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5 21:56:02

4분 챔피언


1. 개요2. 배경3. 경기 전개
3.1. 정규 시간3.2. 94분: 대반전
4. 여파5. 유사 사례

1. 개요



Vier Minuten Meister

분데스리가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했던 최종전.

2. 배경

분데스리가의 전통적인 강호였던 FC 샬케 04는 이상하게 우승 운이 없는 팀이었다.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과 함께 대표적인 분데스리가의 콩라인으로 유명했다.[1]

2000-01 시즌 샬케는 FC 바이에른 뮌헨과 우승경쟁을 하고 있었고, 최종전을 앞두고도 우승자가 결정되지 않았다. 32라운드까지는 샬케와 바이에른이 같은 승점 59점이나, 골득실에서는 샬케가 앞서고 있었다. 그런데, 33라운드에서 샬케는 슈투트가르트에게 후반 추가시간에 골을 허용하며 0:1로 지고[2] 바이에른이 카이저슬라우테른을 2:1로 후반 추가시간에 극적으로 이기면서, 바이에른이 앞서 나갔다. 최종전인 34라운드를 앞둔 상황[3]에서 두 팀의 순위표는 다음과 같다.
순위 경기수 승점
1 FC 바이에른 뮌헨 33 19 5 9 62 61 36 +25
2 FC 샬케 04 33 17 8 8 59 60 32 +28
득실차에서는 샬케가 앞서고 있었지만 바이에른이 승점이 3점 앞서고 있었다. 바이에른이 최종전에서 승리하거나 무승부만 기록하더라도 자력으로 우승을 결정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최종전에서 바이에른이 패배하고 샬케가 이긴다면 득실차에서 앞서는 샬케가 우승을 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최종전 결과에 마이스터샬레의 행방이 걸려 있던 상황에서 2001년 5월 19일, 바이에른은 함부르크 SV를, 샬케는 SpVgg 운터하힝을 상대하게 된다.[4]

3. 경기 전개

3.1. 정규 시간

두 경기는 같은 시간에 동시에 진행되었고 샬케는 운터하힝에게 경기 초반 두골을 허용하며 불안하게 시작했지만 치열한 공방전 끝에 5:3 승리를 거둔다. 이에 반해 바이에른은 함부르크 원정에서 올리버 칸의 환상적인 선방으로 경기를 0대0으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바이에른과 함부르크의 경기 도중 칸에게 쏟아진 바나나 껍질을 치우느라 경기가 잠시 지연되었고 그 결과 샬케의 경기가 끝났을 때에는 바이에른의 경기는 5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경기종료를 앞둔 후반 45분 함부르크의 세르게이 바르바레즈가 올리버 칸을 뚫고 헤딩 선제골을 성공했다. 이 소식은 막 경기를 마친 샬케의 홈구장 파르크슈타디온에도 전해졌다. 샬케의 선수들과 팬은 우승을 확신했고 경기장을 가득 채운 팬들이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샬케는 그들이 1958년 이후 처음으로 챔피언이 된 것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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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94분: 대반전

그 시각, 중간에 지연된 시간 때문에 바이에른과 함부르크의 경기는 아직 추가시간이 진행되고 있었고 마지막 공격 상황에서 슈테판 에펜베르크파울로 세르지우에게 패스한 것을 수비수 토마시 위팔루시가 끊어내어 골키퍼 마티아스 쇼버[5]에게 패스했다. 그런데 이 공을 골키퍼가 잡았다. 페널티 박스 안에서 간접 프리킥이 선언되었다. 바이에른의 마지막 찬스에서 슈테판 에펜베르크파트리크 안데르손이 프리킥을 준비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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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주심의 프리킥 휘슬이 울린 후, 에펜베르크가 찬 공을 받은 파트리크 안데르손은 강력한 슈팅을 때렸다. 그리고 안데르손의 슈팅으로 날아간 공이 함부르크의 골대를 가르면서 바이에른은 동점을 만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골 이전에 안데르손은 커리어에서 한번도 프리킥 골을 넣은 적이 없었다. 물론 박스 안쪽 간접 프리킥이라 실질적으로는 프리킥보다는 일반적인 슛 찬스랑 다름없긴 했지만, 어찌되었건 그야말로 안데르손의 인생경기로 평가할 수도 있는 정말 드라마틱한 골이었다. 이후 양 팀이 추가 득점을 넣지 못 한 채로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 버렸다. 따라서 경기가 끝난 이후에 마이스터샬레는 바이에른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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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사실은 전광판으로 보고 있던 샬케 팬들은 43년만의 우승을 놓쳤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야말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간 바이에른 뮌헨과 거꾸로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샬케의 운명이 뒤바뀌게 되었다. 8분 챔피언
2000/2001 분데스리가 최종 순위표
순위 경기수 승점
1 FC 바이에른 뮌헨 34 19 6 9 63 62 37 +25
2 FC 샬케 04 34 18 8 8 62 65 35 +30

