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07-17 07:20:57

아미가

코모도어의 컴퓨터
CPU 모델
MOS 테크놀러지 6502
(1976~1994)
KIM-1 코모도어 PET 코모도어 VIC-20 코모도어 64 코모도어 플러스/4 코모도어 128
코모도어 CBM-2 코모도어 SX-64
코모도어 MAX Machine 코모도어 에듀케이터 64 코모도어 16
모토로라 68000
(1985~1996)
아미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989px-Amiga500_system.jpg
아미가 500 (© Bill Bertram 2006, CC-BY-2.5 — Attribution. You must give the original author credit.), 주소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miga_1200_with_mouse%2C_drives.jpg
아미가 1200 (저자: Boffy b), 주소

Amiga

1. 개요2. 역사와 특징
2.1. 영상 분야2.2. 음악 분야2.3. 게임
3. 현재4. 기타5. 발매 모델6. 외부 링크

1. 개요

코모도어 인터내셔널에서 개발한 16비트/32비트 컴퓨터 시리즈. 1985년부터 1996년까지 판매되었다.

계보로 보자면 코모도어의 전작인 8비트 컴퓨터 코모도어 64의 직계 후손이며 코모도어 128의 발전형이지만 호환성은 없다. 코모도어 64와 마찬가지로 컴퓨터 업계에서 전설로 남은 기종. 서구권 쪽에는 아직도 매니아층이 존재하는 클래식 컴퓨터라는 점에서는 코모도어 64MSX와 비슷한 데가 있다.

아미가(Amiga)라는 이름은 스페인어로, 아미고(Amigo, 친구)라는 뜻의 여성형이다. 그러니까 여자친구. 쏘스뮤직, 버디: 응?

2. 역사와 특징

시리즈의 첫 작은 1985년에 만들어진 아미가 1000이다. 이 컴퓨터가 유명한 건 당대의 모든 16비트 컴퓨터 중에서도 최상급이었던 그래픽 처리 성능 때문이다. CPU 등의 일반적인 하드웨어 스펙은 매킨토시, 아타리 ST 등 당대의 경쟁상대들과 비슷했지만 아미가가 그래픽과 사운드쪽에 특출한 성능을 냈던 건 각종 전용칩을 잔뜩 때려 박았기 때문이었다. 정지 화상만이라면 매킨토시 II도 훌륭했지만 게임이나 멀티미디어 쪽으로 가면 상대가 안 되었다. 동 시대에 견줄 만한 멀티미디어 성능을 지닌 개인용 컴퓨터라면 일본의 X68000 정도밖에 없을 수준이었는데 이것도 2년 늦게 나왔다.

원래 아미가는 차세대 게임기로 개발되던 물건이었다. 아미가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에서 아타리의 자금 지원을 받아 게임기용으로 그래픽과 사운드를 처리할 전용 칩셋들을 만들고 있었는데 아타리 쇼크가 터지는 바람에 게임기 시장이 곤두박질치자 만들고 있던 하드웨어를 게임기 대신 범용 컴퓨터쪽으로 방향을 돌려 재설계했다. 나중에 코모도어가 아미가 코퍼레이션을 인수하면서 '코모도어 아미가 1000'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85년 여름 처음 선보인 아미가 1000은 1677만색[1]의 팔레트 범위 안에서 4096색을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는 그래픽 성능에 멀티채널 스테레오 사운드 지원이라는 당대 최고의 하드웨어 스펙에 개인용 컴퓨터로는 최초로 멀티태스킹을 구현했다.[2] IBM PCEGA가 겨우 64색 팔레트 중 16색을 동시 표시하는 게 고작이었고 대부분의 컴퓨터가 16색, 잘해봐야 256색을 표현하던 시절이라 아미가의 그래픽 성능은 가히 압도적이라고 할 만한 수준이었다. 가격도 모니터 포함 $1600 대로 성능에 비하면 싼 편이었다. 당시 경쟁 기종들의 가격은 IBM PC AT>>매킨토시>>아미가>>아타리 ST 순이었다. 물론 IBM PC의 경우 가격이 훨씬 싼 IBM PC 호환 기종쪽이 보급되었지만 어쨌거나 아미가의 가격대 성능비는 당시로서는 대단한 것이었다.[3][4]


아미가 500의 그래픽 데모 영상. 80년대 당시에는 타 기종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굉장한 레벨이었다.

