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제19대 국회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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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주 | <colbgcolor=#c9252b> | 김정록 | <colbgcolor=#c9252b> | 윤명희 | <colbgcolor=#c9252b> | 조명철 | ||
| 주영순 | 신의진 | 이상일 | |||||
이만우 | | | ||||||
| 김장실 | 최봉홍 | ||||||
류지영 | 송영근 | 민현주 | 박창식 | |||||
손인춘 | 김상민 | | 이재영 | |||||
신경림 | 이운룡 | 박윤옥 | 양창영 | |||||
장정은 | 정윤숙 | |||||||
민주통합당 21석 | ||||||||
전순옥 | 최동익 | 은수미 | 홍종학 | |||||
진선미 | 김용익 | 배재정 | 백군기 | |||||
남인순 | 김광진 | 한정애 | 김기준 | |||||
장하나 | 김기식 | | 도종환 | |||||
김현 | 진성준 | 최민희 | | |||||
임수경 | 신문식 | |||||||
통합진보당 6석 | ||||||||
| | | 정진후 | |||||
김제남 | 박원석 | 서기호 | ||||||
자유선진당 2석 | ||||||||
문정림 | | 황인자 | ||||||
◀ 18대 20대 ▶ | }}} }}}}}} |
역임한 직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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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경주대학교 총장 | ||||||||||||||||||||||||||||||||||||||||||||||
이성희 11대 (2017~2019) | → | 정진후 12대 (2019~2020) | → | 김기석 13대 (2020~2023)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14대 전국위원장 | |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정진후 鄭鎭珝 | Chung Jin-hu | |
<colbgcolor=#808080> 본관 | 동래 정씨[1] |
출생 | 1957년 음력 11월 6일[2] ([age(1956-11-06)]세) |
전라남도 함평군 | |
거주지 |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
종교 | 불교 |
학력 |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 / 학사) |
소속 정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의원 선수 | 1 |
의원 대수 | 19 |
경력 | 1988년도 교육공무원 순위고사 합격 중고등학교 국어과 교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14대 전국위원장 제19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정의당 제2대 원내대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 국회운영위원회 위원 20대 총선 안양시 동안구 을 정의당 후보 7회 지선 경기도 교육감 예비후보[3] |
재직 학교 | 안양예술고등학교 (국어과) 백원중학교 (국어과) 수원제일중학교 (국어과) 경주대학교 (총장)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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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양예고, 의왕 백운중, 수원제일중 교사 및 경주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했던 교육인이자 대한민국 제19대 정의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및 제2대 정의당 원내대표를 지낸 정치인이다.2. 생애
1957년 음력 11월 6일 전라남도 함평군에서 아버지 정관모(鄭寬謨, 1935. 1. 2 ~ 2003. 7. 17)와 어머니 광산 승씨(光山 承氏) 승길임(承吉任, 1939. 1. 22 ~ )[4] 사이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도 교육공무원 순위고사에 합격한 뒤 국어 과목 중등교사로 근무하면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소속되어 활동했다.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로 입후보 하여 비례대표직을 승계, 19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출신의원 답게 교문위에 속해 있으며 정의당 당직자 선거 후에 원내대표직을 승계하였다. 지역구 도전은 교사생활을 했던 안양시로 결정하였다.
2016년 3월 2일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 참여했다.
당시 의사발언을 방해하던 황영철 당시 새누리당 의원에게 전직 국어교사다운 일침을 놓은 발언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말이나 글은 단어들이 문장을 이루고, 문장이 단락을 이루고, 여러 개의 단락이 하나의 글을 이룹니다. 그 문장과 단락들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전체의 글 속 내용에서 하나의 통일적인 주제로 작용하는 것이 작문이고 말하기의 구성입니다. 잘 듣고 계시면 제가 이따가 끝나고 질문 한 번 할게요."
2016년 4.13 총선에 안양시 동안을 후보로 출마하였다. 동시에 야권단일화 협상 책임자로 더불어민주당과의 협상을 담당하였다. 경쟁 출마자로는 현 안양시 동안을 지역구 의원 새누리당의 심재철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의 이정국[5] 후보가 출마하였다. 세차례에 걸쳐 이정국 후보는 야권 단일화를 제안하였고 이를 4월 5일 수용하였으나 이정국 후보의 변심으로 단일화는 끝내 무산되었다. 결국 정진후 후보는 3위로 낙선한다. 새누리당의 심재철 후보가 당선되었는데, 1위와 2위간 득표수 차이가 1700표밖에 나지 않고, 3위였던 정진후 후보도 19%나[6] 쓸어갔기에 단일화가 성사되었다면 야권의 승리를 얻을 수도 있었다.
