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17:44:17

색부호 전쟁 계획

컬러코드 전쟁 계획에서 넘어옴
1. 개요2. 목록
2.1. 멕시코 - 녹색전쟁계획 (War Plan Green)2.2. 중앙 아메리카 - 회색전쟁계획 1 (War Plan Gray 1)2.3. 포르투갈령 아소르스 제도 - 회색전쟁계획 2 (War Plan Gray 2)2.4. 독일 제국 - 흑색전쟁계획 (War Plan Black)2.5. 중화민국 - 황색전쟁계획 (War Plan Yellow)2.6. 영국 - 적색전쟁계획 (War Plan Red)2.7. 일본 제국 - 주황색 전쟁계획 (War Plan Orange)2.8. 영국 & 일본 제국 - 적색-주황색 전쟁계획 (War Plan Red-Orange)2.9. 반란군 - 백색전쟁계획 (War Plan White)2.10. 평시태세 - 청색전쟁계획 (War Plan Blue)2.11. 기타 전쟁계획들

1. 개요

파일:rainbow_war.webp
이미지 출처
[1]

United States Color Coded War Plans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전간기 미국이 다양한 가능성을 상정해서 계획한 예비전쟁계획. 사실 그 기원은 1차 대전 이전인 1900년대 초까지도 거슬러 올라가지만 전간기에 보다 더욱 더 구체화되었다.

상정한 가상적국들마다 특정한 색상들을 부여했기 때문에 색부호 (컬러 코드) 전쟁계획이라고 불린 것이다. 여기서 미국은 파란색(Code Blue)이었다.

후대인 입장에서 보면 매우, 아주 황당할 정도로 전쟁가능성이 낮은 상대를 대상으로도, 상정 가능한 모든 전쟁들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이를 토대로 전쟁계획과 작전을 준비했다. 영국과 일본 등 강대국과의 전쟁 상정만이 아니라 남미의, 남아메리카의 약소 공화국들은 물론, 자국 내에서의 반란까지도 상정한 전쟁계획이었다. 의외로 소련을 상정한 계획은 존재하질 않는다.[2]

그리고 사실 '황당할 정도로 전쟁가능성이 낮은 대상'도 현대의 관점일 뿐이고 당시 20세기 초반의 관점, 시각에선 충분히 위협적인 가상적국들이었다. 적색전쟁계획의 영국은 그 당시 현대의 밀월 관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상적국이었다. 영국의 자치령이었던 캐나다와의 국경 분쟁은 끝난 상태가 아니었고, 미국 내의 정서도 여전히 '영국은 우리 조상들이 맞서 싸운 압제자'란 부정적인 인식이 적지 않던 시절이다. 회색전쟁계획 2의 스페인, 포르투갈 같은 경우는 현대의 관점에서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패배했던 스페인이 언제든지 복수의 칼을 갈며 독일과 손을 잡아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고 포르투갈도 독일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자국 내에서의 반란도 당시로선 황당한 걱정이 아닌 것이 남북 전쟁이 불과 50여 년 전의 일이었다. 중화민국이나 중남미 지역 국가에 대한 전쟁 계획도 세부 내용을 보면 유사시 해당 지역의 미국 조계 지역을 수호해서 미국인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현실적인 내용이었다.

학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유럽 열강들과 일본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독자적 세력권을 형성하던 시기 잠재력은 뛰어나지만 막 날개를 펴기 시작한 신흥 열강에 불과했던 당대 미국의 대외관이나 지정학적인 인식을 살필 수 있는 사료이기도 하다.

2. 목록

2.1. 멕시코 - 녹색전쟁계획 (War Plan Green)

양측의 국력차이는 미국-멕시코 전쟁에서도 이미 확연히 드러났는데 거기서 다시 1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보면 뭐... 그래서 이러한 국력차이 때문에 녹색계획은 미국과 멕시코의 국가간 전면전이 아닌, 필요시 군사적 개입과 이를 통한 미국의 이익 달성, 멕시코 내에 잔류한 미국인들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 필요시 친미정부수립 정도로만 국한되었다.

1차대전을 전후로 멕시코 혁명으로 인한 멕시코의 치안 불안, 이로 인한 일부 반군세력의 월경공격, 그리고 치머만 전보 사건으로 우려되는 적성국과 멕시코의 군사동맹 가능성 등에 대처했는데, 미국은 실제로 반군세력에 군사적 공격을 감행하기도 했었고, 압도적인 해상세력으로 멕시코의 관문항구 베라크루스[3], 그리고 수도인 멕시코 시티를 언제든지 위협할 수가 있었다.

