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6-08 12:31:30

옹진군(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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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소재지
해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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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군 삼천군 송화군 신원군 신천군
안악군 연안군 옹진군 은률군 은천군
장연군 재령군 청단군 태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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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ffffff> 옹진군
甕津郡
Ongjin County
}}}
<nopad>
군청 소재지 옹진읍[1]
지역 해서
면적 696㎢
행정구역
시간대 UTC+9
인구 152,878명
인구밀도 219.65명/㎢
군당위원장 파일:wpk.jpg 미상
인민위원장 파일:wpk.jpg 미상


1. 개요2. 역사3. 경제4. 주요 목록5. 만약 옹진반도대한민국 영토로 남았다면?6. 남북통일 이후의 전망

1. 개요

북한 황해남도의 군.

8.15 광복 당시에는 옹진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나[2], 1954년 남동쪽 절반이 강령군으로 분리되어 반도의 서남단만을 관할하게 되었다.

2008년 북한 인구조사에서 옹진군과 강령군(구 옹진군+벽성군 3개면)의 인구를 합치면 26만 명에 달한다. 남북통일되면 옹진'시'로 승격될 가능성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놀랍게도 저 인구조사 결과는 북한군을 제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3] 그러나 황해남/북도는 도시화율이 손꼽힐 정도로 낮고 통일 후 이촌향도 문제가 가속화될 수 있으므로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6.25 전쟁 전까지만 해도 금광과 온천업으로 지역경제가 튼실한 동네였다. 북한의 2010년대에도 금광은 있었다는 증언이 있다. 그러나 북한 정부가 워낙 경제적 수완이 떨어지는 터라 이걸 개발할 생각을 하지 않고 민간이 금광을 법에 규정되지 않은 방식으로 자생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2. 역사

통일신라에서 한산주에 소속시키고 고을 이름을 옹천(甕遷)이라고 이름붙였다. 고려에서 현재 쓰이는 옹진으로 바꾸었는데 본래 이 지역에 독을 엎어 놓은 듯한 나루가 있다고 해서 고유어로 독나루라고 불리던 것이 한자로 훈차되면서 옹진, 즉 독 옹(甕), 나루 진(津)으로 된 것이다.

옹진반도의 대부분은 38선 이남에 있어서 광복 이후 6.25 전쟁 이전에는 대부분 지역이 남한령이었다. 38선 분할로 인해 옹진군 교정면, 가천면 대부분[4], 옹진읍 극히 일부 지역이 북한령이 된 대신 38선 이남에 있던 벽성군 월록면 일부(옹진읍에 편입), 대거면 일부(옹진읍에 편입), 가좌면 일부(부민면에 편입), 해남면, 동강면, 송림면(연평도 포함), 장연군 백령면(백령도, 대청도, 소청도)을 더하여 옹진읍 온천리에 있었던 옹진군청에서 관할하였으며 연백군과 같이 경기도로 이관하였다. 그러나 바다로 남한 타 지역과 분리되어 있어 옹진반도는 사실상 섬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남한 본토와 연락은 서울(당시 김포군) 김포비행장~옹진 간 부정기 공로(空路) 및 인천~옹진 부포 간 부포항로였다. 참고로 1950년 3월 신문기사에서 옹진군 인구를 '18만 군민'으로 표현하였다. 한편 북한은 군 대부분이 남한에 속해 일부 잔여 지역만 남았지만 폐지하지 않고 남겨둔 연백군과 달리[5] 옹진군 잔여 지역은 벽성군에 편입해 옹진군을 폐지하였다.

사실상 섬과 같아졌던 이런 문제 때문에 미군정 사령관 존 리드 하지는 미소공동위원회 예비회담에서 38도선을 행정구역별로 재조정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간단히 말하면 황해도소련군정에, 경기도미군정에 이양하자는 것이다.[6] 이것이 성사됐다면 개성시 송악산 이북 지역과 장단군, 연천군 전역은 남한으로, 서해 5도를 포함한 옹진은 북한으로 넘어가는 셈이었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만약 실현되었다면 개성 시가지를 방어하는 배후지는 차지할 수 있었겠지만 서해 5도가 전쟁 중 인천의 방벽이 되어주지 못했을 것이다.