당시 국민의당과 단일화를 성공한[7] 더불어민주당 이정국 후보는 정진후 후보에게 경선을 통한 야권 단일화를 제시했었다. 정진후 후보는 사전투표를 이틀 앞두고 이정국 후보의 단일화 제안을 받아들이며 안심번호를 통한 경선을 하자고 하였다. 더불어민주당, 새누리당은 이 방식으로 당내 경선을 치른다. 정의당은 진성당원제라 이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정국 후보는 일반 여론조사를 통한 경선을 하자고 주장하며 단일화는 무산이 되었다.
이를 두고 정진후 후보는 이정국 후보가 단일화를 파기했다고 주장했는데 반대로 이정국 후보는 단일화의 문을 열어두었으니 언제든지 단일화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단일화 파기의 책임은 서로에게 전가되며 선거가 혼탁해졌다.[8]
4월 10일 안양 중앙공원을 찾아 노유진의 팟캐스트 겸 정진후 후보 지원유세에 나선 유시민 전 장관과 진중권 교수의 분석도 재미있다. 더민주의 컷오프 대상자들이 김광진 의원을 주축으로 모여 만든 더컷유세단이 오기로 계획했음에도 오지 않았다. 더컷유세단이 오지 않았던 부분은 대체로 유력한 정의당 후보인 심상정, 노희찬 후보가 출마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당시는 여론조사결과공표금지기간 이었다.) 여론이 정진후 후보쪽으로 기울었다는 분석이었지만, 실제 결과는 사표심리가 발동되어 둘 다 낙선하는 처참한 결과로 끝이 났다. 그리고 심재철 의원은 그 기세로 원내대표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9]
정진후 후보가 심재철 후보의 표를 가져갔다는 의견이 있지만 이에 반론으로 제20대 총선의 전체적인 선거 결과를 보면 알듯이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중도 성향을 띠게 된 더불어민주당을 찍어도 진보 성향의 정진후 후보를 찍을 일은 없다고 주장이 있다. 즉, 이정국 후보의 표를 정진후 후보가 가져갔다는 말이다. 이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당시 정진후 후보의 선거운동 전략은 정진후 후보는 유세동안 이정국 후보가 3번이나 낙선했다며 이정국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하기 바빴지 심재철 후보와 날선 공방을 주고받지는 않았기 때문이다.[10]
이정국 후보의 지지층은, 심재철 의원과 이정국 후보가 1:1로 맞붙었던 19대 총선 때 이정국 후보의 득표율이 45.0%였으며 이때 심재철 후보에게 맞설 만한 후보가 이정국 후보 한 사람 뿐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그 당시 통합진보당 지지자들도 이정국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겠지만, 20대 총선 때에는 더민주와 정의당 후보가 모두 나오면서 19대 총선 때에는 이정국 후보에게로 갔던 정의당(19대 때는 통합진보당) 지지자들의 표 중 대부분이 20대 총선 때에는 정진후 후보 쪽으로 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11]
그리고 정진후 후보의 지지자들의 주장처럼 심재철 의원의 표가 정진후 후보에게로 갔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 지도 의문스럽다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정의당이 통합진보당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에 '종북의 대명사'가 된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을 (이 두 진영이 얼마나 살벌하게 싸우고 결국 헤어졌는지와는 상관없이) 거의 같은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새누리당 후보를 놔두고 정의당 후보에게 무려 19%나 되는 표를 과연 줬을지 궁금증이 안 생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단 이정국 후보 지지층 주장의 헛점은 무당층의 성향을 무자르듯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안양 지역의 투표율은 전국평균보다 높았으며 새로운 인물에 반응하여 투표소로 나왔을 유권자들도 일부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선의원에게 특히 비우호적인 정치혐오 정서도 어느정도 있었다. 물론 아예 투표소에 안 나오기도 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현재 정진후 의원은 정의당 당원들과의 협의로 차기 경기도교육감 출마를 위해 정의당을 탈당한 상황이다. 정진후 의원이 출마했었던 지역구인 안양 동안 을은 추혜선 의원이 차기 총선 출마 지역구로 정했다고 한다.
