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4 14:25:47

장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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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영국 장궁3. 실제 관통력은 어떠한가?4. 다른 나라5. 합성궁과의 비교6. 각종 매체
6.1.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의 장궁병6.2. 문명 시리즈
6.2.1. 문명 4의 장궁병6.2.2. 문명 5의 장궁병
6.3. 미디블2: 토탈 워의 장궁병
6.3.1. 잉글랜드
6.3.1.1. 셔우드 의적단
6.3.2. 프랑스6.3.3. 용병
6.4. 토탈 워 사가: 브리타니아의 왕좌의 장궁병6.5.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의 장궁

1. 개요


Longbow

을 가리키는 단어지만, 대개 영국 장궁을 가리키는 낱말이다. 흔히 잉글리시(English) 롱보우라고 불리지만 원조는 잉글랜드가 아니라 웨일스. 실제로도 잉글리시 롱보우와 웰시 롱보우는 서로 바꿔쓸 수 있는 단어다.

전 세계적으로 장궁은 나라별로 그 역사와 유래가 매우 깊다. 활 제조가 과학적이지 않았던 민족이나 국가[1]에서는 고대부터 중세까지 장궁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대부분의 나라들이 아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활이 주로 목재를 활용하여 만들어지고 목재가 탄성이 아무리 좋아도 변형률에 한계가 있는 만큼 제조할 때 어쩔 수 없이 길게 해야 한다는 점이 있다. 활은 기본적으로 장력이 강해야 그만큼 화살도 멀리 날아가고 관통력도 그만큼 증가하며 두껍게 만들면 장력이 세질지언정 당기는 길이 확보를 못 하게 된다. 활과 화살의 재료의 발달과 한계와 함께 본인의 실력 대신 활을 탓한 사냥꾼이 나올 때까지 대부분의 국가들이 활의 크기를 크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2. 영국 장궁

보통 영국 장궁의 길이는 1.8미터(6피트)라고 하는데, 메리 로즈 호에서 발견한 백여 점이 넘는 장궁 유물을 조사한 결과 2미터에 조금 못 미치거나 넘어가는 활이 상당수 존재하였다. 대개 주목(朱木)을 통째로 깎아서 만든다. 75~80cm가량의 화살을 사용. 그 유물은 선사시대부터 고대, 13~14세기 이전 중세 유럽에 이르기까지 긴 시기에 걸쳐 발견된다. 16세기 중반에 침몰한 영군 전함 메리 로즈 호에 실린 백수십 여점의 장궁 유물을 분석한 결과, 평균 장력(활을 당기는 데 드는 힘)이 자그마치 150파운드(68.03kg)인 것으로 드러나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다.[2] 다른 나라의 전통궁들도 과거 군용으로 쓰이던 것은 100파운드(45kg)급에 도달할 것이라고 하지만, 영국식 장궁은 그중에서도 상당한 편에 속한다.


메리 로즈호에서 발견한 것과 같은 종류의 170파운드 장궁을 사격하는 영상

평균 장력이 150파운드(약 70kg)이나 되는 강궁은 팔힘으로만 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독특한 사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앞발을 역방향으로 내딛고 등 전체의 근력을 끌어내기 위해 몸을 굽힌 상태에서 시위를 당긴다. 이는 영국 뿐만 아니라 각국의 사법에서도 유사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편향된 자세의 사법 때문인지 오랜 훈련을 거친 중세의 장궁수는 상체 골격이 약간 변형되는 것을 유골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3]

에드워드 1세웨일스 정벌 당시 웨일스군의 주무기였으며, 영국의 기록에 웨일스인이 장궁으로 기사를 쏘았더니 쇄자갑으로 중무장한 기사의 다리를 관통해 말을 죽인 일이 나올 정도로 강력했고, 이를 인상깊게 본 에드워드 1세가 영국군의 본격적인 주력무장으로 채택했다고 한다. 궁수의 양성은 오래 걸리지만, 영국 왕실은 활쏘기 장려를 위해 다른 오락을 탄압하면서 활쏘기를 강요하고, 대회도 자주 열어 우승자에게 많은 상금을 주었다. 일요일에도 활쏘기 대회를 여는 덕택에 백년전쟁이 개전될 당시 영국군은 상당한 숫자의 궁수대를 조직할 수 있었으며, 크레시 전투아쟁쿠르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박살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장궁은 백년전쟁의 주도권을 잡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다만 앞서 지적했듯이 장궁은 이미 선사시대부터 꾸준히 쓰인 무기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영국군의 승리는 장궁 그 자체보다는 장궁을 이용한 전술에서 비롯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즉,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보다 더 중요했다는 것.

흔히들 장궁이 중세 플레이트 아머를 관통하여 프랑스 기사들을 학살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우선 백년전쟁 초기의 시기는 아직 판금갑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이라 프랑스 기사들은 대부분 쇄자갑에 일부만 철판으로 보강한 트랜지셔널 아머 류의 갑옷을 입고 있었고, 이런 갑옷은 아직 철판 열처리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후대의 전신 플레이트 갑옷보다 강도가 약했다. 그리고 그런데도 트랜지셔널 아머의 강철판 부분을 뚫기 어려웠다. 게다가 일부 기사들은 여전히 체인메일 정도만 입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장궁의 공격에 피해를 본 건 사람보다 제대로 갑옷을 입지 않은 군마의 비율이 높았다. 기사의 전투력의 8할이 말에 탑승한 상태에서 발휘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 말만 무력화시키면 기사의 전투력도 급감하고, 낙마로 인한 일타이피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4]. 마지막으로 장궁병들의 역할은 기사들의 돌격력을 장궁과 목책으로 저지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돌격력이 소진된 프랑스 기사들을 도륙한 것은 영국의 하마한 기사들과 중보병들이었다.

즉, 알려진 것과는 달리, 장궁의 화살은 철판을 관통했다기 보다는 사슬 사이로 헤집고 들어갔으며, 사람보다는 말에게 피해를 입혀 낙마시킨 경우가 더 많았고, 피해를 누적시키고 적 기병대의 돌격능력을 깎아먹어 프랑스군을 격파한 것이다. 사실 말이 더 크고 취약점도 더 많은 표적인데 굳이 기사만 노려서 쏴야 할 이유도 없다. 그 과정에는 '유리한 지형'과 '장애물 설치'를 통해 기병대가 돌격해오지 못하게 만든 전술적, 지형적 요소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백년전쟁의 중반에 해당하는 아쟁쿠르 전투쯤 되면 프랑스 기사들의 철갑 착용비율이 대대적으로 늘어났을 뿐 아니라 열처리 기술이 도입되어 철판갑옷을 장궁으로는 뚫기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아쟁쿠르 전투는 프랑스군의 대패였다는 게 함정.

그리하여 잔 다르크가 참여한 파타이 전투에서는 유리한 지형을 점하지도 못하고 장애물 설치도 미처 하지 못한 영국 장궁병이 프랑스 기사들에게 일방적으로 학살당해, 아쟁쿠르 전투와 대조를 보였다. 거기에 프랑스군이 대포까지 동원하자 장궁병들로는 당해낼 수 없었고, 결국 백년전쟁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장궁병들이 예전의 필승공식대로 지형상 유리한 언덕 같은 곳에 올라가 기사를 저지할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으면 기사가 돌진하는 대신 더 멀리서 대포를 쏘니까 버틸 수가 없다!

아무튼 중세무기치고는 연사력[5]과 살상력을 고루 갖춘 무기였기 때문에 영국군에선 장기간 사용되었으며, 엘리자베스 1세 때까지도 영국군의 무기 목록에 올라와 있었고, 북미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쏘는데 영국군은 활을 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장궁을 만들어 대느라 영국의 주목이 씨가 말랐고, 러시아 등지에서 수입했으나, 가격이 계속오르고 수입처에서도 쓸 만한 주목이 점점 줄어들면서 생산량이 계속 감소했다. 결국 재료인 주목이 급감하고 총기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도태되었다. 영국이 워낙 유럽의 주목을 많이 잘라다쓰면서 주목 가격이 폭등했는 데 반해, 총은 제강 기술이 발전하고 개량을 거듭하면서 급기야 활 한자루와 총신 한자루의 가격이 동급이 되면서 활의 대세가 저물었다. 베레타 사 건립 이력이 바로 이 시기 총신 가격이 활 가격에 맞먹던 때다.

