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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팀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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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팀별 리뷰
2.1. 대한민국2.2. 카메룬2.3. 아르헨티나2.4. 이탈리아2.5. 서독2.6. 브라질2.7. 네덜란드2.8. 소련2.9.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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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의 각 팀별 리뷰.

2. 팀별 리뷰

2.1. 대한민국



1990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이란과 당시 아시아 강호였던 쿠웨이트가 조기 탈락하는 이변이 발생한다. 쿠웨이트와 이란은 각각 아랍에미리트와 중국에게 골득실에 밀리며 탈락하게 되고 일본마저 북한에 0-2로 패하면서 조기 탈락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네팔, 인도와 조편성이 되어 그야말로 최상의 조에 편성되었다. 당연히 1차예선에서 대한민국은 전승을 찍어버렸고 최종예선에 진출한다.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대한민국, 아랍에미리트, 중국, 사우디, 카타르, 북한이 진출했는데, 대한민국은 3승 2무의 성적으로 아시아 예선 우승하여 아시아 1위로 24강 본선에 오르게 된다.
어쨌건 통산 3회 본선진출을 이룬 대한민국은 비록 전설 차범근이 은퇴를 했지만 최순호, 김주성, 이영진, 이태호 등 수준급 선수들이 발굴되었으며 실제 카타르에서 열린 1988 AFC 아시안컵 카타르에서 준우승을 기록하며 기세가 좋은 상황이었다. 더욱이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은 그 중동의 강호 이란을 3-0으로 대파했고, 일본도 2-0으로 승리했다. 비록 승부차기 끝에 사우디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이 후 열린 90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사우디에 승리를 거두며 복수까지 했고 결과적으로나 내용적으로도 나름 준수했는데 단 1실점으로 틀어막았고 그 1실점 역시 같이 아시아 예선 준우승으로 본선에 오른 아랍에미리트에 내 준 골에 불과했다.

하지만 본선에서는 그야말로 무기력한 경기 끝에, 3전 전패를 기록하게 된다. 1차 벨기에전 및 2차 스페인전은 두말할 것도 없이 거의 두들겨 맞았으며[1] 마지막 우루과이전은 어느 정도 선전했으나, 당시 심판을 본 이탈리아 국적의 툴리오 라네세의 노골적인 편파 판정 때문에 수비수인 윤덕여 선수가 퇴장을 당하게 되고 결국 후반 인저리 타임에 우루과이의 다니엘 폰세카에게 골을 허용해 전패를 당하게 된다.[2] 믿었던 김주성이 오히려 부진했던데다가 아무리 유럽의 텃세가 심한 감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확실히 세계축구를 따라잡기에는 너무나도 머나먼 실력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대회였다. 특히 1·2차전은 결과와 내용면에서 모두 완패를 당할 만했다. 그나마 대회 꼴찌를 면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했을 정도였다. 현재까지 대한민국 월드컵 본선 진출 역사상 유일한 1라운드 3패다.[3] 그것도 문제의 심판만 아니었다면 지난 대회와 마찬가지로 승점 1점 1무 2패로 종결되었을 것이다.

2.2. 카메룬

대회 직전까지만 해도 카메룬의 선전을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조 편성 부터가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 동유럽의 절대 강자 소련, 만만찮은 동유럽의 다크호스 루마니아였으니 탈락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로저 밀러라는 위대한 스트라이커를 앞세운 카메룬은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니었다. 당시 감독이 발레리 니폼니시였다. 첫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를 잡더니, 뒤이어 루마니아에 2:1 승리를 거두는 대 이변을 일으키자 축구 관계자들은 카메룬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비록 수비력 불안과 결사적이었던 소련의 공세로 마지막 경기에서 소련에 0:4 참패를 당했지만 순위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했고, 카메룬은 죽음의 조에서 당당히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4]