4. 여파

FC 바이에른 뮌헨은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마이스터샬레를 들어올린 지 7일만에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발렌시아 CF와 맞붙게 되었다. 이때 올리버 칸이 승부차기에서 대활약을 펼친 덕분에 극적으로 빅이어를 들어올리면서 2000-01시즌을 더블로 마무리했다.

이에 반해 FC 샬케 04는 4분만에 우승을 빼앗겼고 "4분 챔피언", "마음의 챔피언"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이후에도 준우승을 무려 네번이나 더 기록하며 분데스리가의 명실상부한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바이에른의 우승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간접 프리킥을 선언한 마르쿠스 메르크 주심은 샬케의 분풀이 대상이 되어 펠틴스 아레나를 밟지 못했다. 다만 판정 자체는 잘못되지 않았다.[7] 그나마 2000-01 시즌 분데스리가가 끝나고 일주일 뒤에 열린 DFB-포칼 결승전에서 과거 동베를린 지역을 연고로 하는 팀이자 당시 3부 리그 소속[8]이었던 우니온 베를린을 2-0으로 꺾고 팀의 3번째 포칼 트로피를 들어올리는데 성공하면서 무관 신세를 피할 수 있었다.[9][10][11]

올리버 칸의 유명한 코너 플래그 뽑는 세레머니가 나온 경기가 이 경기다. 이후 약 8년 정도가 흐른 뒤에 샬케 소속이었던 마누엘 노이어가 바이에른 원정에서 1:0으로 이긴 뒤 이 세레머니를 따라해서 바이에른 팬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 해당 사건이 벌어진 지 약 2년이 더 지난 뒤에 노이어는 바이에른으로 이적할 당시 일부 뮌헨 팬들은 Koan Neuer![12]라는 슬로건까지 내걸면서 격하게 영입에 반발하기도 했으나, 칸보다 더 뛰어난 활약을 펼친 덕분에[13][14][15] 바이에른 팬들의 불만을 금새 잠재워버림[16]과 동시에 지금도 팀의 명실상부한 에이스로 활동하고 있다. 거기다가 노이어 이전의 바이에른의 주장이었던 필립 람이 2017년에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주장직까지 역임하고 있다.[17]

그로부터 18년 뒤, 2018-19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 경쟁에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다. 바이에른이 도르트문트를 2점차로 앞서고 있는 상태에서 최종전에 돌입했는데, 바이에른은 또 비기기만 하면 자력 우승, 허나 바이에른이 지고 도르트문트가 이기면 승점 1점차로 도르트문트가 우승하는 시나리오였다. 다만 이때는 2001년만큼 극적인 승부는커녕 바이에른이 마지막 경기에서 무려 5대1 대승을 거두며 손쉽게 우승을 확정지었다(...).[18]

