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31 21:20:02

말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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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oat_of_Arms_of_Comunidad_Andalucía.svg.png 안달루시아의 주
(아래에 있는 괄호 안은 중심도시)
알메리아 주
(알메리아)
카디스 주
(카디스)
코르도바 주
(코르도바)
그라나다 주
(그라나다)
우엘바 주
(우엘바)
하엔 주
(하엔)
말라가 주
(말라가)
세비야 주
(세비야)
말라가
Málaga
파일:malaga-spain.jpg
국가 스페인
지역 안달루시아
면적 398㎢
인구 569,005명
시간대 UTC+1 (서머타임: UTC+2)
말라가 (스페인)

1. 개요2. 역사
2.1. 말라가 타이파국2.2. 나스르 왕조2.3. 근대2.4. 근현대
3. 교통4. 관광5. 경제6. 스포츠7. 와인

[clearfix]

1. 개요

말라가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해안 도시다.

인구는 대략 600,000명으로 안달루시아에서 세비야에 이어 두 번째, 스페인 전체에서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세비야, 사라고사에 이어 여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다.

대개 여름에는 (세비야보다는 덜하지만)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가 지속되고 상당히 더운 편이어서 겨울에도 1월 정도를 빼면 낮에는 가벼운 긴팔 옷만 입고 다녀도 될 만큼 온화한 곳이다. 괜히 태양의 해안[1]이라는 별명이 붙은게 아니다. 일조량은 런던이나 파리의 두 배에 달한다. 건조한 사막 기후와 겹쳐 여름에는 산불도 종종 일어난다. 유럽의 거의 남쪽 끝이지만 위도상으론 충청북도 청주시와 비슷하다.[2]

비록 마드리드바르셀로나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국제 공항인 코스타 델 솔 공항이 있기 때문에 접근성은 나쁘지 않다. 특히 라이언에어[3]를 이용하면 영국, 프랑스 및 벨기에 등지에서 저렴한 가격에 오고 갈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2. 역사

파일:말라가 스페인 1.jpg
메디나의 로마 제국기 극장 유적

기원전 770년경 페니키아의 식민 도시로 세워져, 말라카 (Μάλακα)로 불렸다. 카르타고 공화국 령이던 도시는 2차 포에니 전쟁로마 제국령이 되었고, 팍스 로마나 시기 히스파니아 남부의 주요 항구 중 하나로 번영하였다. 서로마 제국의 쇠락 후 서고트 왕국령이 되었다가 552년 동로마 제국이 수복하여 스파니아 속부에 속하였다. 동로마 시기 항구가 재건되었고, 재차 번영하게 되었으나 615년 서고트 국왕 시세부토가 재점령하였다. 그리고 712년경 우마이야 왕조가 점령하여 이슬람화가 시작되었고, 아랍식으로 말라까 (مالقة)라 불렸다.

마그레브 지역과 가까웠던 말라까에는 많은 베르베르-아랍 무슬림 (일명 무어인)들이 정착하여 빠르게 이슬람화 되었고, 후우마이야 왕조의 전성기인 10세기 중반 무렵 카르타헤나를 대체하는 알 안달루스의 주요 항구로 번영하였다. 행정적으로도 아르히도니아를 대체하여 라이야 주의 주도가 되었다. 또한 이때부터 말라까는 포도 산지로 유명했다 한다. 다만 당시에는 술을 금하는 이슬람의 영향으로 와인이 아닌 건포도가 주요 생산품이었다. 11세기 초엽 후우마이야 조의 쇠락기에 말라까는 종종 코르도바 칼리파 위를 찬탈했던 함무드 왕조의 본거지였다.

2.1. 말라가 타이파국

파일:말라가 스페인.jpg
1035년 함무드 왕가에 의해 세워진 알카스바
1026년 이래로 함무드 왕조는 칼리파 위를 잃게 되었지만, 말라까와 세우타 일대는 그대로 유지하며 1차 타이파 시기 말라가 타이파 국이 되었다. 1056년 말라까는 지리 왕조그라나다 타이파 국에 병합되었다가 1066년 압바스 왕조의 세비야 타이파 국에 점령되었으나 1073년 그라나다 령이 되었다. 그러다 1090년대 아프타스 왕조의 바다호스 타이파 국을 거쳐 무라비트 왕조 령이 되었다. 1145년 무라비트 조가 해체된 후의 2차 타이파 시대에는 하순 가문이 다스렸다가 1153년 무와히드 왕조 령이 되었고, 1229년 다시 무와히드 조가 안달루스에서 철수한 후의 3차 타이파 시대에는 잔눈 가문이 다스리다가 1238년 이븐 잔눈의 사후 1239년 그라나다의 무함마드 1세가 점령하여 나스르 왕조령이 되었다.

