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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흔/선수 경력/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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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흔의 연도별 시즌 일람
2014년 2015년 2016년

1. 시즌 전2. 페넌트 레이스
2.1. 3월 ~ 5월2.2. 6월2.3. 7월2.4. 8월2.5. 9월
3. 포스트시즌4. 시즌 총평

1. 시즌 전

2. 페넌트 레이스

2.1. 3월 ~ 5월

좋은 활약을 보인 작년과 달리 올해 초반은 부진하게 시작하고 있다. 4번 타자로 출장하면서 타격이 부진하다. 5월 14일 기준으로 타출장 .244/ .357/.0.311,1홈런이다. 4번 지명타자이면서 부진한 타격때문에 평가가 좋지 못하다. 김현수와 민병헌이.350을 치고 있어서 더욱 비교가 되고 있다. 특히 5월 13~14일 SK전에서 총 9타수 1볼넷을 보여주면서 많은 비판을 받고있다. 하나의 볼넷도 김광현이 자멸하면서 준 볼넷이다. 더욱이 5월 14일경기는 7점차를 역전을 당하면서 졌기 때문에 중심타자의 부진은 몇배나 더 아쉽게 느껴졌다.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는 주자가 있을 시 2아웃이 아니면 삼진을 당할 경우 병살이 아니라고 만족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결국 5월 18일에 1군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근데 이게 100% 본인 잘못이 아닌게, 홍성흔은 4번에선 언제나 부진하다. 설상가상으로 잭 루츠가 퇴출되면서 그가 4번을 볼 수밖에 없었고[1]이게 역효과가 되어버린 것이다.그래봐야 깎이는건 불과 10%지만.

그러면서 2군 경기 출전 - 1군 선수단 경기 동행을 병행하고 있었는데, 5월 27일 경기에서 1군 등록도 안된 선수가 벤치 클리어링을 주도하면서 분개하는 등, 비상식적인 행동을 벌여서 엄청나게 비난을 당하고 있다. 1군 말소된 선수가 동행하는 것은 가능하나 그라운드 내로 들어와서는 안 되는데 팀 내 최고참이 그걸 모르고 벤클에 참여한 일이며, 결국 KBO에서 제제금 100만원을 부과했다.

2.2. 6월

6월 4일 KIA전에서 양현종을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저지하는 안타를 기록했다.

이렇게 부진을 겪다 6월 11일 LG전에서 뜬금없는 시즌 2호 홈런을 터뜨렸다! 그동안 '애드홍' 이라는 별명으로 깠던 사람들이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에 12일 NC전에서는 4타수 3안타 5타점 1득점을 기록하고 여기에 시즌 3호 홈런를 터뜨리며 맹활약 하였다. 그 다음 날에도 첫 타석에서 2타점 적시타를 때려내면 다시 부활하나 싶었지만 이어진 두 타석에서 내리 병살을 기록하면서 역시 병살 본능 어디 안 간다는 것을 보여줬다.

6월 14일 NC와의 홈경기에 출장. 두번째 타석에서 3루수 글러브에 맞고 굴절되는 라인드라이브 타구로 내야안타를 쳐 1999안타를 만들더니, 네번째 타석에서 우중간 펜스를 원바운드로 맞추는 큼지막한 2루타로 KBO 역대 5번째이자 우타자 최초로 2000안타를 달성했다. 통산 6622타수 만에 2000안타라는 어마무시한 기록달성에 성공했다. 첫 안타를 기록한 날부터 총 5889일(16년 1개월 14일)이 걸렸는데 이는 2000안타를 달성한 5명 중 3번째로 빠른 기록으로 1895경기만에 달성하였다. 본인의 타격감이 살아나는 와중에 세운 기록이라 더 값질듯. 현장에는 아내와 이 함께하였다. 이번 시리즈가 끝나면 대구 원정 3연전이라 가족이 동행하기 힘들었을 상황이었다. 홈 팬들 앞에서 2000안타를 치고 싶었는데 그대로 이루어진 것에 대해 자신은 매우 운이 좋은 선수라고 말했다. 경기 종료 후 인터뷰에서 김인식-김진욱[2]-김태형 감독님까지 믿고 기용해주셔서 이런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이후로 귀신같이 예전 페이스로 돌아왔다. 게다가 중간에 점을 찍고 나오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2000안타 달성을 전후로 홍성흔에 대한 두산 팬들의 은퇴 요구 여론이 상당히 거세졌다. 지명타자 자리에 철밥통으로 앉으면서 김재환의 2군행, 2013년 컴백 이후 윤석민의 이적과 같은 거포 유망주들의 정리, 사장 김승영과의 학연 등으로 까이는 빈도가 급증했다.