아쉽게 준우승에 그친 샬케는 20년 뒤 더 끔찍한 시즌을 맞이했는데 19-20시즌 후반기 아예 승리가 없었고 전반기 성적덕에 하위권으로 아슬아슬하게 끝냈다. 하지만 팀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지 않은 채로 20-21시즌을 맞이하였다. 그 결과는 감독이 5명이나 교체되는 불상사가 발생했으며, 선수단 역시 자신들과 맞지 않는 전술과 빈약한 뎁스, 감독진 및 수뇌부와 벌인 갈등의 막장화[19]등의 문제가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승리를 위해 가져야 할 투쟁심은 샬케 선수단에게서 사라져버렸고, 이는 계속된 리그 경기 패배와 포칼 3라운드 탈락으로 이어지면서 샬케의 명성에 치명타를 입힘과 동시에 강등의 위기를 초래했다. 결국 해당 시즌 샬케의 윗 순위였던 FC 쾰른(해당 시즌 최종 16위, 따라서 2020-21 시즌 2. 분데스리가에서 최종 3위를 차지한 홀슈타인 킬과의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다. 결과는 홈&어웨이 합산 5-2라는 스코어로 홀슈타인 킬을 누르고 분데스리가에 잔류.)이 30라운드에서 RB 라이프치히(해당 시즌 최종 2위)를 2-1로 잡고 승점을 26점까지 늘린 반면에 샬케는 29라운드에서[20] DSC 아르미니아 빌레펠트전에서 1-0으로 패배하는 바람에 승점이 13점에서 늘어나지 않게 되었고, 따라서 남은 4경기의 결과와 상관 없이 리그 최하위 순위인 18위로 강등이 확정되었다. 강등 확정이 되자마자 원정 경기를 막 치르고 홈 경기장으로 돌아온 선수단을 극성팬들이 습격하며 추격전까지 벌이고 계란이나 홍염을 맞거나 걷어차이기도 하는 끝에 경찰의 도움으로 선수단은 간신히 빠져나갔다. 그래도 차기 시즌에서 2.분데스리가 우승을 거두면서 2022-23 시즌에 분데스리가로 복귀하는데 성공하긴 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또 강등되었다...

반면 바이에른은 2019-2020 시즌 전반기에는 감독이었던 니코 코바치의 삽질로 리그 7위까지 떨어졌었던 수모를 겪었으나, 코바치가 나간 이후에 새로 들어온 한지 플릭 감독이 맡은 뒤로는 제대로 각성하여 환골탈태한 경기력을 보여주였고, 이는 구단의 29번째 분데스리가 우승, 20번째 DFB-포칼 우승, 6번째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구단의 2번째 트레블이라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이후에 치러진 2020-2021 시즌 당시에는 DFB-포칼 2라운드에서 홀슈타인 킬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탈락하고 챔스에서도 8강전 상대인 파리 생제르맹한테 원정 다득점에서 밀려 탈락하긴 했으나 분데스리가에서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 끝에 1위를 차지하며 구단의 30번째 마이스터샬레를 들어올렸다.[21][22], 또한 해당 시즌에서 바이에른이 치뤘던 UEFA 슈퍼컵DFL 슈퍼컵, 그리고 FIFA 클럽 월드컵에서 모두 우승하면서 독일 소속 클럽으로서는 최초이자 UEFA 소속 클럽으로서는 FC 바르셀로나에 이어 두 번째로 전관왕을 달성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샬케는 첫 마이스터샬레를 들어 올리기 위해 노력했고 06-07 시즌에 32라운드까지 1위를 달리면서 우승을 눈 앞에 두고 있었으나, 33라운드에서 자신들의 최대의 라이벌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0:2로 패배하며 VfB 슈투트가르트에게 선두를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진 34라운드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팬들은 자신들의 최종전이 펼쳐지던 바이아레나에서부터 샬케의 홈구장인 펠틴스 아레나까지 EIN LEBEN LANG KEINE SCHALE IN DER HAND[23] 라는 배너를 건 비행기를 띄워 운행했다.

