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23 14:51:00

판사 가족이 당했다면

1. 설명2. 문제점3. 꾸준글이 달리는 이유4. 같이 보기

1. 설명

사회자: "당신의 아내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했어도 그 범인의 사형을 반대하겠는가?"
마이클 S. 듀카키스(민주당 대통령 후보): "사형제로 범죄의 발생이 감소한다는 증거는 없다. 그런 경우에도 사형제를 반대할 것이다"[1]
조지 H. W. 부시(공화당 대통령 후보): "저렇게 가족애도 없는 냉혹한 사람이 어찌 대통령이 될 수 있겠습니까?"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 TV 토론회
자기 딸이나 가족이 당했다면 판사들이 저런 형을 내리겠는가
판사 가족이나 국회의원 가족이 당했다면 법이 바뀔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 딸이었으면 이런 판결을 내렸을까요?#
제 가족이 당했다면 그렇게 했을 것#(삭제됨)
-예시

범죄 판결 기사에 흔히 달리는 글. 주로 성범죄나 살인 등 흉악범죄 관련 기사에서 "판사 딸이 피해를 당했다면 이런 판결을 내리겠느냐?"는 식으로 달린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TV 토론회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벌어졌으며, 저렇게 대답했던 듀카키스는 인기를 잃고 압도적으로 유리해 보였던 선거에서 낙선했다.

이 꾸준글은 판사를 비롯한 사회의 상류층은 범죄로 인한 피해를 겪을 확률이 일반 서민에 비해 현저히 낮으므로 피해자의 문제를 타인처럼 여긴다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연민에 의거한 논증에 속하지만, 원천봉쇄의 오류에 속하기도 한다. 이 말에는 '저런 형을 내린 것을 긍정한다면, 너도 인륜이고 뭐고 모르는 파렴치한이다!'라는 함의가 깔려있어 비판, 즉 반증가능성을 뭉개는 것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재판에서 사형을 내리지 않겠지만 범인이 감옥에서 나오면 산탄총으로 죽여버리겠다 [2]

"판사 가족이 억울하게 사형당했다면?"이라고 거꾸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류층은 범죄든 오판이든 불리한 일은 당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고 있어서 딱히 의미 있는 반론은 아니다.

2. 문제점

판사감정적으로 판결하는 사람이 아니며, 형사재판은 무죄추정의 원칙이 기본이다. 감정적 접근은 전형적인 논리적 오류로 이 글은 판사가 피해자와 인척관계에 있어서 형량을 조절한다는 결론을 함축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성범죄는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현행범이라면 피해자의 몸에 남은 가해자의 DNA나 CCTV 자료, PTSD를 얻은 피해자의 상담 기록 등이 있을 수도 있지만, 다른 증거가 전혀 없어도 피해자의 증언이 일관되고 구체적이면 유죄 판결을 내린다. 이는 성범죄의 특성상 강간이 아니라면 증거를 찾기가 매우 어렵기에 피해자의 증언을 증거로 보기 때문이다 . 또, 피해자와 관련 있는 판사는 해당 재판을 맡을 수 없다.

적정한 처벌이 아닌 가중처벌을 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 꾸준글을 지지하는 쪽은 보다 더 벌이 엄해져야 한다는 엄벌주의를 지지하는 쪽과 겹치는 것으로 관찰되니까 가중처벌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판사의 가족이라면, 똑같은 논리에 의해서 판사는 형량을 조절할 수 있다. 판사가 자기 아들이 살해당한 끝에, 감정적인 판단의 결과로 살인범에게 정도 이상의 형을 가하는 것이 그럴 만한 일이라면, 악질 살인범이 판사의 사촌형제라서, 어릴 때 놀던 정을 생각하고 판사가 형량을 낮게 때려준다면? 그것은 문제가 없는 것인가?

