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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덕한/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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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추어 시절2. 프로 경력
2.1. 두산 베어스
2.1.1. 데뷔~2006년2.1.2. 2009년2.1.3. 2010년2.1.4. 2011년
2.2. 롯데 자이언츠
2.2.1. 2012년2.2.2. 2013년2.2.3. 2014년
2.3. kt wiz ~ NC 다이노스

1. 아마추어 시절

용덕한은 대구상고 2학년이던 1998년, 제52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투런홈런을 터트리면서 팀이 5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을 하는데 공헌을 하였다. 하지만 팀내 키스톤인 2루수 박기혁- 유격수 권도영에 가려 빛을 그다지 보지 못하였다. 3학년이던 1999년에도 제54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장준관, 이정호와 배터리를 이루며 공-수에 걸쳐 맹활약을 펼쳐 팀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프로지명을 받는데는 실패하고 동아대로 진학한다.

2000년 동아대학교에 입학했으며, 3학년이던 2002년, 이탈리아 메시나에서 열린 제 1회 세계 대학야구선수권대회를 위한 국가대표 선발 명단에 고려대학교 재학 중이었던 이택근과 함께 포수로써 이름을 올리며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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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로 경력

2.1. 두산 베어스

2.1.1. 데뷔~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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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두산 베어스 시절.

2004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면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두산의 안방마님이던 홍성흔이 2004년부터 잦은 부상에 시달리자 2005, 2006 시즌에 백업포수로서 적지 않은 경기에 나서면서 가능성을 엿보였다. 리드도루 저지와 같은 '포수'로서의 자질은 충분하였으나 '선수'로서 필요한 타격 기술이 부족한지라 백업 포수 이상의 입지는 얻지 못하였다. 그리고 2006 시즌을 마치고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입대하였다.

2.1.2. 2009년

2009년 복귀하면서 홍성흔 지명타자 전향과 롯데로의 FA이적으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빈약한 포수 자리를 두고 최승환, 채상병과 함께 주전 경쟁을 펼쳤다. 전지훈련 도중 채상병은 자신의 약점인 2루송구를 보완하기 위해[1] 무리하게 연습하다 어깨부상이 재발하게 되어 1군 경쟁에서 탈락, 용덕한은 2009시즌을 1군 백업포수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최승환 역시 지난 시즌 당했던 무릎 인대부상으로 인하여 장기인 2루송구를 비롯하여 몸상태가 많이 떨어져 있던 상태여서, 시간이 지날수록 용덕한이 주전포수로 나서는 경우가 잦아졌고 포스트시즌에서는 주전 포수로 나서게 된다.[2]

2009년에는 본인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였으나, 여전히 타격면에서는 평균 이하라 홍성흔 체제를 그리워하는 팬들의 공분을 샀다. 특히 195타석에서 기록한 병살타 13개는 압권. 하지만 두산베어스 포수진 중에서 가장 기민한 블로킹을 하는 선수라, 컨트롤이 불안정한 투수가 많았던 두산 투수진과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었다. 특히 땅에 공을 심는 포크볼을 주무기로 하는 홍상삼과는 거의 전담포수에 가까운 궁합을 보여주었다.

2.1.3. 2010년

2010년 혜성 같이 등장한 양의지의 출현으로 다시 최승환과 함께 1.5군으로 추락했으며 시즌 중 거의 출전하지 못하였다. 이 정도면 이적을 고려할 만한 상황인데...하지만 채상병과 최승환이 상대적으로 비슷한 스타일이어서 비교적 차별화된 장점을 가진 용덕한은 2009년 진갑용의 시즌 아웃 부상으로 SOS를 친 삼성과의 트레이드때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3] 게다가 양의지 역시 수비 동작이 기민하지 못한 편이어서 최승환보다는 용덕한이 백업 포수로 좀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었다.

