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23:12:01

아피온카라히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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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1. 개요

Afyonkarahisar

튀르키예 중서부의 도시. 퀴타히아에서 동남쪽으로 60km, 우샤크에스키셰히르에서 각각 동쪽과 남쪽으로 80km, 으스파르타에서 북쪽으로 85km 떨어진 평지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30만명으로, 동명의 도의 주도이다. 다소 긴 지명은 아피온, 카라, 히사르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 '아편', '검은', '성채'를 뜻한다. 따라서 '검은 아편 성채'란 뜻인데, 실제로 일대에 펼쳐진 양귀비꽃 농장은 아프가니스탄 다음가는 아편 산지이다.[1] 과거에는 하파누와, 아크로이논, 니코폴리스, 카라히사르 등으로 불렸다. 사실 근래까지 아피욘이라 불렸으나 아편만 연상된다며 2004년 의회에서 현재의 지명으로 바꾼 것이다. 다만 현지에서는 여전히 아피욘이라 통용된다. 어떻게 도시 이름이 아편 아프욘은 아편에 가려져 있지만 각종 특산물과 볼거리가 많아 내세울 것이 많은 도시이다.

우선 튀르키예 대리석 매장량의 12%가 일대에서 생산되는데, 고대부터 양질의 흰색 대리석이라 칭송되었다. 도키미안 혹은 파보나제토라 불린 아피욘산 대리석은 판테온 하기아 소피아, 성 베드로 대성당, 에페소스, 렙티스 마그나 등지에서 활용되었다. 오랜 요리 문화 역시 발달하였는데, 튀르키예식 소세지인 수죽 (Sucuk)과 이를 활용한 수죽 되네르, 카이막 로쿰 등이 대표적인 향토 요리이다. 튀르키예 요리에 관심이 있다면 가볼만 하며, 일대에는 온천도 많다. 역사적으로 서부 해안 평야와 아나톨리아 고원을 이어주는 요충지로써 740년 아크로이논 전투의 장이었고, 튀르키예 독립 전쟁 시에도 격전지였다. 도시 한복판에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 풍경 때문에 카파도키아, 특히 우치히사르 쪽과 헷갈리기도 하나 두 지역은 약 300km 가량 떨어져 있다. 인근 유적지로는 동북쪽 60km 지점의 아모리움 (아모리온)과 서남쪽 70km 지점 디나르에 있는 메안데르의 아파메아 등이 있다.

시가지는 서쪽의 산지와 동쪽의 반원형 순환도로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 서부의 구도심은 성채가 자리한 200m 높이의 바위산을 중심으로 서쪽에 울루 자미 (대사원), 동쪽에 게딕 아흐메트 파샤 이마레트 모스크가 위치한다. 전자는 13세기 셀주크 건축, 후자는 15세기 오스만 건축 양식의 걸작이다.[2] 또한 구도심에는 오스만 시기 전통 가옥들이 남아있고, 승전 박물관이 있다. 동남쪽 신도심 방면에는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시가지의 동쪽 외곽에는 공군기지, 동북쪽 외곽에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단지가 있고, 북쪽 외곽에는 아프욘 코자테페 대학교가 자리한다. 철도 교통에 있어 이즈미르콘야를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이다. 해발 1,000m의 고지대에 위치하여 여름에 는 35도를 잘 넘지 않고 겨울에는 영하 10도까지 내려간다.

사실 관광지로 개발되기에 적합한 매력적인 동네지만 넘사벽 주력 관광지인 파묵칼레와 카파도키아 사이에 덩그라니 놓여 있어 찾는 이가 많지 않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파묵칼레를 보고 더 내륙으로 나아가 아피욘에 이르기 보다 해안 방면으로 꺾어 페티예나 안탈리아 쪽으로 향한다. 카파도키아와 투즈괼 호수를 둘러본 이들 역시 서쪽으로 직진하여 아피욘으로 향하는 것보다는 서북쪽의 앙카라나 서남쪽의 콘야 방면으로 틀어버린다. 주요 도시들에서 거리도 꽤 있고 매력은 있지만 넘사벽의 다른 관광지들에 가리어져 있어 제대로 각광받지 못하는 것.

2. 역사

기원전 1350년경 히타이트 국왕 수필룰라우마 1세가 성채를 세운 것에서 비롯되었고, 당시 지명은 하파누와였다. 이후 프리기아, 리디아 왕국, 아케메네스 제국, 셀레우코스 왕조, 페르가몬 왕국을 거쳐 로마 제국령이 되었다. 고대의 지명은 아크로이논이었는데, 740년 아크로이논 전투에서 승리한 레오 3세가 '승리의 도시'란 의미인 니코폴리스로 개칭하였다. 11세기 말엽 룸 셀주크령이 된 후에는 '검은 성'이란 의미인 카라 히사르라 명명되었다. 13세기 중반 룸 셀주크는 일 칸국의 속국이 되었고, 몽골측 섭정이 실권을 장악하였다. 그러한 섭정 중 2번째이자 마지막인 파크르 앗 딘 알리 (사히브 아타)는 권신이 되기 전인 1275년부터 카라히사르 일대를 봉토로 삼았고, 1288년 그가 사망한 후에도 자손들이 계속 통치하였다.

이를 사힙 아타 왕조라 부른다. 1327년 8월 일 칸국의 룸 총독이자 추판 왕조의 선조인 티무르타슈가 봉신 에레트나를 파견해 카라히사르를 점령하였다. 사힙 아타의 나시르 웃딘 아흐메드는 게르미얀 왕조로 피신하였고, 이듬해 티무르타슈가 숙청된 후에야 복위하였다. 다만 이로써 사힙 아타 왕조는 게르미얀 조에 의존하게 되었고, 명목상의 종주국이던 일 칸국이 붕괴한 후인 1341년 게르미얀 조의 메흐메트 베이에게 멸망당하였다. 그후 반세기 가량 게르미얀 조의 지배를 받던 카라히사르는 1392년 바예지트 1세에게 점령되었고, 1429년 완전히 오스만 제국에 병합되었다.

오스만 시기 도시는 양귀비꽃 재배를 통한 아편 생산으로 부유해졌고, 지명 자체가 아피온으로 바뀌어버렸다. 1902년 화재로 시가지 일부가 전소되었고, 1차 대전기에는 갈리폴리 전투의 영국군 포로들이 카라히사르 성채 기슭의 버려진 아르메니아 암굴 교회에 수감되었다. 튀르키예 독립 전쟁기에는 1920년 여름 그리스군이 점령했다가 1922년 가을 수복되었고, 무스타파 케말의 동상이 세워졌다. 1960년대까지 아편 생산을 주업으로 삼던 도시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압력 하에 밭을 갈아엎었으나 진통제 등 의약품 생산 목적으로 튀르키예 정부의 관리 하에 부분적으로 재배가 재개되었다.

[1] 현재도 세계 최대의 의료용 아편 생산지이다.[2] 특히 울루자미는 튀르키예 내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초기 튀르크 건축물로, 내부가 목조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