5. 유사 사례

  • 프리미어 리그/2011-12 시즌/38라운드
  • 프리미어 리그/2021-22 시즌/38라운드
  • 도하의 기적
  • 삼일천하
  • 2008 F1 브라질 그랑프리 - 종목은 포뮬러 1으로 다르지만, 스쿠데리아 페라리 소속이었던 펠리페 마싸도 최종전에서 1위로 들어옴으로서 2분 동안(...) 챔피언이었다가 맥라렌루이스 해밀턴이 마지막 랩, 마지막 코너에서 극적인 추월과 함께 챔피언십 포인트를 역전시킴으로써 마싸는 결국 우승에 실패하고 말았다. 챔피언 확정인줄 알고 마싸의 크루와 마싸의 아버지가 서로를 부여잡고 환호하다가 바로 표정이 썩어버린 것이 4분 챔피언 사건 당시의 샬케 팬들의 상황과 똑같다.
  • 분데스리가/2022-23 시즌/34라운드 - 바이에른이 33라운드에서 패하면서 승점 2점 차이로 도르트문트가 선두를 달리고 있었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이기면 우승, 도르트문트가 비기고 바이에른도 비기면 도르트문트가 우승, 도르트문트가 지고, 바이에른이 비겨도 도르트문트가 우승, 도르트문트가 지고, 바이에른이 져도 도르트문트가 우승, 도르트문트가 지거나 비기고, 바이에른이 이기면 득실차로 바이에른이 우승하는 시나리오였다. 여러 모로 도르트문트가 유리한 상황이었지만[24] 22/23 시즌에 홈에서는 극강인 도르트문트인데다 상대가 4경기 연속 패배에 동기부여가 다 떨어진 마인츠라서 손쉽게 우승을 확정지을 줄 알았으나...어째서인지 마인츠에게 전반에 두 골을 허용하며 끌려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래도 후반 막판에 바이에른이 동점골을 허용했다는 소식에 사기가 올랐지만, 후반 종료 직전에 바이에른이 다시 앞서가는 골을 넣어 간신히 잡았던 리그 선두를 8분만에 내줘야 했다. 결국 도르트문트는 2대2 동점까지는 따라붙었지만 골득실에 밀려 바이에른에게 다시 한 번 우승컵을 내줘야 했다. # 지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간 바이에른과 거꾸로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도르트문트의 운명이 뒤바뀌게 되었다. 참고로 이쪽은 보루센 최대 라이벌 샬케보다 딱 2배 늘어난 8분 챔피언이 되었다.