또한 숙련된 장궁수들의 부족도 크나큰 문제였다. 일반적으로 장궁수는 10년 이상 훈련이 되어야 전쟁에서 쓸만한 수준이 되었는데, 긴 양성시간에 비해 장궁수의 전사 및 고령화로 인한 인적자원의 소모가 증가하면서 점차 비숙련 장궁수들이 늘어만 갔다. 하지만 머스킷의 경우 단시간의 연습으로도 쓸만한 사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한 달 정도만 연습하면 머스킷은 100야드 내에서 어느 정도 명중률을 확보할 수 있었다. 80년대 오스트리아에서 실시한 실험에서, 16세기~18세기의 활강식 머스킷은 100m 정도 떨어진 사람 크기 표적에 대해 평균 50% 정도의 명중률을 보여주었다.

이에 비해 비숙련 자가 다루는 장궁은 심각할 정도로 명중률과 사거리가 떨어졌다. 활 자체가 곡사로 화살을 쏘는 기구인데다 나중에 나오는 총처럼 기계식 가늠쇠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기에 조준 자체가 어렵고, 무엇보다 시위를 당기면서 조준을 하는 것 자체가 근력이 센 사람이 아니면 매우 버겁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살의 탄속은 낮기에 바람 및 표적의 이동(고대나 중세의 전쟁에서 날라오는 화살을 보고 피하는 경우는 꽤 흔했다.)등의 변수를 고려하면 야전에서의 실질적 명중률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즉, 로빈 후드 같은 전설적 명궁이 아닌 이상 화승총에게 실질적 성능면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엘리자베스 1세 치세이던 1595년, 추밀원은 영국군의 제식무기 목록 중 장궁을 제외시킨다.[6] 다만 이후로도 한동안 장궁은 총기를 구하기 어려운 지역 민병대나 예비대가 애용하는 무기 중 하나였다. 그리고 1620년대에는 윌리엄 니드(William Neade)가 장창에 장궁을 고정하는 장치를 고안해냈고, 이 장치를 이용하여 장창과 장궁 둘 다 사용하는 병과(Double-armed men)를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몇 년간의 시범운용 끝에 정규편제로 넣기에는 효율이 낮다는 결론이 나와서 끝내는 기각되었지만. 기록상 장궁이 마지막으로 활용된 전투는 영국 내전 중이었던 1644년 9월 1일 스코틀랜드에서 발발한 티퍼무어 전투였다. 다만 그 이후로도 내전이 끝날 때까지 장궁과 관련된 기록은 꾸준히 등장한다.

그럼에도 이 일세를 풍미했던 무기에 대한 영국인들의 향수는 변함 없었는지, 이후에도 몇 차례 장궁 병과를 부활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으며 실제로 소규모 장궁병 부대가 영국 군대에 잠깐 존재한 적도 있다. 실전에 투입된 것은 아니지만. 심지어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도 장궁병을 써볼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바다 사자 작전에 대비한 각종 무기체계를 검토하던 사안 중에는 장궁병 재양성계획이 있었다 한다. 실제로 코만도 보급용으로 만든 조립식 철제 장궁도 있었다. 사실 이건 됭케르크 철수작전으로 인해 육군화기를 깡그리 말아먹은 당시 영국의 사정 탓이긴 했지만. 됭케르크 철수 당시 잭 처칠이라는 영국 장교는 100파운드 장궁과 강철제 활 두개, 바스켓힐트 클레이모어(한손검)를 가지고 참전했었다고 한다.[7][8] 이후 이탈리아 전선 등지에서도 싸웠다고.[9]

3. 실제 관통력은 어떠한가?


85 lbs와 110 lbs 장궁을 사용하여 20 m 밖의 흉갑을 관통하는 영상.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장궁의 관통력. 하지만 실제로 전쟁에서 쓰인 활에 비하면 장력이 한참 떨어지고, 그럼에도 갑옷이 관통되는 것을 보면 제대로 된 실험이 아니다. 덤으로 사법도 엉망이다 갑옷의 재질은 아래의 합성궁(국궁) 실험 영상을 포함해서 저탄소강(연강-Mild Steel)으로 추정된다. 갑옷으로 사용하기엔 약한 재질인데도, 당시의 형상과 차이가 있음에 불구하고 살상을 할 만큼 깊은 관통을 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말이 좋아서 탄소를 함유한 강철이지, 저런 것은 침탄 처리라도 하지않으면 제대로 된 강도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재질이다.

Channel 4의 다큐멘터리, 영국을 만든 무기들: 갑옷 편의 일부로, 프로그램의 감독이자 사학자인 마이크 로즈(Mike Loades)에 의해 주최, 영국 슈리번험에 위치한 군사 대학(현재 국방 대학으로 개명)에서 진행되었다. 무게 100 gram의 송곳 화살촉(Type 10 Short Bodkin)[10]을 기계에 장전하고, 장력 140 lbs인 궁과 동일한 출력으로 실험한 것이다. 대상은 두께 1.21 mm[11]의 중탄소강을 곡면으로 가공하고 담금질 한 것으로, 입사각은 0도이고, 20 m 내에서 진행되었다. 작용한 에너지는 대략 140 J 미만으로 추정된다.[12] 결과와 같이 표면에 구멍이 생겼지만, 화살촉이 둔하게 변하고, 내갑의에는 흔적도 있지않다. 영상의 설명은 '당신이 베르누이 전투에 참전한 궁수였다면, 당신이 쏜 화살이 롬바드 흉갑에 맞고 튀어나오고 기사는 여전히 안장 위에 멀쩡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졌을 것이다'. 실험결과물인 흉갑은 현재 글래스고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150 lbs 이탈리아제 전쟁궁으로 20야드 거리의 흉갑에 사격하는 영상.

150 파운드면 전쟁에서 실제로 쓰였던 장궁의 장력과 동일한 수준이며, 사수는 영국 궁술 커뮤니티의 전문가를 섭외했다. 그리고 실험에 사용한 갑옷 역시 스웨덴제 플레이트 아머의 흉갑으로 실제 전쟁에서 사용된 것과 같은 수준. 결과는 위 영상들과는 달리 직경 12.7mm에 4온스나 되는 화살은 쉽게 튕겨나갔고, 갑옷에는 흠집도 가지 않았다. 오히려 반발력 때문에 그 두꺼운 화살이 처참하게 부러진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활이 갑옷을 뚫을 수 있다는 속설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볼 때 잉글랜드의 장궁병대가 직접적으로 프랑스 기사들을 쏴 무력화시킬 수 있었던 시절은 프랑스 기사들이 체인메일이나 기껏해야 사슬갑옷에 강철판을 대어 사슬갑옷 부위를 노릴수 있었던 트랜지셔널 아머를 착용했던 시절 뿐이고, 그 이후로는 말을 쏴서 낙마시키는 데에 주력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마저도 프랑스 기사들이 마갑을 씌우기 시작하면서 푸아티에 전투에서는 마갑이 취약한 말의 옆구리를 쏘기 위해 측면으로 이동했다는 기록까지 있다. 종합적으로 보자면 잉글랜드의 장궁병대가 백년전쟁에서 직접적으로 미친 영향은 상당히 과대평가 되어 있고, 반대로 더 중요한 전술적인 우위가 저평가 되어 있었던 셈이다.


다른 한편, 같은 Channel 4의 다큐멘터리, '영국을 만든 무기들'의 다른 편인 '장궁 편'에서는 역시 에어캐논을 사용한 실험을 통해, 장력 140lb 장궁으로 20m 거리에서 발사된 것에 해당하는 화살로 "Munition Quality"의 판금 흉갑과 내갑을 착용자에게 일정한 부상을 입힐 만큼 관통했다. (위 동영상의 약 7분 20초 때 부터 실험이 나온다.) "Munition Quality"란 주로 15세기 이후 대규모 병력이 동원이 많아지면서 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대량으로 제작되고 사용된 중저급의 '기성품'의 '군수용 갑옷'을 지칭한다. 즉 판금갑옷이 널리 보급된 후에도, 실제 전장에서 사용된 갑주의 성능은 균일하지 않았던 만큼 제대로 처리된 고급 강철로 잘 만들어진 고가의 주문제작 갑옷을 갖춰 입을 처지가 아니라면, 얼추 판금갑옷을 갖춰입은 맨앳암즈라도 화살에 맞아 쓰러질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13][14]

실제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100년 전쟁 기간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중반 시기의 갑주 샘플들의 재질을 분석한 결과, 1395년에서 1435년 사이에 이탈리아 지역에서 만들어진 갑주의 샘플들과 1380년에서 1450년 사이에 이탈리아 이외의 지역에서 제작된 갑주의 54%는 강철이 아닌 연철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33%는 연강(저탄소강)으로 그리고 단지 13%만이 중탄소강 이상의 강철로 만들어진 것이었다고 한다.[15][16]

덧붙여, 화살이 갑옷을 관통해서 실제로 그 때문에 '자상'을 입지 않았다고 해서,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다. 갑옷이 패이거나 혹은 판금 갑주는 일부 관통했어도 그 안에 받쳐입은 내갑까지 뚫고 자상을 입히지 못하는 경우에도, 얼마간의 충격은 가해진다.[17] 당연히 일정한 심리적 효과 또한 동반될 것이다. 그것이 흔히 말해지는 '곧장 갑옷을 뚫고 기사를 죽였다기 보다는, 피해를 누적시키고 돌격력을 깎아먹는다'는 이야기의 의미 중 하나이다.

