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01:43:43

최영(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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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캐스팅 관련3. 극중 묘사
3.1. 고려의 용장3.2. 이인임 축출3.3. 요동 정벌3.4. 믿었던 전우배신과 개경 전투3.5. 붉은 무덤의 전설이 되다
4. 정치적 능력5. 기타

[clearfix]

1. 개요

어허![1]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의 등장인물. 서인석이 연기한다.

2. 캐스팅 관련

최영 캐스팅은 예정에 없었던 갑작스런 캐스팅이라 다른 배우들과 비교가 되었다. 먼저 원 캐스팅이었던 임동진이 불발되어 많은 사극 팬들이 아쉬워했다. 대조영에서 양만춘 역할을 맡아, 당대 같이 방영되었던 SBS연개소문의 연개소문마저 발라버리며 대조영의 초반부를 이끌었던 연개소문 김진태를 유일하게 압도하는 지장형 무장으로서의 모습을 멋드러지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실제 임동진의 나이도 71세라 노년의 맹장이자 지장인 최영의 모습을 잘 표현해주리라 기대됐다. 하지만 임동진이 이미 배우 대신 목회자 활동으로 더 바쁘고, 이로 인한 피로 누적으로 정상적인 연기가 힘들다고 배역을 고사하여 서인석에게 넘어갔다.

여담으로 원래 캐스팅 예정이었던 배우 임동진과 최종적으로 확정된 배우 서인석은 고교 선후배 사이로서 체격도 비슷하다고 한다. 또 임동진이 하차하며 서인석이 의상 사이즈가 맞을 것이라며 추천하고 갔다고 한다.[2][3]

배우개그로도 볼만한 것이, 서인석유동근삼국기에서부터 김유신과 계백으로 나와 서로 대립했는데 이때 당연히 유동근이 패배했다. 그리고 연개소문에서 당태종연개소문으로 나왔는데 여기선 서인석이 유동근에게 패배, 게다가 둘 다 서인석이 맡은 배역이 유동근이 맡은 배역과의 대결에서 다시 패배하는 아이러니한 구도가 된다. 또한 태조 왕건 에서는 후백제의 시조인 견훤 역으로 고려와 대립하고, <무인시대>에서는 이의방 역으로 고려를 망치는데 일조했지만, 이번엔 고려의 충신 역을 맡게 되었다. 여기에 하나 더 끼얹으면 이의방은 이성계의 조상인 이린의 형이다.[4] 게다가 서인석은 한명회에서 이성계의 증손자 수양대군을 연기한 적이 있는데 이성계에게 죽임당하고 나라를 뺏긴 최영이 이성계의 후손으로 환생해서 골육상쟁을 일으켜 이성계의 자손들을 참살하고 이성계의 적통 단종을 몰아내 왕좌를 찬탈하여 이성계에게 복수했다는 배우개그도 성립한다.[5]

용의 눈물의 최영 역을 맡은 김성옥도 비교되곤 한다. 용의 눈물에서는 단 2회 만에 퇴장하지만 엄청난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김재형 감독이 애써 모셔온 김성옥은 임동진과 서인석의 중간 정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강렬한 무장이면서도 고려의 충신으로서 지조를 잃지 않는 담담함을 잘 녹여냈던 연기를 선보였다.

3. 극중 묘사

서인석은 그동안 강력한 힘과 위엄을 보이는 무장이나 왕 역할을 많이 맡았다. 2001년 이후 현대극을 제외하고 사극에서는 견훤의 아우라를 걷어내지 못 한채 배우 개그로 이미지가 많이 소비되곤 했는데, 예고편 만으로 그 견훤을 뛰어넘는 강렬함을 보여 견훤 이후 새로운 레퍼런스 최영 연기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팬들이 기대하였다.

견훤 이래 서인석이 대가 센 캐릭터를 맡을 때에는 담담한 모습을 거의 보기 힘들어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허나 우려와는 달리, 카리스마 넘치는 첫 등장의 일갈로 견훤 역과의 차별화에 성공했으며, 이인임과 척을 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자리를 완연하게 잡았다. 오랜 세월 전우로서 함께 해온 이성계와의 두터운 정, 무인으로서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정몽주와의 대담에서 보여준 신념과 신념의 충돌, 온 백성의 추앙을 받는 고려의 수호신다운 카리스마가 어우러져 평생을 외롭게 고려를 떠받들어온 늙은 무장의 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내면서 역사 속에서의 최영을 잘 표현했다는 평을 얻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3.1. 고려의 용장

"마마께서 고려의 임금이시라구요? 허면 어디, 소장에게 명을 내려 보세요!"
"추상같이 호령을 해보세요! 이 부월을 당장에 내려놓으라고!"
"어서요!!!!"

3회에서 호쾌하고 강직한 무인의 포스를 발산하며 첫 등장했다. 목호의 난을 진압하다가 공민왕의 시해 소식을 듣자 제주도에서 공민왕이 하사한 부월로 탁상을 내려찍으며 "도대체 도당의 중신이란 작자들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라고 분통을 터트린 뒤, 곧바로 개경으로 병사들도 자신도 쉬지 않고 바로 진격한다. 뒤에 따라오던 병사들이 죽거나 뒤쳐질 때 그는 더 빨라진다.[6] 당시 최영의 나이 59세. 중간에 조정의 중신이 와서 (너무 회군 속도가 빨라서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 좀 천천히 좀 오라고 하자 처음에는 "오! 오랜만이오!"라며 환대하지만, 중신이 최영에게 압도되어 천천히 오라는 이유를 말 못하자 결국 "이놈을 당장 포박하라!!!"는 호통과 함께 쳐잡고 그대로 개경으로 쾌속질주한다. 심지어 이 사람은 다른 중신도 아니고 당시 재무부인 삼사의 수장인 판삼사사였다.