그리고 16강 콜롬비아전. 전후반 90분 내내 득점없이 연장전을 맞이한 카메룬은 맹렬한 공세를 펼치며 조제 밀라가 연장 후반 1분과 4분에 연속골을 터트리는 괴력을 선사했다. 콜롬비아가 연장 후반 15분에 1골을 간신히 만회했으나 이미 시간은 거의 다 흐른 뒤. 이로서 카메룬은 24개국 체제가 확고해진 이후에 처음으로 非유럽·중남미팀으로서 8강에 합류하는 신화를 썼다. 8강 상대는 축구종가 잉글랜드. 비록 선제골은 내줬으나 카메룬의 공격력은 막강했고, 후반 16분 PK골과 20분의 역전골로 유럽의 강호이자 축구종가인 잉글랜드마저 격침시키기 일보 직전까지 내달았다. 이제 8강이 아니라 4강이 문제였다. 그러나 카메룬의 수비 불안은 결국 발목을 잡아, 리네커에게 후반 38분 페널티 킥을 내주며 연장까지 흘러갔다. 결국 연장 전반 15분 역시 게리 리네커에게 페널티 킥으로 통한의 역전골을 허용하며 카메룬은 8강에서 신화를 멈췄다.
비록 카메룬은 8강에서 탈락했으나, FIFA와 세계 축구계는 아프리카 축구의 잠재성을 목격했다. 이후 FIFA는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아프리카 티겟 수를 늘리는 것으로 화답했으며, 아프리카 국가들 역시 이에 화답하여, 94년 대회98년 대회 나이지리아의 2연속 16강, 02년 대회 세네갈의 8강, 06년 대회10년 대회 가나의 16강, 8강, 14년 대회 나이지리아, 알제리 2개 국가의 16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22년 대회에서는 모로코가 아예 준결승까지 가는 그야말로 아프리카 축구계의 완전한 새 역사를 쓰기까지 했다.[5] 그래서 아르헨티나를 KO시킨 카메룬의 활약이 아프리카 검은 돌풍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근데 정작 카메룬은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조별리그를 통과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1990년 대회 이후 이긴 경기가 2002년 조별리그 사우디아라비아전, 2022년 조별리그 브라질전 뿐이다.

2.3. 아르헨티나

전 대회 우승팀인 아르헨티나는 이 대회에서는 개막전부터 카메룬에 지는 등 전반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마라도나가 건재했지만 전반적인 팀 전력은 약해졌는데 그 댓가로 조별예선에서 3위로 처지면서 16강부터 브라질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브라질과의 16강전은 경기 내내 브라질에게 두들겨 맞다가, 세르히오 고이코체아의 신들린 선방에 단 한번의 역습찬스를 성공시켜 1-0으로 브라질을 격침하는데 성공한다. 브라질과의 16강전에서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아르헨티나-잉글랜드전에서 나온 마라도나의 하프라인 드리블 결승골에 비견할만한 엄청난 골이 나왔는데, 마라도나는 하프라인에서부터 드리블만으로 브라질 선수 3~4명을 따돌리고 다른 수비수들을 자신에게 집중시킨 후 클라우디오 카니자에게 골키퍼와 1:1을 만들어 주는 킬패스를 찔러넣어 결승골을 만들어 냈다. 참고로 마라도나는 왼발잡이로 오른발을 쓰는 일이 전무 할 정도로 없었는데 그 패스는 오른발로 했다.