게다가 실제 백년전쟁 당시에 있었던 일은 장궁병 몇 명이 기사를 저격한 것이 아니라, 수천 명의 궁사들이 '하늘이 어두워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화살을 퍼붓는 상황이었다. 몇 만 발씩 화살이 퍼부어지다 보면, 당연히 그 와중에는 일반적으로는 맞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갑옷이나 마갑의 취약부위에 정말 운나쁘게 화살을 맞고 쓰러지는 일도 발생한다. (위 '영국을 만든 무기들 : 장궁편' 다큐 동영상의 약 40분 정도에 등장하는 장궁 집중사격 시연에선 심지어 말의 다리에 명중한 화살도 있다. 나아가 면갑의 눈구멍이나 공기구멍으로 뚫고 들어간 화살로 죽은 기록도 있다고 한다. [18]) 그리고 그렇게 운없이 쓰러지지 않았다고 해도, 쏟아지는 화살비 속으로 진격해야 하는 기사들 중 지속되는 심리적, 물리적 타격으로 돌격이 둔화되는 기사들이 생겨나고 전열이 느슨해지면, 결국 전체 돌격의 집중력과 파괴력 또한 약화된다. 프랑스 기사들이 그렇게 불리한 지형과 화살비를 뚫고 목표지점에 도달해보면, 거기엔 100년 전쟁 내내 잉글랜드 장궁병의 '부무장'이라 할 수 있던 (날카롭게 깎은) 말뚝과, 그 뒤에서 창과 각종 장병기를 든 잉글랜드 보병들과 하마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다.

덧붙여 잉글랜드군은 백년전쟁 동안 장궁병대을 양익에 배치하여 프랑스 기병대의 측면을 공격하는 전술을 자주 사용했는데, 그것은 간혹 말해지듯 '마갑과 판금갑옷과 마갑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어 (그나마) 취약한 측면을 노리기 위해' (푸아티에 전투 혹은 아쟁쿠르 전투 시기에 가서야) 병력 배치를 변경한 것은 아니다. 잉글랜드군은 이미 전쟁 초반의 크레시 전투에서도 장궁대를 양익에 배치하고 돌격해오는 기병을 측면에서 공격하는 전술을 썼다. 즉 잉글랜드군은 이미 전쟁 초부터 보병과 궁병이 중심인 병력으로 중기병 전력에서 우세한 적을 상대하려면 지형과 장애물 등을 이용해서 공격로를 제약해 놓고 측면에서 공격하는 쪽이 더 효과적이라고 여긴 것이다.[19]

그와는 별개로, 판금갑옷과 더불어 마갑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 일반화된 시기에도 마갑은 상대적으로 취약점이 더 많았고 특히 측면은 상대적으로 더 취약했으므로 '측면에서 기사보다 말을 노리는 전술'이 어느정도 계속 유효했을 수 있다. 마갑은 (말의 방어가 덜 중요해서가 아니라, 무게 탓에 어쩔 수 없이) 기사의 갑옷에 비해서는 더 얇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뿐 아니라[20], 안장을 얹고 사람이 타야하는 말의 허리와 옆구리 쪽을 전부 갑주로 덮을 수는 없다.[21] 때문에 말의 측면은 갑주를 덮더라도 아래쪽만 부분적으로 방어하거나 아니면 아예 생략되는 경우도 많다. 일반적으로는 갑옷을 입은 기사의 다리로 어느 정도 커버되는 부분이므로 아주 큰 취약점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역시나 수백, 수천 명의 궁수들이 소나기처럼 화살을 퍼붓는 상황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는 것.

즉 백년전쟁 당시 잉글랜드군의 승리에서 장궁의 역할이 '갑옷을 펑펑 뚫는 킹왕짱 수퍼무기' 같은 것이 아니라, 전체 전술의 일부로서 역할을 한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나 잉글랜드군의 그 "전술"에서 언제나 빠지지 않고 애용된 필수요소였던 것 또한 마찬가지로 사실이다.[22]

4. 다른 나라

한국은 국궁(각궁)이 워낙 유명한지라 장궁을 쓰지 않았었다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의외로 삼국시대의 한국에서도 목재 장궁 유물이 소수로나마[23] 출토되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각궁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중 하나인 물소 뿔은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좋다고 타국에 물소 뿔을 대량으로 팔지 않았기에 수입되는 물소 뿔의 개수는 1년에 30~100개를 못 넘었다. 그래서 황소나 사슴의 뿔, 심지어 강철 등의 대체재가 사용되었고, 물소 자체를 수입하여 키우자는 대안도 나왔지만 물소 사육은 결과가 좋지 않았다. 게다가 한반도에는 회목, 주목, 물푸레나무, 박달나무[24] 등 목궁으로 만들기에 적합한 나무가 많이 있다. 비록 유물의 수가 적고 제대로 된 연구 역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형태와 구조를 특정짓는 것은 아직 힘들지만, 대체로 일본 장궁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현대에 각궁을 만드는 궁장은 꽤 남아있는 반면, 목궁을 만드는 궁장은 전국에 손에 꼽을 정도로 적게 남아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예궁(禮弓)이라는 의례용 활이 있었는데, 이것은 폈을 때 길이가 182㎝에 달하는 크고 아름다운 활이었다. 이렇게 크게 만든 것은 넓은 궁궐 마당에서 먼 곳에 있는 사람도 활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이것은 이름답게 실전에서는 쓰이지 않은 의장용이었지만 이와 유사한 크기를 지닌 정량궁은 무과 시험은 물론이고 실전에서도 사용한 바 있다. 예궁과 정량궁의 경우 각궁을 크게 만든 것이라 형태는 장궁과 달랐다.

아프리카나 태평양 군도의 많은 원주민들이 영국 장궁처럼 한 가지 나무로 만든 단일재질 장궁을 많이 썼다. 영국 장궁만큼 잘 궁리된 것은 아니며, 소재의 한계 때문에 훨씬 원시적인 단일궁이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9px-Yumi00.jpg
일본 장궁인 화궁 또한 유명한데, 가장 널리 알려진 히고유미는 나무와 대나무를 겹쳐서 만들어 탄성을 높였다. 영국 장궁보다도 긴 225센티미터 가량의 길이를 자랑한다. 그 크기때문에 히고유미와 같은 큰 활을 대궁(大弓, 다이큐)이라고도 부른다.

히고유미는 정말 특이할 정도로 차이가 많이 난다. 활을 잡는건 중심이지만 화살의 위치는 중심보다 위쪽이기에 다른 활 역시 어느 정도 위와 아래의 길이가 약간씩 차이가 있다. 활의 근본적인 구조이기에 2~3세기 시절의 정사삼국지의 기록부터 현대의 양궁까지 윗쪽 날개와 아랫쪽 날개의 차이를 두고 만든다. 그러나 히고유미는 활의 윗부분이 아랫부분보다 거의 2배가량이나 긴 것이 차이점으로 이 특이한 차이는 말 위에서 쏘기 편하려고 그렇게 만들었다는 설이 있으며 실제로 하반신쪽의 여유가 많아 무릎을 꿇고도 쏠 수 있다. 화궁보다 활이 더 짧은 68~70인치짜리 영국장궁은 아랫쪽이 길어 힘들다.

일본은 기후적 특성상 합성궁이 발달하기 힘든 곳이기에[25] 강한 탄성을 가진 재질을 사용하기 어려웠고 대나무가 있더라도 대나무를 접합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최대한의 살상효과를 내기 위해서 낮은 장력을 길게 당기는 사법으로 접근하여 활을 길게 만들게 되었으며, 마상에서 이를 쓰기 위해 중심축보다 조금 아래쪽에서 쏘는 비대칭적 구조로 발전했다.

히고유미는 활이 길고 길게 당기는 사법상 활을 당기면 가슴 너머까지 아래쪽으로 활시위가 넘어오는데[26], 때문에 여자는 반드시 가슴 보호구(胸当て)를 착용하도록 되어있다. 그렇지 않으면 활을 쏠 때 활시위가 가슴에 맞거나 심하면 유두가 잘려나간다OMG. 여자뿐만이 아니라 남자들도 도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서 활을 쏠 때 옷에 단추가 달려있을 경우 가슴 보호구를 착용하곤 한다. 다만 어느 정도 단수가 쌓인 익스퍼트 수준이면 꼭 가슴 보호구 착용이 의무시 되지는 않는 모양. 또한 사법의 특성상 시위를 놓는 순간 활 시위가 귀 너머까지도 넘어오게 되는데 이것 또한 귀를 다칠 위험이 있다. 궁도 초심자가 귀를 맞고서 이게 트라우마가 되어 궁도를 관두는 일도 있을 정도라고[27]. 덕분에 이 역시 귀 보호대가 있다. 가슴 보호구처럼 의무는 아니지만 신경쓰이는 사람은 귓볼에 반창고라도 하나 붙여놓는 모양.

