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니온 92 베를린에 대한 내용은 블라우바이스 90 베를린 문서 참고하십시오.
1. FC 우니온 베를린의 2024-25 시즌에 대한 내용은 1. FC 우니온 베를린/2024-25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
2024-25 시즌 참가 구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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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리그 및 대표팀 보기 |
1. Fußballclub Union Berlin e. V. | |
1. FC 우니온 베를린 | 1. FC 우니온 베를린 나흐북스 |
1. FC 우니온 베를린 | |
1. FC Union Berlin | |
<colbgcolor=#d50017><colcolor=#fff> 정식 명칭 | 1. Fußballclub Union Berlin e. V. |
별칭 | Die Eisernen[1] |
창단 | 1966년 1월 20일([age(1966-01-20)]주년)[2][3] |
소속 리그 | 분데스리가 (Bundesliga) |
연고지 | 독일 베를린 트렙토-쾨페니크구[4] 쾨페니크 (Köpenick, Treptow-Köpenick, Berlin) |
홈구장 | 슈타디온 안 데어 알텐 푀르스테라이 (Stadion An der Alten Försterei) (22,012명 수용)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 (Olympiastadion Berlin)[5] (74,475명 수용) |
라이벌 | 헤르타 BSC - 베를린 더비 BFC 디나모 - 동베를린 더비 |
슬로건 | Eisern Union[6]강철 대오를 의미한다.] |
회장 | 디르크 칭글러 (Dirk Zingler) |
이사장 | 토마스 코흐 (Thomas Koch) |
단장 | 호르스트 헬트 (Horst Heldt) |
수석 스카우트 | 올리버 루네르트 (Oliver Ruhnert) |
감독 | 보 스벤손 (Bo Svensson) |
수석 코치 | 바바크 케이한파르 (Babak Keyhanfar) |
주장 | 크리스토퍼 트리멜 (Christopher Trimmel) |
부주장 | 라니 케디라 (Rani Khedira) |
역대 한국인 선수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정우영 (2024~ )[임대] |
공식 웹사이트 | |
팬 커뮤니티 | |
약칭 | FCU |
우승 기록 | |
3. 리가 (3부) (5회) | 1991-92, 1992-93, 1993-94, 2000-01, 2008-09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오스트 (4부) (1회) | 2005-06 |
VBB 축구 선수권 대회[8] (2회) | 1919-20, 1922-23 |
오버리가 베를린 (1부)[9] (1회) | 1947-48 |
DDR 리가 (2부) (9회) | 1965-66, 1969-70, 1973-74, 1974-75, 1975-76 1980-81, 1981-82, 1984-85, 1990-91 |
FDGB-포칼 (1회) | 1967-68 |
구단 기록 | |
최고 이적료 영입 | 로빈 고젠스 (Robin Gosens) (2023년, From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500만 €) |
최고 이적료 방출 | 타이워 아워니이 (Taiwo Awoniyi) (2022년, To 노팅엄 포레스트 FC, 2,060만 €) |
최다 출장 | 크리스토퍼 트리멜 (Christopher Trimmel) - 320경기 (2014- ) |
최다 득점 | 야체크 멘첼 (Jacek Mencel) - 66골 (1990-1994) |
[clearfix]
1. 개요
1.FC 우니온 베를린(1. FC Union Berlin)[10]은 독일 수도 베를린을 연고로 하는 독일의 분데스리가 소속 축구단이다.
현재 수많은 베를린 연고 축구단 중 헤르타 BSC가 서베를린을 대표한다면, 독일 통일 이후로는 이곳이 동베를린 대표격에 해당한다. 10년 넘게 승격도, 강등도 없이 중상위권을 지키고 있는 2부 리그의 터줏대감이었다가, 2018-19 시즌 3위를 차지, 1부 리그 16위 VfB 슈투트가르트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전에서 승리하여 창단 첫 1부 리그 승격에 성공했다. #
1부 리그에서도 돌풍을 이어가며 시즌마다 순위를 끌어올렸고 2021-22 시즌 최종 순위 5위를 기록해 유로파 리그 티켓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뒤이어 2022-23 시즌 초반이지만 리그 선두에 오르면서 분데스리가에 새 바람을 불러오고 있다.
