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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힙합은 1970년대 초반 뉴욕 브롱스 남쪽 빈민가에 거주하는 미국 흑인과 남미 히스패닉계 청소년들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문화운동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에 힙합을 '미국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미국 문화'라고 평하기도 한다.[1]힙합이란 말은 '엉덩이를 흔들다(hip hopping 혹은 hopping hip)'라는 말에서 유래했는데, Keef Cowboy라는 MC가 "Hip-Hop"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친구가 군대에 가게 되었는데 Keef Cowboy가 친구를 놀리면서 '그럼 훈련소에서 행군할 때 "hip-hop"하면서 구령을 외치겠네?'라며 놀렸다. 일종의 군대식 발음과 엉덩이(hip)을 이용한 말장난인 셈. 그걸 본 옆 친구들이 폭소를 터뜨리니까 그걸 무대에서 하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이 그 소리를 응용하고 샘플링하면서 랩과 브레이킹 문화를 힙합으로 부르게 되었다.출처
힙합 문화을 이루는 요소로는 랩·디제잉·그래피티·브레이크댄싱 등이 있다.
2. 힙합 문화의 역사
Drunk History '힙합의 탄생' 에피소드. 힙합 디제잉과 스크래치, 그리고 Rapper's Delight의 탄생 비화를 소개하고 있다. |
시간상으로 봤을 때 블락파티가 먼저였지만, 현재의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힙합 음악은 클럽에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Hip hop(엉덩이를 흔들다)이라는 명칭이 시사하듯 힙합 음악의 기반은 디스코, 펑크(Funk), (댄서블한) 재즈 음악 등 과거 60, 70년대에 미국 흑인들이 즐겨들었던 음악인데, DJ라는 일종의 선곡자가 노래를 틀고 사람들은 디제이가 틀어주는 펑키(Funky)한 음악에 춤을 추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다만 사람에 따라 The Last Poets 같은 클럽과는 별로 관련 없는 그룹이 힙합의 초시로 평가받기도 한다.
1970년대 뉴욕의 브롱스 남부는 빈민가였다. 1973년 8월 11일 브롱스 남부에 거주하던 자메이카계 미국인 DJ Kool Herc는 자신의 집이 위치한 1520 SEDGWICK AVE의 지하에서 여동생의 생일파티 도중 두개의 턴테이블을 커팅 및 스크래치하여 빠르고 신나는 비트 "브레이크"를 처음 고안해 냈다. 펑크 음악에는 곡의 분위기가 고조되는 부분에서 노래를 멈추고 빠른 드럼 비트를 앞세운 연주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Kool Herc는 이 부분만을 따다가 계속해서 재생해 춤 추기 좋게 만든 것이다.
Kool Herc에 따르면 브레이킹(breaking)은 거리에서 쓰이는 속어로 '흥분되는', '활기찬'을 뜻한다고 한다. Kool Herc는 빈민가에서 이뤄진 수많은 음악 파티에서 브레이크 비트(Breakbeat)를 선보였으며,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복제하고 따라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2] DJ들은 음악을 틀다가 클럽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싶으면 자신의 기교를 선보이면서 브레이크 비트를 만들어내는 식으로 활용했는데, 이런 '브레이크 타임'에 추는 춤을 바로 브레이크 댄스라고 부른다.
DJ는 음악을 틈과 동시에 쇼 호스트로서 파티의 분위기를 이끌었는데, 사람들이 춤을 추면 DJ가 간간히 흥을 돋우기 위해 여러 미사여구를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DJ는 음악 선곡에 집중하고 쇼 호스트로서의 역할은 'MC'라 불리는 사람이 맡게 되었는데, MC가 내뱉는 미사여구는 문학적으로 발전되어 Rap이라는 형태로 거듭나게 되었다. 원래의 MC의 뜻은 보통 한국에서 말하는 방송 MC처럼 'Master of Ceremonies'의 약자로, '쇼를 진행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였지만, 전혀 다른 뉘앙스와 역사의 맥락 탓에 현재에 와서 'Microphone Checker'로써 쓰이게 되며 전혀 달라졌다. MC 참조.