개경에서도 경악스러운 모습을 계속해서 연출하는데, 무장을 해제하지도 않고 편전에 들어선데다 실제 역사상으로는 이인임과의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월을 이인임의 목에 대고 위협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어린 임금을 보고 "마마께서 고려의 임금이시라구요? 허면 어디 소장에게 명을 내려 보세요! 추상같이 호령을 해보세요! 어서요!!!"라며 본인이 몸소 추상 같이 호령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임금을 대면한 장군이 아니라 사람에게 포효하는 호랑이와 같아 결국 우왕은 정말로 오줌을 지려버리고 말았을 정도…. 이 장면에서 자신에게 군주의 위엄을 보이며 호령을 내리기는커녕 살려 달라며 목숨을 구걸하다 못해 신하들의 기세에 눌려 오줌까지 지리는 어린 우왕을 보며, 최영은 억장이 무너진다는 듯한 태도로 결국 복명하고 군권을 반납한다.[7] 3회에서 보여준 이러한 모습에서, 서인석에 대한 시청자 총평은 "드디어 견훤의 태를 벗고 새로운 캐릭터성을 창출해낼 수 있겠다."로 귀결되었다.

4회에선 우왕과 목검을 들고 검술을 가르쳐주는 모습으로 첫 등장하여 손자를 엄하게 가르치는 할아버지 분위기를 냈다. 궁녀가 임금의 나이를 생각하라고 아뢰자 '어린 임금이라고 칼 안 맞는다더냐?'라며 단칼에 쳐내는 카리스마도.. 북원과 친교를 맺자는 의견에 무인답게 반대를 하였으나, 이인임이 북원과 명나라가 서로 견제하는 동안에 고려는 다시 부강해져 훗날 황제국을 노릴 수도 있다는 식의 논지를 펼쳐 포섭되었다. 이 부분에선 이인임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는 실제 역사를 따라가는 듯. 그런데 이인임에게 설득당한 후 행보는 흡사 견훤이 지력을 잃고 조종당하는 모습과 같고, 5회 예고에서 정도전을 효수해 군문에 걸어야 된다느니 사대부들을 도륙낸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역시 견훤의 태는 깊고 넓다, 또 견훤인가!"라며 아쉬워 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5회에서는 본인도 명이나 북원에 사대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항명 하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하는 꼬장꼬장한 천상 군인의 모습을 아주 잘 보여줬다. 과거의 정도를 지키느라 현재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미래의 세파가 넘실대는 것을 보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 최영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했다. 정도전이 망하는 원과 흥하는 명의 예를 들며 항변하는 모습에서도 잠시 고민하지만 이인임의 양국중이익론에 매몰된 모습을 보여준다. 시청자야 역사를 다 아니 북원과 화친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습게 보이겠지만 사실 낚일 만한 이유가 있는 게, 1372년 서달이 이끄는 명의 원정군이 북원의 명장 코케테무르에게 격파 당한 바 있고 아직 나하추가 명 쪽에 붙기 전이었다. 그리고 북원이 망한 후에도 몽골 세력 자체는 오이라트란 이름으로 청에 복속되기 전까지 잔존했다. 게다가 고려는 북송과 요가 대립하는 것을 기회로 중국과 대등한 관계를 가지며 전성기를 누린 국가였으니 아무래도 정치적 경륜은 떨어지는 무장인 그로선 이말에 끌리기 쉽다. 실제 역사에서도 공민왕 말기부터 명과 완전히 멸망할 것 같더니 다시 버티고 있는 북원을 놓고 저울질하는 고려 정계의 모습이 보여지는 건 사실이지만, 친원파의 입장과 달리 그건 북원의 일시적인 회복세였다는 것이 문제였으며 저 당시 잠깐 한 대 때린 이후엔 시종일관 계속 얻어맞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나하추가 있을 당시에도 북원의 세력은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세력 견제의 한축이 되어야할 고려가 요 - 송을 저울질 하던 최전성기의 고려가 아닌 왜구를 비롯한 각종 외적들이 침입에 무너져가던 고려라는 사실이다. 사실 저 저울질 자체가 당시 정국을 주도하던 친원파들의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이 시절엔 민족이니 자주니 하는 개념으로 국제 관계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북원 대신 명을 택해야 한다는 정도전에게 "명나라 주구 따위가 감히 어디서 요설을 늘어놓는 것이냐!"며 일갈했다. 그럼에도 정도전의 직언에는 제대로 반론을 펴지 못했다. 그 직후에 어전회의에서 "소신 60 평생을 어명을 거역하는 충신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나이다. 항명은 명백한 불충, 이를 벌하지 않고 어찌 용상의 권위가 바로서겠사옵니까? 전시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항명을 하였으니, 참형으로 다스리는 것이 마땅할 것이옵니다. 정도전의 목을 베어 저자에 효수하시옵소서!"라면서 권위를 중시하고 상명하복에 철저한 직업 군인의 모습을 나타냈다. 이후 성균관 대성전에 있던 유생들을 끌어내러 가는데 "판삼사사 겸 판순위부사로서 명하노라! 이자들을 당장 궐 밖으로 내치고, 저항하는 자들은, 참살해도 좋다."며 강제로 해산시킨다. 조선 숙종 시절이었으면 사문난적 끝판왕으로 수십번 조리돌림 당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에 정몽주가 발끈해서 나서지만 그도 힘이 없으니 무력하긴 마찬가지. 다만 책만 읽던 유생들인지라 쉽게 끌려가서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도 정도전을 찝찝하게 생각하며 잊지않는 여운을 남겼다. 이성계와의 만남에선 최고의 무장을 아끼는 선임 장군으로서의 배포가 보였다. 미래를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하는 장면.

