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7-29 10:43:16

이행리

익조(조선)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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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조선 추존 국왕
이행리 | 李行里
파일:익조.jpg
지릉 전경 초상화
출생 연대 미상
장소 미상
사망 1300년 이후 9월 10일
쌍성총관부 의주 (現 강원도 문천시)
능묘 지릉 (智陵)
재위기간 오동천호소 천호 | 다루가치
1300년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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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본관 전주 이씨
고려: 행리(行利)
: 토가(脫火)
부모 부왕 목조
모후 효공왕후
형제자매 6남 중 4남
배우자 정숙왕후
자녀 이춘 외 7남, 1녀
몽골식 이름 토가(脫火)
묘호 익조 (翼祖)
시호 익왕 (翼王) → 강혜성익대왕 (康惠聖翼大王) }}}}}}}}}
1. 개요2. 생애3. 가계4. 둘러보기

1. 개요

조선 왕조의 추존 국왕으로 태조 이성계증조부.

조선 개국 직후에는 시호 '익왕'(翼王)만 올렸다가 현손자인 태종이 1411년에 묘호 익조(翼祖)를 올리고 시호를 '강혜성익대왕'(康惠聖翼大王)으로 바꿨다.#

2. 생애

전라도 전주에서 두만강 하류 부근까지 이주해서 몽골 제국의 오동천호(斡東千戶)[1] 및 다루가치가 되었던 목조 이안사효공왕후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4남으로, 부친 목조가 죽은 다음 해인 1275년 3월에 천호 벼슬을 물려받았으며, 이후 쌍성 등지의 고려 군민(軍民)을 다스리는 다루가치의 일을 맡았다.

이행리는 대몽골 울루스의 제5대 카안이자 원나라의 초대 황제인 세조 쿠빌라이 칸의 일본 원정에도 참가했는데 이 때 충렬왕(25대)을 만났다.
원 세조가 일본(日本)을 정벌하니, 천하의 병선(兵船)이 합포(合浦)에 모였다. 익조가 상사(上司)의 문자(文字)를 받아, 본소(本所)의 인호(人戶)에 군인(軍人)을 기명하여 뽑아서 쌍성 총관부(雙城摠管府)의 삼살 천호(三撒千戶)와 몽고(蒙古)의 대탑실(大塔失) 등과 함께 정벌에 나아갔다. 마침내 고려충렬왕을 뵈옵고 두세 번에 이르러 더욱 공손하고 더욱 삼가면서 매양 사과(謝過)하기를, "선신께서 으로 달아난 것은 실로 호랑(虎狼)의 아가리를 벗어나고자 한 것이고, 감히 군부(君父)를 배반한 것은 아니오니, 원하옵건대, 성상께서는 그 죄를 용서하옵소서." 하니, 왕이 말하기를, "경(卿)은 본디 사족(士族)이니 어찌 근본을 잊겠는가. 지금 경의 거지(擧止)를 보니 마음이 있는 바를 알겠다."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1권, 총서 8번째기사

사실 따지고 보면 나라가 원나라에 반(半)복속이 되고, 충렬왕 본인도 장인이었던 원 세조에게 대고 뭐라 끽소리도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과거 몽골에 항복한 고려인 관리에 대해 고려 국왕인 자신이 쓴소리를 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심지어 훗날의 충혜왕(제28대)은 원나라 사신에게 발로 마구 차이며 맞기까지 한 판이었다.
"이행리(李行里) 【익조.】 는 본디 우리의 동류(同類)가 아니며, 지금 그 형세를 보건대 마침내 반드시 우리에게 이롭지 못할 것이니, 어찌 깊은 곳의 사람에게 군사를 청하여 이를 제거하고, 또 그 재산을 분배하지 않겠는가?"
태조실록 총서