8강에서도 유고슬라비아를 상대로 고전하다가 승부차기 끝에 간신히 이기고 4강에 올라왔고 이후에도 이탈리아와의 4강전, 서독과의 결승전까지 모두 경기 내용에서 밀리는 경기를 했다.
그러나 디에고 마라도나의 판단력과 클라우디오 카니자의 엄청난 스피드로 한두 번 되는 역습 상황을 살려 무승부를 이끌고, 승부차기에서 세르히오 고이코체아 골키퍼의 선방쇼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공식을 이어갔다. 실제 16강에서 브라질과의 경기는 브라질에게 무려 13번의 슛팅을 내 주고도 단 두 번의 슛팅에 마라도나의 킬 패스를 받은 카니자의 딱 한방으로 브라질을 간신히 이겼고 이 후에도 8강 유고슬라비아전(0-0 무승부)과 이탈리아전(1-1무승부)에 밀리는 경기를 하면서도 가까스로 실점을 막거나 동점을 이끌어 내 승부차기에서 승리하였다. 이탈리아는 카니자에게 골을 허용하기 전까지 이 대회 예선부터 무실점 기록을 이어가고 있었으나, 첫 실점 후 멘붕 탓에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결승전에서도 서독에게 일방적으로 밀렸음에도 실점을 허용하지 않고 서독의 공격을 잘 막아냈으나 2명이 논란성있는 퇴장을 당했고[6] 결국 후반 43분 서독의 안드레아스 브레메가 쏜 통한의 페널티 킥을 허용해 0-1로 패배하고 만다. 마라도나는 이 페널티킥 판정이 부당했으며, 월드컵을 도둑 맞았다는 주장을 하며 억울함을 호소하였으며, 시상식 내내 억울함의 눈물을 흘리는 마라도나의 모습이 전 세계에 중계되었다.
아르헨티나는 전 대회에 비해 전력이 많이 약화되면서 아슬아슬한 경기력을 보였고 토너먼트 내내 언더독으로 평가받았다.[7] 마라도나는 상대방의 집중 견제에 시달리며 기록적인 횟수의 파울을 당했고 본인의 폼 또한 전 대회에 비하면 눈에 띄게 하락한 상태였지만 순간순간 번뜩이는 판단력으로 아르헨티나의 몇 안되는 찬스를 만들어냈다. 이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는 총 5득점 4실점을 했으며, 마라도나는 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마라도나와 더불어 골키퍼 세르히오 고이코체아도 언더독 아르헨티나의 결승행에 큰 공을 세운 선수였다. 사실 고이코에체아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우승 주역이었던 네리 품피도 골키퍼가 소련과의 경기 도중 당한 부상으로 인해 자리를 메우게 된 백업 골키퍼였다. 하지만 약해진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공세를 펼치던 강팀들을 상대로 신들린 선방을 보여줬고 2연속 승부차기 승리를 견인하며 오히려 토너먼트에서는 마라도나에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줬다.

2.4. 이탈리아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의 우승팀인 이탈리아는 UEFA 유로 1984은 본선 진출 실패,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에는 16강전에서 프랑스에 패배하고 탈락하며 암흑기를 보냈지만 UEFA 유로 1988에서 아쉽게 소련에게 졌지만 4강에 진출 하며 부활을 시작했다.

당시 세계 최고의 리그인 세리에 A의 이탈리아는 호화로운 스쿼드를 구성하면서 개최국 버프까지 받으며 전력상 강력한 우승후보라 불릴 만했다. 골키퍼는 발테르 쳉가였고 수비진은 파올로 말디니, 프랑코 바레시, 리카르도 페리, 주세페 베르고미, 피에트로 비에르코보드, 치로 페라라라는 역사에 남을 수비진을 구성하였다. 중원 또한 페르난도 데 나폴리, 카를로 안첼로티, 주세페 자니니, 로베르토 도나도니 등으로 구성되었고, 공격진도 로베르토 만치니, 잔루카 비알리, 알도 세레나, 안드레아 카르네발레 등으로 구성되면서 세계 최고의 리그인 세리에 A의 올스타라고 봐도 무방한 라인업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공격진에서 가장 빛난 선수는 다른아닌 새롭게 나타난 신성 로베르토 바조와 대회 최고의 스타로 도약한 살바토레 스킬라치였다. 특히 스킬라치는 센세이셔널 활약을 하며 골든볼과 골든슈를 모두 석권하며 팀을 이끌었다. 팀또한 8강전 전까지 5경기 무실점을 기록하며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하지만 그 좋은 실력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와의 4강전에서 마라도나의 심리전에 말려들며 쩔쩔매다가 결국 승부차기에서 연달아 실축을 범하며 패배한다. 이 때의 승부차기 패배를 기점으로 이탈리아는 2006년 독일 월드컵 우승 전까지 승부차기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