이렇듯 MC 같이 쇼 호스트와 미사여구를 내뱉어 좌중을 웃게 만들고 파티의 흥을 돋우는 역할과 마찬가지로 브레이크 타임에 무대에 나와서 전문적으로 춤을 추는 사람들이 등장했는데, 이것이 현재 힙합 댄스를 다루는 B-boy와 B-girl, Locker, Popper 등의 기원이다. 이렇듯 힙합의 처음은 매우 자유분방하고 흥겨운 파티 분위기에서 시작되었으며, 때문에 이러한 힙합의 독특한 성향은 매우 포괄적이며 다른 요소들과 쉽게 섞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랩과 더불어 힙합에서 두드러지는 요소는 디제잉이다. 디제잉은 두 대의 턴테이블을 이용하여 같은 곡들을 반복해서 틀어 loop을 만들거나, 곡을 짜집거나 편집하여 전혀 다른 곡을 만들어낸다. 2대의 턴테이블을 이용하여 속도를 맞추어 두 곡을 한꺼번에 틀거나 한 곡 뒤에 바로 이어 다른 곡을 트는 개념도 힙합에서 제일 처음 정립되었다.[3] 클럽에 가 보면 알겠지만 파티나 공연장 등지에서 적절히 음악을 선곡해서 틀어주는 사람을 보고 DJ라 부르는데, 힙합 DJ는 단순히 음악을 트는 역할을 넘어, 두 대의 턴테이블에 얹어진 같은 LP판을 반복해서 트는 기술인 저글링이나, 곡 안에 담긴 노래의 드럼 라인만을 소리 조각마다 시간차로 긁으며 연주하는 고도의 기술인 드러밍을 하거나, 또는 턴테이블을 악기로서 다루어 스크래치를 한다. 여기서 기술적으로 심화된 이들과 원래의 DJ 개념인 그 둘을 구분하기 위해 1995년도에 DJ Babu가 턴테이블리스트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게 된다.
또한 힙합 DJ의 저런 신묘한 기술을 가능케 하는 장비는 보통 두 대의 턴테이블 사이에 놓이게 되는 믹서인데, 믹서에는 Cross Fader라는 부품이 있다. 이 Cross Fader는 디제이가 탄생하기 전에도 존재하였으나, 힙합 문화가 경제적으로 가난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자랐듯, DJ들 역시 가난하였으므로 기존에 존재했던 비싼 장비를 구할 수 없거나 또는 그 존재조차 몰랐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Cross Fader을 개량한 사람이 오늘날에도 디제이로서 활동하는 전설적인 DJ인 Grandmaster Flash이다.[4][5][6] 이때쯤부터 힙합에서 말하는 DJ는 턴테이블리스트 DJ를 가리키게 되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여기에 더해서 비트박스도 4대 요소로 뽑지는 않아도 힙합의 음악적 하위 카테고리로 구분을 할 수 있다.
3. 힙합 음악의 역사
https://www.youtube.com/watch?v=KMu_Z-oRxOE&t=1s미국에서 터전을 잡기 시작한 아프리카계 흑인들의 스토리텔링 혹은 흑인들의 사회비판에서 랩이 유래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고 블루스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스포큰 워드(spoken word)를 랩의 기반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 스포큰 워드에서 쓰이던 초보적인 형태의 각운(대부분 시의 형태를 띠고 있었으므로 지금의 랩처럼 엄격한 운율을 가지지는 않았다)과 스토리 텔링이 1950-60년대 나이트클럽에서 DJ들이 음악 중간에 하던 리드미컬한 안내방송과 만나서 탄생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위의 주장들은 힙합에 영향을 끼친 일부 요소들의 기원 정도로만 볼 수 있으며 본격적으로 힙합 음악이 출현했다고 보는 시점은 대략 1970년대로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다. 기원으로 인정되는 사건은, 앞서 말한 DJ Kool Herc가 1973년 8월 11일 브롱스 남부에서 열린 파티에서 두개의 턴테이블로 "브레이크 비트"를 처음 고안해냈을 때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브레이크 댄스, 랩, 그래피티 등이 덧붙여져 오늘날의 힙합이 완성되었다.
확실한 랩의 초기 형태(초창기 힙합에서의 작법)도 70년대 중-후반에 정립되었다고 보이며, 최초로 레코딩 된 랩 트랙은 1979년 Fatback Band의 King Tim III (Personality Jock).
King Tim III (Personality Jock)가 발매되고 몇달 후 Sugar Hill Gang의 1979년 데뷔작 Sugar Hill Gang의 마지막 트랙 Rapper's Delight이 랩 음악으로써 최초로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슈거 힐 갱은 원래 리듬 앤 블루스를 부르는 그룹이었고, 데뷔앨범의 판매량을 위해서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의 음악을 살짝 가미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이 트랙을 넣은 모양이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가장 큰 명성을 가져다 주고 새로운 음악의 패러다임을 연 트랙이 되었다.
