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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25년 이승만의 독립운동 노선에 따라 조직된 기독교 계열 항일 비밀결사.2. 배경
1924년 당시 한국 YMCA의 총무로서 활동하고 있던 신흥우는 북감리파총회와 기독교청년회간부협의회에 조선 대표로 참석하였으며 귀국하고 나서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이승만과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이승만이 중심이 된 독립혁명동지화와 안창호가 중심이 된 대한인국민회가 독립을 위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안창호는 국민회에 이어서 국내에 수양동우회라는 민족운동단체를 결성하였으며 신흥우는 이승만과 의견을 나눈 후 그의 독립노선에 따라서 귀국한 후 동년 12월 15일 서울기독교청년회에서 항일단체를 만들기 위한 준비회를 조직하였으며 그 다음 해인 1925년 3월 23일 그의 자택에서 이상재, 구자옥, 유억겸, 안재홍 등 9명이 중심이 되어 흥업구락부를 결성하였다.[a]3. 활동
당시 흥업구락부는 일제의 감시로 인해서 실업 단체로 위장하였으나 실은 한국 YMCA를 중심으로 하여 이승만의 독립노선을 따르는 민족 진영의 지도자들의 주도 하에서 독립을 위해 활동하였다. 이들은 기독교 사상을 기반으로 일반인들을 상대로 애국심을 고취하는 계몽운동과 독립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당시 조선에서는 3.1 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통치로 인해서 독립을 포기하고 자치권을 얻어내기 위해 일제에 타협하자는 여론이 커지고 있었다. 흥업구락부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 활동하였으며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였다.[a]흥업구락부는 이승만의 요청에 따라서 상하이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낼 군자금을 모금하였으며 수만 원을 미국으로 보냈다. 또한 이승만이 이끌던 동지회에 재정적으로 지원을 해주었으며 자치운동 저지를 위해 독립운동 진영의 통합에도 참여하였다. 1927년에 좌우세력이 합작하여 신간회를 설립하자 흥업구락부에 소속되어 있던 이상재, 박동완, 이갑성 등이 대거 참여하였으며 신간회 내 우파 계열들을 대표하여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