2018년 1월 31일, 경기도교육감 출마선언을 했다. 슬로건은 "존중받는 아이가 내일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러나 경기도교육감 진보진영 단일화 경선에서 송주명 한신대학교 교수에게 패해 후보가 되지 못했다. 다시 정의당으로 복당하고 다음 총선을 준비해야 할 듯하다. 그러나 상기했듯이 자신의 지역구를 추혜선 의원에게 양보한 상태라 새 지역구를 정해야 한다.
2019년 6월 28일, 신임 경주대학교 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총장 임기는 7월 1일부터 4년간이다.연합뉴스 기사
2020년 10월 11일 심각하게 무너졌던 학교 운영 체계와 이사회 체계를 바로잡은 후, 1년 3개월간 일하고 사직서를 냈다고 밝혔다. #
3. 여담
- 정진술 서울시의원이 정진후 전 의원의 사촌 동생이다.
4.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통합진보당|]] | 2011 - 2012 | 정계 입문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2 | 제명[12] |
| 2012 - 2013 | 창당 |
[[정의당|]] | 2013 - 2018 | 당명 변경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8 - | 탈당 [13] |
5. 선거이력
<rowcolor=#fff>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 비례대표 | [[통합진보당|]] | 2,198,082 (10.30%) | 당선 (4번) | 초선 |
2016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안양시 동안구 을 | [[정의당|]] | 16,581 (19.01%) | 낙선 (3위) |
역대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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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 (안양 동안 을) | }}} |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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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경공파(文景公派)-정절공파(貞節公派) 31세손 진○(鎭○) 항렬.(족보)[2] 양력 12월 26일.[3] 진보 단일 후보인 송주명과 단일화[4] 승기열(承琪烈)의 딸이다.[5] 이정국 후보는 제20대 총선의 낙선의 영향으로 지역위원장 경선에 나오지 못했다.[6] 정의당 비례표보다 많았다. 후술될 국민의당과의 단일화 효과가 엉뚱하게 이리로 모였을 수도 있다.[7] 하지만 국민의당 후보는 정식 후보로 등록하지도 않아 선관위가 유권해석을 내린 후에야 단일화 용어를 사용했다. 더불어 이 후보는 경기도의원을 하던 중 19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새누리당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하여 친박 성향 무소속으로 출마했었다가 낙선한 뒤 당시 지역구 의원이었던 심재철 최고위원(친이계)에 의해 복당이 거부됐었던 적이 있는데다가, 적어도 2016년 12월 이전에는 늘푸른한국당으로 이적한 이력을 갖고 있다. 본인에게 직접 물어본 결과 7대 지선에 안양시장에 출마할 계획이라고 한다. 심지어 11월에는 태극기 집회까지 참가한데다가 19대 총선에서 정몽준의 완전한 안티테제인 체납으로 후보 재산 평균을 심하게 깎아먹는 후보였다.[8]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안심번호 여론조사는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적극 활용하는 방식이란 것이다. 자체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서로 유불리를 따진 듯 하다.[9] 그나마 국회부의장직을 하게 되었지만, 국회부의장의 존재감은 매우 미미하다. 이래저래 직함은 있으나 원내대표직 진출 실패와 마찬가지로 중앙정계에 존재감이 없는건 매한가지인 것이다.[10] 이는 단일화만 되면 무조건 이긴다는 판단이 야권 후보 모두에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서로 사퇴를 강요하며 신나게 싸웠고, 심재철 후보는 이미 밟아놓고 간다고 판단한 셈이다. 실지로 유세현장에서는 초반에는 심재철 후보를 맹렬히 공격한 뒤 야권후보끼리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싸워댔다.[11] 그들이 어떻게 분당했는지 안다면 절대로 정의당에 표를 줄리가 없다는 걸 알 것이다. 즉 이 논리는 후술될 통진당=정의당 논리와 같다.[12] 진보정의당 합류를 위한 셀프제명[13] 교육감 출마를 위해 당과 협의하에 탈당 하였으나 선거 후 경주대 총장으로 취임하여 현재까지 무소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