1981년엔 미국의 그룹 블론디의 곡인 Rapture가 가사에 랩을 도입한 곡으로선 최초로 빌보드 핫 100 1위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한 동안 강하고 빠른 느낌의 비트[7]에 흥 돋구는 추임새나 가사를 빠르게 내뱉는 랩이 음악계에서 통용되다가 1980년대 중반, 라킴의 등장 이후로 더 변칙적이고 난이도가 높아진 라임 활용을 통해 완전히 현대식 랩의 체계가 잡히게 된다. 이때부터 일반적인 노래의 가사와 차별성을 띄는, 랩만의 운율 형성을 위해서 어미 부분의 단어 교체뿐만 아니라 알파벳 그 자체의 사운드를 활용하거나 단어 대신 짧은 문장을 배치한다던가 문장의 시작과 중간 부분에도 여러 음절의 라임을 배치하여 더 입체감을 만드는 등,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듣는 랩이 완성된다.
또한 같은 시기 샘플링에서도 라디오 DJ였던 프로듀서 말리 말에 의해 큰 혁신이 일어나게 된다. 이전 올드 스쿨 비트들은 단순하게 녹음된 드럼 사운드나 하나의 디스코 곡의 한 부분만을 반복해서 틀 뿐이었지만, 말리 말은 드럼 머신과 샘플러를 이용해 킥, 스네어, 하이햇을 자기 마음대로 잘라 붙여 빠르지 않아도 지루하지 않고 흥겨운 브레이크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이전의 락, 디스코를 사용한 빡센 비트와는 반대로 여러 장르를 샘플링한 유려하면서도 풍부한 사운드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디스코, 훵크에 밀려 잘 쓰이지 않던 재즈가 힙합 샘플의 주 공급원으로 급부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 사운드는 라킴이 보여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플로우 그리고 많은 의미를 넣은 가사와 잘 맞아떨어졌고[8], 이 둘이 선보인 새로운 힙합은 흑인들의 문화적 결속을 아프리카에서 찾던 그 당시 힙합 뮤지션들에게 영감을 줬다. 그 결과 네이티브 텅스[9] 같은 젊은 뮤지션들이 팝송, 재즈를 베이스로 한 원초적이고 신나는 비트 위에 세상에 전할 메시지가 담긴 랩을 하는 얼터너티브 힙합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SP-1200, MPC같은 샘플러의 등장으로 밴드 세션을 분리한 뒤 속도를 늦추거나 빠르게 하는 등 샘플을 맘대로 주무를 수 있으면서 보다 간단하고 빠르게 비트를 만들어내게 되자 DJ 프리미어같이 드럼 비트와 여러 곡들을 조합해 새로운 사운드를 창조하는 '비트 메이커'가 생겨났다.
1990년~2000년까지를 미국 힙합의 황금기인 골든 에라(Golden era)라고 칭한다. 각 지역별 색채가 생겨나기 시작하고 다른 장르와 매쉬업을 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힙합이라는 음악 장르가 발전을 꾀하던 때라서 그에 따라 각 뮤지션들의 음반 퀄리티 또한 비약적으로 상승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때는 아무 앨범이나 집어서 사도 실패가 없던 때라고 한다.
2000년대에 들어 칸예 웨스트를 위시로 한 다른 장르와의 결합으로 골든 에라와는 다른 의미의 대중적인 전성기를 맞이 했지만, 2020년대 이후로는 써먹을걸 다 써먹었다는 평을 받으며 다소 기세가 꺽였다는 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10] 다만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상당한 인기를 자랑하는 장르. 미국이 홈그라운드인 장르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록 음악이 쇠퇴해버린 현재 10대와 20대가 빠져들만한 장르 중 복고 장르인 신스웨이브나 R&B, 또는 시대와 무관한 팝 음악을 뺐을 때 트랜드를 따르며 젊은 세대에 어필 할 만한 장르가 힙합 이외에는 딱히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2020년대에 들어 K-POP이 글로벌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이런 틈새 시장을 잘 비집고 들어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024년에는 켄드릭 라마와 드레이크의 디스전으로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자 스포티파이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힙합은 넘버원이다'라는 전광판 광고를 띄우기도.