좀 극단적인 비유를 들자면 그런 감정 실린 재판은 인민재판이나 마녀사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판사는 자신의 가족과 관계된 사건을 맡을 수 없다. 형사소송법 제17조에 의하면 법관은 자신 또는 자신의 친족이 가해자 또는 피해자인 사건에서 당연히 '제척(除斥. 직무 집행에서 '밀어냄')'된다. 그래서 판사가 자신의 근친에 관한 사건을 담당할 일은 현실에서는 아예 일어날 수가 없다. 단, 변호사가 자기 가족의 변호인이 되는 것은 가능하다. 판결에 관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의혹 사건은 관계자가 친족이 아니니까 사건을 맡을 수 있었던 것.[3]

제척 때문에 대형 개인정보유출사건이 벌어지면 사건을 담당할 판사를 못 찾는 경우도 있다. 네이트.싸이월드 개인정보유출사건 당시 무려 35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는데 대부분의 판사들도 가입되어 있던 상태라서 판사들도 사건당사자였기 때문. 관련 기사

법관 자신이 답이 없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직무 집행에서 빠지기도 하는데, 이를 '회피(回避)'라고 한다. 실제로 판사는 판결에 감정이 들어가게 되어 공정성이 훼손될 것을 염려하여 사적으로 약간이라도 연관이 있는 사람의 사건을 회피 신청하여 담당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며 어쩔 수 없이 담당하게 된다고 쳐도 양형기준이라는 게 있어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분노를 반영해 판결한다고 쳐도 상급 법원에서 재판 다시 하라며 파기 환송하거나 양형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조절하는게 보통이다.[4]

다만 대개의 여론에서는 판사의 감정이입을 그리 비판적으로 보지 않는다. 실제로 구의동 고3 존속살인 사건에서는 판사가 '어머니로서 가해자를 동정' 운운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물론 양형기준을 따라야 하는만큼 처벌 수위에는 큰 차이가 없다.

결론을 내자면 여론의 이미지와 달리 저런 감정실린 재판은 사법체계의 공정성을 무너뜨리므로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판결하는 자는 쌍방의 입장과 이야기를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듣고 판단하는 기계가 되어야 한다.[5]

3. 꾸준글이 달리는 이유

주로 국민의 법감정과 어긋난 판결이 나올 때 저런 말이 나온다. 더불어 위의 문제점에서 이 말은 "재판의 공정성 따위는 내다 버린다는 의미"라고 했는데, 이 말을 쓰는 사람들은 반대로 판사들은 재판을 공정하게 치르지 않는다고 불신하기 때문에 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실 그렇다고 진짜로 판사 가족이 당했으면 더 과한 형량을 내릴 것이라 생각하기보다는, 판사가 지나치게 냉정하게, 또는 소극적으로 판결을 내린다고 여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1,4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왔을 때, 국민들은 당연히 백화점 경영진들을 극형에 처하라고 요구했지만 주범 이준 회장은 7년 6개월의 형을 받았다. 이에 대다수 국민들은 "1명 죽이면 사형이나 종신형인데 501명을 죽이면 7년 6개월이냐"며 판사 가족이 당했다면 저런 판결이 나오겠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다만 객관적으로 보면 이 사건은 엄연히 살인이 아니라 업무상 과실치사라서 사망한 인원수에 관계없이 법정최고형은 5년이다. 거기에 1/2 가중을 하면 7년 6개월이므로, 결국 판사는 절대 봐준 게 아니라 오히려 법이 허용하는 선에서 최고형을 선고한 것이다.

