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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SLB | 1962 SLB | 1963 ACM | 1964 INT | 1965 INT | ||
1966 RMA | 1967 CEL | 1968 MUN | 1969 ACM | 1970 FEY | ||
1971 AJA | 1972 AJA | 1973 AJA | 1974 BAY | 1975 BAY | ||
1976 BAY | 1977 LIV | 1978 LIV | 1979 NFO | 1980 NFO | ||
1981 LIV | 1982 AVL | 1983 HSV | 1984 LIV | 1985 JUV | ||
1986 CSA | 1987 FCP | 1988 PSV | 1989 ACM | 1990 ACM | ||
1991 ZVZ | 1992 FCB | 1993 MRS | 1994 ACM | 1995 AJA | ||
1996 JUV | 1997 BVB | 1998 RMA | 1999 MUN | 2000 RMA | ||
2001 BAY | 2002 RMA | 2003 ACM | 2004 FCP | 2005 LIV | ||
2006 FCB | 2007 ACM | 2008 MUN | 2009 FCB | 2010 IN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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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CHE | 2022 RMA | 2023 MCI | 2024 RMA | 2025 O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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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러피언컵 결승전 | ||||
1961 베른 | → | 1961-62 암스테르담 | → | 1963 웸블리 |
|
European Cup Final Amsterdam 19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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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2년 5월 2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올림피시 슈타디온에서 열린 SL 벤피카와 레알 마드리드 CF 간의 일곱 번째 유러피언컵 결승전.SL 벤피카는 전 대회 우승으로 2연패를 노리고 있으며, 레알 마드리드 CF는 통산 6회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이 경기의 주심은 네덜란드 국적의 레오 호른(Leo Horn)[1]이 담당했다. 경기는 61,257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렸다.
2. 진출 팀
| |
벤피카 | 레알 마드리드 |
2.1. SL 벤피카
벨라 구트만이 이끄는 벤피카가 지난 시즌에 이어 다시 결승전에 도달했다. 벤피카는 이 시즌 지난 시즌보다 더욱 강화된 전력으로 돌아왔는데 그 중심에는 포르투갈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인 에우제비우가 있었다.[2]영입된 에우제비우는 5골을 넣으며 기대에 충족했고, 주장이자 여전히 득점 머신으로 활약하고 있던 주제 아구아스도 6골을 득점하며 화답했다.
벤피카는 지난 시즌 우승팀 자격으로 예선을 면제받아 16강부터 대회에 참가했다. 16강에서 아우스트리아 빈을 합산 6-2[3]로, 8강에서는 1. FC 뉘른베르크를 합산 7-3[4]으로 이겼다. 4강에서는 잉글랜드 챔피언 토트넘 홋스퍼 FC를 합산 4-3[5]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이제 더욱 강력해진 공격진으로 레알의 골문을 조준하게 된 벤피카였다.
2.2. 레알 마드리드 CF
전무후무한 유러피언컵 5연패 금자탑을 쌓았던 레알 마드리드가 한 시즌을 거르고 또 다시 결승전에 진출했다.사실 레알 마드리드는 골키퍼인 로젤리오 도밍게스, 수비인 마르퀴토스 등이 은퇴와 이적 등으로 팀을 떠났지만 질주하는 소령 페렌츠 푸스카스, 금빛 화살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칸타브리아 해안의 강풍 프란시스코 헨토를 위시한 공격진은 여전히 레알의 왕관을 빛내고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예선에서 버셔시 SC를 합산 5-1[6]로, 16강에서 덴마크의 볼클뤼벤 1913을 합산 12-0[7]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이겼다. 8강에서는 이탈리아의 유벤투스 FC와 맞붙어 원정 1-0 승리, 홈 0-1 패배로 합산 1-1 동점을 기록했고, 프랑스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열린 재경기에서 3-1로 승리했다. 준결승에서는 벨기에의 스탕다르 리에주를 합산 6-0[8]으로 완파하며 결승에 올랐다.
디 스테파노, 푸스카스의 베테랑 공격진을 가진 레알이 여섯번째 유럽 챔피언에 등극할지, 신인 괴물 에우제비우와 5번의 득점왕을 차지한 득점머신 주제 아구아스를 가진 벤피카가 2연패를 차지할지, 이 세기의 대결은 전세계 축구 팬들을 설레게 하였다.
