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네그로인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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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몬테네그로인은 몬테네그로의 주요 민족이다. 혈통상 남슬라브족에 속하며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보슈냐크인과 언어, 문화에서 매우 가깝다. 다른 세르보크로아트 민족들에 비해 인구가 많이 적은 편이다. 몬테네그로 내 27만 9천여 명이 거주하며 인구의 절반 정도에 해당한다. 이웃 국가 세르비아 내에도 공식 통계상 몬테네그로인 4만여 명(세르비아 전체 인구의 0.54%)이 거주하며, 실제 몬테네그로인 조상을 둔 경우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독일과 프랑스 내 각각 3만여 명, 룩셈부르크에도 1만 2천여 명이 거주하는데, 실제로 EU 국가에서 체류하는 인구는 이것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외에도 통계상으로 미국 내 4만여 명, 아르헨티나 내 3만여 명의 몬테네그로계 이민자 및 그 후손들이 거주한다. 다만 몬테네그로의 출산율이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보다 높기 때문에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에서 몬테네그로를 본받자는 말이 종종 나오기는 한다.
2. 역사
몬테네그로인들은 슬라브족이 이동할 때, 몬테네그로 지역에 정착했던 일리리아인, 켈트족, 로마인 등의 여러 민족들이 슬라브족과의 혼혈 및 슬라브화하면서 생겨났다. 몬테네그로인들의 조상들은 두클랴라는 나라를 이루었으며 두클랴는 동로마 제국의 속국이었으나 가톨릭과 정교회의 점이지대에 있었던 탓에 세르비아의 본토라고 할 수 있는 라쉬카보다는 가톨릭의 영향력이 강했다. 두클랴는 콘스탄틴 보딘 사후 쇠퇴하다가 1186년 세르비아 대공국의 스테판 네마냐에게 병합되었다. 세르비아 제국이 분열된 후에는 제타 공국이 들어섰다가 오스만 제국과의 오랜 전쟁 끝에 결국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몬테네그로 지역은 국토가 산이 많고 척박해서 세입이 적은데다가 교통이 불편한 문제로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 사실상 독립된 지역이나 마찬가지였다. 페트로비치 가문이 17세기 후반부터 사실상 자치 독립 왕국을 구성하여 근대까지 통치를 지속하였고, 베네치아 공화국이 몬테네그로 해안 지역을 18세기까지 장악하면서, 베네치아 문화가 몬테네그로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이 과정에서 밀레트 제도 하에서 그리스계의 통치를 받아온 내륙의 세르비아인과 여러 차이가 생겨났다.
오늘날 몬테네그로인들이 자신들을 세르비아인과 구분되는 자랑거리로 삼는 시인으로는 페타르 페트로비치 니에고슈 2세를 들 수 있다. 공후이자 주교였던 그는 미남으로 유명했으며, 주교 옷 대신에 몬테네그로 군인의 옷을 입은 것을 선호한 것으로도 유명했으며 몬테네그로와 오스만 제국의 전쟁을 다룬 장편 서사시들을 남겼다. 오늘날에도 몬테네그로에서는 심지어 문맹인 사람들도 니에고슈의 대표작 '신의 화관'을 암송할 정도라고 한다.
19세기 말에 몬테네그로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영토가 되었고 20세기 후반에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 해체되면서 신유고 연방,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를 거쳐 이후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가 각각 분리되었다.
오늘날 몬테네그로에서 인구 조사 통계는 자가 조사에 의해 이루어지며, 이로 인해 통계 때마다 총 인구 수는 별 차이가 없는데도 불구 몬테네그로인, 세르비아인, 보슈냐크인 등의 비율이 많이 갈라지는 편이다. 보슈냐크인과 무슬림 몬테네그로인은 대부분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경계 지방인 산자크(Sandjak) 지방을 중심으로 거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