하지만 여진족 천호들에게 쫓겨나게 되었는데 당시 두만강 주변의 천호들은 모두 여진족이었지만 이행리만 유일하게 고려인이었기에 여진족 천호들이 그를 죽이고 그의 재산을 나눠 갖기로 계획한 것. 그래서 여진족 천호들은 두만강 북쪽에 있었던 동족들과 모의해 고려인 천호 이행리를 습격해 죽이기로 하고, 이를 모르는 이행리에게는 사냥간다는 핑계를 대며, 미리 군사들을 풀어 도주로를 차단했다. 그런 줄 몰랐던 이행리는 길에서 한 노파를 만났는데 노파가 이 사실을 전해 줬고 깜짝 놀란 이행리는 재산을 챙겨서 두만강 하류에 있는 적도[2]라는 섬에서 만나자고 가솔 및 가병들에게 전해서 내려보낸 뒤에 자신도 부인 손씨와 함께 적도로 향했다.

이행리는 겨우 적도 기슭에 다다랐지만 두만강은 물이 깊고 폭이 넓어 건널 수가 없었고, 여진족 천호의 추격병 3백 명까지 바싹 쫓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썰물 덕분에 물이 빠져 건널 수 있었다. 나중에 추격병들이 왔을 때는 밀물이 밀려와 건널 수가 없었다. [3] 용비어천가에서 노래한
漆沮(칠저) ᄀᆞᅀᅢᇫ 움흘 後聖(후성)이 니ᄅᆞ시니 帝業憂勤(제업우근)이 뎌러ᄒᆞ시니
赤島(적도) 안해ᇫ 움흘 至今(지금)에 보ᅀᆞᆸᄂᆞ니 王業(왕업) 艱難(간난)이 이러ᄒᆞ시니
용비어천가 제5장

가 이것이다.

이행리는 적도에서 움집을 짓고 잠시 살다가 사람들이 모이자 인근 직도(稷島)·추도(楸島)·초도(草島)에서 재목을 가져다 배를 10척 정도 만들어 가솔 및 가병들과 함께 동북면 의주(현재의 원산)로 향했다. 의주는 아버지 목조 이안사가 몽골에 투항하기 이전 고려의 의주 병마사로 있었을 때 선정을 베풀었던 곳이라 그를 따르는 무리가 많았고, 경흥에 살고 있던 고려인들도 대거 오는 바람에 쉽게 세력이 다시 커졌다. 태조실록에는 그들이 거주하던 땅을 적도(赤島)에서 온 사람들의 땅이라 해서 적전(赤田)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행리는 9월 10일에 죽었지만 연도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태조가 왕위에 오른 뒤 '익왕'(翼王)으로 추존했고, 태종이 '익조'로 재추존했다. 능은 현 북한 강원도 원산시 수상리에 있는 '지릉'(智陵)이다.



3. 가계


익조에게는 2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첫 번째 부인은 손씨, 두 번째 부인은 등주(안변)의 호장 최기열의 딸 최씨이다. 익조의 뒤를 이은 것은 최씨가 낳은 이춘이었고, 이러한 이유로 이춘손자 이성계는 이행리의 첫 번째 부인 손씨가 아닌 두 번째 부인 최씨를 이행리의 정실부인으로 보고 정비(貞妃)로 추존했다. 그리고 나중에 태종정숙왕후로 재추존했다.

선원속보에는 함녕대군함창대군정숙왕후의 소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4. 둘러보기

조선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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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조실록에는 남경(南京) 동남쪽 90여 리(里)에 있고 경흥부(慶興府) 동쪽 30리에 있다고 나온다. 함경북도 경흥군에서 두만강 바로 건너편으로 내다보이는 지역이며, 지금은 러시아 경내이다.[2] 함경북도 라선시 소재.[3] 이 모세의 기적스러운 이야기는 당연히 후세의 창작 내지 조작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에도 탈북자들이 두만강 방면으로 탈북할 때는 하류가 아닌 상류를 주로 이용하는데 하류가 강폭이 상류보다 더 넓기 때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