이런 획기적인 물건이었음에도 코모도어의 삽질[5] 때문에 큰 인기는 끌지 못하고 있다가 1987년 가격을 반으로 떨어뜨린 아미가 500이 나오면서 홈 컴퓨터 및 게임기로 대박을 터뜨리며 1980~1990년대를 대표하는 전설의 기종으로 등극한다. 미국에서는 애플, IBM 등의 강자에게 밀리고 있었고 미국이나 일본 시장의 영향을 크게 받은 우리나라에서도 보급률이 매우 낮았지만 유럽 시장은 아미가가 거의 평정했다.[6]

운영 체제로는 그래픽과 멀티미디어 성능의 장점을 살린 GUI OS인 '아미가 OS'를 사용했다. 물론 GUI OS만 있는건 아니고 전통적인 CUI 방식의 아미가도스(AmigaDOS)도 있었다.

초기기종인 아미가 1000, 500, 2000은 모토로라 68000을 사용한 16비트 컴퓨터였지만 3000 이후의 후기 기종들은 모토로라의 68020, 68030 계열 CPU를 장착하면서 32비트 컴퓨터로 발전했다.

재미있는 것은 주변기기 중 IBM PC나 매킨토시의 소프트웨어를 구동시키기 위한 호환 보드가 있었다는 것. 매킨토시는 아미가와 동일한 모토로라 680x0 계열의 CPU를 사용하고 있어 상호 호환이 수월했다. 매킨토시의 경우 호환 보드 없이 단순히 전용 소프트웨어를 실행시키고 매킨토시 OS가 포함된 플로피 디스크를 넣어 부팅하는 일종의 가상 머신 소프트웨어로도 나오기도 했다. 당시 매킨토시 OS의 시스템과 파인더는 매우 슬림해서 800 KB 3.5인치 플로피 디스켓 한 장에 충분히 들어가고 남을 정도였다. 반면 CPU가 아예 다른 IBM PC 호환 보드는 80x86 CPU를 때려 박아서(!) 상호 호환이 가능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VGA사운드 블라스터의 등장으로 IBM PC 호환기종의 멀티미디어 성능이 발전하면서, 시장에서 점점 IBM PC 호환기종에 밀려 나갔다. 코모도어는 최후의 수로 1993년 '아미가 CD-32'라는 코모도어 64의 C64 게임용 콘솔처럼 게임만 가능한 세계 최초의 32비트 게임기를 냈지만 이듬해인 1994년 파산하였고, 2년후인 1996년에 아미가 시리즈는 단종되었다.

2.1. 영상 분야

1990년대 당시 그래픽스 쪽에서 두각을 보인 한 축인 매킨토시가 출판(DTP)이나 시각 디자인 쪽에 특화되는 경향을 보였다면 아미가는 주로 영상 분야에 특화되는 경향이 있었다.[7] 1990년에는 뉴텍의 동영상 편집 하드웨어/소프트웨어인 비디오 토스터(Video Toaster)[8]가 이 기종으로 나왔고, 요즘은 오토데스크Maya3ds max에 밀려 위세가 예전 같지 않지만 한때 3D 그래픽스 툴로 유명했던 뉴텍의 LightWave 3D도 원래는 아미가용 소프트로 출발했다.

영상 분야에서는 표준 장비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당시에 KBS나 MBC같은 주요 방송국에서도 영상 편집과 이펙트용으로 아미가를 사용했다. # 또한 당시 방송국에서 사용하던 한글 자막을 방송 화면에 추가하는 기능을 지닌 소프트웨어가 아미가용 소프트웨어였으며 위에 언급한 비디오 토스터와 함께 90년대 후반까지도 사용하였다. 대학 중 방송 관련 기술을 가르치는 학과의 영상 기기 실습실에는 기본적으로 아미가 PC가 놓여져 있었다. 이런 영상 분야에서의 위상 덕에 코모도어 64가 국내에 그다지 알려지지 못한데 비해 아미가는 당시 국내에서도 마이컴 같은 컴퓨터 잡지에서도 아미가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는 지면이 소량이나마 지속적으로 할애되었을 정도였고, 1990년을 전후하여 한국 지사인 코모도어 코리아가 설립되면서 아미가 500, 2000이 국내에 정식으로 발매되기도 하였다.# 참고로 아미가 500과 2000은 확장성을 제외하면 모든 스펙이 동일하기에 비디오 토스터나 68030 가속 보드 등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는 2000보다는 500이 나은 선택이었다.