2부 리그에 오랜 시간 있었지만 1부 구단이 18개뿐이고 절대적으로 구 서독 구단이 주도하고 있는 독일 축구에서 이렇게 성공적으로 구단세를 유지하고 있는 구 동독 구단은 우니온과 1. FC 마그데부르크, FC 한자 로스토크 정도다. RB 라이프치히는 통일 이후 대형 자본의 유입을 통해 사실상 새로 창단해서 예외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이제는 창단 최초로 1부 리그에 진출하여 잔류에 성공한 이후에는 2021-22 시즌에는 3티어 유럽 대항전인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플레이오프 참가권 획득 후 본선 조별 리그 진출, 2022-23 시즌에는 차상위 유럽 대항전인 UEFA 유로파 리그 본선 32강 조별 리그 진출, 그리고 2023-24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최상위 유럽 대항전인 UEFA 챔피언스 리그 본선 32강 조별 리그에 진출하면서 세 시즌 연속 유럽 대항전 본선에 출전했다.
2. 스쿼드
2.1. 1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1. FC 우니온 베를린 2024-25 시즌 스쿼드 | ||||
1 | 2 | 4 | 5 | 7 | |
프레데리크 뢰노우 Frederik Rønnow | GK 1992.08.04 2021~2026 | 케빈 포크트 Kevin Vogt | DF 1991.09.23 2024~2028 | 디오구 레이트 Diogo Leite | DF 1999.01.23 2022~2027 | 다닐료 두키 Danilho Doekhi | DF 1998.06.30 2022~2025 | 요르버 페르테선 Yorbe Vertessen | FW 2001.01.08 2024~2028 | |
8(VC) | 9 | 10 | 11 | 13 | |
라니 케디라 Rani Khedira | MF 1994.01.27 2021~ | 이반 프르타인 Ivan Prtajin | FW 1996.05.14 2024~ | 케빈 폴란트 Kevin Volland | FW 1992.07.30 2023~2026 | 정우영 Wooyeong Jeong[1] | MF 1999.09.20 2024~2025 | 언드라시 셰퍼 András Schäfer | MF 1999.04.13 2022~ | |
14 | 15 | 16 | 17 | 18 | |
레오폴트 크버펠트 Leopold Querfeld | DF 2003.12.20 2024~ | 톰 로테 Tom Rothe | DF 2004.10.29 2024~ | 베네딕트 홀러바흐 Benedict Hollerbach | FW 2001.05.17 2024~ | 조르당 시바체우 Jordan Siebatcheu | FW 1996.04.26 2022~ | 요시프 유라노비치 Josip Juranović | DF 1995.08.16 2023~2027 | |
19 | 20 | 21 | 23 | 24 | |
야니크 하버러 Janik Haberer | MF 1994.04.02 2022~2025 | 라슬로 베네시 László Bénes | MF 1997.09.09 2024~ | 팀 스카르케 Tim Skarke | MF 1996.09.07 2022~ | 안드레이 일리치 Andrej Ilić[2] | FW 2000.04.03 2024~ | 로베르트 스코우 Robert Skov | MF 1996.05.20 2024~ | |
25 | 26 | 28(C) | 29 | 36 | |
카를 클라우스 Carl Klaus | GK 1994.01.16 2024~ | 제롬 루시용 Jérôme Roussillon | DF 1993.01.06 2023~ | 크리스토퍼 트리멜 Christopher Trimmel | DF 1987.02.24 2014~2024 | 뤼카 투자르 Lucas Tousart | MF 1997.04.29 2023~ | 알료샤 켐라인 Aljoscha Kemlein | MF 2004.08.02 2023~ | |
37 | 39 | 41 | 45 | ||