5. 합성궁과의 비교


40 lbs와 57 lbs 국궁으로 18 m 내에서 실험한 영상.

종종 합성궁과 비교하면 어느 쪽이 강할까라는 말이 나오는데, 기본적으로 유물로 남은 조선 초기[28]의 전투용 활이나 몽골이나 여진족 활마냥 특이한 구조[29]가 아니고선 화살의 최대속도가 활의 날개의 무게에 제한을 받아 합성궁의 화살 속도가 빠르다.[30] 다만 장궁 쪽은 무거운 화살을 강하게 쏘는 게 쉬워 맞기만 한다면 합성궁이든 장궁이든 관통력 자체는 엄청난 차이가 나진 않는다. 그러나 크기 때문에 장궁은 궁기병이나 보병 궁사나 무장 선택에 제한이 생기고 대응력이 떨어지는등 다루기 까롭다. 하지만 관통력 자체는 큰 차이가 없으니 위력만 생각한다면 장궁이든 합성궁이든 맞힐 수만 있다면 어떤 것을 써도 상관없다. 물론 마상에서 짧은 활이 다루기 쉽고 실제로 짧은 활로는 뒤로 돌아서 쏘는 것이 쉽게 가능하지만특이한 마상사법과 같이 장궁으로는 다리 아래부분이 말에 간섭나서 불리한 점이 있다. 그래도 쓰려고 한다면 장궁도 충분히 마상에서 쓸 수는 있으며 간섭이 생기는 아래 부분이 짧게 설계되어 해당 부분이 고려된 일본의 화궁 같은 경우는 실제로 전국시대 이전 말을 타고 활로 전투를 벌였던 사무라이들은 길이 2.2미터가 넘는 자국의 장궁으로도 전투를 벌였고 그 전통이 '야부사메(流鏑馬)'로 남아 있다. 유튜브 관련 동영상.

물론 비슷한 장궁을 쓰던 영국도 기록화나 군편제 기록을 보면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기사가 나오고, 현대 리인액터들이 실제 말 위에서 장궁을 쏘는 동영상도 있는 것을 보면 길이가 사용하는 데 지장은 줄 순 있어도 장애물이 될 순 없다 생각하기 쉬우나 불편한 건 엄연한 사실이다. 실제로 활이 길어지면 성벽 위에서 사격할 경우처럼 장애물을 활용해 은엄폐를 하려 할 경우 애로사항이 꽃피는 것도 사실이며 그래서 유럽 장궁수들은 엄폐 사격을 할 때 단궁이나 쇠뇌처럼 방패 뒤에서 낮은 자세로 쏘는게 아니라, 나무기둥 뒤에서 서서 쏘았다.

반면 합성궁의 크기가 작아 휴대 및 기마궁술에서 유리하지만 합성궁이라서 유지보수의 난이도가 높다는 문제가 있다.[31]

세세하게 따져본다면 합성궁으로는 쇠뿔, 힘줄 등을 사용해서 크기가 작고 가볍게 만들 수 있는 각궁이 에너지 전달 효율 면에서 더 유리한 면이 있다. 흔히 장궁과 각궁의 궁력(파운드수)를 직접 비교하는 경우가 있으나, 활의 탄성에 저장된 에너지는 화살뿐만 아니라 활대 자체를 앞으로 움직여 펴는 데도 상당부분 쓰이는 점을 고려하면, 같은 궁력을 가질 경우 리커브 형상을 채택하여 화살에 실리는 에너지는 각궁 쪽이 더 높다. 반면 대부분 단순 목궁인 장궁 쪽은 크기와 무게 때문에 반동 흡수에 이득이 있고 환경의 영향을 덜 받는 편이다. 국궁은 복합궁인 관계로 온도와 습도가 달라지면 그에 따른 팽창률이 다른 각 재료들 사이에서 부조화(심한 경우 활이 틀어지거나 분해되어 버린다.)가 생길 우려가 크다. 한국에서도 이 점을 인지해서 습기에 강한 합성 목궁들을 같이 사용하거나 나무 껍질, 가죽, 어피(상어 가죽), 천 등으로 싸고 두껍게 옻칠 하는 등 매우 노력했지만 기록이라든가 유물이라든가가 별로 없어서...

또한, 파운드 수가 같아도 같은 크기의 활을 당길 수 있는 거리(드로우 렝스)는 합성궁이 더 크다. 장궁이 길어진 것은 재료의 한계로 인해 길게 만들수록 길게 당길 수 있기 때문이나 합성궁은 각 재료의 다른 물성을 이용해 제작하므로 단일궁보다 훨씬 더 큰 변형률에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탄성 에너지는 당기는 힘에 비례하지만 변형된 거리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당길 수 있는 거리가 더 길다는 것은 굉장한 이점이다. 궁력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활몸을 두껍게 만들면 끝[32]이므로 어려울 것이 별로 없다. 또한 조선의 경우 단조한 놋쇠에 뿔을 붙여 만드는 철태궁도 종종 만들었으니 재료를 다양하게 바꿔서 궁력을 키우기에도 합성궁이 유리한 점이 있다.

사실 영국 장궁의 경우 단일 소재 목궁치고는 상당히 연구가 잘 된 발전형에 속하기에 합성궁과의 비교가 가능한 것이며 장궁의 재료가 되는 주목의 심재는 압축에 강하고 파재는 인장에 강하기 때문에, 영국인들은 활몸에 일정 비율로 심재와 피재가 맞닿아있는 부위를 조절해서 장궁을 만들었다. 그러면 단일소재 셀프 보우이면서도, 합성궁과 같은 원리로 상당한 탄성을 갖게 된다. 이쯤 되면 자연적 나무로 만든 목궁 중에는 끝판왕 수준. 비슷한 케이스로 부탄 근처에서만 자라는 대나무가 있는데 이걸로 만든 단일궁은 합성궁 못지 않은 강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각 지방마다 자라는 대나무의 차이 덕에 생긴 강함이다. 실제 한국의 대나무는 맹종죽이 아닌 이상 두께가 1.5cm를 넘기 힘들지만 열대 지방등에서는 대나무를 전봇대로 쓴다. 그런 괴물 같은 대나무가 자라기에 가능한 일.[33]

군사적 운용 및 보급 면에선 장궁이 합성궁에 비해 더 높게 평가받는다. 일단 험악한 환경에서 아무 문제 없이 제 성능을 발휘해야 하고[34] 값이 저렴해서[35] 쉽게 대량 공급이 되어야 한다는 군사무기의 조건을 볼 때 습기에 취약해 수시로 화톳불에 쬐여 습기를 없애 주는 등 세심한 관리를 해야 하는 합성궁에 비해 단일 재질로 된 장궁은 내구성, 관리성 면에서 우월하고, 또 장궁은 잘 건조된 나무만 있으면 언제든지 그나마 값싸게 대량생산이 가능한 데 비하여[36] 합성궁은 힘줄+소뿔+풀 같은 재질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고 날씨가 춥고 건조한 겨울철에 합성궁을 만들면 쉽게 갈라지기 때문에 대량으로 쓰기 위해서는 장궁 쪽이 더 편하다.

따라서 같은 장력이면 합성궁이 좀 더 강력하긴 하지만 험악하게 굴릴 수밖에 없는 전장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로 다른 재질을 아교 같은 접착제로 붙인 합성궁은 내구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특히 습기에 굉장히 취약하다. 전쟁터에서 불을 쬐여주는 식으로 관리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거기다 전쟁용 목궁이라면 최소 100파운드는 넘어 기본이 150파운드이고 최대가 200파운드 가까이 되는데, 이 정도면 충분한 위력을 발휘하고도 남는다.[37] 사실 각궁을 선호했던 조선에서도 목궁의 위력이 의외로 좋으며, 전장에서 굴릴 만하다고 그 가치를 인정한 기록이 있고 실제로 쓰인 흔적도 있다. 또한 목궁 자체가 숙련된 장인이면 열흘 만에도 만들 수 있으니 합성궁보다 보급 면에서 유리하다.