앤디 워홀이 아미가 1000을 작업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2.2. 음악 분야

샘플링 모듈 음악을 뜻하는 '아미가 음악'의 어원이기도 한데, 앞서 말했듯이 아미가의 사운드 성능은 상당히 뛰어나서 당시 음악을 샘플링 모듈 기법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게 아미가 컴퓨터밖에 없었다. 아미가는 4개의 8비트 PCM 샘플링 베이스의 스테레오 사운드 채널을 가지고 있어 당시의 PSGFM 사운드 칩셋에서는 들어볼 수 없는 폭넓은 음색을 들려주었다. IBM PC에서 제대로 된 PCM 사운드를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은 1990년대 초반에 사운드 블래스터 시리즈가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였으니 아미가의 사운드 성능은 당시에는 시대를 앞서갔다고 할 수 있다.

나중에 IBM PC가 발전하면서 이후에 IBM에서도 모듈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되었지만 이 분야의 원조가 아미가인 것도 있고 PC에 아미가에서 사용하던 기술을 이식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불리기는 여전히 아미가 음악이라고 불린다. 이런 아미가 음악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트랙커'(tracker)라고 한다.[9] 당시 아미가 게임들의 음악도 트래커로 작곡해서 동시대의 다른 컴퓨터에 비해 높은 퀄리티를 보여주었다.


아미가 OS로 제작한 트랜스.


트래커로 제작한 음악들.

일본의 아티스트 히라사와 스스무가 아미가를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그가 1980~90년대에 제작한 뮤직비디오가 아미가로 제작되었다.(2D OR NOT 2D, Grid 등등)참고로 엄청 약 빨았다. 1980년대 말부터 사용하기 시작해 무려 2000년대 초까지 사용하였다.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주요 개발자 중 하나인 마스다 준이치가 작곡에 사용했던 컴퓨터였다. 먼저 아미가로 곡의 데이터를 만들고 게임보이용으로 데이터를 변환하는 형태로 만들었다고. 인터뷰나 블로그 등을 보면 최소 포켓몬스터 금·은때까지는 사용한 듯.

2.3. 게임

동시대의 컴퓨터들과 비교하기 힘든 그래픽과 사운드 성능은 당연히 게임에도 활용되었다. 1980년대 중후반에 아미가로 나온 게임들과 타 기종(PC, 매킨토시 등)으로 나온 동일한 게임을 비교해보면 그래픽과 사운드 수준에서 그야말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IBM PC 게임이 잘해봐야 EGA를 지원하던 1989년 무렵부터 슬슬 국내에 소수지만 아미가가 취급되면서 컴퓨터 잡지의 광고면 등에 유통되는 아미가 게임의 스크린샷이 실리기 시작했는데 한눈에 봐도 PC와 차이가 확 나는게 눈에 띌 정도. 코모도어 64애플 II 의 관계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 1990년대에 널리 사용되었던 그래픽 툴인 디럭스 페인트도 원래 아미가 게임 개발용으로 제작된 것이다.

IBM PC 시장에서 VGA와 사운드 블래스터가 일반화되는 1991~92년 무렵에 와서야 그나마 DOS 게임이 아미가 비슷한 퀄리티로 나오기 시작했고 완전히 역전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였다. 아미가가 하위 호환의 문제로 인해 최하위 모델인 아미가 500을 기준으로 대부분의 게임이 나왔다는 걸 생각하면 IBM PC와 비교했을때 약 5~6년간 시대를 앞서간 셈이었다. 동시대의 컴퓨터 중 게임 성능에서 아미가에 견줄만한 컴퓨터는 기껏해야 샤프전자X68000 정도고 실제로 성능은 X68000이 좀 앞서긴 하지만 이마저도 2년이나 늦은 1987년에 나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미가의 게임 성능은 당시에는 가히 놀라운 수준이었다. 게다가 PC에는 없는 하드웨어 스프라이트 기능마저 갖추고 있어 움직임이 많은 액션, 슈팅 게임 등을 제작하기에도 PC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DOS와 아미가 게임을 비교한 영상이다. PC-아미가 플랫폼으로 나온 게임들의 퀄리티를 비교해보면 그래픽 차이가 상당하다. 삼국지 I 삼국지 11 정도 차이가 난다.[10]

다만 아케이드 이식작은 작품들에 따라 수준차가 다양하게 갈렸다. 원작 수준에 가까운 게임들부터[11] 좀 떨어지지만 그럭저럭 비슷하게 옮겨온 게임들,[12] 심각할 정도로 구린 게임들[13]까지 천차만별이다.