팀이 시리즈 전적 1승 2패로 지던 2010년 10월 3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양의지가 계속 실책을 연발하고 허리가 아프다며 교체 요청까지 하자 3회말에 대수비로 출장했다. 여기서 결승타를 포함하여 4타수 3안타 1타점 1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스코어 11:4 승리에 공헌하며 팀이 스코어 3:2로 앞선 9회초 1사 2, 3루에서 쓰리런 홈런을 친 정수빈과 함께 당일 MVP가 되었다. 너무 오랜만의 활약인지라 기쁜 것을 잘 못 느끼겠다는 슬픈 인터뷰를 했다….

결국 10월 5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서는 선발 출장 기회를 잡았고, 2회말에 결승 2타점 2루타를 치는 등 3타수 3안타 1희생플라이 1도루 3타점 2득점으로 맹활약하며 팀의 스코어 4:11 승리를 이끌고 준플레이오프 MVP가 되었다.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 2, 4차전은 대수비, 3차전은 선발 포수 겸 8번타자, 5차전은 선발 포수 겸 9번타자로 출장하여 9타수 6안타 1희생플라이 1도루 4타점 3득점, 타율 .667, 장타율 .889, 출루율 .600을 기록했는데, 시즌 내내 6안타를 쳤다가 준플레이오프 단 두 경기만에 6안타를 때려냈다. 그리고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 2타수 1안타 1득점, 타율&장타율&출루율 .5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최종적으로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11타수 7안타 1볼넷 1도루 4타점 4득점, 타율 .636, 장타율 .818, 출루율 .583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것으로 타격이 안되는 잉여포수가 안경을 끼면 방망이에 불이 붙는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2.1.4. 2011년

전년에도 그랬듯이 양의지가 주전포수로, 용덕한은 백업으로 출장하는 중. 가끔 양의지가 선발출장이 안되면 자신이 선발출장으로 나서기도 한다. 수비력 하나는 괜찮은 용덕한이었기에 큰 사고 없이 역할을 해내나 싶었더니...

양의지가 주자와의 충돌로 빠진 뒤 자신이 나온 527 대첩에서 3루타를 치면서 최악의 본헤드 플레이로 역전패를 허용하고 말았다. 투수 정재훈이 던진 회심의 변화구가 홈플레이트에 튕기면서 낫아웃 상태, 그런데 포수 용덕한이 공을 잡기는 커녕 심판에게 따지기 바빠서 1루에서 아웃당했어야 할 타자가 3루까지 내달리는 초유의 플레이가 벌어졌다. 물론 바로 대처했어도 타자가 아웃이 되긴 힘들만큼 공이 멀리 튕긴 상황이긴 했지만 디씨에서는 용덕한 승부조작설까지 나돌정도의 황당한 상황...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4위까지 등극하며 미칠듯이 까이고 있는 중. 누가 용덕한이 이런 본헤드 플레이를 저지를 줄 예상이나 했을까...당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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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작가의 카툰에서도 이 해프닝을 다뤘다. 역전재판 패러디.

게다가 다음날인 5월 28일 또 한건 작렬하고 마는데, 8회초 2사 1, 2루 상황에서 홈에 송구된 공을 미처 잡지 못하고 뒤로 빠트린 뒤 망연자실하게 서있는 동안 타자였던 정원석은 3루까지, 1루 주자였던 최진행, 2루 주자였던 전현태는 홈까지 안착했다.[4] 결국 이날이 용덕한의 두산에서 포수로 나온 마지막 1군 경기(...)가 되어버렸다.

2.2. 롯데 자이언츠

2.2.1.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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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7일 김명성과 트레이드 되면서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2.2.2. 2013년

주전 포수인 강민호를 뒷받침하며 백업으로 꾸준히 출장했다. 수비는 여전히 베테랑 답지만 타율은... 음...

7월 24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희대의 병신불펜매치[5]에서 10회 득점권 상황에서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던 2루타를 기록하며 오랜만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롯데는 그 뒤로 블론을 2번이나 기록(...)

친정팀을 만난 7월 30일에는 선발로 출전, 동점 홈런으로 마수걸이포를 신고한데다 완벽한 송구로 발빠른 이종욱오재원의 도루를 잡아내는 활약을 보여주며 팬들을 환호케 만들었고 경기 MVP까지 되었다. 근데 양의지 도루는 왜...