또한 합성궁, 그 중에서도 국궁의 경우에는 그 물소 뿔 문제가 있다. 물소가 물 건너서 오는 물건인 만큼 값도 비쌀뿐더러 전쟁 등 위급한 상황에서 대량으로 생산하고 싶어도 교통이 불편했던 전근대에서 갑자기 대량으로 수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거기다 물소뿔 못지 않게 중요한 쇠심줄 역시 소를 잡는다고 많이 나오는 물건이 아닌 데다, 쇠심줄 하나 얻으려고 농사에 필수불가결인 소를 잡는다는 것은 당대 기준에서 생각하기 힘들다. 어디까지나 최상의 재료는 그렇다는 것이고 대체품은 많지만[38] 아무래도 장궁에 비하면 불편한 건 사실. 어쩌다가 나오는 목궁도 사실 그런 궁여지책 끝에 나온 물건이라고 봐야 한다.[39]

다만 운용이나 대량의 보급은 숫자만 채우는 단계에서의 얘기고, 크기가 작고 활이 가벼워서 최대 탄속이 빠르단 점 때문에 숙련된 사수들에게 들려줬을 때의 성능과 효용을 비교하면 여러 부분에서 합성궁이 우세한 면이 많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내구성과 관리 측면 그리고 사용 측면에선 목제 장궁이 우세하지만, 무게의 가벼움과 크기의 작음으로 인한 연사력과 조준의 용이성은 합성궁이 우세하다. 또한 성곽, 산악, 숲 등 험지에서의 휴대성과 마상사격 시의 편리함도 합성궁의 우세.

부수적인 문제로 목제 장궁은 장궁 자체의 무게가 활을 당기는 힘을 잡아먹기에 탄속의 한계가 명확하여 합성궁보다 화살이 무거워야 궤적을 안정시킬 수 있다. 때문에 같은 장력의 활을 쏘더라도 이 무게 때문에 합성궁 대비 사거리가 떨어진다.[40] 따라서 행군이나 전투 시에 합성궁 대비 화살 소지량을 줄여야 하고 무게, 부피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비숙련 사수들이 낮은 수준이라도 대량의 활을 운용할 수 있는가 하는 측면에서는 목제 장궁이, 마상이나 험지에서의 편의성 및 숙련된 사수들이 극한의 성능을 뽑아낼 수 있는가 하는 측면에서는 합성궁이 장점을 갖는다.

6. 각종 매체

긴 활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대체로 일반 활에 비해 사거리가 긴 것으로 나오는게 특징이다.

6.1.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의 장궁병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와 3 그리고 4 에서 장궁을 사용하는 유닛이 등장한다.

2에서의 등장은 브리튼족 문서를, 3에서의 등장은 영국 문서를 참고할 것.

4에서는 잉글랜드의 특수 생산유닛으로 나오며 일반 궁수보다 강력하다. 게다가 특수능력으로 말뚝박기를 실행하면 주위에 말뚝이 세워져 카운터인 기병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다. 쿨타임이 돌면 재설치가 가능하다.

6.2. 문명 시리즈

6.2.1. 문명 4의 장궁병

전 문명 공통 유닛. 도시 방어 보너스가 무지막지해서, 승급이 겹치다보면 산업시대 유닛을 능히 막아내는 위엄을 보이기도 한다. 값이 싸고 소총병 이전까지는 카운터 유닛이 없으며 선제 공격까지 붙어있어 공격 유닛으로도 쓰기 좋다. 이 때문에 중세 시대의 전쟁은 거의 장궁병+투석기(캐터펄트) 조합에 기사를 더하는 방향으로 굴러가게 된다. 너무 만능유닛이다보니 만약 장궁병이 문명 고유 유닛까지 나왔다면 밸런스 붕괴가 일어났을 것이다[41].

6.2.2. 문명 5의 장궁병

잉글랜드 문명의 특수 유닛으로 출현. 중세시대의 석궁병을 대체한다. 성능은 석궁병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사정거리 승급을 추가로 들고 나와서 사거리가 자그마치 3칸이다. 산업시대에 야포가 나오기 전까지는 생산 직후에 사정거리가 3칸으로 나오는 유닛이 없으므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적의 기동력을 줄이는 만리장성과 함께라면 백만대군도 두렵지 않다. 다만, 간접사격 능력은 없으므로 언덕이나 숲이 있으면 사정거리가 제한되는 점은 다른 석궁병과 같다. 되도록 언덕에 배치하고, 공격에 방해될만한 숲은 미리미리 벌목하는 것이 좋다.

확장팩에서는 새로 등장한 개틀링과 기관총으로 업그레이드 되는데, 여기에도 사정거리 승급이 적용되어서 사정거리 2칸짜리 개틀링이나 기관총을 볼 수 있다. 중세시대부터 수백 년 복무한 베테랑들은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6.3. 미디블2: 토탈 워의 장궁병

6.3.1. 잉글랜드

다른 유럽국가의 궁병은 주로 쇠뇌나 합성궁을 사용하는 데 반해, 영국만은 장궁병을 사용한다. 사정거리가 길고 연사력이 뛰어나며, 아쟁쿠르 전투나 크레시 전투에서 프랑스 기사들을 박살낸 걸 감안했는지 장갑관통(AP) 특성을 가지고 있어 중무장을 한 적에게도 괜찮은 화력을 보인다. 장궁병의 근접전투력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요먼 장궁병은 망치를 가지고 접근전을 하는데 여기도 AP 효과가 달려있어서 적 중보병이나 중기병을 상대로 능력치에 비해 잘 싸운다. 다만 일반 장궁병이나 최고 테크인 정예 장궁병은 한손검으로 무장해서 AP는 없으나 근접전 스탯 자체는 나쁘지 않다.

거기에 추가로 부대 배치시에 땅에 말뚝을 박을 수 있다. 말뚝은 배치시의 장궁병이 바라보는 정면쪽으로 뾰족한 쪽이 가도록 설치되고,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않고 말뚝 앞쪽에서 달려오는 기병들의 이동과 돌격을 저지하며 막대한 대미지를 준다. 그 대단하다는 프랑스 기사들이든,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 몽골 기병이든 말뚝을 건드리면 아주 X되는 거다. 특히 영국은 용병이 아니면 장창병을 이용할 수 없으므로 말뚝을 이용한 전장조성능력이 매우 요긴하다.[42] 그러나 이러한 장궁병을 정면으로 하드카운터 날릴 수 있는 기병이 있으니 티무르의 코끼리 부대가 그 주인공. 코끼리는 특유의 질량으로 말뚝을 밟아서 없애 버리는 데다 코끼리 등에 탄 병사들의 무장은 화승총 or 대포라 장궁보다도 사정거리가 길어 말뚝 박고 말고를 떠나 장궁 사정거리보다 멀리서 날아오는 화력에 다 갈려버린다. 장궁병이 다 갈리고 말뚝도 밟힌 다음 그 뒤로 기병이 돌격한다면... 그때부터 악몽에 시달리는 건 잉글랜드가 될 것이다. 물론 코끼리 부대 자체가 약간 오버밸런스적 요소가 있는데다 티무르만 생산이 가능해기에 크게 신경 쓸 건 없지만 말이다.

전투에서 말뚝으로 적의 중기병의 돌격을 제약하고, 적의 궁수와 경보병을 사정거리와 연사력으로 압도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다. 스탯에 비해 잘 싸운다고 해도 결국은 한계가 있어서, 적 중보병이나 중기병과 맞상대하기는 어려우므로 모루의 역할은 다른 중보병에게 맡기는 게 좋다. 마침 잉글랜드는 싸고 강력한 중갑검병대와 최상급 양손둔기병인 하마(下馬) 영국기사대가 있으니,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근접전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또한, 장궁 자체의 화력은 합성궁과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방패가 있는 부대엔 큰 피해를 줄 수가 없는 것도 운용시에 주의할 점이다.

데이터를 뜯어보면 말을 탄 장궁병들이 등장한다. 데이터 상의 이름은 Mounted Longbowmen으로 정예 장궁병대로 번역된 Retinue Archers의 데이터 명이 Dismounted Longbowmen이다. 즉 정예 장궁병대의 마상 버전으로 경기병이라 갑옷이나 돌파력은 믿을 것이 못되지만 괜찮은 근접전 능력과 장궁보다 조금 짧지만 유럽 쪽에서 궁기병으로 유명한 헝가리의 궁기병을 전반적으로 상회하는 스탯을 보유한다. 심지어는 중동 쪽에서 용병으로 고용하는 투르코폴보다 낫다. 단일 병종으로 커스텀 게임이든 캠페인이든 사용할 수는 없지만 데이터를 건드리면 등장하는데, 왜 데이터에만 넣어두고 게임에서 쓸 수 없게 만들었는지 곧 알게 된다. 쓰게 해줬다가는 캠페인에서 버젓이 등장하는 잉글랜드의 약점 Poor varieties of cavalry는 거짓말이 되기 때문이다. 이 녀석이 추가된다고 해서 부족한 잉글랜드의 기병 병종의 다양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지만 장창병이나 중보병으로는 이 녀석을 상대할 수 없고 하위 티어의 궁병대로도 제압할 수 없다. 진짜 작정하고 싸우려면 파비스 석궁병이라도 나와야 할 것이다.
6.3.1.1. 셔우드 의적단
우드맨 길드를 상급까지 유치하면 뽑을 수 있는 특수 장궁병. 우드맨 길드는 궁수에게 경험치를 주는 길드인데, 영국만 지을 수 있다. 따라서 이 유닛도 사실상 영국의 고유유닛에 들어간다.