당시 컴덕이나 게이머 꼬꼬마들의 화제 중 하나가 잡지에 실린 '아미가 컴퓨터용 스트리트 파이터 2' 였는데, 이식 시기도 아미가판이 콘솔 최초 이식작인 슈퍼패미컴판(1992년 6월)보다 앞섰기 때문에 해당 기사는 꼬꼬마들에게 환상을 불어넣기 충분했지만 실제 아미가 버전의 스트리트 파이터 2는 그런 동경의 나래를 펼치던 이들을 무참히 배신하는 퀄리티였다. 그나마 IBM PC도 아닌 아미가는 일반인들이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물건이라 실상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위안거리.

아미가의 아케이드 게임 이식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아케이드 게임이 출시된 시기에 비해 아미가는 1985년에 나온 노후된 하드웨어였기 때문이었다. 날이 갈 수록 발전하는 아케이드 머신에 비해 나온지 오래된 PC로서는 따라갈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예나 지금이나 게임 이식 작업은 원 개발사의 기술 유출 등을 이유로 한 비협조나 스케쥴 문제 등으로 인하여 거의 게임을 새로 만들다시피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때문에 이식 완벽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미가로 이식된 게임들중 괜찮게 이식된 게임의 그래픽은 컬러수가 조금 부족한걸 빼면 아케이드와 매우 흡사한 것을 보면 막강한 그래픽 성능을 실감케 한다.

여담으로 전설의 막장 쿠소게로 유명한 소단님소드 오브 소단의 원작도 아미가 버전이었다. 메가드라이브판의 처참한 퀄리티로 유명해져버린 게임이지만 원작인 아미가판은 매우 멀쩡한 게임이다.

3. 현재

대부분의 클래식 컴퓨터들과 마찬가지로 현역에서는 은퇴했다. IBM PC 호환기종과 매킨토시(그중에서도 인텔 맥)을 제외한 나머지 클래식 컴퓨터들의 공통적인 종착역이다. 그래도 한 때 잘 나갔던 컴퓨터라서 꽤 두터운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고, 그래서 오늘날에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1994년 코모도어가 파산한 이후 코모도어의 자산들은 여러 회사에 팔려나갔는데, 그 중 아미가는 아미가, Inc로 법인화되어 여러 회사에 팔려다녔다. 이 아미가, Inc의 라이센스를 받은 아이 테크에서 2002년 4월 아미가 컴퓨터의 후속작으로 프리스케일 PowerPC CPU 기반 컴퓨터 '아미가원'(AmigaOne)을 출시했다. 그러나 판매 부진으로 아이 테크는 3년만에 포기했고 현재는 에이큐브 시스템이나 A-eon Technology의 두 회사가 판매하고 있다.

아미가 OS 역시 코모도어가 파산한 이후에도 꾸준히 개발되어 현재도 현역으로 가동 중이다. 현재는 아미가, Inc의 라이센스를 받아 하이페리온 엔터테인먼트가 개발한 PowerPC 기반의 4.1이 최신 버전이다. 공식 홈페이지 아미가원 컴퓨터의 기본 OS로 구동되고 있으며, 680x0 기반의 클래식 아미가용 소프트웨어를 에뮬레이션으로 구동 가능하다. 같은 PowerPC 기반 하드웨어라고 매킨토시에 설치 시도한 사람들이 있으나 장치 드라이버 소프트웨어 문제 때문에 불안정하다고 한다.

Minimig라는 오픈 소스 하드웨어도 있는데, FPGA 기술을 이용하여 클래식 아미가의 하드웨어를 원칩 형태로 구현한 것이다. 원칩 MSX와 비슷한 발상의 물건.

에뮬레이터로는 윈도 기반의 WINUAE라는 에뮬레이터가 가장 오래되고 유명하다. 멀티 플랫폼으로 제작되고 있는 FS-UAE라는 에뮬레이터도 있다.

2016년 기준으로 아미가를 사려고 한다면 아미가 500, 아미가 1200를 사는게 무난하다. 그중에서도 아미가 1200이 500보다 나은 CPU, 칩셋을 가지고 있어서 아미가 500 소프트웨어와 호환이 되고, 확장성도 좋은 편이라서 이더넷카드로 인터넷을 하거나 하드디스크 대신 CF 카드를 쓸수 있고, 확장 슬롯을 이용하여 CPU와 램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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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팀 첼시 FC도 1993/94 시즌 당시 유니폼에 아미가 로고를 달고 뛴 바 있었다.