알렉산더 슈볼로 Alexander Schwolow | GK 1992.06.02 2023~ | 야니크 슈타인 Yannic Stein | GK 2004.09.17 2023~ | 올루와슨 오그베무디아 Oluwaseun Ogbemudia | DF 2006.07.18 2024~ | 다비트 프레우 David Preu | FW 2004.10.26 2024~ |
1. FC 우니온 베를린 2024-25 시즌 임대 선수 | |||||
<rowcolor=#373a3c> 번호 | 포지션 | 국적 | 한글 성명 | 로마자 성명 | 비고 |
1 | GK | 레나르트 그릴 | Lennart Grill |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 |
29 | FW | 리반 뷔르쿠 | Livan Burcu | 1. FC 마그데부르크 | |
20 | MF | 알렉스 크랄 | Alex Král | RCD 에스파뇰 | |
9 | FW | 크리스 베디아 | Chris Bedia | 헐 시티 AFC | |
3 | DF | 파울 예켈 | Paul Jaeckel |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 |
21 | DF | 로빈 고젠스 | Robin Gosens | ACF 피오렌티나 | |
<colbgcolor=#d50017> 구단 정보 | |||||
감독: 보 스벤손 / 홈구장: 슈타디온 안 데어 알텐 푀르스테라이 | |||||
출처: 1. FC 우니온 베를린 공식 웹사이트, 분데스리가 공식 웹사이트 / 최종 수정 일자: 2024년 9월 9일 |
[1] VfB 슈투트가르트에서 임대[2] LOSC 릴에서 임대
}}}}}}}}} ||
3. 역사
FC 올림피아 06 오베쇠네바이데 로고 |
1906년 FC 올림피아 06 오베쇠네바이데(FC Olympia 06 Oberschöneweide)라는 이름으로 창단 된뒤 1부 리그에서 잘나가다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연합국이 축구단을 해산시켜서 해산되었다.
3.1. 동독 시절
1946년 SG 오버쇠네바이데(SG Oberschöneweide)라는 이름으로 다시 창단되었다. 그리고 1949-50 시즌 하네 조베크 감독과 함께 오버리가 베를린에서 2위를 기록하며 전국대회 참가자격을 부여받게 되지만 냉전 시대의 동독 지역 클럽이 전국 대회에 나가는 걸 소련이 거부했고 하네 조베크이 대부분의 선수, 코치진을 데리고 서쪽으로 도주해 SC 우니온 06 베를린이라는 이름의 클럽을 창단해버렸고 오버쇠네바이데는 그대로 동독에 남았지만 주축 선수를 모두 잃어 초약체가 되었다.[11] 하지만 동독 정치가들은 DDR 오버리가에 동베를린팀은 2팀이 있어야 한다며 강등을 누락시켜 1부 리그에 남아 있었다.그러다 1960년대에 동독 축구협회에서 축구 수준을 상승시킨다는 이유로 모든 스포츠 클럽에서 축구부를 독립된 구단으로 전환시키고 거기에 축구팀을 기업이 후원하는 형태로 바꿔야 한다는 명령을 내리며 우니온은 그러한 형태중 하나인 (BSG)[12]로 강제로 재창단되었다.[13] BSG 모터 오버쇠네바이데(BSG Motor Oberschöneweide), SC 모터 베를린, TSC 오버쇠네바이데 등 수많은 명칭변경을 거쳤고, 잦은 재창단을 겪다보니 자연스럽게 팬층은 얕아졌고, 같은 동베를린을 연고로 하던 BFC 디나모와 ASK 포어베르츠 베를린으로 선수들이 떠나가 자연스레 2부 리그로 강등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최종적으로 1966년에 현재의 이름인 1. FC 우니온 베를린으로 클럽명을 정하고 창단되었다.[14]
1965-66시즌 창단과 동시에 2부 리그에서 우승하며 다시 오버리가로 승격했다. 하지만 1부 리그에 베를린 클럽은 2개만 있어야 한다는 동독 권력층의 반발이 있었고 위기를 맞았다. 다행히도 자유독일노동조합연맹 회장 헤르베르트 바른케가 노동자를 대표하는 클럽을 만들것을 요구하며 1부 리그에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부 리그에서의 첫 시즌 생각 외로 선전하며 6위를 달성해, UEFA 인터토토컵에 진출하며 클럽 역사상 최초로 유럽 대항전에 진출했다. 거기다 1968년에는 FC 카를 차이스 예나를 상대로 승리하며 FDGB-포칼 우승까지 달성했다. 