2.5. 서독

대회 뚜껑을 열어보니 이 대회 명실상부한 최강 팀은 서독과 이탈리아[8]였고, 서독은 로타어 마테우스를 중원 사령관으로 하여 당대 최고의 레프트백 안드레아스 브레메, 1988 서울 올림픽 동메달 출신의 신예 위르겐 클린스만게르만 삼총사, 가공할 공격력의 루디 푈러 등을 갖춘 막강 멤버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서독이 가장 고전한 경기는 4강 잉글랜드 전. 당시 잉글랜드는 조예선 성적도 시원잖았고 8강전은 심판의 과도한 페널티 킥 남발로 카메룬을 운으로 이겼다는 평도 있어 서독의 우세가 예상되었으나 막상 뚜껑을 여니 서독을 엄청나게 압박하며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선보여 명승부를 만들어 냈다[9]. 연장전에서도 서로 공격을 늦추지 않고 두 팀이 한번씩 골대를 맞춘 끝에 결국 승부를 내지 못하자 전문가들은 피터 쉴튼이란 노련한 골키퍼를 보유한 잉글랜드의 승리를 점쳤으나, 쉴튼은 1점도 방어를 하지 못했고 반면 잉글랜드 키커인 피어스가 가운데로 강하게 찬 것이 서독 보도 일그너 골키퍼의 발에 맞아 튕겨 나오면서 서독이 승리, 결승에 진출한다. 잉글랜드의 승부차기 연패 잔혹사는 바로 이 대회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처음부터 우승을 목표로 결승전을 위해 컨디션을 조절해오던 서독은 결승전을 대비해 이 경기에서 방심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측면도 분명히 있었다. 당시 잉글랜드는 예선부터 그리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 서독은 벤치 멤버인 올라프 톤을 선발 출전시키는 등 체력 안배를 위해 여유를 부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당시 거친 몸싸움으로 유명한 잉글랜드는 이 경기에서도 거친 반칙을 자주 사용했고, 때문에 결승을 염두에 두고 있던 서독 선수들이 상당히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태클이 들어올 만한 타이밍에서 위축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역시나 거친 태클이 들어와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또한 루디 푈러가 제 컨디션이 아니었고 결국 전반전에 통증을 호소하며 교체되었으며 교체로 들어온 신예 리들레는 대표팀 경험이 거의 없었다.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도 1-0이라는 스코어와 달리 상당히 일방적이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4년 전보다는 확실히 약해져있었다. 16강전에서 카레카의 브라질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다가 마라도나의 스루패스 한방으로 극적으로 8강에 오르는 등 마라도나카니자에 의존해 꾸역꾸역 결승에 올라온 처지였다.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는 10백을 시전했고, 거친 경기 끝에 선수가 두 명이나 퇴장당하는 악재 속에서도[10] 후반 43분까지 0-0으로 버텼으나 결국 경기 종료를 코앞에 두고 페널티 킥을 내줬다. 당시 서독의 전담 키커는 로타어 마테우스였으며, 실제 마테우스가 한골을 더하면 스킬라치에 이어 실버슈를 수상 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결승전에서는 예상을 뒤엎고 브레메가 페널티 킥을 맡았다. 그 이유가 마테우스가 전반전에 축구화가 찢어져 후반전을 앞두고 새 축구화를 신게되어서, 발 감각이 온전치 못함을 염려해 브레메에게 킥을 양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판단은 적중하여, 브레메는 페널티 킥 방어의 신 세르히오 고이코체아도 막지 못할 골대 좌측 구석 으로 정확히 공을 차넣어[11] 서독이 우승하게 된다. 사실 서독은 이전 대회인 1986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초보 감독 베켄바워가 마라도나와 아르헨티나의 전력을 너무 과대평가한 나머지 수비 전술로 임했고 그 결과 2-0까지 밀렸다. 결국 이판사판으로 루디 푈러를 투입하며 맞불을 놓았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며 2-2까지 따라잡았으나 결국 패하고 말았던 경험이 있었다. 베켄바워는 수비 전술로 임했던 자신의 선택을 무척 후회했고, 199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토너먼트 때 하던대로 임했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3개월 후 서독은 통일을 이룬다. 정식으로 통일 된 것이 3개월 뒤이고, 베를린 장벽은 월드컵 기간중에 붕괴되었다. 실제 마테우스도 결승을 앞두고 동독에 계신 할아버지를 위해 우승컵을 바치고 싶다고 인터뷰했다. 정말 서독의 입장에서 1990년은 서독 역사상 최고로 축복받은 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났다.