2.2. 중앙 아메리카 - 회색전쟁계획 1 (War Plan Gray 1)

멕시코 이남과 콜롬비아 이북, 즉 과테말라부터 파나마까지의 중미, 중앙 아메리카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계획이다. 국력들이 워낙 약해서 녹색계획보다도 더 중요도는 낮지만 그래도 미국의 아래에 위치한 곳이라 이들 지역이 다른 강대국의 영향력에 넘어가는 일은 영 좋지 않은지라... 더군다나 파나마 운하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비록 전쟁계획을 발동할 상황까지 간 적은 없지만 미국은 꾸준히 이들 지역에 군사적, 정치적으로 개입했다. 이후 파나마군파나마 침공 여파로 해산하고 나서 미군이 대신 방위를 해주는 것으로 봐서 미국의 선견지명이라고도 볼 수 있다.

2.3. 포르투갈령 아소르스 제도 - 회색전쟁계획 2 (War Plan Gray 2)

공교롭게도 아소르스 제도에 대한 전쟁계획은 중미지역에 대한 전쟁계획과 코드가 동일했다. 서로 다른 시기에 수립되었기 때문이다.

2차대전 초기 아소르스 제도 진출을 통해서 나치 독일에 점령 당하거나 협력할 가능성이 있던 에스파냐의 프랑코 정권과 포르투갈의 이스타두 노부 정권을 견제하는 계획이다. 아소르스 제도는 대서양의 중부, 중앙에 위치한 거의 유일한 육지로 유사시 아소르스 제도를 점령함에 따라서 유럽 및 아프리카 지방에 대한 공세적 작전이 가능하고, 반대로 이를 지킴으로서 유럽 열강의 아메리카 대륙 침공을 사전에 방어할 수가 있었다. 나치 독일의 이베리아 반도 진출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판단이 내려진 1941년 중반에 중단되었다.

2.4. 독일 제국 - 흑색전쟁계획 (War Plan Black)

양차대전에서 실현된 미국, 독일 제국 양 강대국간의 전면전이지만 흑색전쟁계획이 본래 상정한 것은 양차대전의 진행양상과 판이하다. 흑색계획에서 미국이 상정한 시나리오는 일단 영국은 배제하고, 프랑스를 침공한 다음 문자 그대로 아메리카 대륙과 미국의 세력권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이 시나리오에서 미군이 우려한 것은 프랑스령 서인도 제도를, 카리브 해를 독일이 접수하고, 독일이 이를 발판으로 삼아 남북아메리카를 단절시켜 미국의 중남미 영향력을 차단하고 나아가서 미국본토 남부 혹은 동부를 공격할 가능성이었다. 이 시나리오는 아직 독일제국의 해군력이 건재하던 1900년대 초부터[4] 준비하던 것으로 주요 전쟁계획들 중 주황색, 적색계획과 함께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이럴 경우 미국은 독일보다도 앞서 프랑스령 서인도제도를, 카리브 해를 접수하거나 혹은 독일이 점령한 이들 도서지역을 무력으로 수복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흑색계획은 1차대전의 종식과 스캐퍼플로 독일 대양함대 자침 사건에 따른 독일제국 해군의 소멸로 그 가능성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사실상 사라졌다.

2.5. 중화민국 - 황색전쟁계획 (War Plan Yellow)

20세기 초 군벌들의 군웅할거하던 중국이 미국에게 안보적 위협을 가할 수 없었지만 의화단 운동이나 상하이 쿠데타 같은 대규모 민중봉기나 폭동, 유혈사태 등으로 중국 내 미국인의 목숨, 생명 및 재산이 위협받는 일은 충분히 상정 가능한 일이었다. 황색 계획은 이에 따라 준비된 것으로 유사시 베이징, 톈진 조계, 상하이시 등 각종 핵심도시와 조계지역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2.6. 영국 - 적색전쟁계획 (War Plan Red)

미국이 준비한 각종 전쟁계획들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방대한 계획. 당연한 것이, 적색계획은 당대의 최강대국인, 대영제국과의 전면전쟁을 상정한 것이다.[5] 때문에 작전 계획도 영국본토를 대상으로 한 적색계획 외에 캐나다 (진홍), 오스트레일리아 (주홍), 뉴질랜드 (석류석), 인도 (루비), 아일랜드 (에메랄드)를 대상으로 한 세부계획이 개별적으로 준비돼 있었다. 아울러 덴마크령이긴 하지만 아이슬란드도 큰 범주에서 적색계획에 포함됐다. 이곳은 영국 본토 공격 시 기필코, 반드시 장악해야만 하는 곳이었다.

