들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국명을 한식 명칭인 '대요'가 아닌 '거란'으로 언급한다. 성종 시절에는 한자 국명도 '대거란(大契丹)'이었기 때문(김인희, <움직이는 국가, 거란>, 25~28쪽). 한편으로, 거란족 군주인 성종 역시 유학을 받아들였다는 강감찬의 말을 입증하듯, 전쟁을 일으킬 '대의명분'을 세심하게 골몰한다.[44] 거란은 요태조 때부터 중원진출을 노렸고 요태종 시기에 연운 16주 획득으로 그 숙원을 어느정도 이뤘다. 또한 거란은 단순히 영토만을 원한것이 아니라서 중원의 문화 또한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아 요태조는 한자의 영향을 받아 거란 문자를 만들었고 뜬금없이 한고제 유방의 뒤를 잇겠다며 왕성을 야율씨에서 유씨로 변경했다가 좋지 않은 반응에 다시 야율씨로 고치는 촌극을 빚기도 했고 요성종은 유목국가의 성격을 못 벗어난 거란에 조세 제도와 법치 제도를 확립하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거란은 옛날 탁발선비처럼 한족에 동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의 영향을 받은 관제인 남면관제와 거란 고유의 관제인 북면관제를 따로 두었고 과거제를 시행하되 동화를 막기 위해 한인, 발해인의 응시는 막지 않았으나 거란인의 응시는 크게 제한했다.[45] 강감찬의 기만 작전을 듣고, 아무리 적국이라도 외교에는 최소한의 신의가 있어야 한다는 현종의 말에 대한 대답.[46] 8회 마지막에 내레이션으로 나온 대사로 강감찬의 기만작전 내용을 듣고 현종이 감탄하면서 한 발언 이후 강감찬이 한 대답.[47] 당장 이후 서경성의 상태만 봐도 거란군이 현종이 사망했다고 거짓 소문을 퍼트리자 백성들이 슬피 울면서 절망감에 빠진 상태였다.[48] 실제 강감찬은 귀주대첩 이후 조정에서 물러났고, 현종이 죽고 나서 석달 뒤 세상을 떠난다.[49] 언뜻 보면 되게 단순하지만, 현종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 같은 신하로서 의미심장할 만큼 든든하면서도 진심 어린 조언이라 할 수 있다.[50] 왕건의 아들 대종왕욱의 딸[51] 왕건의 셋째아들 광종의 손자[52] 왕건의 아들 안종왕욱과 헌정왕후의 아들[53] 목종의 경우, 부계로는 태조 왕건의 아들인 광종의 아들 경종의 아들이기 때문에 증손자에 해당하고, 현종은 부계로는 역시 태조 왕건의 아들인 왕욱(후에 '안종'으로 추존됨)의 아들로 손자에 해당한다. 또한 목종과 현종의 모친에 해당하는 헌애황후 황보씨(천추태후)와 헌정황후 황보씨는 역시 태조 왕건의 손녀(태조 왕건-대종 왕욱-헌애황후&헌정황후 자매)에 해당한다.[54] 다만 대도수의 경우 직계 후손은 아니다. 발해 10대 임금인 선왕부터는 대조영이 아닌 그의 동생 대야발의 후손이고, 이후의 발해 왕과 왕족들은 족보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대도수가 정말 대조영의 직계인지는 알 수 없으며 가능성도 희박하다.[55] 애초에 배우자에 대한 기록도 실전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즉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부인은 순수하게 창작된 인물이다.[56] 대표적인 후손 중 한 명이 소현세자의 처인 민회빈 강씨다.[57] 그 중 제일 상단에 앉은 이는 17회의 지방 호족들의 모임에서 상단에 앉아 박진의 요구를 들었던 인물이다. 다만, '고려 거란 전쟁' 내 다른 문서들에서 언급했듯이 이 당시로 보면, 강감찬보다 더 연장자가 저렇게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지에 대하 의구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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