결국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서 그렇게 솜방망이 처벌법을 만든 건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고 그 국회의원 가족이 당했다면 어땠겠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즉, 판사는 국회가 정해준 형량 이상으로 형을 내리는건 삼권분립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므로 국회의원에게 솜방망이 법을 만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의 이준의 경우처럼 국회가 필요한 입법도 안하고 범죄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때도 있고, 의도적으로 입법을 기피하기도 한다.(특히 언론이나 기업관련 처벌법). 그러나 국회의원도 법을 자유롭게 만들 수는 없으며 형법의 양식, 제정과 적용도 결국엔 최고 법인 헌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이는 민주국가는 모두 마찬가지다. 국회의원들이 법을 마음대로 만들고 고칠 수 있었다면 오히려 자기 당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국민들이 원하는 법을 다른 정당 출신들과 경쟁해가면서 실컷 만들어댔을 것이다. 최근에는 방산비리, 소년법 개정, 데이트 폭력 등 사회적 이슈가 터지자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 형량을 대폭 올리려고 하는 의원들이 나오고 있다. 다만 발의를 해도 본회의도 가지 못하는 케이스가 허다하다. 한국에서 법 개정권한은 실질적으로 여야대표들에게 있으며 법이 통과되려면 여야대표들이 합의를 해야 한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형법의 형량 수준은 오히려 높은 편이다. 유럽은 대체로 살인죄 평균 수형기간이 10년 정도에 불과하고 노르웨이는 유기징역 상한선이 15년에 불과하며, 70명을 살해한 테러범은 특별법이 적용되어 21년형이다. 더구나 유럽인권 단체는 징역형 10년 이상 복역은 인권침해라며 무기수나 15년 이상 징역 선고자도 10년후엔 자동으로 가석방되도록 청원하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된 사례도 많다.

우리나라는 기본이 12~16년이며 살인죄면 무기징역이나 징역 20년이상의 중형이 선고된다는 인식과는 달리 실제로는 차이가 크다. 판사가 고려하는 건 대법원 양형 위원회에서 제정한 양형 기준이다. 판사가 비슷한 사례보다 더 적은 형량이나 과다한 형량을 선고할 재량은 있으나 양형 기준에 따르지 않으면 사유서를 제출해야 하며 징계를 받기도 하고, 아주 높은 확률로 상급심에서 파기된다.

덧붙여 왜 '솜방망이 처벌'로 보이는지도 생각해봐야한다. 사소한 형량의 기준들조차도 오랫동안 꾸준히 다듬어져서 정해진 것이지 누가 얼렁뚱땅 만든 것이 아니다. 물론 아예 터무니없이 약한 처벌을 받는 사례도 없는 건 아니지만, 반대로 지은 죄에 비해 너무 과한 처벌을 받는 사례도 없지 않다. 위의 삼풍백화점 사태가 대표적인 예시로, 당장 수백명을 죽였는데 고작 7년 6개월 형을 받았다는 것만 놓고 보면 솜방망이처럼 보일 수 있다.

그의 죄목인 '업무상 과실치사'를 그냥 '살인'과 비교해보면, 전자가 후자에 비해 형량이 낮아야 한다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1명의 업무상 과실치사의 형량이 1명의 살인보다 낮아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것이자 수백명의 업무상 과실치사의 형량이 수백명의 살인보다 낮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지, 수백명의 업무상 과실치사의 형량이 1명의 살인보다 낮아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물론 업무상 과실치사의 최대치가 고작 5년이라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저런 국가적인 재난에도 일반 사건이랑 동일한 기준을 대냐고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해당 법 조항에 대한 불만으로 여겨야지, 그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처벌을 가한 판사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6]

가장 중요한 건, 형법은 민중의 분노 배출을 위한 도구는 아니다.[7] 국민들의 분노를 해소해주려고 법을 비정상적으로 개정할 순 없는 노릇이다. 정 근본적으로 갈아치우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난다면 누군가 법철학자가 되어 제대로 문제를 제기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연히 여태껏 그런 사람들이 쭉 만들고 다듬어 온 것이 현재의 법이라, 비록 계속 바뀔 가능성은 있지만 현재로선 저게 최선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여기서 알아야하는 것이 법의 목적은 개인의 갱생이지 처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물론 갱생도 목적들 중 하나지만 형사정책에 가장 근본적인 목적인 사회구성원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형법상의 처벌을 뒷받침하는 세 가지 요소는 죄에 대한 응보, 범죄에 대한 예방, 범인의 갱생 세 가지인데 흉악범일수록 앞의 두 가지 요소가 더 두드러진다.

