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8-04 17:48:10

효혜공주


조선의 왕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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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호가 있거나 성년까지 생존한 사람만 기재
덕혜옹주는 대한제국 멸망 이후에 태어났으므로 조선의 왕녀였던 적이 없다.

조선 중종의 왕녀
효혜공주 | 孝惠公主
이름 옥하(玉荷)
출생 1511년(중종 6년) 5월 18일
조선 한성부 경복궁
사망 1531년(중종 26년) 4월 20일
(향년 21세)
조선 한성부 어의궁[1]
부왕 중종
모후 장경왕후 윤씨
부군 연성위 김희(金禧)[2]
자녀 1녀
(장녀) 김선옥(金善玉)[3]
묘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 산 16-5

1. 개요2. 생애3. 어린 시절4. 혼인5. 죽음6. 그 이후7.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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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중종장경왕후의 적장녀. 인종의 유일한 동복형제로, 명종에게는 이복누나가 된다.

2. 생애

3. 어린 시절

본명은 옥하(玉荷)로,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에 기재되어 있다. 보통 왕자와 다르게 공주나 옹주의 이름이 기록에 잘 남아있지 않고, 후대까지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특이한 경우다.

1515년(중종 10) 공주는 나이 5세에 어머니 장경왕후를 여읜다.[4]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데다 유일한 친남매라는 공감대로 인종과 사이가 매우 돈독했으며, 연려실기술의 인종조 고사본말에서는 나중에 효혜공주가 죽자 인종은 너무 슬퍼하다 병을 얻을 정도였다고 한다.

4. 혼인

1520년(중종 15) 김안로의 아들 김희[5]와의 혼인이 결정되었으며, 이듬해 11월 가례를 올렸다.

한편 딸을 사랑한 중종은 공주의 시아버지가 된 김안로에게 "공주가 떠받드는 속에서만 자라서 시부모를 존대하는 예를 모르니 부드럽게 타일러 달라"라고 말했는데, 쉽게 말하자면 "내 딸이 귀하게 자라 버릇 없겠지만 심하게 혼내지 말고 잘 달래라"라고 말을 했다.[6] -이거 사실상 협박이다-

가례를 올린 공주는 중종이 진성대군일 때의 잠저에서 신혼 생활을 하게 된다. 중종과 신하들 모두 효혜공주와 연성위의 집을 중종의 잠저라고 말하고 있다.[7]

5. 죽음

1528년(중종 23) 공주가 이질을 앓았는데, 중종이 이를 걱정해 대간의 반대를 부릅쓰고 문병하였다.

그로부터 3년 후 외동딸을 출산한 후 산후병으로 향년 21세로 사망했다.[8]

6. 그 이후

효혜공주는 슬하에 김선옥(善玉)이라는 이름의 딸 하나만을 두었다. 이 딸은 문정왕후의 남동생 윤원로의 아들 윤백원과 혼인했다. 그런데 윤백원은 명종대에 이량 일파에 가담하여 사림을 제거하려다가 유배되는 사람이다. 그 이유가 아버지 윤원로를 죽게 만든 윤원형에게 복수하고자 권신이자 외척인 이량의 말 잘 듣는 장기말이 되었던 것. 이때 효혜공주의 하나밖에 없는 사위라고 문정왕후가 언서를 내려 가까운 곳으로 유배지를 옮겨주었다.[9]

사실 문정왕후는 세간의 이미지와 달리 중종의 후궁들이나 자식들에게 야박하게 군 적은 없다.[10]

훗날 효혜공주의 외손녀이자 선옥의 딸인 윤개미치가 아버지 윤백원을 독살했다는 죄목으로 장을 맞다가 사망하는 참극이 벌어진다. 뒷날 억울함이 밝혀져 신원이 회복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야말로 가족간의 참극.

7. 매체에서

  • SBS 드라마 《여인천하(2002)》: 주로 중종의 효성 깊은 딸이자 문정왕후의 호통에 움츠려드는 심약한 성품으로 그려지는데, 김안로가 권세를 휘두를 수 있게 해주는 원천이 되어준다. 남동생인 인종과 우애가 깊은 사이로 묘사되지만, 문정왕후가 김안로와 대립관계에 있는 탓에 갈굼을 많이 당한다. 또한 남편 김희와 함께 작서의 변에 가담하는 것으로 묘사되며[11] 이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다 출산 중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 MBC 드라마 《대장금(2003)》: 혼인 전 어린 소녀 시절의 모습으로, 아역이 맡아 출연했다. 공주가 여러 날 동안 식사를 거부하는데 이유를 알 수 없어 궁궐이 발칵 뒤집히는 에피소드다. 장마철 폭우에 잠긴 미곡에서 미세한 잡내가 나는 것이 거슬려서 밥을 못 먹었는데, 어째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아버지도 군말 없이 드시는 수라를 어찌" 라고 대답한다. 불평하는 것보다 왕녀가 밥을 거르는 게 더 큰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인물. 아버지를 포함한 집안 어른들만 걱정시키고 수랏간 나인과 상궁들만 고생했다.

[1] 하어의궁 위치로 중종 시기에는 '어의동 본궁'이라고 부른다.[2] 본관은 연안(延安), 중종 때의 권신 김안로의 아들이다.[3] 윤백원의 처로, 윤개미치란 딸을 낳았다.[4] 이때 장경왕후는 아들 인종을 낳고 산후병을 얻어 25세의 나이로 일찍 떠났는데, 딸인 효혜공주도 똑같이 산후병으로 25세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5] 실록에서는 몽룡(夢龍)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김희의 아명이거나 초명일 것으로 보인다.[6] 중종실록 43권, 중종 16년 11월 11일 기미 1번째기사. #[7] 중종실록 52권, 중종 19년 11월 4일 갑자 1번째기사. #[8] 중종실록 70권, 중종 26년 4월 20일 갑술 3번째기사. #[9] 선옥은 태어나자마자 효혜공주가 죽어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문정왕후도 남동생 윤원로를 정계에서 축출하는데 동의했을테니, 그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이기도 한 윤백원과 자신의 의붓손녀인 선옥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10] 중종의 후궁 희빈 홍씨, 창빈 안씨 등은 명종 대까지 궁중에서 살았고, 문정왕후의 행장에서도 평상시에 왕자와 왕손들에게 두루 은전을 베풀었다고 쓰여있다.[11] 다만 김안로 부자와 달리 효혜공주는 어디까지나 친동생 인종을 지켜주기 위해서 가담한다. 비록 인종이 중종의 적장자에 세자였으나, 총애 받는 어머니가 살아있는 복성군과 알게 모르게 신경전을 펼치는데다 입지가 불안해서 김안로의 권세에 의지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