우선 강력한 스탯이 눈에 들어온다. 장궁주제에 사격수치가 13이다. 일반적인 장궁이 6이나 8이고 강철석궁이 보통 12인 걸 생각해보면 무시무시한 수치이다. 장궁병의 연사력으로 강철석궁 급의 공격력을 퍼붓는다는 소리는, 병력 수가 같다는 조건 아래라면 미디블2 최강의 궁병이란 말과 같은 말이다. 순수 DPS로만 따지면 그 강력하다는 제노바 석궁병들도 이들 앞에선 명함도 못 내민다. 그렇다고 근접능력이 약한 것도 아니다. 한손검을 들고 있는데도 근접전 수치가 16으로, 이는 강력한 중보병인 하사신과 같은 수치이다. 어설픈 민병대 같은 게 함부로 근접전을 걸었다간 역으로 쳐발린다.

다음은 특수능력인데, 우선 높은 사기와 매우 좋은 체력이 붙어있고, 장궁병이다보니 당연히 AP도 붙어있으며, 숲속에 매복하는 데 전문이라 적이 가까이 와도 잘 발각당하지 않는다. 즉, 전장에 적절한 숲만 있다면 매복하고 있다가 적을 기습하고, 그리고 다시 적이 접근하면 뒤로 빠져서 숨어버리는 식으로 적을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강력한 사격능력과 조합되면, 적에게 생각보다 심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허나 강한 점에 비례해서 단점도 있는데, 우선 한 부대의 인원수가 다른 궁수들의 절반(보통 기준 30명)밖에 안 된다는 점이다. 숫자가 적은 대신 HP가 2이긴 하지만, 부대 숫자가 적으니 한 부대 단위의 DPS는 일반 정규군 장궁병이 높으므로, 기껏 달린 좋은 스탯의 빛이 바랜다. 또한, 갑옷과 방패가 없어서 방어력이 낮기 때문에 적의 공격이 집중되면 큰 피해를 입기 쉽다 어느정도냐하면 방어력이 없어 활 한 발에 체력 1이 까진다 평범한 중보병도 개인당 수방은 버티고 분대장의 경우 7발을 맞고 버티기도 한다.(장궁에 맞는걸 기준) 또한, 말뚝을 박을 수가 없으므로 다른 장궁병들처럼 기병 저지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단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더 치명적인 단점은, 생산가능한 도시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상급길드 이상에서부터 나오는데, 상급길드나 본부는 직접 지을 때는 한 나라에 하나씩만 지을 수 있다는 게 문제이다. 즉, 어떻게 해도 딱 한 도시에서만 생산할 수 있으므로 충원도 힘들고, 물량도 모자라다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다수를 뽑아서 주력으로 사용하기엔 여러모로 부족하므로, 숲이 많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군단에 한두 부대 정도만 포함시켜서 게릴라전으로 적을 괴롭히는 수밖에 없다. 특히 적의 장군이나 중요병과를 저격하는 용도로 쓸만하다.

다만 야전이면 잘 죽을 수 있고 맷집이 약해 운용이 어려울 수 있으며, 충원도 어려우니 수성전에 동원할 수도 있다. 성벽 특성상 최선두의 병사가 아니면 곡사를 해야해서 효율이 떨어지는데, 셔우드는 반만 차지하고도 성벽에 배치될 수 있어서 수성 효율이 높고 성벽 위라 활 피해를 별로 입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근접전으로부터 보호하기도 쉽고 기병 돌격도 안 당한다. 또한 성내 백병전이 벌어지면 특유의 작은 덩치를 이용해 보병과 백병전 중인 적에 흉악한 화력을 선사해줄수 있다. 근접전을 당한다해도 근접공격뿐만 아닌 근접 방어도 강해서 다른 아군보병이 협력해 이겨낼 수 있다.

6.3.2. 프랑스

우선 도시에서 스코틀랜드 근위대를 고용할 수 있는데, 본토의 장궁병들보다 강력한 화력과, 기본으로 입고 나오는 중갑에서 나오는 우월한 방어력, AP는 없지만 더욱 강력한 근접공격력으로 본토의 장궁병을 비참하게 만드는 존재이다. 등장시기가 늦고 말뚝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게 몇 안 되는 흠이다.

그리고 프랑스 기마궁수대가 특이하게 마상장궁을 사용한다. 다른 서유럽의 기마석궁병과 비교해서 사격능력치가 높은 편이다. 동유럽이나 이슬람권의 궁기병들에겐 대체적으로 사격능력치는 조금 떨어지지만, AP 기능이 있어서 중장갑 유닛을 상대로는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준다. 단점은 늦게 나온다는 것과 비싸다는 것.

6.3.3. 용병

웨일즈 지방에서 웨일즈 장궁병, 프랑스, 북이탈리아 지역에서 장궁 용병대를 고용할 수 있다. 그러나 고용가능 범위나 고용가능 숫자도 한정적이고, 스탯도 영국의 장궁병대에 비해 좋지 못한 편인 주제에, 비싸기까지 해서 급하게 병력이 필요한 게 아니면 영 써먹을 게 못 된다. 허나 이들도 말뚝을 박을 수는 있으므로 대기병전력이 심하게 모자란다 싶으면 고용을 고민해 볼 가치는 있다.

확장팩인 킹덤즈에서는 상술한 셔우드 궁수들도 용병으로 고용할 수 있다고 한다. 정확히 말한다면 킹덤즈 확장팩 중 브리타니아 캠페인에서만 가능하고 크루세이더 캠페인이나 튜튼 캠페인에서는 잉글랜드가 국가로서 등장하지는 않으므로 고용할 수 없다.[43] 아메리카스에서도 잉글랜드 신대륙 원정대가 등장하지만 애당초 장궁의 시대가 끝난 이후의 시대가 배경이라 나오지 않는다.

6.4. 토탈 워 사가: 브리타니아의 왕좌의 장궁병

웨일스 문화권 국가인 귀네드와 스트랏 클럿의 유닛으로 등장하며 기술 연구를 해서 웨일스 궁병을 전환하는 방식으로 생산이 가능하다. 장궁병의 명성답게 게임 내에서도 웨일스 문화권 플레이의 핵심유닛으로 취급되는데 사정거리가 게임 내 원거리 병과 중에서 톱을 다투기에 적이 오기 전에 화살비를 퍼붓는 게 가능하며 10이라는 장갑관통피해는 키르켄과 노르망드의 석궁병과 미데의 투창병들을 제외하면 어느 궁병과 산병도 따라잡지 못하는 수치로 중갑병에게도 무시 못할 딜을 박을 수 있다.[44] 특히 기술 연구도 빠르면 12턴 안에 해금되니 빠르게 볼 수 있는 것도 장점.

6.5.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의 장궁

위의 게임들에서와 달리 대우가 심히 안좋다. 여기서 장궁은 그저 헬겐에서 처음 얻는 최하급 활일 뿐. 그냥 이래저래 돈모아서 화이트런의 The Drunken Huntsman에서 사냥활이나 제국군 활을 사는게 더 낫다. 이름은 장궁이지만 다른 활보다 크지는 않다. 본 게임에서 등장하는 활은 크기가 전부 동일한지라 그냥 다른 활과 똑같은 크기에 외형만 심심한 보통 활일 뿐이다.