[1] 그래도 레버쿠젠보다는 상황이 나은 게 샬케는 독일의 FA컵 대회인 DFB-포칼에서는 5번이나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참고로 레버쿠젠은 우승 한 번, 준우승 3번) 이는 바이에른 뮌헨(20번)과 베르더 브레멘(6번) 다음으로 포칼에서 우승한 횟수가 많다.(다만 준우승 횟수는 7번인데, 이는 포칼에 참여한 팀들 중 제일 많이 준우승을 차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심지어 DFB-포칼로 개칭되기 이전인 챠머 포칼 시절에도 준우승 횟수가 제일 많은 팀은 바로 샬케(4회)다 허나 해당 사건이 벌어진 시점에서는 6번이었는데, 이는 FC 쾰른과 같은 횟수였던지라 공동 1등이었다. 그러다가 2005년에 또 한번 준우승을 추가하면서 단독 1위가 된 것.) 하지만 2000-01 시즌 종료 이전에 샬케가 포칼에서 우승한 횟수는 2번이었다.[2] 결과론적으로 샬케가 이 경기를 비기기라도 했으면 샬케가 우승할 수 있었다.[3] 분데스리가는 18개 팀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34라운드가 최종전이다.[4] 이 경기는 샬케 04의 2000-01시즌은 물론 파르크슈타디온에서 치르는 마지막 경기였다. 2001-02 시즌부터 샬케는 펠틴스 아레나로 홈구장을 옮겼다.[5] 공교롭게도 샬케에서 임대 온 선수였다.[6] 칸의 말에 의하면, 에펜베르크보고 자신이 프리킥을 차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에펜베르크는 '니 미쳤냐'는 식으로 노려봤다고 한다.[7] 당시에는 아직 펠틴스 아레나가 개장하기 전이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마르쿠스 메르크 주심은 펠틴스 아레나에서 단 한 번도 중재하지 못했다"가 맞다고 볼 수 있다.[8] 레기오날리가 노르트(현재는 베를린을 연고로 한 클럽들이 레기오날리가에 참여할 경우,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오스트에서 뛰도록 바뀌었다.), 참고로 저때 당시 독일 3부 리그는 레기오날리가였다. 3. 리가가 창설된 것은 2008-2009 시즌부터. 그리고 2000-01 시즌 당시 우니온 베를린은 해당 리그의 우승팀이었기 때문에 2. 분데스리가 승격을 확정지었던 상황이었다.[9] 다만 우니온 베를린은 해당 시즌에 치러진 포칼 결승전 결과에 상관 없이 다음 시즌 UEFA 컵(현 유로파리그)에 나가게 되었다. 왜냐면 결승전 상대인 샬케는 해당 시즌에서 2위를 차지한지라 다음 시즌 챔스 진출 티켓을 따놓은 상태였고, 따라서 컵 대회 우승팀이 해당 국가의 1부 리그 최종 라운드 이후 챔스 진출권을 따낼 수 있는 순위를 확보했다면 UEFA 컵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는 각국의 컵 대회 준우승팀으로 이양된다는 UEFA 컵 규정이 발동되었기 때문. 이로써 우니온 베를린은 독일 통일 이후에 처음으로 유럽대항전에 나간 동독 출신 축구팀이 되었다. 다만 다음 시즌에 UEFA 컵에 나간 우니온 베를린은 1라운드에서 베이카우스리가 소속의 FC 하카를 만났을 때는 홈&원정 합계 1-4로 밟고 올라갔으나 2라운드에서 만난 불가리아 파르바리가 소속 PFC 리텍스 로베치에서 홈 0-2 패배, 원정 0-0 무승부로 인한 탈락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받아들이고 말았다.[10] 이후 우니온 베를린은 오랫동안 1부 승격에 실패하면서 2.분데스리가에 머물렀다. 그러던 도중 2018-19 시즌 2.분데스리가 일정이 모두 끝난 이후에 가졌던 VfB 슈투트가르트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는 홈&원정 합계에서 2-2로 비겼으나, 원정 다득점 제도에서 우위를 점한 덕분에 여러 유의미한 기록을(과거 동베를린을 연고로 삼은 클럽 가운데 최초로 분데스리가에 승격한 클럽, SG 디나모 드레스덴, FC 한자 로스토크, VfB 라이프치히, FC 에네르기 코트부스의 뒤를 이어 분데스리가에 승격한 5번째 동독 출신 클럽, FC 바이어 05 위어딩엔, 1. FC 자르브뤼켄, 슈투트가르트 키커스, 1. FC 뉘른베르크,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다음으로 1부 리그 소속팀과 치른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여 분데스리가에 입성한 6번째 클럽이라는 타이틀을 따냈다.) 세우면서 분데스리가 승격에 성공하였다. 