3.1. 랩의 역사
미국에서 터전을 잡기 시작한 아프리카계 흑인들의 스토리텔링 혹은 흑인들의 사회비판에서 힙합이 유래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간혹 있으나, 가장 보편적인 유래는 1970년대 미국에서 펑크(Funk)와 디스코계열의 음악이 클럽에서 유행했을 때 가끔 간주 부분(브레이크 타임[11])을 반복해서 들려주기도 하였는데, 이때 전문 춤꾼들이 스테이지 위에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고 흥을 돋우기 위해 별 의미없는 미사여구나 하고 싶은 말들을 소리친 게 랩의 시초라는 것.블루스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스포큰 워드(spoken word)를 랩의 기반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스포큰 워드에서 쓰이던 초보적인 형태의 각운(대부분 시의 형태를 띠고 있었으므로 지금의 랩처럼 엄격한 운율을 가지지는 않았다)과 스토리텔링이 1950-60년대 나이트클럽에서 DJ들이 음악 중간에 하던 리드미컬한 안내방송과 만나서 탄생한 것이 힙합 음악이라는 것이다. 1930~50년대에 활동했던 가스펠 그룹 'The Jubalaires'가 1946년에 발표한 노래 'Noah'에서 현대 랩과 유사한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
확실한 랩의 초기 형태(초창기 힙합에서의 작법)는 70년대 중-후반에 정립되었다고 보인다. 그 이후로 한동안 미사여구식 초기 랩이 음악계에서 통용되었다.
1981년엔 미국의 그룹 블론디의 곡인 Rapture가 가사에 랩을 도입한 곡으로선 최초로 빌보드 핫 100 1위를 거머쥐었다.
1980년대 중반, 라킴의 등장 이후로 더 변칙적이고 난이도가 높아진 라임 활용을 통해 완전히 현대식 랩의 체계가 잡히게 된다. 이때부터 일반적인 노래의 가사와 차별성을 띄는, 랩만의 운율 형성을 위해서 어미 부분의 단어 교체뿐만 아니라 알파벳 그 자체의 사운드를 활용하거나 단어 대신 짧은 문장을 배치한다던가 문장의 시작과 중간 부분에도 여러 음절의 라임을 배치하여 더 입체감을 만드는 등,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듣는 랩이 완성된다.
4. 세계 힙합의 역사
4.1. 한국 힙합
자세한 내용은 한국 힙합 문서의 역사 부분을
참고하십시오.4.2. 일본 힙합
일본 힙합의 아버지는 대개 이토 세이코라는 말이 정설처럼 여겨진다. 본래 만담가였던 그는 특유의 수다 실력을 음악적으로 풀어내며 무려 1986년 랩을 최초로 시도하였는데, 서구권에 비해 결코 늦은 시기가 아니었다. 후지와라 히로시가 제시한 펑크(Funk) 사운드에 말을 오밀조밀 읊조리는 형식을 일본 가요에 제시하여 1989년 발매된 Mess/Age는 일본 래퍼들의 귀감으로 자리잡은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1세대의 스차다라파, 킹기도라, 라임스터, 소울 스크림 등의 기수를 거치며 일본식 힙합은 자리잡게 되었고 RIP SLYME은 상업적인 가능성을 선보이기도 했다.그러나 일본 힙합의 경우는 록/메탈이나 일렉트로니카에 비해서 아직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과는 다르게 래퍼들부터가 언더그라운드 클럽의 DJ들과 함께 시작하고 성장해 온 씬이기 때문. 그래서인지 한국보다 DJ문화가 훨씬 더 발달이 되어있고, 유명 힙합 프로듀서들 또한 DJ 경력자들이 상당히 많다. 이는 미국의 초창기 힙합씬의 성장과 비슷하다. 그래서 웬만한 골수 일음 오타쿠가 아닌 이상은 일본 힙합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물론 인구수 만큼이나 음반시장이 형성된 일본 내에서는 마니아층만으로도 인프라가 형성이 되고 있다. 또한 일본 특색의 환경답게[12] 랩배틀 문화도 상당히 다양하다. 일반인 참여가 가능한 랩배틀 이벤트라던가 고민상담 랩배틀[13] 등 나름 특색있으면서도 개성적인 나름의 힙합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인 랩배틀과 고민상담 랩배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일본의 음악 버라이어티 방송
그래도 마이너 장르이기 때문에 어쩔수없는 한계는 있다. 디제잉은 엄청나게 발달해있는데 그걸 따라갈 수준급의 MC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쇼미더머니나 언프리티 랩스타같은 한국방송에 눈을 돌리는 현지 힙합팬도 적지 않은편이다.
지리적 위치 상 가깝기도 해서 일본 록에서의 하드코어 펑크나 메탈코어와 같이 한국 힙합과 자주 엮이기도 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의 각 1세대 아티스트끼리의 서로 간의 협업도 상당히 많은 데다가 비보잉이나 비트박스 등의 각종 배틀 대회에선 라이벌로 종종 매치되는 경우도 많다.