7회에서는 이인임의 본색을 눈치채고 이인임을 쳐내려 했지만, 정치적으로 우군이 없어 우왕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이인임에게 오히려 역으로 당하고 신진 사대부들로부터는 자신들의 뜻을 받아들여주지 않는다고 공격받는 외로운 처지에 놓였다. 이인임의 말마따나 전쟁에서는 무적이지만, 정치인으로서는 경륜이 부족한 군인의 모습을 보였다. 이 때 이인임에게 자기는 누구 편도 아니라고 하자. 이인임이 그래서 당신(최영)이 진 거라고 했는데, 이후 도당 회의에서 최영의 당여들이라 할 수 있는 신흥무인 세력들이 한 자리씩 차지한 것을 본다면 이 점만은 이인임과의 대화로부터 깨달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이후 이인임이 우왕을 희롱하여 모든 죄상에서 풀려나자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훗날 지윤을 비롯한 이인임 일파를 때려잡는 게 결국 최영이라는 걸 생각하면 언제까지 이런 모습으로 있진 않을 것이며 정치인으로서 성장해가는 모습이 나올 것이라 기대하는 시선도 있었다. 8회에서는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면모답게 기본적인 옷만 입고 직접 장작을 패는 물욕 없는 모습이 나오며, 정몽주에게 이인임을 견제하기 위해 돌아와달라는 콜을 받지만 일단 거절. 허나 이인임과의 타협 후에 명덕태후가 돌아와달라는 것에 신진사대부가 죄가 없고, 자신이 이인임의 죄를 찾지 못했는데 어떻게 돌아오겠냐고 다시 거절하려다가 마저 걷어치워버리고 꿇어 앉으며 울며 사직을 지켜달라고 애원하는 것에 한탄하는 것을 뿌리치지 못하고 조정에 남아 원치 않게 사대부들을 잡아 국문하게 된다. 이로 인해 이성계에게도 한 마디 듣고 만다. 행보를 보면 (방향이 옳던 그르던 간에)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지고 가려하고 이로 인해 안 먹어도 될 욕을 듣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10회에서 6년을 건너 뛰는 바람에 그의 유명한 전공인 홍산대첩이 스킵되어 아쉽다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본 드라마가 정도전이 주인공이다 보니, 정도전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사건은 대강 언급하고 넘어간 탓에 생략되었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이성계를 자신의 뒤를 잇는 고려의 용장으로 여기고 굉장히 신뢰하고 있었기에, 신뢰성 문제를 핑계삼아 이성계를 견제하려는 이인임에게 만에 하나 이성계가 고려에 역심을 품을 시엔 자신이 직접 베어버릴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럴 일은 결코 없을 거라는 뜻이었겠지만, 훗날의 일을 생각해본다면 이인임의 말이 맞았다. 10회부터는 한동안 눈에 띄는 활약은 없었다.

14화에선 동북면에 계속 오랑캐가 쳐들어오니 자신을 전선에 보내달라는 이성계에게 왜 그리 동북면에 가는 걸 서두르냐고 물어보다가 이인임의 함정에 빠졌다는 말을 듣고 즉시 권한을 수행해 이성계를 동북면에 조사차 파견보내는 방식으로 피난시켜준다. 왜냐하면 회의에서 이인임 일파가 더 조사한 이후에 대책을 세우자며 시간을 끌었기에, 그 조사차 이성계를 보냈다면 할 말이 없기 때문. 그리고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는 것에 동의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하며 이인임과 협상하여 이성계를 지키는데 성공한다.

15화에서는 쌀값이 엄청나게 올랐는데, 이 이유가 지주들이 쌀을 쌓아 두고만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쌀을 팔라는 의견을 냈다. 의외로 이인임이 찬성하여 쌀값을 안정화시키려 함과 동시에, 개인적으로 쌀을 풀어 죽을 배급하는 등 백성의 구제에 힘을 쓰는 모습을 보인다. 이 와중에 이색이 자리를 주선해주어 정도전이 찾아왔다. 9년 전의 원한이 있었을 텐데 괜찮냐면서 무슨 일로 찾아왔냐는 등 의외로 그때까지 정도전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나름대로 정도전에 대한 인상은 깊었던 모양. 쌀을 푸는 것은 일시적인 대책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근본적인 방법을 써야 한다는 말에 유심히 들어보려 하지만, 마침 쌀값을 올려받는 (가난한) 장사꾼 둘이 적발되어 현장으로 즉시 간다. 법을 어기는 자는 갈고리로 머리를 쳐 죽일 거라고 하였다면서, 우선 곤장 100대를 선사한다. 이에 정도전이 너무 엄격하다며 덕치를 권했으나, 그의 대답은 법을 어긴 자들을 봐줄 순 없다는 거였고, 이어 "나라가 있어야지 백성이 있는 법이다."라는 발언을 듣고 정도전은 그를 "뼛속까지 고려인이다."라고 평하고 역성혁명의 주체로 삼기 부족하다 생각한 듯 등을 돌린다. 정도전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는데, 최영 성격상 정도전이 마음 속에 있는 말을 했다간 곱게 죽기는 힘들었을 것.

16화에서는 이인임이 독단적으로 어명을 받아 이성계를 조정으로 불러들이고 그의 가솔을 억류한 것에 항의하나, 오히려 이인임에게 이성계의 막사에서 발견한 대학연의와 군이지인위명(君以知人爲明)[8] 자필을 증거로 이성계가 왕위에 대한 야심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받는다. 이에 최영은 비록 이성계를 두둔해주기는 하나 상당히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성계에 대한 신임에는 변함이 없어 이인임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경기도의 군사들을 통솔해줄 것을 부탁하자 받아들였고, 그 후 이성계가 석고대죄를 청하는 모습을 보고 재차 그의 결백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인임의 목적을 읽는 데에 어두운 것은 여전하여, 이인임이 이성계의 실권을 모조리 뺏으려 하는 데에는 자신이 절충을 보겠다면서 이성계가 따라줄 것을 권하기도 한다.