하지만 프라하의 봄 이후 유럽 동구권 클럽들이 유럽 대항전 진출권을 박탈당하며 UEFA 컵위너스컵에 참가하지 못했고, 리그에서도 성적이 저조해지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며 슈타지와 군대간 권력싸움에서 슈타지가 이겼다. 따라서 군대에서 후원하던 ASK 포어베르츠 베를린이 연고지가 프랑크푸르트로 옮겨졌고, 베를린 연고팀은 BFC 디나모와 우니온 두팀만 남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3개로 분리되어있던 베를린의 유소년 훈련장중 다수가 BFC 디나모에게 돌아갔고, 우니온은 더욱 성적이 저조해져 강등까지 당하게 된다. 그러다 1976-77시즌 승격과 동시에 하인츠 베르너 감독을 선임했고, 4만5천명의 관중앞에서 BFC 디나모를 1대0으로 잡아냈고, 이후 2차전에서도 1대0으로 잡아냈다. 그러자 당시 슈타지를 싫어하던 사람들이 우니온 팬층으로 몰렸고, 평균 17,308명이 경기마다 찾아왔다.[15] 이렇게 정부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우니온으로 몰리자 슈타지의 특별 관찰을 받게 된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인지 그렇게 많은 팬들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1979-80 시즌 강등되었다. 그리고 다시는 BFC 디나모를 이겨보지 못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도 승격과 강등을 반복하다 1985-86 시즌 오버리가에서 7위를 달성, UEFA 인터토토컵에 다시 진출했고 FDGB-포칼에서 FC 마그데부르크, SG 디나모 드레스덴같은 팀들을 누르고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승전에서 1. FC 로코모티베 라이프치히에게 5:1로 패했다. 그리고 다음시즌 인터토토컵에서 FC 바이어 05 위어딩겐, FC 로잔 스포르, 스탕다르 리에주와 한 조가되어 조 1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하지만 리그에선 다시 강등권 경쟁을 했고 1988-89 시즌 6번째 2부 리그 강등을 하게 된다. 그런데 강등된 지 얼마 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3.2. 독일 재통일 이후
1990년 독일이 통일된 뒤 3부 리그인 NOFV-오버리가로 배정된 우니온은 다른 동독 출신 클럽들이 그랬듯 재정적 위기로 인해 라이선스를 따지 못해서 1993년과 1994년에 3부 리그 우승을 했지만 상위 리그로의 승격이 거부되고 만다. 하지만 계속된 노력끝에 불가리아의 축구감독 게오르기 바실리에프(Georgi Vasilev)휘하에서 2000-01 시즌 새롭게 3부 리그로 바뀐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에서 우승해 2부 리그로 승격했고, 그시즌 포칼 결승까지 올라가며 베를린의 No.2 클럽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결과는 아쉽게도 FC 샬케 04의 2:0 승리. 하지만 당시 분데스리가의 유럽대항전 진출에 관한 규정에 의거하여[16] 포칼 우승팀 샬케 대신 UEFA 컵(현 UEFA 유로파 리그)에 나가게 되면서 오랜만에 유럽대항전 무대를 밟았다.[17] 우니온 베를린은 2001-02 시즌 UEFA 컵 본선 1라운드에서 핀란드 베이카우스리가 소속의 FC 하카를 상대로 홈에서 비기고 원정에서 3:1로 이기며 2라운드에 진출했으나, 이후에 만난 헝가리 넴제티 버이녹샤그 I 소속 리텍스 로베치[18]와의 홈 경기에서 2-0으로 패배하고 원정 경기에서 0-0 스코어로 비기면서 탈락했다. 2002-03 시즌부터는 유럽대항전에 나가지 않은 채 계속 2.분데스리가 경기만 치르고 있다가 2004-05 시즌에 2부 리그에서 강등되었고, 2005-06 시즌엔 4부 리그까지 강등되었지만 바로 우승하고 2008-09시즌 3. 리가의 창립멤버에 포함, 3. 리가에서 우승한 뒤 이후 2018-19시즌까지 10시즌간 2.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다.3.3. 2018-19 시즌
