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8-08 22:58:20

클럽 5-7 화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사고 당시3. 사고 이후

파일:프랑스 클럽 화재.jpg

1. 개요

Feu du Club Cinq-Sept
1970년 11월 1일 프랑스 샌 로헌 듀퐁(saint laurent dupont)에서 일어난 화재.

2. 사고 당시

클럽 5-7은 1970년 4월에 오픈했다. 창문 없는 빌딩으로 만들어졌는데, 브리즈 블록과 목재, 물결모양 철 판넬 지붕으로 만들어졌다. 회전문으로 된 메인 출입구 외에 비상구가 2곳 있었고, 내부에는 댄스 플로어와 바, 레스토랑이 있었다. 2층엔 갤러리가 있었고 나선 계단을 통해 오고 갈 수 있었으며, 이 계단이 2층을 오고가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실내는 폴리우레탄이나 플라스틱, 심지어 종이까지 써서 장식했다. 스티로폼 장식과 종이로 내부를 동굴처럼 연출했고, 천장에는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리본이 달려있었다. 이는 전부 불에 타기 쉬운 물질이다.

1970년 10월 31일. 할로윈에 맞춰 클럽 5-7에는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파리에서 온 Les Storms 라는 6인조 밴드#가 특별 공연도 펼쳤고, 베이비붐세대의 10~20대들이 그 안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등 현란한 밤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 건물 내에는 약 18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던 도중 다음날 새벽 1시 40분, 1층에 있던 한 사람이 성냥을 버렸는데, 이게 쿠션에 떨어지면서 불길이 일어났다. 하필 건물 내부에는 불에 잘 타는 물질들로 가득해 불길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번져나갔다. 천장에 달린 인테리어 장식들은 불에 잘 붙는 플라스틱 장식이었고, 건물 일부는 아예 목재로 되어있었다. 불타는 플라스틱이 천장에서 녹아 떨어지면서 사람들을 위협했다. 사람들은 급히 탈출을 시도했으나 하필이면 건물 내 계단이 나선 형태라서 쉽게 내려가기가 힘들었고, 메인 출입구 외에 비상구가 두 곳 있었으나, 티켓 없이 입장 못하게 하려고 둘 다 자물쇠로 잠그고, 아예 못을 박아둔지라 탈출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한곳으로 몰리는 와중에 사람들에 깔려 압사하는 사람마저 나왔다. 한 사람이 아예 문 하나를 부수고 나서야 겨우 몇몇 인원이 탈출할 수 있었다.

이 와중에 건물 내에 전화기는 한 대도 없어서 소방서에 신고를 할 수가 없었다. 클럽 내 직원 Gibert Bas가 간신히 탈출해 차를 타고 인근 소방서까지 2km를 달려간 다음에야 겨우 화재가 난 것을 알릴 수 있었다. 그렇게 늦게서야 소방대원들이 출동했을 땐 이미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건물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결국 불길을 못 이긴 건물 지붕이 무너져내리고, 건물 일부가 무너졌다. 60여명이 탈출하긴 했으나 전부 큰 화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고, 이들 중 몇몇은 결국 사망했다.

결국 사고로 146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 145명은 17~27세 였다. 대다수의 사망자는 잠겨진 비상구에서 발견됐다. 시신이 불에 너무 훼손되어 신원을 파악하기조차 힘들었고, 그나마 남은 옷, 지갑, 시계같은 장신구 등을 통해 유가족들이 일일히 파악해야 했다. 그마저도 19명은 신원을 파악하지 못해 샌 로헌 듀폰의 한 교회에 묻히게 됐다. 공연을 하러 온 Storm의 멤버 6명도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 당시 클럽 내에 있던 직원 3명 중 2명도 사망했다. 부상자들도 상당수가 큰 화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이 사고는 프랑스 역사상 두번째로 많은 목숨을 앗아간 화재로 기록됐다.

3. 사고 이후

화재 발생 2일 후, 샌 로헌 듀퐁의 한 김나지움에서 단체 장례식이 열렸다. 신원이 파악된 이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19명은 그대로 교회 공동묘지에 묻혔다.

살아남은 클럽 경영진 Gilbert Bas, 클럽 건축가, 그리고 샌 로헌 듀폰의 시장은 법원에서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재판 도중 클럽은 오픈허가를 받은 적도 없어서 불법으로 운영된 것이 드러났다. 또한 지으면서 비상구를 일정 수 이상으로 지어야 했으나, 이 조차 무시했다. 이들은 2년 뒤 유죄를 선고받았다. Gilbert Bas에겐 징역 2년형, 나머지 이들에겐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Gilbert Bas는 감옥에서 나온 후 샌 로헌 듀폰에서 계속 살았다. 그는 출소 이후 제지공장에서 일을 하며 살았고, 사고에 대해 언급하는 걸 꺼렸다. 그렇게 계속해서 살다가 2002년 세상을 떠났다.

화재 이후 건물은 철거됐고, 당시 건물에 있던 회전문만이 남겨뒀다. 현장에는 현재 추모비가 세워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