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FC 우니온 베를린 1. FC Union Berlin | 헤르타 BSC Hertha BSC |
베를린 더비 (Berliner Stadtderby) |
종합전적 총 경기 수 - 13경기[1] (2023년 1월 28일 기준) | ||
1. FC 우니온 베를린 1. FC Union Berlin | 무승부 | 헤르타 BSC Hertha BSC |
7[2] | 3[3] | 3[4] |
1. 개요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을 연고지로 하는 클럽들간의 경기를 칭하는 말. 현재는 분데스리가에 소속된 헤르타 BSC과 1. FC 우니온 베를린의 경기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2. 역사
2.1. 서베를린
서베를린에는 독일 어느 도시보다 많은 축구단이 있었음에도 도시가 독일 분단의 여파로 동독 지역에 고립되어 있었기에 1부리그 분데스리가에서 베를린 구단을 보기는 힘들었다. 당시 서베를린에서 가장 큰 클럽은 헤르타 BSC와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이었는데, 주로 2. 분데스리가에서 마주쳤으며 이 두팀사이에는 치열한 경쟁이 있었고, 자연스레 라이벌리로 진화했다. 동시에 두팀의 합병 제안도 꾸준히 나왔는데 그때마다 부결되었다.
이 라이벌리는 80년대 들어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이 3부리그로 강등당하며 보기 어려워졌다. 1985-86시즌 2. 분데스리가에선 블라우바이스 90 베를린,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 헤르타 BSC 세팀이 동시에 속하기도 했다.
중간중간 블라우바이스 90 베를린, SV 타스마니아 베를린, SCC 베를린, 헤르타 첼렌도르프, 슈판다우어 SV, 바커 04 베를린이 승격하며 색다른 베를린 더비가 치러지기도 했다.
2.2. 동베를린
FC 포어베르츠 베를린 FC Vorwärts Berlin | BFC 디나모 BFC Dynamo | 1. FC 우니온 베를린 1. FC Union Berlin |
한편 동베를린은 서베를린과는 달리 고립돼 있는 것도 아니었고, 스포츠를 선전 수단으로 삼아 대우가 좋은 공산국가 영향권이었다 보니 동독의 중앙에서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군경클럽으로 창단되어 원래는 라이프치히를 연고로 하다 베를린으로 옮긴 포어베르츠 베를린, 동독 중앙의 지원을 받던 SG 디나모 드레스덴[5] 1군 선수단이 베를린으로 옮겨져 창단된 BFC 디나모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노동자들의 클럽이었던 1. FC 우니온 베를린은 이런 중앙의 지원과는 거리가 먼 팀이었고[6], 오히려 영세한 클럽 규모 상 뒷배가 있던 BFC 디나모에게 주요 전력을 거의 털리다시피하고 하위권에 떨어지는 바람에 서포터 및 구단이 정부에 반감을 품는 상황이었다. 현재 포어베르츠와 BFC 디나모는 몰락했고, 분데스리가는 물론 유럽 대항전 출전권까지 따냄으로써 서포터의 규모뿐 아니라 성적까지도 서베를린의 헤르타 BSC마저 제치며[7] 동베를린을 대표하는 팀이 1. FC 우니온 베를린인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과거다.
동베를린의 축구팀 중 가장 처음 전성기를 맞았던 클럽은 60년대의 FC 포어베르츠 베를린이었다. 하지만 1971년 동독 슈타지 회장 에리히 밀케가 디나모 베를린을 지원하며 연고지가 강제로 프랑크푸르트안데어오데르로 옮겨졌고, 이후 해체되고 말았다. 이후 BFC 디나모와 우니온 베를린만 남은 상태에서 디나모는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으며, 그렇지 못했던 우니온 베를린은 점점 반정부적인 성향을 띄게 된다. 동독 치하에서 서포터는 우니온이 더욱 많았으나, 정부의 지원이라는 격차를 이기지 못하고 디나모 베를린은 10연속 리그 우승을 했던 반면 우니온 베를린은 계속해서 하위권에 머물렀다.
2.3. 통일 이후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 1월 27일 헤르타 BSC가 1. FC 우니온 베를린에게 친선경기를 제안했다.[8] 이는 당연히 받아들여졌고,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에서 5만1270여명의 동서독 관중들이 함께 경기를 관람했다. 경기는 헤르타의 악셀 크루제의 선제골, 우니온 안드레 지록스의 동점골로 1대1의 상황에서 디르크 그라이저의 중거리골이 터지며 헤르타가 2대1로 승리했다.통일이후 1. FC 우니온 베를린은 3부리그였던 NOFV-오버리가로 배정되어 승격을 노리는 팀이 되었고, BFC 디나모는 구단의 주축선수들이 모두 서독 클럽으로 이적하며 다시는 상부리그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과거 서독 클럽이었던 헤르타 BSC와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은 통일이후 살아나기 시작했다. 헤르타는 분데스리가 승격에 성공했고, TeBe는 괴팅거 그루페(Göttinger Gruppe)라는 투자회사의 후원으로 2부리그 승격에 성공했다. 1998년 DFB 포칼에서 두팀이 만났는데, TeBe가 헤르타를 4대2로 꺾는 이변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은 이후 투자회사가 재정난으로 휘청이며 다시 강등당해 한때 6부리그까지 강등당한다.