미국은 영국이 캐나다를 통해서 공격해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6] 이에 따라 세워진 계획은 다음과 같다.

미국은 우선적으로 캐나다를 침공해 영국이 캐나다를 미국 본토 공격의 기지로 삼는 것을 막아낸다. 특히 대서양 방면의 노바스코샤와 영국직할령인 핼리팩스, 태평양 방면의 밴쿠버를 최우선적으로 공격해 점령 및 봉쇄한다. 그렇게 캐나다를 영국과 격리시킨 후, 미국-캐나다 국경을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눠 공세를 펼쳐 주요 인구밀집지대를 모조리 장악한다.

계획수립자들은 캐나다를 굴복시키기만 해도 영국이 협상을 요청해올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정작 영국은 미국과 전쟁이 터지면 캐나다를 상실하는 건 불가피하나 그것은 감당할 수가 있다 보고 있었다. 오히려 영국이 걱정했던 건 미 해군이 영국의 무역로를 차단하는 상황이었다.

평시기준 미 해군의 전력은 결코 영국해군을 압도할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시체제에 돌입한 미국이 해군을 압도적으로 확충해서 영국의 대서양 무역로를 차단하는 순간, 식민지에 많은 걸 의존하는 대영제국은 말 그대로 끝장나는 것이었다. 당대 세계최강으로 불리던 대영제국이었지만,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 국력은 미국에게 서서히 따라잡히기 시작하였고, 그 차이는 점점 좁혀졌다. 그나마 평시의 해군전력균형도 워싱턴 해군조약으로 간신히 유지하던 상태였다. 육상전력은 더 암울하기 짝이 없는데[7] 당시 미국 인구가 1억 2000만, 영국 본토 인구가 4700만 명인 것만 봐도 육군 전력의 차이는 현격했기에 영국은 미국 본토에서의 지상전은 꿈도 꾸지 못했다. 다만 캐나다 영국해군 주둔기지인 핼리팩스만큼은 어떻게든 사수하는 게 최대목표였지만, 실제 전쟁 발발 시에는 어림도 없을 게 분명했다.

어쨌든 미 해군은 영국함대와 적극적으로 싸우기보다는 북대서양에 해상봉쇄를 걸어서 캐나다-영국 간의 이동을 차단하고 영국 함대와 싸울 기회를 살피도록 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영국 해군을 물리친다면 남색 (아이슬란드) 계획 혹은 회색 계획 2번에 따라 상륙전을 통해 아이슬란드나 아소르스 제도를 접수한 후, 영국 본토를 공격하는 것이 목표였다. "누가 이걸 다 하겠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미국은 태평양 전쟁 때 이걸 다 해냈다

2.7. 일본 제국 - 주황색 전쟁계획 (War Plan Orange)

미국은 1900년대부터 태평양의 패권을 두고 일본 제국과의 전쟁을 펼칠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러일전쟁이 종식된 1906년부터 그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1차대전을 거쳐서 본격적으로 연구되어 확립되었다. 실제로 일본은 미국이 예상했던 그대로 1907년부터 '제국국방방침'을 정해서 미국을 가상적국으로 삼고 육해군이 매년 연도작전계획을 작성하는 등 미국과의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판단은 옳은 것이었다.

1차대전 직후 프랑스나 독일의 아시아함대는 무의미해졌고, 중국 해군이나 소련 태평양함대도 연안해군에 머물고 있었다. 결국 태평양에서 유의미한 해군은 미국, 영국, 일본뿐이었다. 영국 해군도 북해-대서양-지중해-인도양-태평양에 흩어져 있어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주둔한 동양함대는 미국 해군이나 일본 해군에 비해서 전력이 빈약했다. 결국 태평양에서의 해상경쟁은 일본 vs. 미국 구도일 수밖에 없었다.

