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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덕한/선수 경력/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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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페넌트 레이스
1.1. 4월 ~ 5월1.2. 6월 ~ 7월1.3. 8월 ~ 9월
2. 포스트시즌

1. 페넌트 레이스

1.1. 4월 ~ 5월

2012 시즌 초반에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서 보냈다. 양의지도 건재했고, 최재훈, 김재환이 백업 포수로 본격적으로 가세한 데다가 박세혁까지 깜짝 등장하면서 용덕한의 입지는 줄어든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없어지고 말았다.

1.2. 6월 ~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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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에서의 첫 출장 당시.

결국 6월 17일, 당시 대졸 2년차 투수였던 김명성과 맞트레이드되어 장성우의 입대 이후 백업 포수를 찾고 있던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였다.

트레이드 이후 첫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두산 시절에 없던 밝은 모습과 큰 제스처,액션 등 신선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교 시절의 동창, 두산 시절의 선수들[1], 동아대 출신이 많은 롯데라서인지 꽤나 반가운 선수들이 많아서 생긴 모습으로 보였다.

최기문, 홍성흔에 이어 용덕한이다. 2012년까지 두산 포수 출신 선수 세 명이 롯데로 이적했다.

2012년 6월 23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8회말부터 대수비로 나왔는데, 팀이 스코어 3:4로 뒤진 9회초 1사 1, 3루 상황에서 김선규를 상대로 기습적인 투수 앞 스퀴즈로 동점을 만드는 대활약을 했다!!! 결국 연장전까지 가서 6:4로 롯데가 승리하였다.

1.3. 8월 ~ 9월

8월 26일 4번 타자 강민호의 대수비로 출전하였다. 김주찬의 스퀴즈에 힘입은 8회 2-2 동점 상황에서, 3루에 있던 김주찬을 스퀴즈로 불러들이면서 역전, 결승타가 되었다. 스퀴즈의 화신이 되는 건가.

팀이 7연패에 빠지며 부진을 거듭하고 있던 9월 23일, LG와의 경기에서 1:0으로 뒤지고 있을때 무려 1,122일만에 홈런을 때려내어 동점을 만들며 팀 승리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시즌 1호. 게다가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박정태 타격코치를 은근슬쩍 디스하면서 롯데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2][3]

2. 포스트시즌

10월 8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KBO 준플레이오프/2012년/1차전에서는 수비 중 부상을 당한 강민호의 대수비로 들어왔는데, 스코어 5:5인 10회초에 선두 타자로 나와 3득점의 시작을 알린 좌익 선상 2루타를 쳤고, 득점에도 성공했다. 이후로 두산이 뒤집지 못하며 이 득점이 결승 득점이 되었다. 이날 용덕한은 2타수 1안타(2루타) 1득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8:5로 재역전승했다.

10월 9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선발로 나와서 4타수 2안타 1홈런 1타점 1득점을 기록했는데, 이날 친 홈런이 스코어 1:1, 9회초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홍상삼을 상대로 쳐낸 결승 솔로 홈런이었다.[4]

결국 이날 팀은 스코어 2:1로 역전승했고 용덕한은 이날의 MVP가 되었다. 인터뷰에서 본인에게 친정팀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본인은 롯데 자이언츠 선수이고 팀이 이기는 것이 먼저지 친정팀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용덕한은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은 대수비, 2, 3, 4차전은 선발 포수 겸 8번타자로 출장하여 13타수 3안타(2루타 한 개 포함) 1홈런 1타점 2득점, 타율과 출루율 .231, 장타율 .538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용덕한은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은 선발 포수 겸 8번타자, 3차전은 대수비로 출장하여 2타수 무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용덕한은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 15타수 3안타 1홈런 1타점 2득점, 타율 .200, 장타율 .467, 출루율 .200을 기록했다.

[1] 하지만 홍성흔은 2013년 FA를 통해 다시 두산으로 돌아가버렸다.[2] 캐스터:초구를 자제하는 모습이었는데 혹시 지시가 있었습니까? A:아니요, 그냥 선수단이 자발적으로 한겁니다.│양준혁:아 그럼 선수들끼리 분위기가 만들어진건가요? 코치 지시보다는? A:네. 코치님께서는 적극적으로 치라고 하셨으니까...[3] 롯데의 선구안 문제는 한두해 문제가 아니다. 2008년부터 이 시즌까지 롯데는 팀 볼넷 개수가 7등을 넘어본적이 없다. 그럼에도 타자들은 심각성을 못느끼는지 안하려고 하는게 더 문제. 2013년에는 장성호의 가세로 그나마 선구안이 조금이라도 나아진 모습을 보이기는 하였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4] 당시 옵튜브로 받아서 해설한 엠스플한만정 해설이 한 말이 압권. 아~이제 선수, 아무나, 다른 팀에 보내면 안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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