[1] 모든 민족이 장궁에 의존한 것은 아니고 합성궁, 복합궁 등을 제작한 민족이나 국가들도 있다.[2] 오늘날 널리 쓰이는 양궁의 평균 장력은 50파운드(22.67kg) 이하이다. 국궁 기준으로 한국에서 가장 강한 활로 수련하는 사람도 120파운드(54.43kg) 활로 궁력을 키운다. 그런 숙련자도 여러 번은 못 당길 정도인데 당시의 전쟁에서는 장력 150파운드의 롱보우를 다뤘다는 뜻.[3] 다만 그 변화가 밖으로 드러나 보이게 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4] 현대에서도 숙련된 기수조차 낙마로 인한 부상이나 사망이 심심찮게 보고되는 판에 거동이 불편한 갑옷을 갖춰입고 전쟁터에 선 기사가 낙마하게 되면 골절이나 뇌진탕 등으로 거의 무조건 죽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치명상을 입는 일이 허다했다.[5] 14~15세기 잉글랜드의 장궁수는 보통 1분에 10발가량의 화살을 쏠 수 있었으며, 숙련자는 그 2배인 20발은 쏠 수 있었다고 추정되며, 통상의 궁수들과 달리 화살통에서 집어서 쏘는 것과 달리 땅에 꽂아 놓은 화살을 집어들어 쏘는 방식 때문에 더 빠른 속사를 자랑했다.#[6] 장궁병 유지를 원하는 쪽도 머스킷 대신 장궁을 쓰는 것을 어필하지 못한 게 치명적이었다고 한다.[7] 비범한 활약 때문에 스코틀랜드 출신이라 오해하는 편이지만 스코틀랜드 출신은 아니다. 실제 주소는 잉글랜드 서리 주 였다고. 굳이 스코틀랜드 출신이 아니라도 그 동네가 상무정신이 워낙 발달한 동네다 보니 연합왕국 설립 이후 빈약했던 영국의 육군 문화를 키우고 다듬는데 스코틀랜드 군사 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8] '클레이모어'라는 이름 때문에 잭 처칠이 양손검을 사용했다는 인식이 많으나 이건 스코티시 클레이모어고, 처칠옹이 사용한 클레이모어는 그 양손검이 아니라 좀 더 짧은 한손검인 바스켓힐트 클레이모어였다.[9] 당시 코만도 소속으로 좀 많이 괴짜였던 사람이다. 해변에 상륙하자마자 백파이프를 불면서 적진으로 이동하지 않나, 인도에선 오토바이를 타고 장검을 휘두르며 활을 쏘아 적을 무찌르기도 했다고. 일본의 항복소식을 듣고 '미국놈들만 아니면 십수년을 더 싸울 수 있었는데'라고 말했다는 진정한 전투광. 당시 잭 처칠은 일본군이 쏘라는 총은 안 쏘고 우르르 몰려와 백병전을 시도한다는 말을 듣고, 이젠 으로 제대로 싸울수 있겠다며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고 한다. 처칠과 일본군의 만남이 성사됐었다면 전설적인 영화거리가 나왔을 듯. 한마디로 2차대전의 중세기사였다.[10] 영국 런던 박물관의 화살촉 분류법에 의거[11] 2 mm가 막아낸 것이라고 회자되는 경우도 있는데, 1.21 mm이다. 2 mm 정도의 두께라면, 화살에 의해 구멍이 나지도 않는다. 이 실험도 역시 입사각 0도로 정확히 명중했을 때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록한 구조로 인해 실전에서는 거의 기대하기가 힘든 결과다.[12] 금속고고학계의 Alan Williams 박사저, The Knight and the Blast Furnace에 의하면, 150 lbs의 장궁에 100 gram의 화살을 내면, 물체에 충돌할 때 작용하는 에너지가 140 J이다. 위 영상의 실험과는 별개로, 공기에서 냉각을 거친 이탈리아 식의 판금흉갑이 입사각 0도에서 175 J, 입사각 30도에서 230 J의 반발력을 보여주었다. 내갑의를 포함하면, 각각 225 J, 280 J이다.[13] 이 동영상의 실험엔 좀 문제가 있는 것이 첫째, 실험 후 화살촉이 멀쩡한 걸로 보아 열처리가 된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연철제 같으면 쇠와 쇠가 맞부딛히는 극한상황에선 촉이 구부러짐) 생산성이 열악했던 당시엔 값비싼 소모품인 화살촉까지 단금질을 할 여유가 없었으므로 연철제가 절대다수여서 불공정한 비교에 가깝다. 둘째 20미터를 상정했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20미터는 백병전을 준비해야 하는 근접거리이지 사격거리가 아니다. 말탄 기사는 말할 것도 없고 중무장한 병사도 얼마든지 전력질주로 간격을 좁힐 수 있으며 무엇보다 적의 눈흰자위가 보이는데 편안히 사격을 가할 수 있는 궁수는 현실 속에선 없다고 보는 게 속편하다. 설령 이 거리에서도 쏠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십중팔구 있는 화살을 온힘을 다해 시위를 당겨 쏘았을 테니 체력이 많이 소진된 상태였을 것인데 제대로 날리지도 못했을 것이다.[14] 덧붙여 당시의 무구 및 갑주가 동네 대장간이 아닌 나름 전문화된 공방에서 생산된 건 맞지만 변변한 공작기계 하나 없이 인력에 주로 의지해야 했던 시대적 한계상 화살촉까지 강철제로 대량생산한다는 건 무리였다. 단금질이 보기와 달리 고도의 숙련 및 기술이 필요하며 자칫 잘못하단 제품에 금이 가 못 쓰기 십상이다. 특히 당시의 철 제질이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불순물 투성이에 탄소 함유량 역시 들쑥날쑥이던 저질이었던 걸 고려하면 갑옷보단 제작 난이도가 낮다 하나 금전문제상 소량생산하는 갑옷 그 이상으로 수천개, 수만개 대량생산해야 하는 생산성 문제가 있으며 연철로 만들어도 살과 뼈는 잘만 뚫으며 운수 있어봐야 몸통에만 겨우 갑옷 걸친 잡병상대하는 덴 문제가 없어 가성비가 좋아지며(철제갑옷 상대론 둘 다 무용지물이었던 점, 값비싼 갑옷을 전신에 두를 계층은 한정적이었단 걸 감안하면) 더욱이 화살 하나하나가 숙련된 장인이 일일이 촉대 곧게 펴가며 거위털 같은 깃대를 붙여 만드는 등 손이 너무 가 코스트 자체가 매우 높았던 물건인 것까지 고려하면 촉까지 강철은 지나친 호사였던 것이다. 또한 아쟁쿠르 전투에서의 장궁병 활약은 프랑스 측의 실책으로 기사들이 진흙탕에서 생고생 해가며 겨우겨우 진격한 만큼 체력충전할 여유가 충분했으며 더욱이 기사와 맞붙어 싸운 것도 아니고 아군 측 기사 뒤를 졸졸 쫒아다니며 말뚝 박는 오함마로 쓰러진 프랑스 기사를 확인사살한 것이었기에 장궁병 역시 백병전에 임했다는 근거로 삼기는 무리이다.[15] 미육군사관학교 역사학 교수 클리퍼드 로저스(Clifford J. Rogers)의“The Battle of Agincourt,” The Hundred Years War (Part II): Different Vistas, (2008): 37-132. 앨런 윌리엄스(Alan Williams)의 "The Knight and the Blast Furnace(2003)"에 수록된 테스트 자료를 다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16] 갑옷의 각부분의 두께 또한 다르다는 것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투구와 흉갑이 가장 두껍고 튼튼하게 만들어지는 부분에 속한다.[17] 마이크 로즈의 다른 다큐에선 그 경우 '주먹으로 얻어 맞는 것 같은 충격을 받는다고 말한다. 즉 오늘날로 비교하면, 방탄복을 입고 있으면 총탄에 맞는다고 죽거나 큰 부상을 입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닌 것과 비슷하다. 일부 특수부대나 경찰 등에서 '방탄복 입은 채 총 맞아보기' 같은 것을 훈련코스에 넣어 놓는 이유 또한 그것이다. '죽지 않으니 동요하지 말고 침착하게 상황에 대응하며 임무를 지속하라'고 말이다.[18] 면갑의 눈구멍이나 공기구멍은 애초 화살보다 작게 만들어져있다. 그러나 정말 운나쁘게 화살에 에너지가 충분히 남아있을 거리에서 그 틈새로 정확하게 화살이 날아들 경우엔,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19] 앞 항목에서도 언급되었듯 잉글랜드군이 장궁병이 다수 동원되는 전투를 경험하고 당시로서는 높은 수준의 '보병, 기병, 궁병 제병합동 전술'을 발전시킨 것은 이미 100년 전쟁에 한참 앞서 영국 내에서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등과의 전쟁을 거치면서 만들어낸 것이었다.[20] 실제로 마갑의 무게는 '풀세트'라고 해도 기사의 판금갑옷 한 벌과 크게 차이가 없는 정도의 무게이다.[21] 심지어 기사의 갑옷의 '퀴스'조차 마상용 갑옷인 경우엔 허벅지 안쪽은 갑주를 대지 않았다. 말을 타려면 어쩔 수 없다.