이후 이성계가 정도전의 말을 받아들여 이인임의 당여가 된 것에 사과를 하자, 오히려 잘했다는 말을 해준다. 전장을 오가며 피로 맺어진 인연이 어디 그런 것으로 끊기겠냐며 누구의 밑에 있건 고려를 위한다면 아무런 상관 없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감정에 북받쳐 눈믈을 흘리는 이성계를 다독여 주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후 이인임을 국부로 모시겠다는 우왕의 말에 이성계가 찬동하자 할 말을 잃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이성계를 따르던 다른 장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3.2. 이인임 축출

19화에서 조반의 땅을 빼앗은 일에 대해 염흥방에게 따진다. 그 후 이인임이 국고가 바닥난 책임을 지자며 함께 사임할 것을 권하는데 최영은 망설였으나 결국 임견미, 염흥방의 압박으로 사임하고 만다. 눈물을 글썽이며 우왕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는데 우왕은 돌아봐주지도 않는다. 이후 정도전이 이인임의 계획을 알려주자 분노하며 이인임을 찾아가 칼을 들이댄다. 이인임의 호위무사를 간단히 밀쳐내는 최영이 포인트.

20화에서는 이성계가 계속 이인임 편을 들고 심지어 이인임의 지시에 자신에게 감시까지 붙이는 걸 보고 이성계에게 어찌 이럴 수 있느냐며 화낸다. 정도전에게 땅을 빼앗긴 조반을 만나볼 것을 귀띔받는데, 이 때 정도전에게 왜 자신에게 이런 것을 알려주냐고 의중을 추궁하는데, 정도전은 "대감께서 계신 고려가 소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좋다"고 대답한다. 조반이 역모로 몰린 것을 알게 되자 입궐하여 우왕에게 이인임 일당을 제거할 것을 상주한다. 우왕이 일이 잘못되면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을 우려하여 망설일 때 이성계가 나타나 함께 주청하자 마침내 재가를 받으며, 바로 다음 날 아침 무장 세력을 이끌고 염흥방과 임견미를 제압한다. 무장 출신인 임견미가 최영의 군사들에게 포위된 상태에서 검을 들고 마지막 발악을 하자 직접 칼을 맞대고서 임견미와 겨루는데, 칼을 들고 뛰어든 임견미를 메다꽂고 뛰어난 검술 실력으로 임견미의 검을 튕겨 날려 보내는 등 간만에 노익장의 무공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후 대비 안씨는 염흥방과 임견미의 처벌에는 동의했으나 그 친족까지 몰살시키는 데에는 '고려는 부처님의 가호를 받는 나라입니다'라고 했고, 근비는 '임견미와 염흥방이 잘못해서 그렇지 이인임이 무슨 죄가 있냐며, 그간 공을 생각해서 살려주자'고 하며 대비 둘이 동시에 사면을 주장하고, 이인임이 의식불명이라는 소식을 듣자, 다른 권신들은 일가족까지 벌해야한다고 하면서도 이인임과는 어느 정도 미운 정도 들었고 어차피 재기불능이라고 여겨 처벌을 면하게 하려는 뜻을 보이며 이 때문에 이성계와 충돌한다.

22화에서 사대부까지 나서 사면에 반대하자 잠시 마음이 흔들리나 우왕이 완강하게 뜻을 밀어붙이면서 국청을 마감하고 이인임의 죄를 묻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정도전의 계책으로 성균관으로 유인된 이인임의 모습을 보고는 이토록 치졸할 줄은 몰랐다며 분노한다. 23화에서는 이성계에게 사과하면서 사직서를 돌려주었고, 그 후 이인임이 집 앞으로 와서 변명하려 들자 방의 불을 끄고는 하인들에게 내보내라 명령하여 이인임에 대한 자신의 실망감을 보여주었다. 이후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에 분노하여 직접 군사를 이끌고 요동을 정벌하러 갈 것이라 우왕에게 말했다.

3.3. 요동 정벌

공요군의 전 장병들은 들으라. 오늘부터 우리 고려는, 저 황제에게 굽신대는 제후의 나라가 아니다. 우리도 당당한 황제의 나라이니라. 명나라의 연호를 폐지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할 것이며, 제후국이라는 이유로 격하된 나라 안의 모든 제도와 습속을 바꿀 것이다. 이제 조공은 없다. 이제 굴욕도 없다.


우리는 대제국 고구려의 투혼을 이어받은, 고려의 아들들이다. 이제, 그 지긋지긋한 굴종과 오욕의 역사를 끝장내고, 승리의 새 역사를 향해서, 분연히 떨쳐 일어서자! 황제국 고려의 깃발이 나부낄, 저 요동 땅을 향해서, 진군, 또 진군을 하자!!!


전군, 출정하라!!!
최영의 출정 연설

그리고 24화. 떠나간 이인임의 빈 자리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물론 요동 정벌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역사 속의 독선적인 면은 그대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출생에 대한 소문이 콤플렉스가 되어 자존감 없이 헤매는 우왕을 진심으로 섬기고 위하는 충심, 오랜 세월 전우로서 함께 해온 이성계와의 두터운 정리, 무인으로서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정몽주와의 대담에서 보여준 신념과 신념의 충돌, 온 백성의 추앙을 받는 고려의 수호신다운 카리스마가 어우러져 평생을 외롭게 고려를 떠받들어온 늙은 무장의 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냈다. 이인임이 우왕에게 한 대사인 "소신이 지켜드리겠나이다."를 최영이 우왕에게 하는데 어감이 전혀 다르다. 전자는 다른 꿍꿍이가 느껴진다면 후자는 진심이 담겼다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21화, 22화에서 최영은 백성들과 임견미, 염흥방에게는 엄격한 형벌을 적용시켰으나 정작 이인임에게는 동정론에 넘어가 처벌을 넘기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인다. 임견미, 염흥방 가문은 갓난 아기라 할지라도 일가라면 다 처형당했다. 염흥방의 매부인 임헌이라는 사람은 옥관이 잡으러 집에 가 보니 쌓아둔 재물도 없고 딱히 부정축재나 비리도 없어서 냅뒀는데, 최영은 임견미, 염흥방에 기대어 대사헌이 되고서도 직언 한마디 안 했다고 아들 셋과 함께 잡아다 참수했다. 이는 역사적 사실로서 이인임이 고려에 끼친 해보다 공이 더 크다는 발언은 실제 최영이 한 발언이고 이성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영은 이인임을 비호해주어서 다른이가 다 죽는 와중에도 귀양으로 끝을 맺는다. 다만 이인임을 숙청해버리는 것 자체는 최영이 주도해 내린 결단이었고 이인임은 기습 당해 반격도 못해보고 최영집 대문을 두들기며 울부짖다 귀양갔다. (이인임이 꾀병을 부리고 최영이 동정론에 넘어가고 하는 장면은 모두 창작이다.) 우왕의 명령과 동정론을 최영이 이인임 처분에 반대하는 근거로 삼는 모습 때문에 정말 그 이유 때문에 최영이 이인임 처분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왕이 적극적으로 구명 운동에 나서기 전부터 최영은 이인임의 처분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학계에선 최영이 이인임을 비호했던 이유를 본질적으로 같은 뿌리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9]