2.3. Road to the Final
'''''' | ||||||||||
| 팀 | | ||||||||
대진 | 합계 | 1차전 | 2차전 | 녹아웃 | 대진 | 합계 | 1차전 | 2차전 | ||
- | 예선 라운드 | | 5:1 승 | 2:0 승 (원정) | 3:1 승 (홈) | |||||
| 6:2 승 | 1:1 무 (원정) | 5:1 승 (홈) | 1라운드 | | 12:0 승 | 3:0 승 (원정) | 9:0 승 (홈) | ||
| 7:3 승 | 1:3 패 (홈) | 6:0 승 (원정) | 준준결승 | | 4:2 승 | 1:0 승 (원정) | 0:1 패 (홈) | ||
플레이오프 3:1 승 (중립) | ||||||||||
| 4:3 승 | 3:1 승 (홈) | 1:2 패(원정) | 준결승 | | 6:0 승 | 4:0 승 (홈) | 2:0 승 (원정) | ||
3승 1무 2패 (13득점 3실점) | 합계 성적 | 8승 0무 1패 (27득점 3실점) | ||||||||
◀ 1960-61 | 결승 | ▶ 1962-63 |
3. 선발 라인업
팀 | 이름 | 비고 | 팀 | 이름 | 비고 |
SL 벤피카 | 코스타 페레이라 | GK | 레알 마드리드 CF | 호세 아리키스타인 | GK |
마리우 주앙 | 페드로 카사도 | ||||
게르마노 드피게이레두 | 호세 산타마리아 | ||||
안젤로 마르틴스 | 비센테 미에라 | ||||
도미시아누 카벰 | 페로 | ||||
페르난두 크루즈 | 엔리케 페레스 디아스 | ||||
주제 아구스투 | 후스토 테하다 | ||||
에우제비우 | 루이스 델 솔 | ||||
주제 아구아스 |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 |||
마리우 콜루나 | 페렌츠 푸스카스 | ||||
안토니우 시모이스 | 프란시스코 헨토 | |
4. 경기 내용
'''''' | ||
올림피시 슈타디온 (암스테르담) | ||
주심: 레오 호른 (네덜란드) | ||
관중: 61,257명 | ||
| | |
벤피카 | 레알 마드리드 | |
5 | 3 | |
<rowcolor=#000,#fff> 25' 주제 아구아스 33' 도미시아누 카벰 51' 마리우 콜루나 64'(PK), 69' 에우제비우 | | 18', 23', 39' 페렌츠 푸스카스 |
- | ||
◀ 1961 유러피언컵 결승전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1963 유러피언컵 결승전 |
벤피카의 구트만 감독은 아직 20세의 젊은 공격수 에우제비우와 안토니우 시모에스를 선발 라인업에 포함시켰다. 반면 레알 마드리드는 페렌츠 푸스카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프란시스코 헨토 등 베테랑 공격수들을 필두로 한 최강의 공격진을 구성했다.
경기 시작 후 레알 마드리드가 빠르게 주도권을 잡았다. 17분, 페렌츠 푸스카스가 선제골을 넣으며 레알 마드리드가 앞서나가기 시작했고, 불과 6분 후인 23분에 푸스카스가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키면서 레알이 2-0으로 앞서 나갔다. 당시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였던 푸스카스의 기량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벤피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5분, 주제 아구아스가 중요한 한 골을 만회하더니, 33분에는 도미시아누 카벰이 동점골을 넣으며 경기는 순식간에 2-2가 되었다. 그러나 또다시 푸스카스가 38분에 해트트릭을 완성하는 골을 넣어 레알 마드리드가 전반전을 3-2로 앞선 채 마쳤다. 푸스카스는 이로써 1960년 결승에 이어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9]
후반전은 완전히 다른 경기 양상이 펼쳐졌다. 후반 5분, 마리우 콜루나가 벤피카의 동점골을 터뜨렸다. 3-3 동점이 된 상황에서 이제 20세의 에우제비우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64분, 그는 자신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성공시켰고, 불과 5분 후인 69분에 다시 한번 골을 추가하며 벤피카를 5-3으로 앞서게 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디 스테파노와 헨토를 중심으로 반격을 시도했지만, 벤피카의 단단한 수비벽을 뚫지 못했다. 결국 경기는 5-3 벤피카의 승리로 끝났고, SL 벤피카는 유러피언컵 2연패를 달성하며 현대 유럽 축구의 새로운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경기 후 20세의 에우제비우는 팀 동료들에게 환호를 받으며 그라운드를 떠났고, 이 경기는 그가 국제 무대에서 스타로 떠오르는 순간이 되었다.
5. 경기 후
6. 여담
[1] 1957 유러피언컵 결승전 결승전 주심을 담당하기도 했다.[2] 사실 에우제비우는 1960-61 시즌 영입되었으나 스포르팅 CP와의 법적 공방으로 인해 늦게 합류했다. 합류한 시점은 이미 유러피언컵 결승이 다가온 시점이었고, 에우제비우는 결국 B팀 소속으로 타사 드 포르투갈 16강 2차전에서 데뷔전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3] 원정 1-1, 홈 5-1[4] 원정 1-3, 홈 6-0[5] 홈 3-1, 원정 1-2[6] 원정 2-0, 홈 3-1[7] 원정 3-0, 홈 9-0[8] 홈 4-0, 원정 2-0[9] 다만 1960년에는 푸스카스가 4골을 기록하며 우승도 달성했으나, 1962년에는 그가 해트트릭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팀이 패배하는 비운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