2.2.3. 2014년

장성우영 좋지 않은 일에 말려들며 개막전부터 1군에서 시작했지만 몇경기 나오지도 못했고 나와서도 별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며 장성우와 자리를 맞바꿔 10일자로 상동으로 내려갔다.

5월 6일에 다시 1군에 등록되었고 5월 1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3타수 2안타 1볼넷 1타점을 기록하여 팀의 3:4 역전승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5월~6월 사이에 알게 모르게 감초같은 역할로 팀에 도움을 주고 있다. 강민호가 꾸준히 똥망테크(...)를 타고 있는 현재, 그나마 타격감이 나은 용덕한을 주전 기용 할 것인지, 도루저지에서만큼은 밥값을 하는 강민호에게 안방마님 자리를 맡길지 김시진 감독도 머리가 아플 듯. 아니, 사실 강민호가 아무리 도루를 잘 잡는다고 해도 용덕한 본인이 갑자기 2루 자동문이 되지 않았다면 무난히 주전을 차지했을 상황이다.

강민호의 타격 부진이 너무 심한데다 길어지기까지 하니 부담감을 주지 않으려고 김시진 감독은 계속해서 강민호를 경기중에 교체해주고 있고, 이때문에 용덕한의 출장수는 더욱더 늘어갔다.

7월 현재 타율이 3할(!)을 넘었다. 강민호가 타격 부진에 빠진 상황에서 용덕한이 도루저지율이 낮은 대신에 타격이 좋아졌다. 이제 강민호가 수비형 포수고 용덕한이 공격형 포수다 (....)

7월 16일 경기에서 9회말 2사에 1루주자로 나갔을때 뜬금없이 도루를 시도하며 아웃되었다. 잘하면 동점까지 갈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도루자로 인해 경기는 허무하게 종료되었다. 이 날 4타수 3안타 1타점을 치며 타석에서 괜찮은 모습을 보였지만 도루자 하나때문에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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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뛰었는지 아무도 이해 못했던 도루시도. 경기 후 김시진 감독은 자신이 내린 작전이 아니라며 부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소 선수들을 감싸기로 유명한 김시진이 이럴 정도니 얼마나 저 도루가 황당했는지 알 수 있다.

이후로도 강민호를 대신해 주전으로 출장하면서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다 7월 26일 LG전에서 홈 경합중 정성훈과 충돌하여 부상을 당해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8월 7일 다시 콜업 되었다.

10월 3일 경기에서 7회말 1사에 장성우의 교체로 나와 홈런을 쏘아올렸다.
10월 3일 기준으로 타율이 0.320을 찍고 있다. 3할 2푼의 타율은 10월 3일 기중으로 20위권의 기록.... 정말 공격형포수가 되었다.

2014시즌 최종 성적은 82타수 25안타 11타점 .305로 마무리했다. 출전 경기수가 많지 않아(59경기) 큰 의미는 없겠지만 마지막까지 3할 타율을 지켜냈다.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팬들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을 듯 하다.

11월 28일 KT 위즈의 20인 외 선수로 지명되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강민호를 FA때 잡지 말거나 장성우를 재입대시켰어야 했는데 용덕한은 하필이면 롯데의 납회식 행사 참석 중에 이 소식을 접했는데, 그럼에도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며 1박 2일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KT행' 용덕한과 롯데의 훈훈한 이별 보호선수에서 제외한 구단측에게 섭섭한 마음도 들 법도 한데 끝까지 자리를 지켰으니 인성갑 & 대인배 인증. 롯데 팬들도 그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새로운 팀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했다.

2.3. kt wiz ~ NC 다이노스

2.3.1.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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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wiz 이적 이후 2015년 6월 21일 NC 다이노스홍성용, 오정복과 2:1 트레이드가 되면서 다시 팀을 옮기게 되었다.