극중에서 이인임 처분 때 이성계와 대립하는 것은 이미 이인임한테 여러 차례 호구 잡힐 때 보여줬던 최영의 부족한 정치력을 묘사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성계와 이색의 대화에서 언급되듯이 이성계가 임견미, 염흥방을 비롯한 이인임 일파를 처벌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사람을 가혹하게 다루는 것에 최영에게 반대의견을 냈지만 최영은 그 의견을 씹은데다 이인임 처분에 있어서도 역시 자기 의견만을 내세우는 등 의견이 갈리는 부분에서는 사실상 이성계의 무조건적인 양보만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그리 현명한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 정몽주가 이성계의 사직서 이야기를 하면서 최영과 이성계를 거사의 주역이라고 언급했다시피 거사에서 이성계의 공로가 크고, 명성과 세력 면에서도 최영과 견주어 딱히 부족하지 않다. 즉 이 시점에서 이성계는 최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입장이지 일방적으로 최영에게 고개를 숙여야하는 입장이 아니란 것이다. 이런 이성계를 상대로 일방적으로 자기 의견만을 내세우면서 불만을 품게 하는 것은 자기 안위를 위해서도, 조정의 안정을 위해서도 피해야 할 일이다. 2차 요동 정벌론을 관철시키기 위해 반대하는 관료를 죽이고 이성계의 반대와 타협을 모두 물리치는 등 최영의 독선적인 모습이 고려사에 나오는데, 이를 염두에 둔 연출로 보인다.

24화에서는 한국 역사 최대의 떡밥 최영의 요동 정벌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는데, 아니다 다를까 24화 방영 후 '정도전' 시청소감 게시판은 그야말로 혼돈이 되어 버렸다. 25화에서 팔도도통사가 되었지만 우왕이 곁에 있어달라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서경에 남아서 우왕을 설득하는 중. 26화에서 이성계가 2번이나 회군을 청하고 이색과 정몽주가 역시 요청함에도 이를 씹는 독단적인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과거 이인임이 이성계를 두고 한 말과 우왕이 이성계를 못믿겠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번민하다 결국 배극렴을 통해 회군 불가의 칙명과 함께 "자네를 믿는다"는 말을 전한다. 그 전에도 이성계와 독대한 자리에서 요동 정벌을 뒤로 미룰 생각도 했었지만 이성계를 믿기에 그대로 단행했다는 말을 했다. 마지막까지 이성계에 대한 믿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 실제로 이성계도 그 전언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흔들렸을 정도다. 하지만 결국 위화도 회군이 벌어지자 이성계에 대한 굳은 믿음이 한순간에 배신감과 분노로 돌변하면서 "…이성계!! 널 용서하지 않을 것이야…!!"하고 칼을 빼들었다.

3.4. 믿었던 전우배신과 개경 전투

"내 생에 단 한 번의 실수가 있다면, 를 믿은 것이다…!"
"이 장군, 무장은 행동으로 말을 하는 것일세. 자네의 진심이 정 그런 것이라면 행동으로, 행동으로 보여주게. 내 저승에서, 내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볼 것일세…!"

27화에서는 공요군의 탄핵 주청을 들은 우왕에게 '죽으라면 죽을 것이고 적을 막으라면 막을 것이다.'라며 충심을 보인다.[10] 그러나 단도를 꺼내 자결을 각오하며 우왕의 안위를 걱정하는 최영에게 우왕은 도리어 그 단도로 이성계의 심장을 찌르라고 독려한다. 결국 고려의 존망을 건 개경 전투가 벌어지고 이성계에게 맞서지만 병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해 결국 패배한다. 이후 우왕을 마지막으로 알현하기 위해 칼을 들고 천천히 어전으로 걸어가는 최영의 롱테이크는 그야말로 사직 최후의 보루였던 노장의 뒷모습을 훌륭하게 담아냈다. 우왕과의 독대 신에서 자신의 불충을 벌하여 달라며 통곡하는 장면에서는 고려를 향한 그의 진정한 충심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또 이 우왕과의 독대 장면에서 좌절한 우왕에게 열성조와 부처님께서 굽어 살피실 것이니 결코 절망하거나 낙담하지 말라고 격려하는 모습은 충장으로서의 면모를 잘 표현한 명장면이다. 이윽고 밖에서 조민수가 스스로 나오지 않으면 끌어 내겠다고 엄포하자 홀로 어전을 나와 칼을 뽑고, 무장으로서 마지막 예를 다하겠다는 이성계와 일대일 결투를 벌인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성계에게 밀리지 않는 대단한 무용을 보여주는 장면은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이다.[11]

최영: 내, 진즉 이인임의 말을 들었더라면 오늘 이런 천추의 한은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성계: 회군을 하지 않았다면 고려는 이미 망했수다!
최영: 닥쳐라! 너의 역심이 고려를 그르쳤느니라!!
이성계: 억지 작작 부리시우다!!