이후 승격한 지 두 시즌이 지난 뒤에는 돌풍을 일으키면서 챔스권까지 진입하였으나 후반기에 추락하여 7위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RB 라이프치히와 치룬 최종 라운드의 후반전 92분에 막스 크루제가 극적인 역전골을 넣으며 2-1 승리를 거두면서 해당 순위를 유지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때 7위 자리를 넘보던 8위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제치고 21년만에 유럽대항전에 나가는 경사를 맞았으며, 2021-22 시즌부터 열리는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에 최초로 출전하는 독일 소속 축구 클럽이라는 의미있는 기록을 세웠다.(게다가 이 과정은 과거 4분의 기적이 일어났을때와 같이 드라마틱했던 것은 물론, 유사점 역시 많다. 우선 과거에 샬케가 운터하잉을 5:3으로 꺾었던 것처럼 글라트바흐도 해당 시즌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SV 베르더 브레멘을 4-2로 격파하면서 대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과거 바이에른-샬케처럼 2020-21 시즌 분데스리가 최종전 직전의 우니온-글라트바흐의 승점 차이도 1경기 결과에 따라 뒤집힐 정도로 근소하였다. 또한 2000-01 시즌과 2020-21 시즌 최종전 직전에 치룬 33라운드에서 바이언과 우니온은 승점을 얻는데 성공한 반면에 샬케와 글라트바흐는 경기에서 지는 바람에 승점을 못 얻었던 것이 최종전에 나비효과를 불러왔다는 점에서는 같다. 다만 비겨도 1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데다 본인들이 져도 샬케가 이기지만 않으면 우승 트로피를 들 수 있었던 2000-2001 시즌 바이언과는 다르게 2020-2021 시즌의 우니온은 최종전에서 젔을때 글라트바흐가 비기거나 이긴다면 말짱 꽝이었다. 설렁 우니온이 최종전에서 비겨도 글라트바흐가 이기거나, 둘 다 비겼을 때에 득실차에서 글라트바흐가 우위를 점할 경우엔 우니온은 순위 하락과 유럽대항전 진출 실패를 모두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2000-2001 시즌 분데스리가 최종전 직전의 바이에른은 승점에서는 샬케보다 우위였으나 득실차에서는 열세였던 반면, 2020-2021 시즌의 우니온은 승점과 득실차에서도 글라트바흐보다 우위를 점한 채로 최종전을 맞이했다는 점은 달랐다.) 반면 우니온이 승격한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휘청거리기 시작한 샬케는 결국 해당 시즌에서...[11] 한 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은 해당 시즌 포칼 32강에서 바이에른을 승부차기에서 4:2의 스코어로 떨어뜨린 팀인 마그데부르크를 8강에서 1-0으로 격파한 팀은 바로 샬케 본인들이었다.[12] Kein Neuer!(노이어는 안돼!)의 바이에른 방언.[13] 실제로 노이어는 바이언으로 이적하자마자 1011분 동안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치면서 칸의 1004분 무실점 기록을 넘었으며, 2021년 1월 24일에는 197경기 클린시트를 달성하며 칸이 분데스리가에서 기록한 196 클린시트를 넘어서게 되었다.[14] 또한, 노이어는 단순한 클래식 골키퍼의 역할에서 그치지 않고 탈압박이나 공격적인 수비 등의 오만가지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상대의 공격을 족족 차단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이 실점으로 이어진 거의 없는 덕분에 스위퍼 키퍼의 대명사로 발돋움하였다. 이는 칸이 전성기이였을 때 조차 보여주지 못 했던 플레이였다.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이나 개인 기록의 차이 이외에도 우승 경력의 양적 측면에서 비등한 편이며, 오히려 리가와 챔스에서 우승 횟수가 많은데다(칸의 분데스리가 우승 횟수와 챔스 우승 횟수는 각각 5회, 1회인데 반해 노이어는 리그 8회, 챔스 2회 우승을 기록했다.) 칸이 들지 못한 월드컵 트로피까지 들어본 노이어가 질적인 측면에서 좀 더 우위에 있다. 