1949년 6월에 38선 일대에서 북한이 대규모 공격을 하였다. 결국 6.25 전쟁 당시 옹진반도 전투로 북한에 점령되었고 휴전 협정 이후 서해 5도를 제외한 전 지역이 완전히 북한 치하로 넘어갔으며 서해 5도만 남측 옹진군 소속으로 남았고 군청 역시 인천으로 옮겼다. 당시 행정구역은 경기도였고 1995년에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다. 옹진고등학교도 부천으로 옮겨 가서 현재의 부천시 범박동에 있는 시온고등학교가 되었으며 동남면 용호도의 수산학교도 인천으로 옮겨가 현재 인천해양과학고등학교가 되어 있다. 옹진읍에 있던 빵집 '상미당'은 서울로 이전해 SPC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옹진군이 고향인 실향민들은 개전 초기 옹진지구 전투 당시 군과 함께 인천으로 피난한 경우가 적지 않다.[7] 그래서 인천광역시에는 옹진군 출신 및 그 후손들이 상당히 많이 거주하며 1.4 후퇴 당시 황해도평안도에서 바닷길로 피난한 사람들도 옹진군 도서지역에 집결하여 남쪽으로 내려갔다.

3. 경제

2010년대 초중반의 옹진의 금광의 갱을 운영한 북한이탈주민의 증언. 썸네일과 달리 북한 경제 체제에 관한 내용이다.[8]
일제강점기부터 있던 금광이 있는데 누군가에겐 생존의 유일한 수단이라는 증언이 있을 정도다. 대단히 어려운 사람들만 금광 인부로 일하기 위해 온다고 한다. 인부들은 1달에 28일 일하고 30달러 번다. 놀라운 것은 북한의 채광 기술이 일제를 못 따라간다는 주장이 있다는 것이다. 국영경제는 이미 몰락한 지 오래기 때문에 알아서 개인이 국가가 나서지 않는 채광을 하는 것이다.

4. 주요 목록

면적(㎢) 소속 ·· 비고
기린도(麒麟島) 7.1 기린도리
창린도(昌麟島) 7.0 창린도리
용호도(龍湖島) 2.0 용호도리
마합도(麻蛤島) 0.94 제작리
신도 0.9 남해노동자구 방조제로 육지와 연결됐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 신도(信島)와는 전혀 무관하다.
봉곶도 0.1 창린도리 창린도의 부속섬
하기도(下麒島) 0.03 기린도리 기린도의 부속섬

5. 만약 옹진반도대한민국 영토로 남았다면?

38선 이남 옹진반도만 따지면 800㎢를 넘어가니 무시할 만한 면적은 아니다. 그렇다고 (청단·연백지구가 북한으로 들어갔다면) 황해도를 존치할만한 면적 정도는 또 아니면서 인천광역시로 편입하기도 뭔가 애매한 지역이 된다.[9] 그래도 유일한 황해도의 육지지역이니 상징성 차원에서 서해 5도와 함께 황해도로 존치해두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10] 반대편 동해바다의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처럼 최전방 안보관광과 휴양지, 군 위수지역 일대 상권 및 인프라 등등, 여러모로 유사한 지역이 되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엄격하고 제약이 많겠지만 어업도 어느 정도는 가능할 듯하다. 농업은 산지인 고성군과는 달리 더 활발했을 듯하다.
  • 육상 및 해상교통: 육로의 경우 바다로 타지역과 격리되어 사실상 섬이 된다. 다만 연백평야 지역을 한국이 가지고 있다면 가장 좁은 바다 폭의 구간이 6km 정도 되니 다리를 놓을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케르치 대교의 건설로 2022년까지 아조프 해우크라이나 측 항구들이 사실상 봉쇄된 것처럼 북한의 해주항은 확인사살당했을 것이지만 유사시에는 다리가 포격 등으로 무력화되어 육로가 봉쇄당할 수 있다는 게 문제될 수 있다. 한편 해로는 인천에서 옹진반도로 가는 부포항로가 여전히 살아남아 옹진반도의 생명선이 되어줄 것이다.
  • 철도교통: 해옹선은 해주 등 타지역과 연결이 끊겨 버려 신강령역에서 옹진역까지 짧은 구간만 남기 때문에 전쟁후 동해북부선처럼 실질적인 운행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옹선과 부포선의 분기점이 38선 이남이니 해옹선 잔여 구간과 부포선을 직결시켜 운행해 고성과 파주의 통일전망대처럼 옹진에도 통일전망대를 만들어 연계시키는 등의 등등의 전방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거나[11] 연백평야와 연결되는 다리를 건설할 경우 토해선과 연결시켜 활용할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 군사: 방어에는 불리하다. 사실상 섬이나 다름없는 위치도 그렇고, 옹진반도 방어선을 가장 좁게 만들 수 있는 태탄~취야리(현 벽성읍)보다 더 남쪽인 반도의 폭이 넓어지는 곳에 38선이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38선에서 4km 지점에 옹진광산, 6km 지점에 옹진읍이 있어 민통선이 생긴다면 읍내 코앞이 민통선이 된다. 섬과 다를 바 없는 위치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엄연히 육지이지만 인근의 서해 5도와 연계하여 육군이 아닌 해병대가 강안경계가 아닌 육지경계로서 GOP를 담당하고 DMZ내의 GP까지 담당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옹진반도는 앞서 언급했듯이 면적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라서 아예 사단을 하나 더 창설하여 옹진반도와 그 일대의 서해5도를 담당하게 했을 듯하다.
  • 북한의 해주항은 항만 기능을 상실했을 것이다. 해주의 용당포[12]와 옹진반도 사이 바다의 폭은 불과 700m에 불과하다. 대청도연평도는 완전한 최전방까지는 아니게 된다. 그로 인해 유사시 옹진반도를 지원해주기 위한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다.