그사이 1. FC 우니온 베를린도 4부리그까지 강등된 상태였다가 2008-09시즌 3. 리가 창설멤버에 포함, 우승을 거머쥐고 2. 분데스리가로 승격했다. 그리고 얼마뒤 슈타디온 안 데어 알텐 푀르스테라이 리노베이션 기념으로 헤르타와 함께 친선경기를 벌이게 된다. 그러나 이때부터 헤르타와의 라이벌리가 불타기 시작한다. 헤르타의 서포터 겸 라디오 해설가였던 만프레트 장겔이 "경기장 아나운서가 우리와 우리 선수 중 한 명을 향해 계속 시비를 걸었다"라고 말했고 이에 우니온의 회장인 디르크 칭글러가 "사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라고 표현했다.
다음시즌인 2009-10시즌 헤르타 BSC가 분데스리가에서 강등당하며 정말 오랜만에 정식으로 베를린더비가 성사되었다. 우니온 홈에서 열린 경기는 1대1 무승부, 헤르타의 홈에서 열린 경기는 토르스텐 마투슈카의 결승골로 2대1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 시즌 헤르타가 승격에 실패하며 다음시즌도 만나게 되었다. 이때즈음부터 두 구단사이의 관계가 금이가기 시작했다. 2010-11시즌 우니온의 홈에서 열린 경기에서 헤르타가 2대1로 승리했는데, 경기후 인터뷰에서 당시 우니온 선수였던 크리스토퍼 크비링이 "Wessis들[9]이 우리 경기장에서 응원하고있다. 이것은 토가나오게 만든다. 저놈들이 응원할때마다 나를 아프게 만든다"라는 인터뷰를 남겼고, 여기에 당시 우니온 감독이었던 우베 노이하우스는 "훌륭한 우니온 선수다"라고 덧붙였다. 이 시즌이 끝나고 헤르타가 다시 분데스리가로 승격하며 한동안 보기 힘들어졌다. 2012-13시즌 또 헤르타가 강등당하며 다시 성사되었다. 이때는 우니온 1승과 무승부로 끝났다.
2018-19시즌이 끝나고 우니온이 분데스리가로 승격하는데 성공하며 다시 베를린더비가 성사되었다. 2018-19시즌 10라운드에서 치러진 베를린더비는 우니온의 홈에서 치러졌는데,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헤르타 울트라스들이 우니온 팬석을 향해 조명탄을 날렸고, 후반전 중간에도 양팀 팬석에서 조명탄이 넘나들며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다. 경기는 제바스티안 폴터의 PK골로 우니온의 1 대 0 승리. 27라운드 헤르타의 홈에서 치러진 경기에서는 4 대 0으로 헤르타가 크게 이겼다. 하지만 이때는 코로나로 인해 경기장에 팬들이 들어오지 못해 큰 충돌은 없었다. 헤르타의 홈에서 치러진 2020-21 시즌 분데스리가 10라운드 경기는 우니온의 로베르트 안드리히의 퇴장으로 인한 우니온의 악조건에서 헤르타의 3 대 1 승리로 끝났다. 2021년 4월 5일 치러진 시즌 두 번째 더비는 1:1 무승부.
한편 UEFA 주관대회의 입장인원 하한 제한으로 인해 2021-22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에 참가하는 우니온 베를린은 해당 대회에서 원래 홈구장인 슈타디온 안 데어 알텐 푀르스테라이 대신 헤르타의 홈경기장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을 사용하게 됐다.
2022-23 시즌으로 헤르타가 강등을 하게 되면서 당분간 더비 매치가 중단되었다.
[1] 친선 경기 제외, 친선 경기 포함 시 26경기[2] 친선 경기 제외, 친선 경기 포함 시 12승[3] 친선 경기 제외, 친선 경기 포함 시 4무[4] 친선 경기 제외, 친선 경기 포함 시 10승[5] 애초에 동구권 클럽 중 '디나모' 가 붙는 팀들은 내무성이나 국가 안전 위원회 기구의 구성원이 지원하기 때문에 사실상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았던 팀들이라고 해석하면 된다.[6] 구단이 강등 및 해체 위기를 맞을 때 노조위원장 겸 국회의원 헤르베르트 와른케의 지원으로 이를 면했던 적은 있다.[7] 2020-21 시즌 분데스리가 종료 이후 우니온 7위(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플레이오프 진출), 헤르타 14위, 2021-22 시즌 분데스리가 종료 이후 우니온 5위(UEFA 유로파 리그 본선 32강 조별리그 진출), 헤르타 16위(승강 플레이오프행, 이후 2.분데스리가 3위를 차지한 함부르크 SV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합계 2-1로 승리하고 분데스리가 잔류), 2022-23 시즌 종료 이후 우니온은 4위(UEFA 챔피언스 리그 본선 32강 조별리그 진출), 헤르타는 꼴지인 18위(강등), 우니온이 1부로 승격한 이후 헤르타에게 최종 성적이 밀린 시즌은 승격 후 첫 시즌인 2019-20 시즌이 유일하다.(우니온 11위, 헤르타 10위)[8] 과거 분단시절부터 헤르타와 우니온의 서포터즈는 각별한 사이였으며, 헤르타가 동독이나 동구권 구단과 경기할때 함께 응원하기도 했다. "Herta und Union – eine Nation"이라는 슬로건도 있었을 정도.[9] 서독 사람들을 비하하는 용어. 여기서는 헤르타 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