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로 이전
원래 휘문고등학교 재학 시절까지만 해도 투수가 아니라 내야수였다. 실제로 고교 재학 시절까지만 해도 투수로 한 경기도 등판해 본 적이 없으며 주로 3루수로 출장하였다. 그러다 보니 휘문고 졸업 후 1998년 신인지명에서 내야수로 OB 베어스에 2차 11순위 지명을 받았으나[1] 프로 입단 대신 대학 진학을 택했고, 탐라대학교(현 제주국제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대학교 2학년 때인 1999년 경기 도중 왼쪽 발목이 부러지는 중상을 당해 선수 생명이 끊길 위기에 놓였고, 이로 인해 두산 베어스에서는 그의 지명권을 포기했다.2. 두산 베어스 시절
2.1. 2000 시즌 ~ 2009 시즌
두산 베어스 입단 초기 시절 |
그의 신인 시절.
결국 탐라대를 중퇴한 후 2000년에 경기 기록원 겸 훈련 보조로 두산 베어스에 입단했다.[2] 여담이지만 이 시절 주로 공을 줍거나 타자들에게 배팅볼을 던져줬는데 배팅볼 던지는 걸 본 김경문 당시 배터리코치가 우연히 이재우가 던지는 공을 직접 받아봤고, 투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며 구단과 코칭스태프에 적극 추천한 덕분에 2001년 시즌을 앞두고 정식 선수로 3,000만 원에 계약을 맺는 데 성공한다. 이후 곧바로 본 포지션이었던 내야수 대신 본격적으로 투수로 전향했다.
이후 2년간 2군에서 갈고 닦다가 2003년부터 1군에 정착해서 25경기 46이닝 3승 1홀드 평균자책점 4.30으로 가능성을 보여 주었고, 2004년에는 1군 33경기에 등판해 89⅓이닝 동안 방어율 4.43으로 셋업맨 역할을 톡톡히 해 줬다. 커리어하이는 2005년으로, 그 전 해에 터진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으로 인하여 불펜진의 핵심이었던 이재영(구속), 정성훈, 구자운(공소시효가 지나 무혐의 처리) 등이 줄줄이 이탈해 적절하게 박살난 두산의 불펜진[3]의 핵이 되며 홀드왕을 차지하며 포텐셜을 터뜨린다. 이 해에 올린 성적이 1군 76경기 99⅔이닝 7승 5패 1세이브 28홀드[4] 79K. 마무리 정재훈을 제외하면 두산 불펜진을 혼자 떠받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나 병역비리 사건에 본인도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에(불구속),[5] 시즌 후 공익으로 입대한다.
소집해제된 후 2008년에 복귀하여, 65경기 87⅓이닝 11승 3패 2세이브 17홀드 방어율 1.55로 2년간의 실전 공백 우려를 싹 무시하고 다시 특급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활약 덕분에 2009년 WBC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하였다.
2.2. 2010 시즌
그러나 그 활약의 뒤에는 혹사라는 그늘이 자리잡고 있었다. 일단 공익 복무 전인 2005년에도 99⅔이닝을 던졌고, 소집해제 후인 2008년과 2009년 2년간 184⅔이닝을[7] 던지는 혹사를 당하였다. 그것도 중간계투 투수가. 결국 2009년에는 후반기 들어 방어율도 3.88로 올라가고 구위도 떨어지는 등 페이스가 급격히 쳐지는 모습이 보였고, 포스트시즌 들어서는 거의 출전 불가능 상태가 되는 등 이상 징후를 보이고 있었다. 비단 08~09뿐만 아니라 주전으로 도약한 2005년에도 이미 100이닝 가깝게 소화하며 혹사를 당했고, 그런 상황에서 바로 군 복무를 위해 2년간 쉬면서 어느정도 회복을 했는데, 돌아오자마자 다시 사정없이 굴려졌으니...2010년 4월 4일 6이닝을 던지고 선발승을 거두며 선발투수로 순조롭게 자리잡는 듯 싶었으나, 결국 다음 경기에서 1이닝도 채 못채우고 팔꿈치 통증으로 강판당하게 된다. 그리고 팔꿈치 수술로 시즌 아웃. 2010년 성적은 2게임 1승 6⅔이닝.