28화에서는 두 장군의 괴력으로 칼이 한 차례 둘로 부러졌음에도 치열한 일기토를 이어간다. 하지만 또다시 합을 주고받으면서 최영과 이성계의 칼이 또다시 부러지자, 조민수는 이성계와 최영에게 검을 한 자루씩 새로 보급해주고, 이성계는 검을 쥐지만 최영은 던져진 검을 그대로 바닥에 두고 승부를 거부한다. 그리고는 "자네는 날 벨 수가 있었네. 이 이상 나를 욕보이게 하지 말게. 뭣들 하는 게야?! 패장을 속히 끌어가지 않고!!"라고 호령하며 패배를 담담히 받아들인다. 이성계의 배려에 따라 붙들려나가지 않고 스스로 걸어나간다. 이후 국문을 받고 유배에 처해졌다는 내레이션으로 처리되었다. 이성계와의 결투 후 '역심이 아니라 백성과 나라를 위해서 회군한 것'이라는 그의 변명에 '무장은 행동으로 말하는 것'이라며 진심이 그렇다면 행동으로 보이라(반역하지 말라)고 마지막 당부를 남긴다. 그리고 해당 장면으로부터 30분 후에 이성계는 우왕을 함정에 빠뜨려 폐위시킨다.

29화에서 창왕의 책봉을 받기 위해서 명나라에게 잘 보이려는 조치로 위리안치되는 것이 결정되었으며, 30화에서 유배지를 옮기는 모습으로 잠시 재등장했다.[12] 그때 백성들이 구경거리로 삼았던 이인임 때와 달리 최영 장군님 고생하신다며 안타까워하고 눈물을 흘리는 등 온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는 묘사가 나왔다. 이성계 역시 최영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저버린 것이 아닌지라 위리안치 시키는 것에 대해서 조민수에게 분노해 달려와서 득달같이 따질 정도.[13]

3.5. 붉은 무덤의 전설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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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에서는 명나라와 고려의 관계 회복과 사신으로 간 이색과 이방원 일행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도성으로 압송되어 처형된다. 조촐하게 차린 밥상을 들고 가고 있었는데, 그 때 군사들이 들어닥친지라 결국 식사도 못하고 끌려가게 된다. 식사 못하고 끌려가는 장면에 대해서 굉장히 잔인하고 슬픈 장면이라는 평이 많았다.

처형 전날 밤에 이성계를 불러 자신은 고려를 지키는 귀신이 될 테니[14] 이성계는 이승에서 고려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이성계는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고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만 약속하며 엎드려 큰절을 올리면서 흐느끼고, 최영은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기로 결심한 것을 짐작하고 눈물을 흘린다.[15] 그리고 다음날 처형장에서 윤소종이 낭독한 최영의 죄목 중 권세를 탐한 죄가 있자 기가 막힌듯 허탈한 웃음을 지은 다음 상단에 언급된 유명한 유언을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처형 장면을 지켜보던 백성들은 최영의 목이 잘리자 땅을 치고 "장군님!"을 외치며 통곡했고 지켜보던 대신들과 위화도 회군 때 최영의 적으로서 싸웠던 무장들부터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대부들조차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16][17] 특히 이성계는 처형장에 차마 가지 못하고 홀로 도당에 남아 신음 소리에 가까운 울음소리를 내며 오열했다. 정도전조차도 한평생 고려를 위해 싸워왔던 노장의 비장한 최후를 보며 숙연해 했을 정도. 그만큼 최영이라는 존재가 정파를 떠나서 고려의 대들보같은 존재였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시청자들도 최영의 죽음을 보고 많이 안타까워했다.

이 장면에서 22화에서 임견미가 사형 당했을 때 나왔던 참수 당한 머리를 묘사하는 연출이 다시 나왔는데, 다소 코믹 호러에 가까운 분위기를 자아낸 임견미의 경우와는 달리, 여기서는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한 표정과 모습을 잘 묘사했다. 즉 임견미의 경우 골계미가 다소 들어갔다면, 최영의 경우는 골계미는 싹 빼고 비장미만 남았다고 보면 된다.

최영이 세상을 떠난 장면에서 그의 일대기를 읊는 내레이션이 깔렸다.
"최영, 고려 개국공신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용력이 출중하여 일찍부터 무인의 길을 걸었다. 개경을 점령한 홍건적을 격퇴하고 원나라 영토이던 압록강 서쪽 팔참을 수복하는가 하면 탐라 정벌과 홍산 대첩 등 무수히 많은 전공을 세웠다. 특히 왜구들에게 하얀 머리의 최만호라 불릴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는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무인으로서는 최고의 업적을 남긴 그였지만 정치가로서는 크고 작은 과오를 남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부친의 유언을 지키며 평생을 청백리로 살다 간 그의 생애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과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본관은 동주, 시호는 무민이다."

42화에서는 이미 죽었지만. 성계탕의 유래가 최영을 섬기는 사람들이 이성계가 싫어서 만든 요리라고 언급한다.