2.2. 나스르 왕조

파일:히브랄파로 3.jpg
페니키아 요새를 929년 아브드 알 라흐만 3세가 재건하고, 14세기 유수프 1세가 증축한 히브랄파로 성채

13세기 무렵 말라까는 마그레브 지역과의 교역으로 크게 번영하였고, 시가지는 성벽 밖으로 확장되어 2개의 외곽 구역이 형성되었다. 나스르 왕조 시기에도 번영은 이어졌고, 1325년 이곳을 방문한 이븐 바투타는 안달루스 최대 도시 중 하나이며 특산물로 과일과 도자기가 있다고 기록하였다. 15세기에는 제노바 공화국 상인들이 자주 왕래하였고, 서부 지중해대서양을 잇는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였다.

인구 1만 5천의 도시는 1487년 5월, 카스티야-아라곤 왕국군에 포위되었다. 말라까 수비대는 2차례에 걸친 관대한 항복 조건을 모두 거부하고 결사 항전했으나, 술탄 무함마드 13세의 구원이 실패한 후 결국 항복하였다. 다만 언덕 위의 히브랄파로 성채는 끝까지 저항하다 점령되었다. 다른 안달루스 도시들의 항전 의지를 꺾기 위해 페르난도 2세는 주민들을 학살하거나 노예로 삼았고, 기독교도 주민들을 정착시켰다.

2.3. 근대

페르난도 2세 사후 외지 출신의 카를로스 1세 (카를 5세)가 스페인 국왕이 되자 말라가에서는 반란이 일어났으나 진압되었고, 이후 1530년까지 군정이 실시되었다. 17세기 들어 말라가의 인구는 3만 6천까지 늘어났다. 1704년, 말라가 동쪽 25km 지점의 벨레즈 말라가 근해에서 프랑스와 네덜란드-영국 해군 간의 말라가 해전이 벌어졌다. 이는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 최대의 해전이었다.

2.4. 근현대

19세기 들어 근대화가 되어 인구가 늘었으나, 1887-89년에는 필록세라 포도나무 병에 의한 경제 위기와 로 다시 감소하였다. 1936년에 시작된 스페인 내전에서 말라가는 1937년 2월,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군부에 의해 점령되었다. 그 직후 알메리아로 향하던 피난민 5천여명이 군부에 의해 학살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1962년에는 당시 서남쪽 외곽 지구이던 토레몰리노스에 스페인의 첫 게이 바가 문을 열어 성소수자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4]

3. 교통

말라가는 안달루시아의 도시 치고는 교통이 꽤 좋은 편이라 항공편 외에도 고속 버스, AVE, 페리[5]가 있다. AVE를 이용하면 마드리드 아토차 역에서 2시간 반 정도면 말라가역(Estación Maria Zambrano)에 도착한다. 미리 예약해 프로모 가격을 적용받을 경우 편도 40유로 정도지만 뒤늦게 하는 경우 80유로 가까이 되므로 미리 예약할 것을 추천. 고속 버스를 타면 마드리드는 6시간 반, 바르셀로나는 약 14시간이 걸린다. 스페인의 국토 면적은 생각보다 넓은 편이다.

혹시 주변의 다른 안달루시아 도시들(특히 그라나다)을 여행한다면 말라가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안달루시아의 중앙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대부분 2시간 안에 갈 수 있다. 비용은 버스 편도 기준으로 20유로 정도. 렌페로는 종종 10유로 짜리 표도 나오지만 대개 30유로 정도 생각하면 된다. 버스편으로도 오갈 수 있는데 대신 리스본마드리드행 장거리 고속 버스는 추천하지 않는다. 바르셀로나나 리스본 등으로 이동할 경우 부엘링이나 이베리아 익스프레스 같은 저가항공을 추천한다.