주황색 계획은 일본군의 최우선공격대상은 필리핀이라는 전제로 작성되었다. 일본군은 서태평양 미국 최대의 거점인 필리핀을 침공, 조기점령해 미군이 서태평양에서 작전하지 못하도록 저지할 것이고, 이에 맞서는 미군은 필리핀 수비군이 농성하는 동안 본토 서해안과 하와이에서 출발한 미군의 주력함대가 점감요격작전을 해서 필리핀으로 진격, 일본 주력함대와의 함대결전을 펼치는 것이었다. 이 결전에서 승리해서 필리핀을 구원한 후 일본본토로 향하는 항로를 봉쇄하면 일본제국은 항복할 것이라는 구상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국은 마닐라 만의 입구에 드럼 요새를 짓는 등 필리핀의 방위력 강화를 위해 애쓰고 태평양함대를 하와이로 전진배치해서 주력함대가 필리핀까지 도달하는 시간과 지리적인 거리를 인위적으로 단축시켰다.

주황색 계획에서 예상한 대로 일본은 태평양 전쟁 초기에 필리핀에 집중적으로 공격을 퍼붓는다. 다만, 미 태평양함대가 필리핀으로 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진주만 공습으로 선제공격을 실시해 초반의 기선을 제압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다. 결국 그로 인해서 미군 주력함대가 필리핀에서 일본과 일전을 벌이기까지는 2년 반이나 더 걸리게 됐다.[8] 당시 미국은 함대결전에서의 승리 후 일본을 봉쇄하면 이길 것이라 판단했지만, 일본군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공세에 제동이 걸리고 필리핀 해 해전이나 레이테 만 해전 등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해군력이 사실상 붕괴된 후 국가 전체가 봉쇄당하는 상황에서도 항복을 거부했다. 결국 도쿄 대공습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를 받고 나서야 결국 항복하게 된다.

2.8. 영국 & 일본 제국 - 적색-주황색 전쟁계획 (War Plan Red-Orange)

위의 적색 계획과 주황색 계획을 동시에 상정한 것이다. 영국이나 일본 제국이나 모두 미국의 잠재적 가상적국이었으며, 양국은 영일동맹으로 인해서 1923년까지 군사동맹관계에 놓여있었다. 미국이 양국과의 동시전쟁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한 것은 충분한 타당성이 있었다.

일단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지상군은 적색계획에 따라 캐나다를 침공해서 점령하거나 영국측에서 이탈시킨다. 반면 해군은 태평양 (일본)과 대서양 (영국)에서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는데 여기서 미국은 대서양 우선원칙을 확립한다. 미국은 스스로 양면전쟁을 수행해낼 군사력, 이를 뒷받침할 산업력과 자원이 없다고 평가했으며 이에 따라 한 쪽 전선에서는 소극적으로 방어전을 수행하고, 다른 한 쪽 전선에 군사력과 자원을 집중해서 해당전선의 국가를 먼저 전쟁에서 이탈시키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대서양 방면의 영국을 우선공격대상으로 선정한다.

이 계획은 영일동맹이 파기되고 이후 일본 제국과 영국이 적대관계가 되면서 실현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전쟁계획의 기본바탕이 되었다. 미국은 2차대전에서 빨강-주황색 계획의 기본지침에 충실히 이행해서 대서양-유럽 방면에 집중하는 선택을 했다. 차이점이라면, 반대쪽인 아시아 태평양전선에서도 방어가 아닌 공세를 감행, 동시에 양면전선에서 공세를 펼쳤다는 점이다.[9] 이는 본디 상정한 적국 중 하나였던 영국이 동맹으로 바뀌었고 미국이 유럽에서 상대해야 하는 적국인 나치 독일 역시 소련과 양면전쟁중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해전의 경우 독일은 영국 해군에게 밀려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고, 미 해군은 일본 해군을 상대하는데 보다 집중했다.