더군다나 칸이 바이언에 영입된 초창기에는 FC 할리우드라는 굴욕적인 비칭을 들은 것도 모자라 UEFA컵권으로 떨어지는 등 위상이 지금같지 않았으며, 선수 은퇴 직전의 황혼기에는 바이언을 비롯한 분데스리가 소속 클럽들이 챔스나 UEFA컵에서 지금보다 더 심한 부진을 보이면서 리그 자체가 한 물 갔다는 평가까지 나왔던데다 자신도 기량 하락과 사생활 측면에서의 구설수, 당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클린스만과의 갈등 등으로 말년이 썩 좋지는 않았던 반면에 노이어 이적 이후 바이에른은 단 한 번도 챔스권을 놓친 적이 없을 뿐더러 두 차례나 트레블을 달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팀을 명실상부한 세계구급의 명문 축구팀으로 다시 끌어올렸다. 이후에도 노이어는 장기 부상으로 시즌아웃이 된 17-18시즌을 제외하면 여전히 톱클래스의 면모를 보이며 주전 자리를 지키면서 이전보다 훨씬 높아진 팀의 위상을 지키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나마 칸이 클럽 축구에서 우승 횟수가 노이어보다 많은 대회는 UEFA컵과 DFB-포칼, 리가포칼(단어의 뜻은 리그컵이지만 여기서는 독일축구연맹이 1996년부터 2007년까지 개최한 리그컵 형식의 대회를 말한다. 참고로 칸은 리가포칼에서 6번이나 우승을 거둔 반면에 노이어는 우승 횟수가 한 번 밖에 없던데다가 그마저도 주전이 아니었다.)인데, 노이어는 아직 현역인데다가 독일 내에서 제일 최강으로 평가받는 팀의 주전 골키퍼로 몇 년 이상 군림하는 것이 확실한 이상 이 또힌 바뀔 가능성이 적지 않다. 게다가 노이어가 UEFA컵의 후신인 유로파리그 우승이 없는 이유도 자기가 바이에른으로 이적한 시즌에 이미 바이언은 챔스 진출을 확정지은데다가 그 이후에도 연속 챔스 진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대 축구로 가면 둘의 커리어 차이가 존재한다. 칸은 월드컵에서는 최고 성적이 준우승인 반면에 노이어는 우승을 차지했으며, 유로에서 칸이 우승했을때는 안드레아스 쾨프케에게 밀린 세컨드 골키퍼라 주전이 아니었던 반면에 노이어는 비록 4강이 최고라고는 하나 주전 골키퍼로 뛰며 자력으로 기록을 세웠기 때문. 게다가 칸은 국대 첫 소집 이후 약 6년 동안이나 보도 일그너와 쾨프케에게 밀렸던 반면에 노이어는 첫 소집 이후 얼마 안 가 치러진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칸은 자기가 주전으로 나갔던 2000년과 2004년의 유로 대회에서는 두 번 모두 조별리그 광탈을 경험한 데다가(단 이는 칸의 잘못이 아니라 당시 독일 축구 국대 자체가 통일 후유증과 세대교체 실패 등으로 휘청거렸기 때문이다.) 말년에 독국대 감독으로 부임한 클린스만과의 갈등과 기량 하락 등으로 인하여 동갑내기 골키퍼이자 세컨드 골키퍼였던 옌스 레만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긴 채로 자국 월드컵 본선에 참가한 것을 끝으로 은퇴한 반면에 노이어는 국대 커리어 내내 주전을 유지하고 있다. 칸도 자기가 노이어보다 여러 면에서 밀리는 점을 알고 있는지라 그가 자기보다 낫다는 칭찬도 했으며,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맹활약하며 우승을 차지하고 돌아온 노이어에게 발롱도르 수상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했을 정도.[15] 아이러니하게도 노이어는 다른 선수들이 기량 하락이나 사생활 등의 문제로 욕을 먹을 동안에도 그런 적 없이 날이 가면 갈수록 평가가 더 좋아지고 있는 반면에 칸은 2021년 6월 1일에 바이에른 CEO에 취임한 이후 스쿼드 보강을 위한 영입을 원하는 팬들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현재 스쿼드에 만족한다는 발언을 하여 욕을 먹은 것을 시작으로 2021-22 시즌 당시에 벌어진 단장과 감독 사이의 불화 방관, 소속 선수들과의 재계약 미진으로 인하여 이적시장에 공짜나 헐값으로 판매하는 처지로 전락한 데 이어 해당 시즌에 거둔 성적조차 매우 저조한(리그는 우승했으나 2012-13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 이후 최저 승점이라는 불명예를 얻었고, 포칼은 엠게한테 5:0으로 패배하면서 2년 연속 2라운드 탈락을 맛보았다. 심지어 챔스는 명백히 한 수 아래인 비야레알을 상대로 홈&원정 경기 내내 저질 경기력을 보여주다가 2차전 당시에 역전패를 당하면서 2시즌 8강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었다. 