2.3. 7월

결국 7월 4일자로 1군에서 말소됐다.

이후 퓨쳐스리그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화리의 인스타그램에 의하면 자신의 별장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듯 하다... 는 건 농담이고 햄스트링 부상 때문에 휴식을 취하는거 같다.

7월 26일 kt와의 퓨쳐스리그 경기에 출장해 2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2.4. 8월

8월 9일 1군에서 말소됐다.

후배에게 양보를 이유로 김태형 감독이 말소시켰다!!!

8월 21일에 오랜만에 보는 솔로포를 쳤다.

2.5. 9월

9월 17일엔 타미를 상대로 무려 그랜드슬램을 때려냈다!!! 이는 두산의 시즌 첫 만루홈런이기도 했다.

9월 24일 롯데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는 심수창을 상대로 또!!! 그랜드슬램을 때려냈다!!! 그것도 410 대첩 데자뷰를 만들어줬다. 그러나 상대는 침몰해가던 이종운호였기 때문에 오히려 롯데 팬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면서 그를 다시 한 번 비밀갈매기라고 칭송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 실제로 이종운 감독은 이 시즌이 끝나고 경질됐다. 사실 이 홈런은 대기록인 통산 3000루타[3] 달성 안타이기도 하다.

3. 포스트시즌

넥센 히어로즈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3경기에 나와 볼넷을 하나 얻어냈다.

NC 다이노스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솔로홈런을 쳐 포스트시즌 통산 10홈런과 통산 100안타를 동시에 기록했다.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양의지가 파울볼에 부상을 당해서 최재훈으로 교체되자 3차전에서 선발 출전하지 않고 백업포수로 대기하였다. 그런데 3차전에서도 최재훈이 노경은의 폭투에 맞게되자 잠깐이지만 불펜에서 포수 마스크를 쓰는 모습이 중계장면에 잡혔다. 이때문에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 김태형 감독이 말했던 것이 현실화될지 재조명되는 중. 그러나 그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두산이 우승하며 그런 일은 없게 되었다.

2001년 우승을 선수로서 경험해 본 몇 안되는 현역 멤버인 그의 14년만의 챔피언 탈환은 만감이 교차하는 상황이다.

4. 시즌 총평

그야말로 최악. 야구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완전히 팬들의 신뢰를 날려버렸다. 3년간 희생플라이 4개라는 팀배팅 따위 개나 줘버린 스탯과[4] 3년간 고의사구 1개라는 클린업의 위압감 따위는 하늘나라로 보내버린 기록에 더해[5][6] 붙박이 지명타자가 주전 센터라인[7]보다 타격 성적이 안 나오는 그야말로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상황이 터진 것도 모자라, 시즌이 시작하기 전 FA를 앞둔 후배 오재원에게 2달 가까이 쫓아다니며 괴롭혀서 주장 자리를 떠넘겼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팬들은 말 그대로 대폭발. 오재원은 누가 봐도 주장을 맡을 성격이 아닌데다가 그 스트레스로 인해 시즌 초반에는 제 기량을 온전히 발휘하지도 못했는데[8], 이 사태의 원흉이 홍성흔임이 밝혀지면서 팬들은 홍성흔의 이름만 들어도 뒷목 잡고 쓰러질 지경이다.

참고로 당시 오재원이 주장직을 맡으면서 상당히 고생했다고 하는데, 이유는 이전 시즌에 선수단 요구사항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 걸 해결하느라 15시즌 내내 꽤나 진땀을 뺐다고 한다. 오재원은 우승 축승회에서 프런트에게 1년 내내 괴롭혀서 미안하고 그래도 잘 들어줘서 고맙다는 소리까지 했는데, 참고로 이전 시즌 주장이 홍성흔이었다.

