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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7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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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일반적으로 알려진 제777부대의 흑역사3. 사실일까?4. 관련 문서

1. 개요

777 부대(الوحدة 777 قتال)는 이집트대테러부대다. 1978년에 창설되었으며 세계 최고의 대테러부대로 인정받고 있는 델타 포스, 데브그루, GIGN과는 다른 의미로 화려한 전과를 가져 나름대로 유명해졌다. 한창 항공기를 탈취하는 하이재킹이 새로운 저항 및 선전수단으로서[1] 각광받기 시작한 1970~80년대 세계 각국은 이러한 테러에 대항하기 위해 수많은 특수부대를 창설해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여기에 자극받은 이집트도 번개라는 뜻의 사이카 특공대를 창설했는데 이들이 바로 777부대의 전신이다.

2. 일반적으로 알려진 제777부대의 흑역사

아래는 나무위키에서 약간의 수정을 가했으나 일반적으로 흔히 접할 수 있는 777부대 관련 글이다.
1978년 2월,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의 친구[2]를 암살한 2명의 테러리스트가 DC-8 항공기와 30명의 인질을 잡고 라르나카 국제공항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키프로스 정부는 즉시 테러범들과 협상에 들어갔으나, 협상은 지리하게 진행되었고, 그 사이에 이집트 당국은 대테러부대 창설 열풍에 편승하여 만든 특수부대 사이카 부대 45명을 이곳에 파견했다. 하지만 문제는 사전에 키프로스 당국과 전혀 협의를 안 했다는 점.

갑자기 나타나서는 관제탑과 교신도 안하고 착륙한 C-130에서 AK-47로 무장한 특공대가 우루루 내리자 순간 당황한 키프로스 군경은 이들을 테러리스트의 지원병력이라고 생각하고 기관총과 로켓포를 난사했고 사이카 특공대도 '용맹하게' 응전했다.

잠시 후, 시체가 된 15명을 제외한 특공대 전원과 테러리스트는 키프로스 정부에 항복했다. 인질? 전원 사살되었다.[3]

당연히 전세계의 여론이 이집트를 맹비난했지만 우방이었던 미국은 이 행동을 테러리즘에 굴복하지 않은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칭하는 촌극도 빚어졌다.[4]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이집트는 우수한 교관을 초빙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서 테러 진압 부대를 재정비했다(그 당시 교관으로 초빙되었던 SEAL 6팀의 지휘관 리처드 마친코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고 한다. "이 작자들은 아랍 고관들처럼 힘든 일은 아랫사람들에게 시켜먹고 정작 자기들은 뒤로 빠지는 한심한 작태만 보였다"). 부대 이름도 777부대로 바꾸었다.

그러나 이들의 작태는 이게 시작이었을 뿐일지니... 1985년 11월 23일,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지중해몰타에서 이집트 항공 소속 보잉 737을 납치했다. 7년 간 각고의 수행을 한 777부대는 몰타 정부의 허가를 받고 공항에 잠입했다. 이들의 작전은 이랬다.

폭탄을 터뜨려 기체에 구멍을 뚫고, 테러리스트가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번개처럼 돌입해서 적을 사살하는 것이었다. 나쁘지 않은 작전이었다. 그러나 작전이 실행되면서 계획에 심한 차질이 생겼다.

먼저 시선 유도용 폭약을 너무 많이 설치해서 폭발과 동시에 인질 20명이 즉사했다. 이때라도 번개처럼 돌입해서 테러리스트만 사살했다면 작전은 '비교적 성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777부대는 연기가 꺼지길 기다린다며 1분 30초나 돌입을 머뭇거렸다. 그 사이에 테러리스트는 응전태세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777부대는 기내에 수류탄을 마구 던진 후 돌입했고 인질이 추가로 쓰러졌다. 777부대는 움직이는 것은 뭐든지 사격했다. 몇몇 인질이 아비규환의 현장을 뚫고 비행기 밖으로 탈출했다. 이들을 기다린 것은 777부대 저격수의 저격용 탄환. 비행기 계단을 내려오던 인질은 한 명씩 생방송으로 시체가 되어 쓰러졌다.