그나마 2020-21 시즌의 8강 탈락의 경우, 2019-20 시즌 챔스 우승팀으로 겪어야만 했던 빡센 일정으로 인한 선수들의 체력 저하와 팀의 주포인 레반도프스키와 부포인 세르주 그나브리의 이탈이라는 비상상황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홈과 원정 경기에 나선 주전들이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을 벌이며 PSG의 간담을 서늘케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깝게 탈락한데다 경기 내용도 훨씬 좋았다. 하지만 2021-22 시즌 챔스 8강 경기의 경우, 체력적인 면과 스쿼드 측면에서 지난 시즌보다 우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선수들의 경기력과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지난 시즌에 PSG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팀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심각하게 좋지 않았던데다 나겔스만의 답답한 전술과 잘못된 선수 교체로 인해 비야레알에게 일격을 얻어맞고 패배하였다. 게다가 해당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확정지은 다음에 치른 마지막 3경기는 전부 이기지 못 했다.) 바람에 팬들의 거센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이래저래 입장이 바뀐 셈. 물론 이는 노이어의 선수 말년 시기의 행보 및 선수 은퇴 이후 감독이나 보드진이 된 후에 어떤 행적을 보여주는가에 따라 이 평가도 바뀔 여지가 남아있기는 하다.[16] 반면 노이어가 바이에른으로 이적할 당시에 원래 소속팀이었던 샬케의 팬들은 그가 돈과 명예를 위해 고향을 버리고 떠난다면서 바이에른의 팬들보다 더 심한 불만과 분노를 보였다. 그게 어느 정도였나면 바이에른 전통 남자 복장인 레더호젠을 노이어에게 합성해서 입힌 그림을 온라인 상에 올리며 조롱하기도 했고, 포칼 우승 퍼레이드에 참가했었을 때에 한 샬케 팬에게 뺨을 맞기도 하였다.[17] 공교롭게도 노이어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샬케의 주장직도 역임했었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를 샬케의 주장으로 임명했던 사람은 바이에른에서 감독을 한 적이 있었던 펠릭스 마가트 감독이었다.[18] 여담으로 이 경기가 아르연 로번프랑크 리베리의 바이에른 소속으로 뛴 마지막 홈경기였다. 게다가 두 선수 모두 득점까지 했다![19] 선수단이 경영진들을 압박하여 감독과 수뇌부를 몰아냈는데 여기에 주동자들이 무스타피, 콜라시나츠, 훈텔라르 이 베테랑 셋이 주동자라는 뉴스까지 나왔다. 물론 감독과 수뇌부가 굉장히 무능해서 문제이긴했지만 저 셋은 팀에 합류한지 얼마되지 않은 선수들인데 선수단을 장악해서 이런일을 벌였으니 팀 자체가 완전 개막장이다.[20] 다만 당시 샬케는 쾰른과 같은 날에 경기했다. 왜 이리 되었냐면 2021년 4월에 헤르타 베를린 선수단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면서 이들이 치러야 했던 3경기가 취소되어 버렸는데, 그것들 중 샬케와의 경기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른 구단들보다 한 경기를 덜 치르게 되버린 것. 물론 코로나에 걸린 헤르타 베를린 선수들이 완치 판정을 받고 돌아온 뒤에는 취소된 경기들을 치루고 시즌이 끝나긴 했다.[21] 참고로 해당 시즌의 개막전과 후반기 첫 경기에서 바이에른이 만난 상대가 바로 샬케였는데, 각각 8-0(홈 경기)과 4-0(원정 경기)으로 압살해버렸다.[22] 게다가 해당 시즌 리그에서 샬케가 최하위로 강등되는 것이 확정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바이에른이 1위를 확정지었기 때문에 두 팀의 상황이 더욱 비교가 되는 상황.[23] 평생 동안 너희는 마이스터샬레를 들어올릴 수 없다는 뜻의 조롱 문구다. 덤으로 샬케의 응원가인 Ein Leben lang, Blau und Weiß ein Leben lang을 비꼰것 이기도 하다.[24] 그것도 본인들의 에서 경기가 치뤄져서 우승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분위기부터 시작해서 압박의 강도 자체가 달라서 굉장히 유리했다고 볼 수 있고, 또한 우승광경을 홈에서 치를수 있는 굉장한 축제 분위기가 될 수 있었다. 또한 11년만의 분데스리가 우승이니 그 기쁨과 광경이 더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