공항에서 19번 혹은 A번 버스(각각 1.4유로 / 4유로인데 A번은 시내 직행이라는 게 다르다.)를 타고 시내에 오면 라리오스(Larios) 거리에 들어서게 된다. 버스 뿐만 아니라 근교 전철 격인 세르까니아(Cercania)를 이용하면 13분 안에 도심에 도착한다(20분 간격). 편도 요금이 1.8유로고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세르까니아 역이 있으므로 세르까니아를 이용하는 것을 추천. 상점, 은행, 식당, 박물관, 호스텔, 유적지, 디스코텍 등 말라가의 볼거리 대부분은 이 거리 주변에 있고 도시 자체도 그렇게 크지 않으므로(알카사바, 히브랄파로 성도 걸어서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 높이에 있다) 아침 일찍 와서 욕심 좀 낸다면 하루 안에 도심 관광을 마칠 수 있을 정도다. 2014년부턴 경전철도 뚫렸는데 사실상 트램이다.[6]

4. 관광

파일:히브랄파로 2.jpg
구도심과 항만 일대

말라가는 관광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공항에 가면 각종 표지판에 스페인어, 영어와 더불어 독일어가 병기되어 있는데 그만큼 독일이나 네덜란드 사람들이 일광욕을 즐기기 위해 많이 오고 북유럽에선 노년층의 휴양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말라가 시보다는 그 주변의 베날마데나와 토레몰리노스 같은 곳이 그런 경향이 심하다. 1960년대부터 영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호텔촌과 쇼핑센터가 생겨났을 정도다.

파일:말라가 스페인 2.jpg
중세 성벽과 로마 시대 극장 유적
파일:히브랄파로.jpg
알카사바와 2중 성벽으로 연결된 히브랄파로 성

주요 관광지는 중세 시대 요새인 알카사바, 로마 시대 극장, 히브랄파로 성,[7] 말라가 대성당, 말라가 공원, 말라가 산맥 자연 공원, 말라가 음악 박물관, 말라가 공항 · 항공 수송 박물관, 피카소 미술관, 말라가 현대 미술 센터, 말라게따 해변 등이 있다.

피카소 관련 관광지가 넘쳐난다. 피카소에 관심이 있다면 피카소 미술관과 피카소 생가, 피카소 동상 등을 둘러 볼 수 있다. 이 동네는 공항 이름도 피카소고 피카소가 입던 줄무늬 옷도 팔고 피카소 술집에 피카소 파에야 식당과 피카소 젤라토도 있다. 현대미술을 좋아한다면 퐁피두 센터 말라가도 좋은 선택이다. 다만 피카소 고향이라 관광 상품이나 연고지가 많을 뿐이지, 작품의 질은 높지 않다. 말라가 소재 피카소 박물관만 하더라도 좀 덜 유명한 습작들 위주고, 중요한 작품들은 어차피 대외 세계 유수의 미술관이나 스페인 현지에서도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박물관이나 티센-보르네미사 박물관에 있지 말라가에 있진 않다.

파일:external/media-cdn.tripadvisor.com/la-playa-de-malagueta.jpg

말라가 시청(Ayuntamiento)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말라게따(Malagueta) 해변이 나온다. 말라게따라는 돌로 된 글자에서 사진을 찍기 좋다. 라리오스에서는 걸어서 10~15분. 워낙 가깝기 때문에 여름만 되면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곳이다. 심지어 봄이나 가을에는 톱리스 차림으로 태닝을 즐기는 여성들도 간혹 볼 수 있다. 여름에는 톱리스로 선탠하는 사람이 비키니 입고 선탠하는 경우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다만 이 곳이 인기 있는 이유는 단지 가깝기 때문이고 좀 더 호젓한 곳을 찾고 싶거나 물이 깨끗한 곳으로 가려면 네르하, 엘 팔로 등 멀지 않은 동네에도 좋은 해변이 많이 있다. 심지어 10월 서머타임이 끝나고 나서도 해변에서 선탠하거나 수영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치링기토스(Chiringuitos)라고 통칭하는 해변의 노상 음식점에서는 튀긴 멸치, 참치 샐러드, 오징어 구이 등 안달루시아 지방의 해안가 음식을 맛 볼 수 있다. 바람이 심하지 않은 맑은 날에만 문을 열고 영업시간이 일정하지 않으니 방문하려면 확인이 필요하다.

