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5 17:05:23

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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禾姬

생몰년 미상

1. 개요2. 행적

1. 개요

고구려 유리명왕의 후실.

본래 고구려 골천인(鶻川人)의 딸이었다고 전한다. 골천은 유리명왕이 별궁을 지은 곳이기도 하다.

2. 행적

기원전 17년, 왕비였던 송씨(松氏)가 죽자 한나라 사람의 딸이었던 치희와 더불어 유리명왕의 후실이 되었다.

이후 치희와는 라이벌이 되어 늘 왕의 총애를 두고 다투었다. 그 싸움이 극심해지자 유리명왕도 이를 견디지 못하고 한 궁에서 살지 못하게 하였으며, 대신 양곡에 따로 2개의 궁을 지어 따로 살게 했을 정도였다.

하루는 유리명왕이 사냥을 나가서 7일 동안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치희와 또다시 크게 다투었다. 이때 한나라 출신이었던 치희의 출신을 비꼬면서 "한나라의 천한 비첩 주제에 무례하게 구느냐?"며 심한 모욕을 주었다.

이에 화가 난 치희는 그대로 궁을 나갔는데, 뒤늦게 이를 알게 된 유리명왕은 말을 달려 치희를 찾으려 하였으나 끝내 찾지 못하였다. 울적해진 유리명왕은 이후 꾀꼬리 한 쌍이 노래부르는 광경을 보고는 그 유명한 황조가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