2010년 8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조브 클리닉에서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고 2011년 후반기 복귀를 목표로 열심히 재활에 전념했다. 하지만 2011년 LA에서 수술받은 인대가 다시 끊어지면서 사실상 2011년 시즌 복귀는 물 건너갔다. 다시 조브 클리닉에다가 수술을 예약하려고 했지만 조브 클리닉에서 재수술을 거절하는 바람에 7월 15일 김진섭 정형외과에서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다시 받았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본인도 만족하고 있다는 듯. 관련기사 팔꿈치 인대 부상의 특성상 최소 1년의 재활 기간이 더 필요했고, 2012년 후반기쯤에야 복귀가 가능해졌다.
2.3. 2012 시즌
2012년 9월 22일 SK와의 시즌 18차전을 앞두고 임태훈과 함께 1군에 합류했다. 무려 2년만에 실전 복귀. 2군 등판에서 직구 구속이 147km/h까지 나왔다고 한다. 팀이 5:1로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9회초 SK의 공격 때 등판해 조인성을 삼진, 박재홍을 좌익수 플라이, 정근우를 땅볼 처리하며 1이닝을 삼자범퇴로 막았다.하지만 선수 보호 차원에서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는 제외됐다.
2.4. 2013 시즌
2013년 4월 7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2010년 4월 4일 선발승 이후 1,099일만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자신도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듯.5월 7일 문학 SK전에 선발로 등판, 1이닝 4실점이란 좋지 못한 투구내용을 보이다가 또 팔꿈치 통증으로 강판당했다. 정밀 검사 결과 단순한 인대 염증이라고 했으며, 2군에서 선발 등판을 준비한다고 했다.
넥센 히어로즈와의 2013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경기 5⅔이닝 5피안타 3사사구 1실점(1자책) 평균자책점 1.59를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LG 트윈스와의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 1경기 1⅔이닝 2피안타 3볼넷 1K 2실점(2자책) 평균자책점 10.80,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앞선 10월 28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3 한국시리즈 4차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했는데, 5이닝 동안 85투구수 2피안타 3볼넷 8K 무실점으로 인생 투구를 보여줬다. 팀이 스코어 1:2로 승리하여 이날의 승리 투수가 됨과 동시에 이날의 MVP를 거머쥐었다.
이날 경기가 이재우의 2013년 한국시리즈 첫 경기이자 마지막 경기가 되었는데,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앞서다 내리 3연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이재우는 2013년 포스트시즌 16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12⅓이닝 9피안타 9사사구 9K 3실점(3자책) 평균자책점 2.19, 1승 1패를 기록했다.
2.5. 2014 시즌
4월 3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시즌 첫 경기를 가졌다. 5이닝 2피안타 5K 2실점(2자책)으로 호투했지만 볼넷을 6개나 허용하다보니 투구수 86개에 육박하여 팀이 스코어 2:4로 앞선 6회말에 윤명준으로 교체됐다.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추고 마운드를 내려갔지만, 팀은 윤명준이 6회말에 2실점하며 동점을 허용한 것도 모자라 네 번째 투수 오현택마저 털리면서 스코어 4:6으로 역전패했다.6월 5일 경기에서도 선발로 등판해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고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추고 내려갔으나, 윤명준-이현승-정재훈이 각각 1실점을 보태며 승리를 날려버렸다.
이후 선발등판을 계속 하면서 좋지 않는 경기가 더 많았고 결국 6월 20일자로 2군으로 가게 되었다. 사실 팬들이 바라는건 5이닝 이내로 버텨주기라도 하는 것인데 요 근래 5이닝을 넘기기 조차 어려운 모습을 보였던지라... 대신 좌완 신예인 함덕주가 등록되었다.
2.6. 2015 시즌
승리 없이 2패에 6점대의 ERA를 기록. 결국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들지 못하며 14년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밖에서 지켜봐야만 했다.시즌 후 구단으로부터 은퇴 후 코치 제안을 받았으나 현역 연장에 뜻이 있었다 보니 이를 거절했고, 결국 쌍방 합의 하에 두산에서 방출되었다.
3. 한화 이글스 시절
2015년 12월 2일, 한화 이글스와 연봉 9,000만원에 계약하면서 # 2016 시즌에도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 있게 됐다.
두산 방출 후 한화에 입단하면서 "원없이 던져보고 싶다."란 말을 남겼다고
3.1. 2016 시즌
4월 2일 LG 트윈스전에서 연장전 11회말에 나왔으나 박용택을 볼넷으로 보내고 이병규에게 끝내기 3루타[8]를 맞고 패전투수가 된다. 4월 22일 이후 등판을 못하다가 5월 4일 오래간만에 출전해 1이닝을 던졌다.그리고 5월 5일 어린이날 SK전에서 2번째 투수로 나와 3이닝 투구수 77개 9피안타(4피홈런) 9실점을 기록하며 벌투를 완성하였다!