이집트 정부는 '테러리스트 전원을 살해했다'며 '작전성공'을 선포했다. 110명의 승객 가운데 57명이 죽고, 40명 가량이 부상한 사실에는 개의치 않았다.

이때부터 어떤 테러리스트도 '학살자 집단'인 777부대가 있는 이집트 항공기는 납치하지 않는다.


유사품으로는 필리핀 경찰이 있다. 마닐라 버스 인질사건 참조. 대참사를 일으켜 놓고서는 경찰 진입 작전에 문제가 없었다는 필리핀 대통령, 이에 피해 당사국인 중국과 홍콩은 분노했다 당시 동영상(무식하게도 해머로 버스 유리창을 부수고 있다)

3. 사실일까?

상기의 내용이 인터넷 검색 등으로 쉽사리 접할 수 있는 777부대의 일화지만 실제로는 좀 다르며 일방적인 777부대의 병크는 아니다. 정확히는 몰타에서의 작전만 사실과 다르고 키프로스에서 일어난 일은 순도 100% 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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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압작전이 끝난 직후의 이집트 항공 648편 사진

1985년 11월 23일 오전 9시 이집트항공 648편 보잉 737-266/Adv(기체 등록번호 : SU-AYH) 여객기가 아테네를 출발한 지 10분 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아부 니달의 조직원 3인에 의해 하이재킹당했다. 그러나 사복경찰에 의해 테러범 1명이 사살되고 총격전으로 인해 기체가 손상되어 원래 목적지였던 리비아 대신 급히 몰타로 방향을 돌렸다.

몰타 정부는 당초 착륙허가를 내주지 않았으나 결국 항공기는 착륙했고 테러범들과 협상을 시작한 몰타군이 항공기의 급유와 군 철수를 거부하자 테러범들은 본보기로 이스라엘인 승객 1명을 처형하고 승객 11명과 부상당한 승무원 2명을 석방했으며 뒤이어 4명의 승객에게 총을 쏴 2명을 더 죽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지만 인구 40만의 소국 몰타는 자체적인 특수(대테러)부대가 없어서 인질들의 조국에서는 대테러부대 파견 제안이 줄을 이었다. 결국 자국인 사망과 테러범들의 공항 장악을 우려한 미국과 납치된 당사자인 이집트가 특히 몰타 정부를 강하게 압박해 결국 777부대 파견 요청을 이끌어냈다.

몰타에 도착한 777부대는 진압작전을 계획했는데 11월 25일 아침 기내 음식물 제공을 빌미로 문이 열린 틈에 위장한 특수부대원이 문을 확보하고 미리 동체 하부에 숨어있던 특수부대원들이 재빠르게 진입하여 테러범들을 제압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이를 위해 미리 새벽부터 야음을 틈타 777부대원들은 재빠르게 동체 밑으로 접근하기 시작했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하필이면 공항 측에서 활주로의 라이트를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모조리 꺼버린 것이다. 당연히 이를 수상히 여긴 테러범들이 문을 열고 밖을 살피던 도중 접근하던 부대원들을 발견하고 말았다.

테러범들은 곧바로 승객들에게 수류탄 4개를 던지고 무차별 총격을 개시했다. 이에 조급해진 777부대는 곧바로 기체 하부 화물칸을 폭파하고 안으로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화물에 이 옮겨붙어 기체가 화염에 휩싸이고 뛰쳐나오는 인질들에게 몰타군의 오인사격까지 벌어져 88명의 인질 중 56명이 사망하고 승무원 2명, 테러리스트도 1명이 사망했다. 테러리스트들의 리더였던 알리 레자크는 혼란한 와중에 승객으로 위장병원에 실려갔지만 이집트 특수부대의 추격 끝에 붙잡혔다.

이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777부대는 교관들의 평가는 영 아니었지만 사이카 부대보다는 훨씬 훈련이 잘 된 부대였고 이집트를 방문한 국빈경호 임무에서는 한 치의 실수도 범하지 않았다. 그러나 몰타 작전에서 성급하게 화물칸을 폭파한 탓에 발생한 화재로 수많은 인질이 사망했다는 사실[5]변명을 할 수 없는 대참사였던 탓에 777부대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지금은 이 추태를 만회하고자 엄청나게 훈련을 많이 한다고 하며[6] 당연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1998년에는 수에즈 운하에서 상선을 나포한 해적을 퇴치하는 데 성공했다.