2.3.2. 2016년

0할 타자(...) 타석에 들어서면 볼 것도 없이 자동으로 아웃 처리되는 패배의 아이콘이 되어가고 있다. 원래 기대치가 높던 선수는 아니었으나,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평. 심지어 블로킹, 도루저지 등의 포수 능력도 제로에 가까운 능력을 보이고 있어서 0툴 플레이어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5월 17일 넥센전 9회초 마침내 시즌 첫 안타를 쳐냈는데 솔로 홈런이다(...) 하지만 대세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어 팀은 그대로 5:3으로 패배.

6월 3일까지 24타수 1안타 타율 0.042(...)을 기록 중이다. 그리고 그의 WAR은 -0.40[6]이다... 도저히 봐줄 수 없는 타격을 보여주고 있으나 NC의 취약한 포수진에 의해 1군 엔트리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6월 9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오랜만에 선발로 출장했다. 9번 타자로 선발 오더에 이름을 올렸지만 1회부터 팀 타선이 터지며 1회 1사 만루에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제구가 안되는 박주현을 상대로 볼넷을 얻어내며 밀어내기 타점을 올렸다. 2회에는 시즌 2호 안타를 쳐냈다! 3회에도 타석에 들어서 1타석 적시타를 쳐냈다!! 총 4타수 2안타 2타점으로 놀랍게도 멀티 히트를 기록했다. 공교롭게도 시즌 3안타를 모두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기록하고 있다.

6월 21일, 15연승 행진이 멈춘 그 경기에서 박석민송은범의 마찰로 시작된 벤치 클리어링 때 차일목이 박석민을 밀어낸 것을 보고 엉뚱하게 송은범에게 몸통박치기를 시전하는 등 과한 대응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고모가 뿔났다 가라!!!덕카츄 몸통박치기!!! 또, 이후 정근우 타석에서 최금강에게 보복구를 지시했다는 의혹도 있다. 정근우가 보복구 의혹이 있는 투구를 맞고 대응을 자제해 사건이 더 커지지는 않았지만, 징계하라는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9월 4일, 전일 포수 김태군의 파울성 타구에 맞는 바람에 SK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장했다. 팀은 9:4로 대패를 했다. 사실상 용덕한이 선발출장했다면 해당 경기는 포기할 정도로 승리가 없다시피 하다.

10월 21일 LG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9회말 1사 만루의 기회에서 끝내기 안타를 뽑아내는데 성공하며 팀의 승리를 만들어냈다. 용덕한의 난 이 끝내기 안타로 데일리 MVP에 선정되었고, 용 The Khan이라는 별명이 새로이 붙게 되었다(...)

2016 시즌이 끝나고 FA를 신청했다. 이미 36살인 나이와 백업 이상의 능력은 보여주지 못하는 만큼 대박을 노리는 것이 아닌 프로 생활 동안의 자신에 대한 칭찬이라고 한다. 13년 만에 얻어낸 FA니 만큼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 하며 사실상 현 소속팀인 NC만을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허나 FA에서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는지 결국 현역 은퇴를 선언한다.용덕한, 현역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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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는 어깨부상의 후유증으로, 아마추어 시절 채상병은 준수한 롱펙(Long Peg)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2] 이로써 두산베어스는 2006 시즌부터 2010 시즌까지 '매년' 주전 포수가 바뀌는(홍성흔-채상병-최승환-용덕한-양의지) 진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장기 집권이 당연시되는 포수 포지션의 특성상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3] 당시 삼성 지승민과 트레이드된 선수는 채상병으로 2010년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 2011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리는 등, 불성실한 태도로 팬들의 질타를 받고 있는 지승민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역시 삼성과의 트레이드는 흥한 적이 없다.[4] 이틀간의 이런 촌극 이후 한화 팬들은 이글스의 레전드 한용덕이라고 놀려댔다.(...) 이해를 못하겠다면 그냥 읽어봐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런데 한용덕이 15년 정말 두산으로 왔다![5] 롯데는 블론세이브를 3번 기록했고, 한화는 동점 상황에서 역전을 3번 허용했다(...)[6] 스탯티즈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