당시 압박축구의 대세로 골 흉년이던 양상과는 달리 서독은 조별예선부터 4-1, 5-1 승부를 하며 대회 최다 골을 넣는 등 미드필더 5인방의 톱니바퀴 조직력을 앞세운 가장 화끈한 축구를 한 팀으로 잘 알려져 있다.

2.6. 브라질

1980년대 브라질은 지쿠, 소크라치스, 토니뉴 세레주, 호베르투 파우캉 등 새로운 황금세대들을 이끌고도 우승은커녕 4강에도 들지 못했으며, 이 후의 황금세대들이 은퇴했지만 브란토 알레마오, 발도, 카레카[12], 마우로 갈바오, 호마리우 등 새로운 신성들의 등장으로 1989년 코파 아메리카에 우승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즉 지난 대회 우승팀인 아르헨티나보다, 브라질이 경기력으로나, 실력으로나 훨씬 더 우승후보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브라질은 본선 조별리그 C조에서 3전 전승으로 16강에 올랐고 이에 비해 아르헨티나는 B조에서 1승1무1패에 승점이 같은 루마니아에 골득실에서 밀리며 조 3위로 추락, 간신히 16강에 합류하였다. 그리고 운명의 장난일까,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16강에서부터 조우하게 된다.

경기는 그야말로 브라질의 가패삼기로 아르헨티나를 압박하고 있었으며 바우두, 카레카, 물레르 등의 융단폭격으로 아르헨 골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나마 아르헨티나는 고이코체아의 신들린 선방과 골대로 인해 0-0 상황을 끌어가고 있었을 뿐이다. 후반에도 브라질의 일방적인 페이스로 경기가 흘러갔지만 후반 중반 아르헨티나의 부루차가의 중거리 슛을 시작으로 아르헨티나의 경기력이 서서히 살아났고 특히 전반에 불안한 모습을 보인 아르헨티나 수비수인 로제리는 후반 중반을 이 후로 물레르와 카레카를 잘 막아내면서 점점 브라질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운명의 후반 36분 하프라인부터 치고 오는 마라도나의 번뜩이는 드리블에 5명이나 자리를 지키던 브라질 수비수들은 마라도나만 바라보며 뒷 공간을 파고 들어가는 아르헨티나 스트라이커인 카니자를 완전 방치해버렸고 마라도나는 그런 무방비 상태인 카니자에게 공을 전달했으며 카니자는 가볍게 골키퍼를 제치고 이 경기의 선제골이자 결승골을 뽑아내었다.

브라질이 수 차레 유효 슈팅에도 뚫리지 않는 아르헨티나 골문을... 아르헨티나는 단 두 차례의 기회만에 뚫어냈으니 파상공세를 퍼붓던 브라질 선수들은 심하게 동요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이제까지 아르헨티나의 공격을 잘 막아낸 리카르두 고메스는 이 한방에 이성을 잃으며 선제골 허용 이후 단 2분만에 퇴장까지 당하게 되고 결국 그렇게 경기는 1-0 아르헨티나의 승리로 끝이 났다.