4.3. 영국 힙합
자세한 내용은 영국 힙합 문서 참고하십시오.[1] 엄밀히 따지면 그렇지는 않다. 당장 대중음악의 역사를 대표하는 수 많은 장르들인 블루스, 재즈, 락 음악 등등이 백인과 흑인 문화가 크로스오버하면서 미국에서 새롭게 발생한 문화들이다. 당장 20세기 극초반만 보더라도 미국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유럽에서는 여전히 클래식 오페라나 각 지역의 민요를 즐겨듣고 있었다. 오히려 미국의 블루스와 재즈가 성공하면서 역으로 수입되어 유럽 대중음악의 토대가 시작되었고 그 이후의 장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록 음악도 이후 영국이 가세하여 부흥시킨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엄연히 독자적인 시초는 미국임이 분명하다. 클래식을 제외하고 유럽에서 독자적으로 시작되어 미국으로 퍼진 대중음악 장르는 전자음악이 유일하다. 그나마 인정할 부분은 힙합의 경우, 미국 흑인이 시초임과 동시에 여전히 미국이 타 국가들을 모조리 압도할 정도로 해당 문화를 완전히 리드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락의 경우 시초는 미국이지만 재차 부흥시키고 원조인 미국보다 더 긴 세월동안 리드하며 장르들을 세분화시킨 건 유럽, 그 중에서도 영국의 역할이 컸다.[2] 1977년 뉴욕 일대에 정전이 일어났는데, 혼란을 틈타 빈민가의 가난한 음악가들이 악기상에 침입해 장비를 절도하는 일이 많이 벌어졌다. 이때 풀린 DJ 박스와 턴테이블을 비롯한 장비들 덕분에 힙합 문화가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는 견해도 존재한다.[3] 힙합 디제잉 개념의 원류가 되는 자메이카 Dub 계열 디제이(셀렉타)도 한 번에 한 레코드를 틀 뿐이었다.[4] 80년대에는 Grandmaster Flash and the Furious Five라는 그룹을 이끌면서 직접 래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이 발매한 싱글이 힙합 역사상 최고의 곡으로 꼽히는 'The Message'. 이 곡은 롤링 스톤 선정 50대 힙합 명곡 1위, 500대 명곡 51위에 선정된 곡으로써 이후 퍼블릭 에너미를 필두로 한 사회비판적 힙합이 등장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5] 2016년 HOT 97에서 DJ의 길과 힙합의 기원 등에 대해서 소개했다. #[6] 턴테이블리즘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턴테이블리즘이라는 단어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링크.[7] 엄밀히 따지면 곡 자체가 빠른 게 아니라 곡의 속도감이 빠른 것이다. BPM이 먹통 힙합이라고 칭해지는 붐뱁이나 약간 뒤에 등장한 G-funk같은 경우 80~90이 보통이고, 트랩 같은 경우는 50 ~ 80 이나 실제론 100~160으로 제작한다. 'No flex zone' 같은 노래는 60 정도이다! EDM 댄스 장르는 100이 넘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초창기 브레이크비트는 100 정도 된다.[8] 라킴의 첫 작업물 Paid in Full도 말리 말 집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만들었다.[9] 데 라 소울,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정글 브라더스, 퀸 라티파, 모니 러브가 결성한 힙합 크루이다.[10] 씬에 영감을 주며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되던 젊은 아티스트들이 모조리 요절해버린 탓도 크다. XXXTENTACION, Juice WRLD, Lil Peep, Pop Smoke, 맥 밀러 등. 이들의 사망 이후로 현재 이들만큼 기대를 받는 루키는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11] 이때 무대에 나와서 각종 기예에 가까운 춤을 추던것이 비보잉의 시초이다.[12] 본토음악과 가장 맞붙어 있으면서도 마약 및 범죄에 관한 단속이 심하다는 것. 물론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 그 외에도 일본인 특유의 은유와 비유를 살린 디스 문화 등 보통 디스하면 직설적인 화법을 떠올리는 미국/한국 힙합과 다른 뉘앙스의 래핑 등.[13] 배틀의 승자는 고민상담을 받는 고민상담신청자가 직접한다. 고민상담신청자가 래퍼의 스킬은 물론 가사 내용까지 자신의 마음에 든 래퍼가 승자가 되는 셈이니 단순히 상대방을 까내리는 직설적인 디스화법만으로는 이기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