5. 발매 모델

  • 아미가 1000(1985년 7월 23일)
  • 아미가 2000/1500/2500(1987년 3월)
  • 아미가 500/500 Plus(1987년 4월)
  • 아미가 3000/3000T/3000UX(1990년 6월)
  • 코모도어 CDTV(1991년 3월)
  • 아미가 600(1992년 3월)
  • 아미가 1200(1992년 10월 21일)
  • 아미가 4000/4000T(1992년 10월)
  • 아미가 CD32(1993년 9월 17일)

6. 외부 링크

amiga.org 아미가 커뮤니티 사이트
English Amiga Board
Aminet 아미가 소프트웨어 아카이브 사이트
http://amigastore.eu/en/ 아미가 하드웨어 판매사이트


[1] 오늘날의 PC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색상 범위이다. 윈도의 24비트/32비트 컬러 모드에서 사용하는 색상이 1677만색.[2] 이게 얼마나 대단하냐 하면, 당시 MS-DOS에서는 꿈도 못 꾸고 매킨토시에서도 보통 사용하는 파인더가 아닌, 멀티파인더라는 별도의 멀티태스킹 전용 펌웨어로 부팅해야 제한적인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던 시절에 아미가는 기본 제공되는 OS만으로도 뮤직 프로그램을 백그라운드에서 돌려 음악을 감상하며 동시에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그림을 그리는게 가능할 정도였다.[3] 하지만 1985년 당시 1600달러면 당시 원화 환율로 환산하면 우리 돈으로 140만원이 넘는다. 당시 대졸 신입사원 초봉이 20~30만원, 서울시내 사립대학 한학기 등록금이 50~60만원, 개포동 주공아파트 11평형이 1200만원이었다는것을 생각하면 성능에 비해서 싸다는 것이지, 결코 싼 물건은 아니었다. 그 당시 컴퓨터는 오늘날과 달리 대단히 비싸 극히 일부 계층만이 사용했다. 1988년 기준 대우전자의 MSX 기종인 CPC-400 시리즈가 RGB 모니터까지 80만원이 훌쩍 넘어갔고 IBM PC XT 호환 기종이 신문 광고 기준으로 100만원대 중반이었다. 1989년 교육용 PC가 16비트 IBM PC 호환기종으로 결정되고 세운상가표 XT가 나온 다음에 본체+모노크롬 모니터 가격이 100만원이 됐다고 좋아하는 수준이었다.[4] 여담으로 당시 하드디스크를 장착한 매킨토시나 MS-DOS 및 윈도우 호환 기종에서 전원을 끄기 전에 반드시 행했던 하드디스크 헤드 파킹이 아미가에서는 펌웨어 레벨에서 자동으로 실행되었기 때문에 좀 더 편리하게 전원을 끌 수 있었다. 여러모로 시대를 앞서갔던 기종.[5] 아미가 500에 CD-ROM 드라이브만 넣은 아미가 CDTV나, 아미가 500의 마이너 업그레이드 버전인 아미가 600을 출시한지 반 년만에 CPU, 칩셋 모두 아미가 600보다 크게 업그레이드된 아미가 1200 출시 등 코모도어의 삽질은 아미가가 수명을 다할 때까지 계속됐다.[6] 사실상 보급된 아미가의 대부분은 500이었다. 그래서 2000, 3000 등 고성능 후계기들이 나온 뒤에도 대부분의 아미가 소프트웨어, 특히 게임은 500을 기준으로 제작되었다. IBM PC에서도 80386 CPU와 VGA 자체는 1987년경에 나왔지만 1990년대 초까지 상당수의 소프트웨어가 XT와 CGA/EGA 환경을 상정하고 제작되었던 것과 비슷하다.[7] 그러나 지금 와선 아미가의 포지션(영상/음악 제작 특화 등)은 현재의 매킨토시(이하 맥북/아이맥 등)가 이어받았고, 그래픽스-시각디자인 쪽은 어도비 CC 시리즈가 점점 윈도우쪽에 최적화 되면서 윈도우쪽으로 특화된 상황.[8] 카드와 소프트웨어로 구성. 당시 유일하게 3D 애니메이션, 24비트 그래픽, 비디오 저장과 편집, 디지털 효과 추가, 자막 추가 등이 가능했던 비디오 편집 하드웨어/소프트웨어였다. 덕분에 방송사에서 많이 사용했다. 비디오 토스터 홍보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옛날 방송을 기억한다면 익숙한 효과들이 많을 것이다.[9] 프로 트랙커, 스크림 트랙커, 패스트 트랙커, 임펄스 트랙커, 모드플러그 트랙커 등.[10] 실제로는 삼국지 2삼국지 6 정도의 차이가 난다. 최소 5년 차이.[11] 버블보블, 알카노이드, 골든 액스,[12] R-TYPE, 미드나이트 레지스탕스[13] 아웃런, 파워 드리프트, 스트리트 파이터2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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