주전 센터백이었던 토니 라이스트너를 떠나보냈다.33라운드까지 치르면서 3위는 확정을 지었고 2위 파더보른과 승점 1점차가 나면서 다이렉트 승격의 기회가 있었다. 마지막 38라운드에서 파더보른이 드레스덴에게 3대 1로 완패를 했음에도 우니온은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골 득실 차로 2위 등극에 실패했고 결국 분데스리가 16위 VfB 슈투트가르트와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다.
3.4. 2019-20 시즌
공식 하이라이트 |
자세한 내용은 1. FC 우니온 베를린/2019-20 시즌 문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
- 분데스리가: 11위
- DFB-포칼: 8강 VS 바이어 04 레버쿠젠
3.5. 2020-21 시즌
선수단과 팬들이 함께한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진출 기념 세리머니 |
자세한 내용은 1. FC 우니온 베를린/2020-21 시즌 문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
- 분데스리가: 7위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진출)
- DFB-포칼: 32강
3.6. 2021-22 시즌
겨울 이적 시장에서 팀의 큰 주춧돌이었던 막스 크루제가 VfL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했다.2021/22 시즌 승점 57점 5위로 구단 사상 최초로 유로파 리그에 진출하였다. 다만 무척 아쉽게도 딱 1점 차인 승점 57점으로 58점인 RB 라이프치히에게 밀려 4위를 아쉽게 놓쳐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날려 버렸다.
3.7. 2022-23 시즌
자세한 내용은 1. FC 우니온 베를린/2022-23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3.8. 2023-24 시즌
자세한 내용은 1. FC 우니온 베를린/2023-24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3.9. 2024-25 시즌
자세한 내용은 1. FC 우니온 베를린/2024-25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3.10. 요약
- 1부/분데스리가: 2019- (6시즌)
4. 팬 문화
4.1. 서포터즈
우니온의 서포터즈는 노동자들이 많은데 이는 우니온의 연고지인 쾨페니크의 오버쇠네바이데가 19세기 말 산업혁명으로 크게 성장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동독시절에는 반사회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들의 주된 모토는 "슈타지의 돼지가 되는 것보다 패자가 되는 것이 더 낫다" 였다. 통일후에는 여러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모였고, 성향차이에도 불구하고 강한 유대감을 가진 팬클럽으로 유명하다.
현재 구장인 슈타디온 안 데어 알텐 푀르스테라이의 2008년 6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약 13개월 가량의 리노베이션 기간동안 구단의 서포터들이 무보수로 함께 경기장 신축에 참여하기도 했다.#
4.2. 응원가
4.2.1. Eisern Union
1. FC 우니온 베를린 공식 응원가 Eisern Union |
알테 푀르스테라이에서의 응원 |
Eisern Union |
'강철의 우니온'이라는 뜻으로, 독일의 뉴 웨이브 가수 니나 하겐[21]이 1998년에 부른 응원가다.
