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8 01:21:17

유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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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764><colcolor=#fff> 대한민국 제12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유영익
柳永益 | Yu Yeong-ik
파일:유영익.png
출생 1936년 4월 9일
경상남도 진주시
사망 2023년 7월 26일 (향년 87세)
서울특별시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재임기간 제12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2013년 9월 30일 ~ 2015년 3월 29일
학력 서울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 / 문학사)
브랜다이스 대학교 인문사회대학 (서양지성사학 / 문학사)
하버드 대학교 인문대학원 (역사학·동아시아언어학 / 문학석사)
하버드 대학교 인문대학원 (역사학·동아시아언어학 / 문학박사)
경력 휴스턴 대학교 역사학과 조교수·부교수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
한림대학교 사학과 교수
스탠퍼드 대학교 역사학과 객원교수
한림대학교 부총장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한국학 석좌교수
한일역사공동연구촉진위원회 운영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한동대학교 국제개발협력대학원 석좌교수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제12대 / 박근혜 정부)
상훈 하성학술상 (1993)
제13회 성곡학술문화상 인문사회과학부문 (1998)
제3회 효령상 문화부문 (2000)
옥조근정훈장 (2001)
제2회 경암학술상 인문사회부문 (2006)

1. 개요2. 설명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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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역사학자이며, 제12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2. 설명

4.19세대로 본래 젊은 날에는 이승만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6.25전쟁을 겪는 중에 장성들이 군수물자를 빼돌리는 바람에 민방위군으로 징집된 국군 사병들이 대거 아사하거나 다치게 되는 국민방위군 사건을 보면서 이승만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서울대를 졸업하고 4.19혁명을 겪으면서 반(反)이승만의 입장을 더욱 확고하게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에 유학하면서 역사를 공부하던 중 우연히 하버드-옌칭 도서관에서 청년기 이승만이 저술한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읽고 그의 개혁사상과 국제정세에 대한 식견에 큰 감동을 받아 이승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박사학위 논문을 이승만에 관한 주제로 작성하는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승만이 박사학위를 받은 프린스턴 대학교를 방문해 학적부 등 주요 자료를 살펴보려고 했는데, 당시 한국에 있는 프란체스카 도너 여사의 동의 서명서를 받아야 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까지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갑오경장, 동학농민운동, 갑신정변 등에 대해서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 말에 이승만의 양자인 이인수로부터 이화장에 있는 10만 여 장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승만 및 한국근현대사 관련 사료를 기증받고 연구를 시작했는데 열악한 연구 여건과 비용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이건희 삼성 회장을 찾아가 50억원의 연구자금을 기부 받고, 최송옥이라는 한 독지가도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소재한 자신의 저택을 이승만 연구를 위해 써달라고 연세대에 기부하게 된다. 그래서 1997년 연세대학교에 현대한국학연구소가 설립되어 이 곳에서 연구를 수행했다. 2011년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이 연세대학교 현대한국학연구소에서 분리, 독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영익 교수의 연구 성과를 읽고 싶으면 『젊은 날의 이승만』부터 시작해 『이승만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 『건국대통령 이승만』, 『이승만 연구』 등의 저서들을 차례대로 올라가는게 좋다. 유영익의 저작들을 읽고 다시 정병준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의 『우남 이승만 연구』와 고정휴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의 『이승만과 한국독립운동』를 읽으면 한국 역사학계에서 논의되는 이승만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비판적인 평가에 대해 고루 알 수 있다.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 한림대학교 사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한동대학교 석좌교수 등을 역임하였다.[1]

2023년 7월 26일 이대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7세. #

3. 여담

한동대 석좌교수로 재임 중이던 2012년 2월 9일 당시 서울 정동제일감리교회에서 열린 ‘제12회 이승만 포럼’에서 강의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과 실정을 총체적으로 평한다면 적어도 ‘공7 과3’이고, 이승만의 독재는 불가피했다 혹은 필요악이었다라고 할 때는 그게 ‘공9, 공10’이 될 수도 있어요. 저는 이승만 대통령은 확신을 가지고 자기가 하는 일종의 권위주의적 통치가 불가피하고 오히려 한국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믿고서 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역사에 이승만만 한 인재는 거의 없지 않았는가. 이승만은 그 세종대왕 하고 거의 맞먹는 그런 유전자를 가졌던 인물 같아요", "정치학자들이 정직하게 후진국에서 독재라는 것에 대해 사실상 불가피한 것이 아닌가 하는 논의를 좀 해주기 바랍니다"라는 등의 발언을 한 사실이 보도되어 논란이 되었다.*

종교적으로 기독교(특히 개신교) 편향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1996년 8월에 한국논단에 기고한 '리승만 : 그는 누구인가 - 세목에 철저하며 거시적판단 구비한 업적자'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한성감옥에 갇혀 있을 때 기독교로 개종하고 동료 정치범 40여 명을 개종시켰다며 이를 "한국 개신교 선교 사상 획기적 사실"이라고 하는가 하면 "짐승과도 같은 저열한 상태에 빠진 한국민을 기독교를 통해 거듭나게 할 목적으로 신학 공부를 곁들여 했다"고 썼다. 2005년 3월 30일에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열린 제9회 '영익 기념강좌'에서는 '이승만과 한국의 기독교'를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이 전 대통령이) 6년 동안 감옥 생활 중에 성경을 공부하면서 깨달은 바가 컸다. 그것은 한국이 독립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한국 사람들의 도덕적 수준이 낮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2]


[1] 강만길 고려대 사학과 교수가 1980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제해임 당했을 때(1984년 복직) 그 빈자리를 메운 것이다.[2] 참고로 이 기사는 중국의 쑨원이나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에 비견될 만한 사상가로 한국엔 이승만이 있었다는 의미로 한 유영익의 발언 중 맥락을 무시하고 의도적으로 한국에서 인식이 좋지 않은 이토 히로부미 부분만 강조하여 기사 타이틀로 다는 등 상당히 의도적으로 작성되어 있다는 점에 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