그런데 주장직을 이렇게 필사적으로 떠넘겨놓고 한국시리즈 우승 축승회 당시 2014년 주장 유니폼을 입고 등장하면서 대형 어그로를 끌었다. 한국시리즈 때 손가락 다친 정수빈에게 지명타자 자리에서 밀려놓고 출장도 못 했으면서 갈아입고 왔다는 옷이... 심지어 이 때 실제 주장이었던 오재원은 행사장에서 주장 마크가 없는 유니폼으로 갈아입기까지 했다.[9]

여기서 끝이 아니다. 유희관의 구단 겨울점퍼를 유희관 본인의 락커룸에서 말도 없이 가져가 모 기자에게 조공했다[10]는 게 밝혀지면서 "이젠 기자와의 친목질에 미쳐서 후배 옷 도둑질까지 하냐"며 팬들의 어이까지 도둑질하는 라스트팡이 완성... 게다가 2013년 한국시리즈 당시 두산 선수들이 부상으로 픽픽 쓰러지면서도 투혼을 보여줄 때[11] 왜 자기 아픈 건 안 알아주냐며 징징대던 인터뷰가 다시금 조명받고, 이전에 후배들을 부려먹거나 심지어 때리고 다녔다는 인터뷰까지 발굴되며[12][13] 2012년 FA 당시 홍성흔을 데려온 두산 프런트까지 "뭐 이딴 새끼를 덕아웃 리더랍시고 데려왔냐 XX새끼야" 라며 죽어라 까이고 있다.


[1] 여기서 김현수를 4번에 넣는게 낫지 않느냐라는 말도 있다.[2] 이날 이 경기를 해설하고 있었다.[3] 역대 우타자 4번째.[4] 두산 타자들의 희생타 정리 흔히 말하는 똑딱이형 타자들도 약 3시즌간 못해도 희생플라이 10개씩은 쳤는데 홍성흔만 4개다.[5] 그에 반해 동시기에 클린업으로 활동했던 김현수는 그 시기에 김거김의 원조답게 2015년에만 12개의 고의사구를 기록했다.[6] 3년만에 고의사구를 기록했을 당시 상황은 2015년 9월 2일 경기 7회 말, 상대팀 SK가 1사 주자 2,3루에서 홍성흔을 거르고 만루작전을 펼친 거였는데, 다음 타자였던 오재일을 삼진으로 잡아낸 뒤 2사 만루에서 나온 김재호가 역전 2타점 적시타를 쳐버렸다. 영상 당시 두산 팬들도 굉장히 어이없어했다.[7] 양의지, 김재호, 오재원, 정수빈.[8] 주장을 맡지 않은 14시즌과 16시즌 초반의 스탯을 보면 알 수 있다.[9] 당시 찍힌 사진이나 베어스포티비 영상을 보면 2015시즌의 스페셜 유니폼을 입고 행사장에 왔다가 행사장 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10] 참고로 유희관은 이게 없어지고 나서 애타게 찾았다고 한다.[11] 당시 멀쩡한 선수가 없었다. 한국시리즈에서 불안한 불펜을 강화시키려고 엔트리에서 최주환을 빼고 김명성을 넣었으나 오재원은 경기 도중 찾아온 갑작스러운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홈으로 거의 기어오다시피 했고, 이원석도 옆구리 부상이 오는 바람에 쓰러지면서 그로 인해 유격수를 보던 김재호가 2루수로 출장하고 당시 백업이었던 허경민이 3루수로 선발 출장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되면서 당시 교체할 내야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민병헌은 본인이 고등학교 때까지 3루수였다며 허경민에게 "걱정 말고 뛰어. 다치면 형이 있잖아." 라는 말까지 했고 실제로 3루수 훈련을 했다고 하였으며, 김현수도 학창시절 별명이 구멍난 포지션 다 메꾸고 다녀서 '빵꾸'였다며 땜빵 각오를 하고 있다고 했다. 보이듯이 주전 내야수들이 부상으로 인해 줄줄이 나가 떨어지는 와중에 진짜 여차하면 선수들, 특히 그나마 상태가 멀쩡한 편이었던 외야수들은 돌려막기라도 할 기세였다. 당시 홍성흔과 함께 야수진 최고참이었던 임재철 또한 내야를 봐야 한다면 할 거라고 각오하고 있었다 했으며, 심지어 김진욱 당시 감독의 입에서 좌투좌타인 이종욱정수빈도 내야를 볼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으니 말 다 했다. 당시 기사 1 당시 기사 2[12] 대표적으로 많이 맞았다는 선수가 다른 선수도 아니고 홍성흔 본인이 주장직을 떠넘긴 대학 후배 오재원이다. 참고로 오재원은 본인이 주장이 된 후엔 오히려 선후배간 격의없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알려져 있다. 후임 주장인 김재호도 마찬가지고.[13] 대학 시절 한솥밥을 먹은 후배인 당시 방졸 정대현을 때리기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