연령 제한 영상 2010년대 이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시나이 반도에서 무장반란을 일으키자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조직원들을 소탕하는 데 앞장서면서 활약하기도 했다. 즉, 현재는 특수부대라는 이름값을 할 정도로 성장했다.

덤으로 몰타 사태 이후 미국이 이집트를 추켜세웠다는 건 몰타가 아니라 키프로스에서 사이카 특공대가 박살난 직후의 일이었다고 한다.그럼 그때 삽질은 사실이라는 거잖아[7]

"이때부터 어떤 테러리스트도 '학살자 집단'인 777부대가 있는 이집트 항공기는 납치하지 않는다."는 문장도 문제가 있는데 큰 규모의 인질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폭탄 테러같은 사보타지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인질극이 사라지고 무차별 테러에 희생되는 사람은 많아지는 상황을 그나마 인질극은 안 일어나니 편한 상황이라 좋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집트도 마찬가지다. 1997년 룩소르에서 마구잡이로 해외 관광객들을 납치하는 게 아니라 무작정 기관총으로 갈겨대서 64명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살해당하는 테러가 벌어졌다.

강경진압만으로 테러 활동을 억제할 수 있다는 의견은 대테러 활동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조차 쉽사리 동의하지 못하는 것임에는 확실하며 러시아는 오히려 대규모 인질극을 수행할 능력은 부족해진 데다 그 행위를 통해 거둘 수 있는 이익이 별로 없어진 테러단체 측에서 방향을 전환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독일 제3제국의 베오울프를 이끌고 연합군에게 테러를 한다는 해리 터틀도브대체역사소설 "강철 심장을 가진 사나이"에서 베오울프가 벌이는 모스크바 공항 비행기 납치 인질극 사건이 바로 777부대의 진압을 상당히 많이 따왔다. 물론 인터넷에 알려진 대로 닥치고 진압은 아니고 높으신 분의 독촉으로 빠른 해결을 위해서 소련 진압군이 무리하게 진입해서 벌이는 사건으로 묘사된다. 실제 역사처럼 작전은 성공하지만 상당히 많은 인질들이 사망한다.

4. 관련 문서



[1] 1960년대부터 시작된 아랍 게릴라들의 각종 납치와 점거는 애초에 인명살상이나 실질적인 포로교환이 목적이 아니라 기존 미디어들이 친이스라엘, 친미 성향으로 인해 자신들을 외면하니까 선전을 위한 것이었다. 납치현장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방송을 이용해서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내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점점 효과가 시들해지자 1980년대부터 일부 세력이 폭주해서 처음부터 대규모 인명살상을 노리기 시작했는데 그 정점이 바로 9.11 테러다.[2] 이집트의 언론인 유세프 엘 세다이[3] 사실 진짜 테러리스트들은 중화기를 가지고 싸우는 양측을 벙 찐 상태로 보고 있다가(...) 조종사의 설득으로 전투가 끝난 직후 항복했다. 인질 또한 이미 석방하고 벌어진 일이라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4] 그도 그럴 것이 시기가 1978년이라 그렇다. 정말 간신히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중재해 제4차 중동전쟁을 끝내고 이집트를 미국의 우방으로 끌어온 직후 벌어진 사건이라 마냥 비난에 동참하긴 어려웠기 때문이다.[5] 총격에 의한 사망자보다 많았다.[6] 애초에 50년이나 되어 가는 이야기다.[7] 여기에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 당시 미국은 지미 카터 대통령이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평화협정 조인에 성공하여 드디어 이집트를 우방으로 끌어들였다고 인식한 시점이었다. 사이카 부대의 엄청난 뻘짓으로 국제사회가 모두 이집트를 비난했으나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이집트를 비난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괜히 실패한 대테러 작전 하나로 간신히 확보한 우방국을 잃고 싶지는 않았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