2017년 7월 21일 임명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 시절인 2008년 한 매체에 사이코패스 같은 잔혹한 범죄자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다. "자기 범행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 대해 동정심이 전혀 없다. 또한 다중인격을 지녔기 때문에 상대방을 교활하게 속일 수 있으며, 죄의식이 없으므로 범행을 연쇄적으로 저지른다. 이들에 대한 교정과 치료는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재범률을 높이는 원인이 된다. 이러한 인간 유형의 등장은 형사정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간조선 2017.08.07. 인터넷기사).

무기·수십년의 징역형을 선고해도 유족이 사형을 원하는데도 사형을 선고하지 않았으니 국민의 법감정에 반한다고 비난하는 경우도 많은데, 양형이 유족의 의사에 좌우되어야 할 이유가 없을 뿐더러 이미 대한민국 법무부는 사형 무집행 방침이 확고하므로 사형이 사실상 종신형으로 운용되고있다. 그 점에서 훗날 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 대체할 수 있는 사형을 구형했는데 오히려 20~30년 뒤에는 가석방이 되는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것에 유족들이 분노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무기수라고 해도 어차피 교도소에서 직업교육 받고 종교활동 참가하면서 갱생하는 척만 해도 S4에서 S1으로 등급상향과 동시에 좋은 처우를 받으면서 20~30년 사이에 나오고 무기수들이 가석방 후 또다시 살인, 강간, 방화, 살인미수 등으로 잡혀가는 사례도 많기에 재범의 가능성 등도 고려해야할 것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홈페이지에서는 이런 여론을 의식해 실제 판례를 기반으로 직접 어떻게 판결을 내리는지 체험해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놨다.

4. 같이 보기



[1] 듀카키스는 사형만을 반대했을 뿐, 범인을 용서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사형이 아니라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자를 사회로 내보내지 않는 방법은 유기징역의 제한이 없고 무기징역도 가석방을 불허할 수 있는 조건이 붙은 미국에서는 말 그대로 넘쳐난다.[2] 이와 유사하게 포털사이트 뉴스기사 댓글에서 ' 니 가족이 당했다 생각해보라' 는 식의 댓글이 아주 많이 보이는데 이에 반감을 보이는 사람들은 '니가족충'이라고 비꼬기도 한다.[3] 사실 사법부 인사를 사법부 인사가 맡을 수밖에 없다. 무자격자를 판사로 앉힐 수는 없으니까.[4] 안 돼 안 바꿔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로 유명한 천종호 판사도 가해자의 반성을 유도할 목적이었던 것 뿐이며 재판 결과와는 상관이 없다. 거기다 천종호 판사 본인도 이러한 감정적인 재판에는 비판적이다.[5] 이 덕에 사법불신이 심한 사람들은 아예 기계가 판사의 자리를 차지해야만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6] 우리나라는 양형기준과 법정형이 존재하는데 양형기준이 우선시 된다. 양형은 구속력은 없지만,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양형기준으로 해야 한다. 국민들이 보는 낮은 형량은 이런 양형기준으로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원래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은 살인죄와 같은 5년 이상 무기징역에 가깝지만, 실제 양형 기준은 이의 못미치고 1/3이 집행유예로 나온다. 즉, 아무리 국회에서 엄벌주의로 가도 사법부의 권한으로 양형을 내리기에 사실상 형량이 낮은 이유가 된다.[7] 다만 실제로 복수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 있는 이상 법은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현실적으로 유일한 수단이긴 하다. 즉, 사적재제를 법으로 막은 것은 좋지만 그만큼 법이 당한 자의 분노와 억울함을 최대한 달래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