6월 18일 넥센전을 마지막으로 2군행.
8월 21일 현재 퓨처스리그 성적은 52이닝 ERA 4.85이다.
9월 1일 확대엔트리로 1군에 복귀하였다.
9월 3일 넥센전에서 1이닝 17구 무실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9월 4일 넥센전 선발로 예정되었다!!![9] 1이닝 이하로 던지는 위장선발로 예상되었으나 2⅔이닝 43구 5피안타 2볼넷 3K 1실점으로 나름 호투했다. 이태양이 분식회계를 저지른 탓에 무실점에는 실패했고, 이후 역전당한 뒤 경기를 뒤집지 못해 이태양이 패전투수(3승 8패)가 되었다.
9월 14일 삼성전[10]에 선발로 등판하여 정인욱과 맞붙었다. 2회초 최형우에게 홈런을 맞고 다음 타자 이승엽에게 백투백 홈런을 맞았는데, 이 홈런이 바로 이승엽의 한일통산 600호라서 허용투수가 되었다.
9월 22일 NC전 2⅓이닝 1실점으로 나름 잘 던졌다. 팀이 중간에 역전했다가 재역전패하는 바람에 패전은 면했다.
이후 한 번도 등판하지 않으며 시즌을 마감했다. 김성근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듯.[11]
시즌 최종 성적은 25.1이닝 ERA 6.04로 마무리.
3.2. 2017 시즌
1군에는 한 번도 올라오지 못했다. 2군에서도 8경기에 등판하여 1패 1세이브 1홀드 평균자책점 4.97을 기록하고, 5월 3일 함평에서 열린 KIA와의 2군 경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2군에서조차 등판하지 못했다. 나이도 37세로 적지 않은데다, 애초에 공을 던지는 게 기적인 상황.결국 6월 8일자로 한화의 코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그대로 은퇴를 선언했고, 웨이버 공시되면서 은퇴 절차도 마무리됐다.
4. 국가대표 경력
4.1. 2009 WBC
2009 WBC |
대한민국 대표팀 개인별 성적 | |||||||||||||
경기 | 선발 | 이닝 | 방어율 | 승 | 패 | 홀드 | 세이브 | 피안타 | 실점 | 자책점 | 4구 | 삼진 | 상세 |
2 | 0 | 4⅓ | 6.23 | 0 | 0 | 0 | 0 | 5 | 3 | 3 | 1 | 1 |
[1] 그가 정식으로 지명받은 선수라는 사실을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2] 다만 선수 계약은 하지 못했는데, 이 당시까지만 해도 KBO 규약 상 대학 자퇴생의 경우 자퇴한 시점으로부터 1년간 프로 구단과 계약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이 존재했기 때문이다.[3] 특히 주전 마무리였던 구자운이 이탈하면서 두산은 불펜의 일원인 정재훈을 마무리로 돌릴 정도로 심각했다... 결과론적으로는 정재훈이 세이브왕을 차지해 성공으로 끝났지만.[4] 바로 다음 해 삼성의 권오준이 32홀드로 기록을 깨기 전에는 한 시즌 최다 홀드 기록이었다. 종전 기록은 전년도인 2004년 롯데 임경완이 기록한 22홀드.[5] 그나마 2005년 한국시리즈에는 엔트리에 들었지만, 3차전에서 양준혁에게 시리즈 전체를 결정지은 치명적인 3점홈런을 맞고 강판당했다.[6] 2009년에는 선발로도 출장했다.[7] 이정도면 이닝 잘 소화하는 선발투수의 한 시즌 이닝 소화수며, 시즌 180이닝 이상 던지면 이닝 이터 소리를 듣는다.[8] 사실 안타로 끝날 공이었는데 송주호가 무리해서 다이빙하다 못 잡은 탓에 3루타로 둔갑하고 말았다.[9] 참고로 이재우의 선발등판은 두산소속이던 2015년 8월 23일 kt전(2이닝 5피안타(1피홈런) 2볼넷 2K 3실점) 후 379일 만이다.[10] 추석 연휴인지라 오후 2시에 시작한다.[11] 앞서 말했듯이 이재우는 공을 던지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