2.7. 네덜란드

요한 크루이프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두 번의 결승진출로 축구 강호로 발돋움한 네덜란드는 1982년, 1986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면서 공백기가 있었으나 바로 UEFA 유로 1988에 우승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고 스쿼드 또한 만만치 않았는데 마르코 반 바스텐, 루드 굴리트, 프랑크 레이카르트 등 말이 필요없는 밀란 제너레이션을 이끈 오렌지 삼총사로날트 쿠만, 빔 키프트, 반 티길렌 등 보좌하는 선수들의 네임드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본선에선 상당히 무기력했는데, 첫 경기 확실한 1승 카드인 이집트를 상대로 무승부를 내면서 뭔가 꼬이기 시작했다. 이어진 잉글랜드와의 2차전 이 때도 잉글랜드는 서독, 이탈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에 비해 모자랐지만 지금의 뻥튀기가 심하지 않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이름값하는 잉글랜드였다. 게다가 피터 쉴튼, 테리 버처, 폴 개스코인, 게리 리네커 등 우수한 선수들도 보유했으나 그래도 전력상 네덜란드가 근소하게 우세했는데도, 0-0으로 비기고 말았다.

마지막 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도 굴리트의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고 니얼 퀸에게 동점골을 허용해 3연속 무승부를 거두며 16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16강 상대는 숙명의 라이벌 서독, 참고로 이 경기전 서독의 감독인 프란츠 베켄바워는 기자가 “16강에서 네덜란드를 만난 것이 부담이 되지 않느냐?”란 질문에 “우린 조1위로 16강에 진출했고 조별예선에서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간신히 16강에 진출한 네덜란드가 부담이 될 것”이라고 디스하여 선수단을 동요시켰고, 결국 본 경기에서 레이카르트가 루디 푈러와 동반 퇴장을 당할 정도로 경기가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10대 10으로 진행된 경기에선 클린스만의 선취골과 브레메의 환상의 감아차기골로 서독이 2-0으로 리드하고 있었으며 네덜란드는 후반 45분 로날트 쿠만의 PK골로 만회골을 넣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그렇게 우승도 가능한 전력의 팀인 네덜란드는 브라질과 16강에서 조기 탈락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조별예선에서 부진했던 아르헨티나가 당시 기세 좋은 브라질을 16강에서 잡으며 8강에 진출한 것과 달리 네덜란드는 조별예선에서의 부진으로 결과적으로 4강이나 결승에서 만나야 할 서독을 너무 일찍 만나버렸고, 거기에 프란츠 베켄바워심리전에 말려버리면서 팀의 조직력도 와해되면서 서독에게 무기력하게 패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조별예선에서 선전을 했다면 서독에 비해 충분히 해 볼만한 루마니아나, 벨기에를 만났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네덜란드는 최소 4강까지 갔을 수 있을 것이다.

2.8. 소련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공산주의의 붕괴로 인해 소비에트 연방 역시 민주주의자본주의의 바람에 휘청이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1991년도에 해체가 되었으니 마지막 월드컵이였다. 비록 과거 레프 야신 시절의 무적 포스는 아니었지만, 야신의 후계자인 리나트 다사예프의 맹활약으로 UEFA 유로 1988에 결승에 오를 만큼 저력만큼은 무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 편성부터가 죽음의 조였다.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와, 당시 동유럽의 강호 루마니아, 그리고 돌풍의 팀인 카메룬이었다.

루마니아와의 1차전에서 0-2로 완패당하고 이어진 디펜딩 챔프인 아르헨티나에게도 0-2로 패배당한다. 마지막 이변의 팀이라 불린 카메룬과의 3차전에서 전패만은 할 수 없다는 선수단의 결사항전에[13] 카메룬을 4-0으로 완파하면서 조 3위를 노렸지만, 하필 루마니아와 아르헨티나가 무재배를 하는 바람에 꼴찌 탈출에 실패했고, 결과적으로는 죽음의 조에서 꼴찌를 기록하면서 소련이라는 이름으로써의 마지막 월드컵을 망치고 만다.

이후 러시아 팀으로 바뀐 뒤부터 무려 20년 넘게 월드컵 16강조차 진출하지 못하다가 2018년에 열린 자국의 월드컵에서 오랜만에 8강에까지 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후 여러 문제들이 잇달아 터진 끝에 결국 월드컵을 비롯한 거의 모든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완전히 금지되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고 말았다.