6. 남북통일 이후의 전망

옛날처럼 탄탄한 지역경제를 지니게 될 지 의문이다. 부존량이나 채산성을 확인해야겠지만 80년 전 마산면을 옹진읍으로 만들어 줬던 수대리 광산이 과연 21세기인 지금에도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온천업은 전국구로 보면 온양이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황해도 내에서도 연백의 연안, 배천과 송화 등 경쟁자가 너무 많다. 광복 전에는 서울에서도 많이 놀러왔다고는 한다. 그나마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온천 타이틀로 승부를 볼 수 있으니 그렇게까지 암울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 외에는 농사를 위시한 농업과 전쟁 전부터 유명했던 양식 같은 수산업 정도다. 단 사곶은 수심이 얕은 게 약점이다.

또한 지리적으로 봐도 옹진군은 남북통일 이후에는 서울, 경인 지역을 대비하는 전략적 요충지가 될 확률이 높다.
[1] 북한에서는 군 소재지는 무조건 군의 이름을 딴 읍에 둔다.[2] 일부 지역은 벽성군에 속했다.[3] 북한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역별인구에 나온 전체인구와 전국인구의 전체인구가 다르다. * 특히 지역별인구에 나온 연령별 남녀 인구 총합은 20대에서 성비가 여성이 남성에 비해 2배나 많은 세대도 나타나는데 이것은 북한군의 인구가 지역별 인구 통계에 빠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4] 38선 이남에 남은 나머지 지역은 각각 서면과 북면에 편입시켰다.[5] 평산군에서 적암면을, 금천군에서 산외면과 서북면을 떼와 연백군에 편입했고 인민위원회는 적암면에 두었다.[6] 한국전쟁: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 정병준, 돌베개. 171~174페이지[7] 개전 초기의 급박한 전황에 피난해서 그런지 가장과 장남 정도만 고향을 떠나 피난한 사람들이 많았다.[8] '동발'은 갱도가 무너지지 않게 받치는 기둥이다. 한국에서도 쓰는 표현이다.[9] 애초에 서해 5도도 우도와 그 부속도서 일대를 제외한 나머지 섬들은 황해도였지만 이 섬들로는 도를 존치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편입한 것에 가깝다. 근데 이와 같은 이유로 통째로 인천광역시로 편입하기엔 애매하면서도 황해도로서 존치하기도 애매하다.[10] 물론 이렇게 하더라도 인천광역시장이 황해도지사를 겸직하고 황해도 지역의 광역 사무를 인천광역시청에서 담당함으로써 사실상 인천에 소속될 가능성이 높다.[11] 이렇게 되면 총연장은 29.2km로 구 수인선보다 길다. 협궤긴 하지만 어차피 섬이나 다름없으니 타지와의 연계는 신경쓸 필요 없긴 하겠다.[12] 38선 이남이었지만 미국과 소련의 합의로 북측에 넘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