4.2.2. Dem Morgengrauen entgegen
Dem Morgengrauen entgegen Dem Morgengrauen entgegen, ziehn wir gegen den Wind. |
4.3. 라이벌
- BFC 디나모 - 동독 시절 같은 동베를린을 연고로 하던 BFC 디나모와 라이벌리가 있었다. 이 디나모가 슈타지의 지원을 받으며 자연스레 우니온의 수준급 선수들을 강제로 데려갔고 그대신 BFC에서 뛰다 전성기가 지난 선수들을 받았다. 일련의 일들이 이어지자 디나모 베를린에 대한 반감이 심해졌고 우니온은 반체제 클럽으로 비춰졌다. 통일 이후 BFC 디나모는 동독 시절 대놓고 정부지원을 받았던 과거가 흑역사가 되어 통일 이후 팬 베이스를 잃고 낙오된 반면, 디나모의 조작에 반대하며 정치색이 훨씬 옅은 노동자의 팀이었던 우니온은 디나모 등 다른 동베를린 팀의 서포터들을 흡수, 성공적으로 동베를린의 메인 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동독시절부터 동베를린의 팬수는 디나모보다 우니온이 더 많았다. 2022년에는 4부 리그 팀이다 보니 만날 일도 그리 없다.
- SC 우니온 06 베를린 - 과거 우니온 오버쇠네바이데에서 코칭스태프와 주축 선수단을 데리고 떨어져 나간 클럽. 1990년 합병논의도 나왔으나 팬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이후 1995년 자신들이 우니온 오버쇠네바이데의 계승 클럽이니 슈타디온 안 데어 알텐 푀르스테라이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다 거부 당했고 이후 갈등이 생겼다. 하지만 디나모보다 더한 7~8부 리그나 왔다갔다하는 하부 리그 팀이라 만날 일은 없어 보인다.
5. 마스코트
이름 | 리터 코일레 Ritter Keule |
출생 | 2000년 12월 20일 ([age(2000-12-20)]세) |
베를린-불하이데 (Berlin-Wuhlheide) | |
신체 | 235cm, 115kg |
웹사이트 | | |
6. 유명 선수
- 마르코 레머
- 네벤 수보티치
- 막스 크루제
- 크리스티안 겐트너
- 펠릭스 크로스
- 토르스텐 마투슈카
- 로베르트 후트(과거 우니온 유스 소속)
- 미하엘 파렌센
- 라파우 기키에비츠
- 세바스티안 안데르손
- 외르크 하인리히
- 슈테펜 바움가르트
- 지몬 테로데
- 토니 라이스트너
- 스티븐 스크십스키
- 제바스티안 폴터
- 우치다 아쓰토
- 파트리크 콜만
- 크리스토프 멘츠
- 크리스토퍼 크비링
- 레오나르도 보누치
- 요시프 유라노비치
- 정우영
7. 여담
- 독일의 프로 축구단 중에서 골송이 없는 얼마 안되는 구단 중 하나이며 분데스리가 1부리그 구단 중에서는 유일하다.
[1] 영어로 The Iron Ones[2] #[3] 1906년 6월 17일에 구단의 전신인 FC 우니온 오버쇠네바이데가 창단[4] 베를린을 구성하는 12개 자치구 중 한곳으로 구 동독 지역에 해당된다.[5] 2023-24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한정.[6] 독일어로[임대] [8]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이 리그에서 우승한뒤 다른 지역 리그에서 우승한 팀과 붙는 방식이었다.[9]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이 리그에서 우승한뒤 다른 지역 리그에서 우승한 팀과 붙는 방식이었다.[10] 에르스테 에프체 우니온 베를린이라고 읽는다.[11]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고 서베를린으로 도주한 SC 우니온 06 베를린은 서베를린에 고립되어 오늘날에는 8~10부 리그 언저리에 머무는 초약체가 되어버렸다.[12] 어떤 기업이 후원하는 형태의 구단[13] 이전까지 팀의 상징색은 파랑+하양이었으나 이때부터 현재의 빨강 하양으로 바뀌었다.