2.9. 아일랜드

'더티 리즈' 시절 리즈 유나이티드 FC의 레전드이자 잉글랜드 국대 출신인 잭 찰튼 감독의 지휘 하에 프랭크 스테이플턴, 크리스 휴튼, 로니 웰란, 믹 매카시, 존 올드리지, 나이얼 퀸 등의 우수한 선수들을 중심으로 견실하고 단순한 축구를 선보이며 조별 예선 3경기와 16강전을 통해 8강에 진출할 때까지 4경기를 무재배했다. 요악하면 '무승 8강' 허정무식 축구의 원조라 할 수 있다.


[1] 그나마 스페인 전에서는 한골을 넣었다.[2] 사실 이 골은 오프사이드였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이탈리아가 16강 상대로 만만한 우루과이랑 만나려고 억지로 우루과이의 승리를 안겨주었다는 설이 있다. 하필 이 경기 심판이 이탈리아인이었던지라 더더욱 그런 음모론이 잘 먹혔다. 만일 이 때 우루과이가 한국을 이기지 못했다면(즉, 그 오프사이드를 제대로 판정해서 0:0무승부로 승점 1점을 획득하였다면) 오스트리아가 16강에 가게 되고 이탈리아의 대진 상대는 콜롬비아가 되었을 것인데 이 당시 콜롬비아의 전력은 우루과이보다 훨씬 더 막강하다는 평을 받았었다. 실제로 이 때 콜롬비아는 한국을 상대로도 비실거리다 심판 편파판정 덕에 겨우 1:0으로 이긴 우루과이와 달리 이 대회 우승팀인 서독과 무승부 승점 1점을 기록할 정도로 선전하기도 했다.[3] 일본을 이기고 최초로 진출한 1954 월드컵 16개국 본선에서는 대회 방식으로 2경기만 치렀다.[4] 그로부터 8년 뒤의 월드컵에서 같은 아프리카 국가인 나이지리아도 1990년때의 카메룬과 비슷하게 스페인과 불가리아를 잇달아 꺾은 뒤 마지막에 파라과이한테 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조 1위로 당당히 16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5] 단, 2018년에는 단 하나의 아프리카 국가도 16강에 진출하지 못했다.[6] 실제로 30분경 아르헨티나 선수 하나가 논란성이 있는 퇴장을 당했다. 참고로 아르헨티나에게는 월드컵에서 징크스가 하나 있는데 심판이 이탈리아 사람인 경기는 경기가 잘 안 풀리거나 대부분 패배했다. 가장 최근이었던 2014년 월드컵 결승전에서도 이 징크스는 여지없이 들어맞았고 결국 0-1로 졌다.[7] 총 2승 3무 2패로 조별리그부터 결승전까지 7경기 체제가 확립된 1974년 이후 결승 진출 팀들 중 승점이 7점으로 가장 낮은 팀이 1990년 아르헨티나였다.[8] 그러나 이탈리아는 4강전에서 우세한 경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의 역습에 당해 탈락.[9] 실제로 데이비드 플랫의 헤딩슛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크리스 워들의 슈팅이 서독 골키퍼의 손에 맞고 골대를 튕기고 나갔으며 또한 서독도 위르겐 클린스만루디 푈러가 비슷하게 골찬스를 놓칠 만큼 치열한 경기를 펼쳤다.[10] 월드컵 결승전 사상 최초의 퇴장.[11] 실제 고이코체아는 정확히 방향을 읽고 빠르게 몸을 뻗었으나 킥이 워낙 구석으로 향해 아슬아슬하게 손이 닿지 못해서 결국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12] 1986년 월드컵 득점 3위[13] 참고로 소련이 카메룬을 이기고 루마니아와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 승부가 갈리면 1승 2패 동률이 되는 팀끼리 골득실을 비교해 볼 수는 있었다. 월드컵이라 상대전적이 아닌 골득실을 먼저 따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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