파일:external/www.rafaeldeloma.com/rafael-de-loma-calle-larios-vuelva-usted-manana.png

이외에 매년 4월 열리는 '말라가 부활절 축제'와 매년 8월 열리는 '말라가 축제' 또한 유명하다. 부활절 축제에서는 말라가에 주둔하는 스페인 외인부대 4연대의 거리행진에서 십자가를 들고 군가 El Novio de la Muerte(죽음의 사도)를 부르며 행진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동영상)참고로 그 유명한 왕의 오솔길이 이 말라가 주(Provincia)에 있다.


The Chemical Brothers의 Galvanize 뮤직 비디오 중반 이후의 신은 말라가 시내의 클럽에서 촬영되었다.

이 외에도 근교 미하스(Mijas)에는 경치가 좋은데다가 가옥들이 아담하고 예쁜 편이라서 당나귀 타고 투어하는 시내를 도는 코스가 인기 있다. 물론 유럽인들 기준으로는 남유럽에서 당나귀 타고 시내를 도는 사람들은 다리가 불편한 노인 관광객이라는 고정 관념이 있기 때문에[8], 젊은 동양인 관광객이 당나귀 타고 동네 돌면 좀 우습게 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5. 경제

파일:말라가 스페인 3.jpg
항만 일대와 투우 경기장.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역은 다른 스페인 내 지역에 비해 경제적으로 열악한데, 안달루시아의 도시인 말라가도 그렇다. 이 곳의 실업률은 상당히 높다. 스페인 전체의 20대 실업률이 10%대 후반인데 말라가의 20대 실업률은 30%~40%를 웃돈다고 한다.

6.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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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를 연고로 한다. 2000년대 유럽축구 팬들 사이에선 조직력으로 버티는 팀으로 알려졌고, 2010년대 초반 갈락티코스(말락티코)로 크게 이름을 알렸다. 홈 경기장인 라 로살레다(La Rosaleda, 장미 정원이란 뜻이 있다.)는 관중석 규모 3만 석이 안 되는 비교적 작은 경기장이지만 시설 자체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7.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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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스타 델 솔(Costa del Sol), 말라가를 중심으로 마르베야, 푸엔히롤라, 토레몰리노스, 네르하 등 스페인 남부 해안의 따뜻한 크고 작은 도시를 말한다.[2] 한국은 스페인과 위도가 비슷해도 시베리아 고기압 때문에 겨울에 훨씬 더 추운 편이다. 말라가보다 훨신 북부인 바르셀로나나 니스에서도 방심하고 선크림을 안 바르고 다니다가 하루아침에 얼굴이 다 타는 경우가 나오는데 말라가의 경우 목 같은데 화상 입는 경우도 나온다.[3] 왕복 5~6만원(40유로대 중반) 수준이긴 한데 수하물 등 이것저것 더하면 실질적으로는 10만원대 생각하면 된다.[4] 1968년에는 스페인 최초의 레즈비언 클럽도 들어섰다. 다만 1971년 당국의 박해로 문을 닫았다가 프랑코 사후 재개장하였다. 인구가 늘어난 토레몰리노스는 1988년 자체 시로 자립하였다.[5] 멜리야, 세우타 등으로 취항[6] 여담으로 2016년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는데, 한 여성의 방귀 때문에 전철 안의 승객 17명이 실신하여 병원으로 실려간 사건이였다.[7] 지역 축구팀인 말라가 CF의 엠블렘에도 그려져 있다. 알카사바에서 히브랄파로로 걸어 올라갈 수 있기는 하지만 성내에서 연결된 것이 아니라 바깥으로 나와서 약 20여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는 길 자체는 조금 험한 편이지만 갈만한 편. 각각의 입장료는 2.2유로지만 어느 한 쪽 매표소에서 둘을 같이 끊을 경우 합쳐서 3.55유로에 가능하다. 히브랄파로랑 알카사바 관리 상태가 좀 그래서 옆으로 터 있는 언덕길 통해 눈에 잘 안띄면 쉽게 넘을수 있는 담만 좀 넘으면 공짜 입장도 쉽고, 스페인 가면 어디에나 있는 역사적 유적 근처에 죽치고 앉아서 술마시고 기타치고 대마초 피는 동네 젊은이들은 항상 이리 넘나든다.[8] 스페인에서만 그런 건 아니고 그리스 키클라데스 제도의 파로스 섬이 이런 쪽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