4. 정치적 능력

정녕 나라를 망하게 만들 작정입니까! 들으십시오! 대감의 오판이, 500년 고려의 사직을 패망으로 몰아가고 있단 말입니다!
이숭인
무인으로선 최고의 업적을 남긴 그였지만, 정치가로서는 크고 작은 과실을 남긴 것 역시 사실이다.
32회 내레이션
무장으로서의 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나, 실제 역사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능력은 부족한 것으로 묘사된다. 요동 정벌 이전에도 이인임에게 휘둘리는 모습이 자주 묘사되며, 아예 이인임 일파에 의해 완전히 제거될 뻔한 적도 있으니 말 다 한 셈. 하지만 이성계 일파와 힘을 합쳐 이인임을 완전히 몰아내고, 문하시중 자리에 앉으며 실권을 완전히 장악하였음에도 요동 정벌이라는 큰 오판을 저질러 사대부들과 이성계까지 등을 돌리게 만들어 결국 고려를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요동 정벌이라는 이상을 이루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았으나, 결국 그 이상 때문에 이성계와 정도전에게 조선을 건국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고 말았으니 이숭인의 평가대로 최영의 오판이 500년 고려의 사직을 패망으로 몰아갔다고도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러한 모습은 작품 후반에 정도전 역시 똑같이 답습한다는 것이다. 최영은 요동 정벌을 주장하다 온건파 사대부들을 비롯하여 도당의 모든 중신들과 적대 관계가 되어버렸는데, 정도전 역시 요동 정벌을 주장하다 도당의 수반이자 개국공신인 조준과 대립하게 되면서 정치적 입지가 위축되기 시작했고,결국 이방원에 의해 참살당한다.

5. 기타

3회 예고에서 부월을 찍고 백발을 풀어헤친 채 말을 내달리는 최영의 포스에 압도되어 서인석의 역할 중 역대 최강캐라느니 백발의 토르묠니르를 휘두른다느니 하는 드립이 난무했다.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신조를 중시했던 인물상을 반영하여 굉장히 검소한 생활을 보여준다. 작중에서 그나마 호화스러운 복장은 셋뿐으로, 나머지 장면에서는 모두 평민이나 입을 법한 간단한 한복만 입고 나온다. 저 호화스러운 복장도 하나는 고위 관료가 입는 붉은 관복, 다른 하나는 고위 장군이 입는 황금 경번갑 갑옷으로 사실상 업무를 보면서 입는 근무복이다. 나머지 하나는 비단으로 만들어진 파란색 사복으로, 다른 귀족이나 왕족을 방문할 때, 즉 사적으로 예를 차리기 위해 입는 옷이다. 거기에 이런 고급 사복도 이게 다다. 다른 귀족들은 다양한 비단옷을 입고 나오는 것과 비교하면, 그냥 필요하니까 입는 거지 애초에 사치 부리는 것을 싫어하는 면모를 보인다.[18]

조선 건국 이후 정도전의 행보가 극중 최영의 행보와 유사하다. 이인임과 비교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는 최영의 전철을 밟았기 때문. 자신이 가진 이상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면서 반대파를 탄압하는 모습, 왕과의 끈끈한 신뢰 관계,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지나친 무리수를 두다 인망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사람에게 버림받은 점, 요동 정벌을 구상하다 최후에 군사 정변으로 몰락한 점까지 닮은 점이 상당히 많다. 48화에서는 이방원이 대놓고 "최영 장군의 현신이 아니십니까?" 라고 비꼬기까지 했다.

다만 최영은 죽는 순간까지 백성들의 존경과 신뢰를 잃은 적이 없는 참군인이었다. 심지어 그에게 등을 돌려 서로 칼을 겨눈 무장 세력조차 최영 개인에 대한 존경심은 여전히 지니고 있었다. 그에 반하여 정도전은 남은을 비롯한 몇몇 친밀한 동료들을 제외하곤 옛 동료들과의 사이가 좋지 못할 뿐더러, 개인적 평판도 그리 좋지 않았다는 차이점이 있다. 또한 최영은 탐라 정벌과 홍산 대첩 등등 이미 국가를 여러 번 구해 왜구에게도 강력한 존재감을 떨친 전쟁 영웅인데다, 그가 청백리라는 사실은 민중에게도 널리 퍼져 있었다. 권세가들이 빈궁기에 쌀을 매점매석할 때, 최영은 오히려 없는 재산을 털어 구휼 활동을 하기까지 했으니[19], 작중 이색의 말대로 '만백성의 추앙을 받는 용장 중의 용장'이라는 평가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정도.

그러나 말년에는 요동정벌이라는 자신의 오랜 이상과 군인으로서의 옹고집이 안 좋은 시너지를 이루면서, 의외로 작중에서 이인임이 정의한 괴물의 개념에 정도전 못지않게 완벽히 부합해 들어가는 인물이 되고 말았다. 이인임은 괴물은 '과도한 이상과 권력이 합쳐질 때' 탄생한다고 정의를 내렸다. 그런데 주요 인물들 중에서 과도한 이상[20]과 권력이라는 조건을 완벽히 갖춘 작중 등장인물은 정도전과 최영밖에 없다.[21][22] 최영은 요동정벌을 반대하는 대신을 쳐죽일 정도로 권력도 대단했거니와 늙어 죽기 전에 고토 회복을 보기 위해서, 왜구도 막기 힘든 상황임에도 무리하게 요동 정벌을 추진했다. 이상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걸 넘어서 비현실적인 이상을 위해 자신뿐 아니라 나라와 무고한 백성들까지 포함하여 주변 모두를 불태워버릴 정도였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정도전보다도 더한 괴물이었던 인물.