[14] 그 와중에 전통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우니온 오버쇠네바이데를 유지하려 했으나 계속해서 선수들이 우니온으로 강제 이적 당하며 1972년 끝내 해산되었다.[15] 이는 SG 디나모 드레스덴에 이은 2번째로 많은 수다.[16] 당시 분데스리가에서는 차기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본선 32강 조별리그 참가 조건을 충족하는 리그 1~2위 팀과 3차 예선 참가 자격을 충족하는 3~4위팀, 그리고 해당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5위 이하 성적을 거두었어도 같은 시즌에 참가한 챔스에서 우승한 팀이 DFB-포칼에서도 우승한다면 해당 팀은 차기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참여하는 대신 포칼 우승팀에게 부여된 UEFA 컵 본선 1라운드 참여권을 포칼 준우승 팀에게 양도하는 규정이 있었다. 따라서 2000-01 시즌 분데스리가를 2위로 마무리한 샬케의 경우, 차기 시즌 챔스 본선 참여를 완전히 확정한 상태에서 해당 시즌에 치러진 포칼도 우승했기 때문에 해당 시즌 포칼 준우승팀이자 원래 유럽 대항전에 못 나가는 우니온 베를린이 대신 UEFA 컵 본선 1라운드에 나가게 된 것. 참고로 현재는 DFB-포칼에서 우승한 팀은 UEFA 유로파 리그 본선 32강 조별리그에 진출하는게 원칙이지만 해당 팀이 챔스와 유로파리그 및 컨퍼런스 리그 진출이 가능한 분데스리가 1~6위를 확보할 경우, 그 팀은 리그 순위에 따라 챔스나 유로파리그 본선 조별리그로 진출하는 대신에 리그 7위 팀이 UEFA 컨퍼런스 리그 4차 예선에 진출한다. 그리고 2000-01 시즌 당시 샬케의 최종 순위가 2위가 된 이유는 분데스리가 최종전 역사상 제일 극적인 경기의 결과로 인해 뮌헨과의 승점차에서 밀려 순위가 추락했기 때문.[17] 또한, 당시 우니온 베를린은 클럽 역사상 최초로 UEFA가 정식으로 주관하는 유럽대항전 본선에 진출한 동시에 조별리그부터 1위와 2위 결승전이 있는 대회에 최초로 참여하게 되었다. 과거 동독 시절에 우니온이 출전했던 인터토토컵(당시 인터내셔널 풋폴 컵)은 UEFA가 주관하는 대회가 아니었다. 그리고 1967년부터 1994년까지 인터토토컵에 참여한 팀들은 조별리그만 치르면 해당 대회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이 시기에 참여한 우니온 베를린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이들은 1967년 대회에서 B7조 3위, 1986년 대회에서 2조 1위를 차지했다. 해당 특징은 UEFA이후에도 이어져서 1995년부터 2005년까지는 대회 준결승 승자 2~3팀이 UEFA컵 본선 1라운드 진출권을 얻는 동시에 해당 시즌에 열린 대회의 승자가 되는 구조였으며, 2006년부터 2008년까지는 3번의 라운드에서 공동 우승한 11개 팀이 UEFA 컵 2차 예선에 진출한 뒤 거기서 제일 좋은 성적을 낸 클럽이 해당 시즌 인터토토컵의 최종 우승팀이 되는 형식이었다. 즉, 조별리그부터 시작해서 토너먼트 단계를 겨쳐 1개 우승팀만 뽑는 결승전이 한 대회 안에서 다 치러지는 일반적인 유럽대항전은 2001-02 시즌 UEFA 컵 때가 처음인 셈.[18] 이후 2015-16 시즌에 강등되어 2016-17시즌부터는 헝가리 2부 리그인 넴제티 버이녹샤그 II에서 뛰고 있다.[19] 나머지 네 팀은 SG 디나모 드레스덴, FC 한자 로스토크, VfB 라이프치히, FC 에네르기 코트부스이다.[20] 나머지 5팀은 FC 바이어 05 위어딩엔, 1. FC 자르브뤼켄, 슈투트가르트 키커스, 1. FC 뉘른베르크,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이다.[21] 동베를린에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