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b82642><colcolor=#fff> 윤원로 尹元老 | |
이름 | 윤원로(尹元老) |
출생 | 1502년(연산군 8)[1] |
사망 | 1547년 12월 26일(명종 2) (향년 45세) |
본관 | 파평 윤씨 |
1. 소개
조선 전기의 간신. 문정왕후의 남동생이자 윤원형의 형이다. 정치 감각이 윤원형과 문정왕후보다 떨어지면서 권력 좀 얻겠다고 무모하게 나서다가 이성을 잃고 스스로 자멸하였다.2. 생애
1537년에는 권신 김안로[2], 1544년에는 대윤의 영수였던 윤임과 싸우다가 파직된 후 유배되었다. 이 과정이 막장이었는데 인종이 승하한 직후 유관, 유인숙 등 조정 대신들이 "가뜩이나 소윤이 제 세상 만났는데 저런 멧돼지 같은 놈 놔뒀다간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며 문정왕후를 위협하여 "위험한 놈이니 쫓아내야 한다"는 논리로 귀양을 보내게 했다. 문정왕후는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어찌 귀양을 보내겠냐"며 저항했지만 온 조정이 합세하여 윤원로를 탄핵해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귀양치고는 약한 '자원 부처'에 처해졌는데 귀양지를 자기가 선택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분노한 문정왕후가 윤원형, 이기, 정순붕, 임백령, 최보한, 허자를 비롯한 소윤 세력을 결집시켜 대윤의 핵심인 윤임, 유관, 유인숙 등을 역모죄로 몰아 죽이는 계기가 된다. 결과적으로 대신들의 자충수가 된 것. 윤임은 "경원대군의 양눈에 안질이 있다고 들었는데 맹인이 어찌 왕을 하냐?"라면서 성종 서자들의 후손 중에서 왕을 내세울 것을 은밀히 논의했다. 이언적이 명종의 승계를 확고히 지지하고 인종의 유언도 있었는지라 결국 명종이 즉위하게 되었고 윤임은 불쌍하게도 윤임이 차기 왕 후보로 거론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계림군과 함께 처형되었다. 10살이 채 되지 않았던 봉성군도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어리다는 이유로 사면을 받았다가 후에 이홍윤의 옥사가 터지면서 자진 명령을 받고 자결한다. 권중열, 이저, 이임 등이 처형되고 윤임의 무죄를 주장한 권벌, 백인걸 등까지 죄다 숙청된 다음에 윤원로는 다시 조정에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소윤의 집권 과정에서 유배지에서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지라 돈녕부 도정을 맡았는데 왕실 종친에 관한 잡일이라 한직과 다름없었다. 소윤의 핵심들만 한 권세를 누리지 못했고 분노한 나머지 위험한 말을 쏟아내기에 이른다. "소윤은 다 죽여야 하며 사실 소윤에 의해 갑자년에 죽은 대신들은 공신이 되는 것이 맞다. 나는 명종의 한명회와 같다. 날 따르지 않는 자는 후일에 다 죽일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이 곧 대비전의 말이다. 대비는 늙었으니 이제 갈 때가 됐다. 그럼 이제 곧 내 세상이다.[3]" 등이 예인데 인종이 살아있을 때는 "주상(인종)은 우매하니 어서 죽어야 한다"는 말을 한 것도 들통나면서[4][5] 결국 다시 유배를 가게 되었고 윤원형의 청에 의해 문정왕후가 사약을 내려 죽게 된다.
아들 윤백원(尹百源)은 중종과 장경왕후의 적장녀 효혜공주의 딸과 결혼했다. 중종의 2번째 계비가 윤원로의 누나 문정왕후이니 문정왕후는 자신의 의붓외손녀와 조카를 결혼시킨 셈이다. 효혜공주가 딸을 낳고 산후병으로 바로 사망했으므로 외조부모인 중종-문정왕후 부부 입장에서는 외손녀를 돌보는 게 당연했을 것이니 이러한 인연이 이어져서 조카인 윤백원과 혼인시켰다고 볼 수 있다.
3. 대중매체에서
- 2001년 SBS 드라마 여인천하에서는 배우 김기섭[6][7]이 연기했다. 식견이 부족하다 못해 정적을 구분하는 눈치도 없어서 매번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뒷목을 잡게 만들며 내부의 적 수준으로 민폐만 끼친다. 게다가 왕후의 오라버니답지 않게 행실도 경박해서 여기저기 붙는 박쥐처럼 행동하여 파평 윤씨 가문에서도 미운오리새끼 같은 존재. 그중 무능의 정점은 문정왕후의 정적인 김안로를 편들며 문정왕후에게까지 대놓고 대들던 행위. 이때 문정왕후마저 "못난 놈"이라고 소리치며 울화통이 터졌다. 또한 처음부터 정난정을 지지해준 윤원형과 문정왕후를 제외한 윤씨 가문 사람들이 난정을 첩년이라며 멸시하다가, 시아버지를 시작으로 점점 난정을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준 것과 달리[8] 일편단심으로 끝까지 정난정을 천대한다.
- 맹꽁이 서당 2권에서 등장했다. 허나 여기서는 악행에 대한 서술은 일절 없이 그저 동생 윤원형에게 희생당한 것만 나왔다.
[1] 공식으론 출생년도가 나와있지는 않지만 누나인 문정왕후가 1501년 생이고 동생 윤원형이 1503년 생이니 윤원로의 생년은 1502년 생이된다.[2] 효혜공주의 시아버지[3] 문정왕후는 겨우 40대 초반의 나이에 불과했으니 권력에 눈이 멀어도 단단히 멀었던 모양이다. 심지어 윤원로는 윤원형의 형이자 문정왕후의 동생이지만 윤원형은 문정왕후보다 고작 2살 어리니 윤원로도 결국 문정왕후와 1살 차이일 가능성이 높다.[4] 소윤계기는 했지만 그래도 왕을 상대로 이런 망발을 한 건 용서받기 힘든 일이다. 소윤 정권이라서 곱게 죽은 거지 대윤 정권이였다면 준역모죄로 끔살당했을 것이다.[5] 일단 윤원로의 혐의는 사실이 맞긴 한건지 사관도 이를 두고 왕(인종)의 수명을 논하고 자전(문정왕후)을 저주한 죄는 용서할 수 없다고 썼다.[6] 1994년 KBS2 드라마 한명회에서는 권람 역.[7] 참고로 이 작품에서는 윤원형과 마찬가지로 오빠로 각색된다. 해당 배우가 문정왕후 역의 전인화보다 나이가 훨씬 더 많은 탓인 듯하다.[8] 김안로와 제대로 척을 진 이후엔 오히려 윤원형의 정실부인 김씨(김안로의 조카)를 적대하며 웬수 집안 여자는 내치고 정난정을 정실로 들이라고 대놓고 요구하는 가족이 생길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