[1] 최영이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말. 그의 완고한 보수적 캐릭터성을 나타내주는 한마디로, 이 말이 나오면 좋은 일이 일어나는 적이 없다. 쇠고집을 부려 일을 그르칠 때 반드시 어허! 하고 상대를 억누르는 것이 특징.[2] 서인석은 왕과 비에서 임동진이 맡았던 세조 역에 한때 거론됐다. 사실 드라마 한명회 때문에 서인석이 수양대군 선배다. 서인석의 세조는 말년에 종기로 고통받는 등 명백한 죗값을 치르는 악인이지만, 임동진의 세조는 단종을 너무나도 아끼는 가공의(?) 미화된 세조였다. 배우 인상도 서인석쪽이 더 대가 센지라 임동진이 최영역을 맡았으면 서인석에 비해 부드럽게 해석되었을거란 의견이 있다.[3] 여담으로 서인석은 이덕화(한명회 역)와 한명회 뿐만 아니라 제5공화국(드라마)에서도 각각 노태우, 전두환 쿠데타 콤비로 등장하는데, 제5공화국에서 임동진은 김대중역을 맡았다...[4] 무인시대에서 이린 역을 맡은 전현은 태조 왕건에서는 견훤의 아들 금강을 맡았고 본 작품에서는 조준 역을 맡았다.[5]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성계 역할을 맡은 유동근파천무에서 수양대군을 연기했다.[6] 이 때부터 고려 사직을 최우선순위로 두고 나머지의 가치에 대해서는 융통성이 부족한 최영의 면모가 드러나는데, 사직과 병사들을 쉬게 해야 한다는 임견미의 만류에도 병사들의 목숨보다 사직의 안위가 우선이라며 진격을 멈추지 않는다.[7] 이는 왕이라면 어느 정도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이인임 같은 권신들에게 휘둘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역시 우왕이 비록 어릴지라도, 군왕답게 자신에게 호통 치며 명령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던 것.[8] "임금은 인재를 알아보는 것으로써 밝음을 삼는다"라는 뜻이다. 그야말로 오해받기 딱 좋은 글.[9] 어쩌면 같은 전쟁터를 누빈 이인임의 대한 신뢰가 작용했을 지 모른다. 드라마에서는 잘 묘사되지 않지만, 이인임은 요동 정벌까지 나선 문무를 겸비한 인물임에서 같은 전쟁터를 누비고 나라를 지켜온 최영으로써는 신진사대부보다 공민왕 때 나라를 지킨 그에게 더욱 신뢰가 갔을 지 모를 일이다. 요동정벌 등의 앞선 업적들이 작중에선 묘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최영말고는 그를 옹호하는 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10] 드라마에서도 우왕은 반역으로만 생각하지만 최영은 무인으로서 그들에게 요구했던 자신의 의지가 과했다는 것을 알기에 저들의 주청이 틀린 말은 아니라 앞선 말을 한 것.[11] 초전에는 거의 대등하게 겨루며 합을 맞추지만, 전투가 지속될수록 체력적 문제 때문에 밀리는 것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최영의 공격이 이성계에게 들어갔을 때 이성계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이성계의 공격이 최영에게 들어갔을 때는 비명을 지르며 휘청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최후의 합에 두 사람의 검이 동시에 부러지는 등 체력을 제외한 힘과 검술만은 동등한 걸로 묘사된다.[12] 목에는 나무칼, 발에는 족쇄가 채워졌다.[13] 최영이 나이가 나이인지라 자신의 고향에서 유배를 보낼수도 있었음에도 명분이라는 이유로 강제적으로 먼 곳으로 보내는 것이었기에 노구의 몸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기 때문. 이성계는 이에 분노했지만 위화도 회군 자체가 주동자가 이성계 자신인지라 어찌할 수 없었다.[14] 물론 극 중 인물의 관점에서 보면 당부 차원에서 전하는 상징적인 말이겠으나, 실제로 최영은 사후 백성들 사이에서 신격화됐으며, 조선의 왕들(숙종, 영조, 고종)이 최영의 사당 근처를 지나갈 때면 그 원혼이 돌풍을 일으켜 괴롭혔다는 설화까지 전래된다. 비현실적인 묘사는 철저히 배제하면서도 극중 대사를 통해 야사나 민중 신앙까지 담아내는 이 드라마의 특색이 엿보이는 대목.[15] 최영은 그 의미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앞에서 큰 절을 하는 그를 외면하는 것으로 마지막 원망과 저항을 하기도 했다.[16] 정몽주는 차마 최영이 처형당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시선을 돌렸고 남은 역시 눈을 질끔 감고 조준 역시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변안열 역시 착잡해하며 그저 형을 집행하라고만 했다.[17] 다만 처형 교지를 낭독한 장본인인 윤소종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평온한 모습이고 희미한 미소까지 짓고 있어서 시청자들 의견 중에서 윤소종이 사이코패스 같다는 의견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윤소종은 원래 작중에서 뭔 일이 일어나든 저 표정인지라 표정은 저래도 속으로는 나름 숙연해 했을 수도 있다. 참고로 윤소종 역할을 맡은 이병욱은 태조 왕건에서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 역할을 맡았다.[18] 배우개그적인 요소로 같은 배우가 연기한 수양대군 역시 왕이 된 후에도 검소하게 생활했다.[19] 드라마상에서는 자신의 곳간을 열어 빈민을 구휼하나 쌀이 떨어져 한탄하던 중, 신덕왕후 강씨의 도움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20] 정도전은 민본의 대업, 최영은 고토 회복[21] 작중에서 괴물이라 볼 수 있는 사람은 이인임, 최영, 정도전, 정몽주까지 넷인데, 이인임은 대단한 이상을 품은 적 없이 개인의 영달과 체제 유지를 동시에 추구한 노회한 보수파 관료였고 정몽주는 권력을 제대로 쥔 적이 없다. 한편 이들과 달리 이성계는 덕장으로서의 인간적인 면모가 강하게 부각된데다 진작에 군권을 독차지한 채로 임금 자리를 노렸으므로 괴물+과도한 이상이라는 조건에 맞지 않아 괴물로 여겨지지 않는다. 정몽주는 이성계더러 괴물이 됐다고 했으나 최소한 이 드라마에서의 이성계는 괴물로는 보이지 않는다.[22] 다만 이인임에 관해서는 '극중 전반적인 시간대에서'라는 사족을 붙일 필요는 있다. 그가 제대로 일하고 그 결과로 권력을 쥘 수 있는 기반을 만들던 건 우왕 때가 아닌 공민왕 때였다. 공민왕의 이상국가를 만들겠다는 희망적인 이상을 품었다가 좌절한 결과가 우왕 때의 이인임일 수 있고, 이렇게 되면 극중 유사사례를 들 수 없는 '타락한' 괴물이 된다. 괴물의 정의 또한 본인의 모습을 되짚어 보고서 저렇게 내린 것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