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07 12:12:33

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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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G 트윈스의 1990년대 리즈시절의 응원단장. 경기 분위기가 달아오를 때 그가 응원단상에서 나미의 '빙글빙글' 노래에 맞춰서 췄던 춤을 기억하고 있는 올드팬들이 많다. 대부분 구단에서 쓰고 있는 "박수 5번(짝짝 짜자작) OO~O 안타!" 응원구호를 만든 인물로 알려져 있고, 훗날 '열광체조'라는 이름으로 바뀐 '열광' 응원(무릎 두 번, 박수 두 번, 돌리고~ LG!)의 창시자로도 알려져 있다. 1990년대 KBO 리그 응원 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라고 해도 된다. 가끔 LG 트윈스가 올드팬들을 위한 이벤트를 하면 등장해서 1이닝 정도 응원을 이끈다.[B] 실제로는 MBC 청룡 시절인 1988년 개막전 3연전에서 응원을 시작했다. 모든 경기를 출장하며 응원을 주도한건 1993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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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욱
소속 LG 트윈스 (응원단장)
경력 2008년~2010년 창원 LG 세이커스 응원단장
2009년~2010년 LG 트윈스 응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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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따위는 가볍게 버려주시는 응요 (응원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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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생활건강 사원이 된 모습

1. 소개2. 경력3. 응원가
3.1. 단점 및 논란

1. 소개

LG 트윈스의 전 응원단장. 그리고 LG 팬들이 승률 5할도 채 못하는 팀을 굳이 잠실까지 가서 응원하게 만든 응원요정.

지금은 오명섭을 거쳐 최동훈 응원단장으로 넘어갔지만 선수는 바뀌어도 대부분의 응원가는 그대로 이어갈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위엄 쩌는 9번 이병규의 응원가나 예전부터 쓰던 팀 응원가 등[1][2]은 기존부터 있던 것이지만 최근 쓰이는 선수들의 응원가는 거의 다 이 분의 작품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2. 경력

부산 내성중학교-내성고등학교를 거쳐 경기대학교에 진학하였다. 학창시절 코가 커서 "코쟁이"로 불렸다.
2002년 경기대 응원단장을 시작으로 응원단장 생활을 시작했다. 경기대학교 시절 선배가 당시 SK 와이번스의 응원단장 박홍구였고, 창원 LG 세이커스의 응원단장직을 알아봐 준 사람은 과거 넥센 히어로즈의 응원단장이었던 심윤섭이었다고 한다. 이후 활동한 프로구단은 LG 외에는 없었다. 특히 LG 트윈스에는 2년을 근무했는데, 지금 LG의 응원에 끼친 영향력을 감안하면 사실 굉장히 짧게 활동한 편.

응원요정, 줄여서 '응요'라고 불릴 정도로 LG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2010년을 마지막으로 응원단장을 관둘 때는 기사도 나오는 등 큰 주목을 받았다. 응원단장을 관두고 얼마 후, LG생활건강에 입사했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인터뷰 기사가 나오기까지 했다. 같이 들어간 사원 중에 팬이 있어서 싸인까지 해줬다고 한다.

3. 응원가

응원가 제작 능력은 단연 탁월한 편. 과장해서 그의 업적은 99년부터 2005년까지 응원단장이었던 홍경선의 업적과 비견될 만하다.[3] 2009년 찬송가나 다름없었던 페타신의 응원가나 그냥 회사 로고송으로 괴물같이 묻힌 곡을 발굴해내서 만든 박용택의 응원가, 워낙 흥겨워서 나올 때마다 팬들이 제일 좋아했던 손인호의 응원가[4], 2016년 현재 이천웅에게 넘어간 이택근, 윤요섭의 응원가, 전설적이었던 조인성의 응원가 등 최근 LG에서 이적한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타 팀 팬들이 응원가도 가져갈 수 없나 이야기할 정도로 기억도 하기 쉽고 굉장히 위엄 있는 응원가들을 만들어냈다.[5]

3.1. 단점 및 논란

그래도 만든 것마다 성공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2010년 시범경기 때 만들어온 황비홍 OST인 남아당자강(...)이었던 이병규의 등장곡은 귀신같이 사라지기도 했다.

가끔 지적받는 문제는 은근히 응원가들이 부르기 빡세다는 것LG 야구 보러왔는데 승은 못 건져도 노래 실력은 건져야지. 실제로 이택근이나 이진영의 응원가는 고음 부분에서 패배하는 사람도 적지 않아 키를 낮추어 버렸다.

또한 논란을 일으킨 적이 한 번 있었는데 이병규의 응원가를 이진영에게 2009년에 줬던 일이다. 아무리 일본에 갔어도 팀의 최고 프랜차이즈 스타 중 한 명의 응원가를 다른 사람도 아니고 FA 영입 선수에게 주는 것이 타당하냐는 문제. 본인은 이 응원가를 썩히기가 아까웠다고 이야기했다.[6] 물론 이 문제는 이병규가 2010년에 LG에 복귀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 이진영에게는 현재 쓰이는 응원가가 새로 만들어졌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논란급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1] 서울의 모정 등은 남성훈 때 만들어졌다.[2] 쉽게 말해서 이종열, 이병규, 최동수의 응원가(기존 김동수가 99년까지 사용) 는 1990년대 후반에 등장했다.[3] LG의 초대 응원단장인 정석진의 업적도 상당하지만, 홍경선은 지금까지 내려오는 응원가 대부분을 만들었다. 대표적인 것이 이병규, 유지현, 이종열, 김재현 등 90년대 프랜차이즈 스타들의 개인 응원가가 있다. 이 맥이 잠시 끊어진 때는 남성훈 단장 때였다.[4] 응원가 때문에 박용택이 나올 때보다 손인호가 나올 때 현장의 팬들이 더 좋아했다는 소문이 있다. 현재는 손주인을 거쳐 강승호에게 넘어갔다. 사실 손인호 응원가는 08시즌 남성훈 단장 시절에 제작되었다.[5] 특히 조인성은 SK로 이적할 때 LG시절 응원가를 쓸 수 있냐 했다가 LG팬들에게 욕을 먹었다. 그리고 SK에선 카페베네 응원가를... 결국 조인성 응원가는 조윤준에게로 넘어갔다.[6] 그런데 이병규(동명이인)가 이미 2008년에 이 곡을 쓰고 있었다. 다만 2009년에 새 곡을 주면서, 기존 응원가를 이진영에게 넘긴다.(동명이인 이병규는 이 응원가를 사용하지 않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