2.9. 반란군 - 백색전쟁계획 (War Plan White)

미국내부에서 반란을 일으킨 무장세력에 대한 시나리오별 대응과 진압과정에 대한 계획이다. 당시 미국정부와 미군이 백색계획에서 가장 위협적으로 상정한 세력은 바로 공산당이었지만 정작 엉뚱하게 보너스 군대 사태 때 이 계획의 일부분이나마 적용돼 사태의 수습과 진압에 큰 힘이 되었다. 이후 백색계획은 가든 플롯 계획(Operation Garden Plot)으로 계획이 구체화되었고 가든플롯 계획은 리틀록 사건LA 폭동, 9.11 테러를 거치며 개념계획 2502 (CONPLAN 2502)로 대치되면서 현재까지도 국가 내 유혈사태 대비계획의 큰 틀로서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2.10. 평시태세 - 청색전쟁계획 (War Plan Blue)

평시상황에서의 미군 운용 및 배치 등에 대한 총괄안이다.

2.11. 기타 전쟁계획들

  • 쿠바 제1공화국 - 황갈색 전쟁계획 (War Plan Tan)
    카리브 해와 유카탄 반도 근해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대쿠바 군사작전계획안.
  • 프랑스 - 금색전쟁계획 (War Plan Gold)
    프랑스 본국 혹은 프랑스의 캐리브 해의 식민지들과 전쟁을 대비한 군사작전계획안.
  • 아이슬란드 - 남색전쟁계획 (War Plan Indigo)
    2차대전 초기 대서양 및 미 본토방위를 위한 아이슬란드 점령계획. 상세한 세부계획안이 마련되었지만, 결국 실행되지 않았고 아이슬란드는 덴마크가 독일에게 함락된 후에 영국이 확보했다가 영국이 힘이 모자라서 미국에게 위임했다.
  • 라틴 아메리카 - 보라색 전쟁계획 (War Plan Violet)
    중남미 아메리카, 라틴 아메리카 전체와 결전을 벌이는 계획, 기존의 대멕시코와 중·남미대륙, 남아메리카 전쟁계획들을 모두 포괄한다, 포함한다.
  • 필리핀 반란진압 - 갈색 전쟁계획 (War Plan Brown)
    필리핀 현지의 자치정부와 협력해 대규모 소요사태, 반란 진압을 주요 골자로, 내용으로 하는 계획. 전후 필리핀이 독립하면서 폐기됨.


[1] 중국 국기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기로 나와있는 오류가 있다.[2] 소련이 탄생한 1922년 이전에 만들어진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과 소련은 이념이 전혀 다르기에 색부호 전쟁 계획에 넣지 않은 게 이상하기 때문. 영국이라는 1차 세계대전의 동맹도 넣었는데 말이다. 소련이라는 이념이 전혀 다른 국가를 색부호 전쟁 계획에 못 넣은 것은 여러 여건으로 못 넣은 것으로 보인다.[3] 실제로 미국은 멕시코 혁명 당시 빅토리아노 우에르타와 마찰이 생기자 베라크루스를 점령한 적이 있었다.[4] 이 시절 독일제국 해군의 해군력은 영국해군에 이어서 세계 2위 수준이었다. 미국이 저렇게 진지하게 남북아메리카가 단절될 우려를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셈.[5] 대영제국 시절의 영국은 미국을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에 뒤이은 신흥 해양패권국이자 잠재적 적국으로 간주하고 견제하려고 시도했었다. 미국과 영국이 최우호국이 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이 초강대국의 지위에서 내려오고 미국의 핵우산 아래 들어간 이후의 일이다.[6] 실제로 미영전쟁의 루트가 그러했다.[7] 사실 육군으로는 1900년대가 아니라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 시기에만 하더라도 영국이 건드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당시 미국의 남북 측 양군이 동원한 규모는 비슷한 시기 유럽 내에서 터진 보불전쟁을 뛰어넘는 엄청난 규모였다. 게다가 공업화도 유럽 개별국가들과는 달리 영국과 대등한 규모였던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국력이 얼마나 강대한지 실감할 수 있다.[8] 일본은 개전 후 6개월 동안 멜라네시아까지 영역을 확장했고, 미군은 진주만 공습의 피해를 회복하고 전시체제의 확립으로 군사력이 쏟아져나와도 외곽지역들부터 차근히 점령하고 전진기지를 건설해서 공격범위권의 종심을 넓혀가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렇게 미군은 44년 9월이 돼서야 필리핀에 근접한 범위권까지 진출했고 10월에 필리핀 중부의 레이테 섬에 상륙, 45년 1월에 루손 섬에 상륙해서 그 결실을 맺기 시작한다.[9]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쟁 초반에는 태평양에 일단 집중해서 일본 해군 주력을 꺾어놓았고, 그 다음부터 유럽에 집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