[22] 유리한 전장의 선택이라는 요소는 어느 시대, 어떤 무기가 사용된 전쟁에서도 늘 승패를 가르는 핵심요인이었고, 자기가 보유한 병력의 장단점에 맞는 전장에서 전투를 치르는 것은 전술과 지휘관의 자질의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다. 보병과 궁수가 병력의 주를 이루는 잉글랜드군이 자신에게 유리한 전장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훨씬 먼 거리에서도 갑주를 안정적으로 관통할 것이 기대되는 화약무기가 등장한 이후에도 개활지의 보병이 기병돌격을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거의 4세기가 더 지난 후의 일이다. 즉 연발식 소총과 자동화기의 등장 이후 말이다. 설령 잉글랜드군에게 들려있던 무기가 장궁이 아니라 아르케부스머스킷이었다고 해도 그들은 '똑같은 장소'에서 프랑스군을 맞기를 원했을 것이다. 즉 잉글랜드군이 크레시에서 아쟁쿠르까지 잉글랜드군의 승리에서 언제나 유리한 지형을 선점하고 그 이점을 극대화하는 전술을 사용했다는 것이 '사실은 장궁은 별로 한 것도 없고' 식의 평가의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잉글랜드군은 보병과 궁병이 주력인 자신들의 장점이 극대화되고 중장기병이 주력인 프랑스군의 약점이 극대화되는 전장을 선택'한 것이다. 프랑스군은 고질적인 지휘체계의 불명료함과 이전 패배에서의 전훈 축적에 실패하여 매번 상대의 판에서, 즉 '보병과 궁병이 이기는 판'에 중기병을 꼬라박은 것이고 말이다. 간단히 말해 좋은 갑옷을 입는 것만으로는 망한 전술을 구해주지는 못했다는 것이다.[23] 우리나라는 토양이 산성이 강하기 때문에 목재 같은 유기물은 쉽게 삭아 없어진다.[24] 다만 박달나무의 경우는 나무의 탄성이 적어서 활을 만들었을 때, 화살이 멀리까지 나가지 못한다고 한다.[25] 국궁은 민어 부레로 만든 접착제로 재료들을 붙여 만들었고, 각궁을 썼던 국가들은 다소간의 차이는 있어도 전부 자연적인 접착제를 활용해서 활을 만들었다. 그래서 덥고 습한 환경에서는 활의 내구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각궁의 단점이 유지가 어렵다는 것인데 일본의 덥고 습한 환경은 각궁을 쓰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그래서 목제 활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26] 국궁은 정면을 바라보는것에 가까운 사법과 활이 짧아서 같은 길이를 당겨도 왠만하면 위쪽으로 넘어간다.[27] 한번 신경쓰이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신경쓰이게 되고, 일종의 멘탈 스포츠인 궁도에서 상당히 치명적인 문제라고 한다.[28] 후기로 갈수록 작아졌는지 고증 논란이 있는 현대에 와선 흔적만 남은편이다.[29] 날개의 특이한 구조가 화살을 가속시킨다. 크기도 크고 활줄이 구조물에 강하게 부딛쳐 반동이 어마어마해서 무거운 화살이 필요한 게 단점.[30] 화살의 속도 차이가 중요한점이 아닌거 같지만 운동에너지는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고 탄속이 느린 장전은 막거나 피하던 일본군이 화살이 작고 가벼워져서 더 빨라진 편전은 못막고 죽어나갔단 기록이 있다.[31] 관리하기 진짜 까다롭다고 한다. 각궁을 사용하시는 궁사들이 각궁을 빗대어 '살아있는 생물' 같다고 하였을 정도.[32] 길게 만드는 것은 당기는 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같은 거리만큼 당길 경우 활이 휘어지는 각도(변형률)은 짧은 활이 긴 활보다 더 크므로, 같은 재료와 두께로 만든다면 짧은 활이 긴 활보다 더 적은 거리에서 영구 변형 및 파괴가 발생한다.[33] 과거 '세계민족궁대축제'가 한국에서 열렸을 때 한국식 경기 시연에서 과녁까지의 거리가 가장 길었는데(이것도 120m로 본래 145m보다는 짧다.) 유일하게 과녁 언저리까지 도달한 다른 나라의 활이 해당 대나무로 만든 단일궁이었다.[34] 영국 장궁이 활의 에너지 전달 효율이 나쁜 이유가 이 부분을 고려해서이다. D형 몸체는 활의 성능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살이 붙어있지만 사실 활 자체의 내구성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한 플랫보우보다 훨씬 내구도가 우수하다. 군용으로 쓰기 위한 궁리가 퍽 잘 된 셈.[35] 복합궁 활몸을 쓰는 십자궁(crossbow)의 경우, 가격이 너무 비싸 자체 보유하기보단 스스로 십자궁을 갖춘 십자궁 용병을 고용하는 게 차라리 나았다고 한다.[36] 다만 나무 건조에는 최대 1~2년 걸리기 때문에 소재 준비까지 합하면 장궁도 꽤 시간이 걸린다. 목재도 아무 목재나 못 쓰고 길이와 두께, 심재 강도가 일정 이상 되면서 옹이나 삭정이가 없는 질 좋은 주목(단일궁의 대표 격인 영국 장궁의 경우)이어야 하는데 주목은 생장 속도가 느리고 그나마 프랑스에서 수입하는 것을 1등급으로 쳤다. 반면 비교적 작고 휘어진 나무의 목재도 작은 부속으로 깎고 서로 이어 붙여 문제 없이 활용 가능한 복합궁이나 합성궁에 비해 단일궁은 크고 질 좋은 목재의 성능이 활의 성능에 직결되기 때문에 '목재'만 놓고 보면 단일궁이 재료 구하기 더 불리한 면이 있다. 원목 가구가 집성재나 합판으로 만든 가구보다 훨씬 비싼 것과 같은 이치지만 합성궁에 쓰이는 가장 좋은 소재인 물소뿔은 수입부터 문제였으니 도긴개긴이다.[37] 어설프게 만든 체인메일을 제외한 철제갑옷은 쥐약이지만, 어차피 활 종류는 인간의 근력 한계상 갑옷 상대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이는 합성궁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다.[38] 최상의 재료로 만들 경우 뿔의 휘어진 바깥쪽 뿔조각인 '양각'만을 사용하므로 물소 뿔 하나에 각궁이 하나 나온다. 한우의 뿔로 물소 뿔을 대체할 수 있고 이를 향각궁, 백각궁이라 부르는데 양각만을 써서 활을 하나 만드는 데 뿔이 긴 황소 1마리 반의 뿔이 필요했다고 한다.[39] 개중에는 이런 이유로 조선인들이 어리석게 각궁에만 집착했다고 까는 사람들도 있는데 애초에 재료, 제작 방식, 전술, 사법까지 차이가 나는데 무조건 각 나라의 활이 대응된다고 생각하는 게 넌센스다. 게다가 목제 장궁은 단기 대량 보급에는 유리할 지 몰라도 활 자체의 최대 성능과 크기에서 차이가 벌어지기에 숙련된 사수가 최대 역량을 발휘한다고 가정할 경우 합성궁의 성능을 따라오지 못한다. 하이엔드 제품과 로우엔드 제품 혹은 기병용 카빈총과 보병용 소총 정도 차이다.[40]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는 운동에너지의 량이 적다. 다만 무게가 무겁기에 비행 시 운동량 보존이 쉬워 운동에너지 손실률이 적다. 물속에서 총을 쏘는 것과 화살을 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활의 날개가 가벼운 합성궁도 최대 속도가 분명 존재하며 이 때문에 화살의 무게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애기살이 장전과 비교했을 때 매우 짧지만 무게는 3분의 2 정도 가지는 것도 이 문제다.[41] 고유 유닛은 아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의 고유 건물인 토템 기둥이 궁병 유닛에게 추가 경험치를 제공하긴 한다. 지도자인 시팅 불에게 방어적 특성이 있어 병영까지 지으면 진급 셋이 떨어지는데, 한 마디로 난공불락이다.[42] 사실 이 말뚝이라는 놈이 흉악하기 그지없어서 중기병이든 중기병 할애비든 정면에서 들이받으면 그 순간 스치기만 해도 우수수 쓰러진다. 장창병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대신 장궁병대의 정면을 완전히 가려주지는 못하고 양 사이드에 틈이 조금씩 생긴다.[43] 크루세이더 캠페인에서 예루살렘 왕국에 리처드 1세가 등장하지만 정작 이끌고 등장하는 것은 예루살렘 왕국의 병력이고 튜튼 캠페인에서는 잉글랜드 귀족이 튜튼 기사단에 십자군을 이끌고 지원을 오지만 그중에 셔우드 궁수들은 없다.[44] 실제 이들과 사격전을 벌여도 사거리와 사격 속도에서 우위를 점하는 장궁병이 거뜬히 승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