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12 11:31:14

공요군

파일:공요군.png
2014년 KBS에서 방영된 사극 '정도전'에 등장하는 공요군.[1]

1. 개요2. 편제3. 제2차 요동정벌과 위화도 회군4. 여담

1. 개요

功遼軍, 말 그대로 요동을 공격할 군대. 서기 1388년(고려 470년, 우왕 14년) 요동을 정벌하기 위해 고려에서 편성한 군대이다.

2. 편제

팔도도통사(八道都統使) 최영(崔瑩)
좌군도통사(左軍都統使)조민수(曹敏修)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이성계(李成桂)
서경도원수(西京都元帥)심덕부(沈德符) 안주도도원수(安州道都元帥)정지(鄭地)
부원수(副元帥)이무(李茂) 상원수(上元帥)지용기(池湧奇)
양광도도원수(楊廣道都元帥)왕안덕(王安德) 부원수(副元帥)황보림(皇甫琳)
부원수(副元帥)이승원(李承源) 동북면부원수(東北面副元帥)이빈(李彬)
경상도상원수(慶尙道上元帥)박위(朴葳) 강원도부원수(江原道副元帥)구성로(具成老)
전라도부원수(全羅道副元帥)최운해(崔雲海) 조전원수(助戰元帥)윤호(尹虎)
계림원수(鷄林元帥)경의(慶儀) 팔도도통사·조전원수(助戰元帥)이원계(李元桂)
안동원수(安東元帥)최단(崔鄲) 배극렴(裴克廉)·박영충(朴永忠)·이화(李和)
조전원수(助戰元帥)최공철(崔公哲) 이두란(李豆蘭)·김상(金賞)·윤사덕(尹師德)
팔도도통사·조전원수(助戰元帥)조희고(趙希古) 경보(慶補)·이을진(李乙珍)·김천장(金天莊)
안경(安慶)·왕빈(王賓)
총 병력 50,473명 군마 21,682필
최영을 팔도도통사[2]조민수가 좌군도통사, 이성계가 우군도통사를 맡아 각각 좌군과 우군을 담당하였다.

현재의 위치로 보자면 조민수는 황해, 충청, 호남, 경상 등 한반도의 중남부 지방군을, 이성계가 평안, 함경, 강원의 중북부 지방군을 각각 나누어 통솔했다.

이지란, 정지, 변안열, 배극렴, 박위 등 북으로는 여진족, 남으로는 왜구들을 때려 잡으며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내로라 하는 장군들도 대거 공요군에 소속되었다. 그러나 당시 이성계사(四)불가론을 내세우며 요동 선제 공격을 반대하였는데, 이 사불가론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았다.

1. 소국(고려)이 대국(명)을 치는 것은 옳은 행동이 아니다.
2. 농번기인 여름에 군대를 일으키는 것은 옳은 행동이 아니다.
3. 지금 대군을 일으켰다가는 왜구에게 틈을 보일 수 있다.
4. 장마철에는 활의 아교가 풀릴 수 있고 병사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창궐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불가론을 내세우며 끝까지 요동 공격을 반대하던 이성계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공요군은 예정대로 편성되어 출전할 준비를 끝마치게 된다.

3. 제2차 요동정벌과 위화도 회군

마침내 1388년 음력 4월, 고려에서 지원병과 전투병력을 포함한 총 5만여 명의 병력과 2만여 필이 넘는 군마가 포함된 공요군이 편성되었다. 당시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고려로서는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다 끌어모아 조직한 군대였던 만큼 이 공요군에 고려의 국운이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출정한 공요군은 지속적으로 내리는 폭우로 인해 점차 지치고 기세가 떨어졌으며, 군량미마저 제대로 조달이 되지 않자 영양실조에 걸린 병사들마저 속출하였다. 설상가상으로 탈영병이 속출하고 역병이 돌 조짐까지 보이는 상황이니 이성계와 장군들은 보다못해서 회군하자고 몇번이나 상소를 올렸다. 하지만 전후 상황을 파악하지 않고 진군만 독촉하는 우왕과 최영의 태도에 크게 분노한 이성계는 마침내 회군을 결정하게 되고(위화도 회군) 이내 말머리를 돌려 개성으로 진격하여 함락시키기에 이른다. 결국 고려의 국운을 걸고 조직한 군대가 고려를 멸망시켜버린 셈.

4. 여담

여담으로 만약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지 않고 그대로 공요군을 이끌고 요동으로 진격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라는 소위 if 떡밥에 대해 논쟁이 꽤 있는데, 당시 명나라는 원(元)의 잔존 세력이었던 북원을 공격하여 1387년 나하추의 항복을 받아내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면서 하루가 다르게 강성해지고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설사 전쟁을 했더라도 이기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설이 주류이다.


[1] 다만 위 장면은 고증오류인데 실제 공요군은 군마 2만필이 있어 대규모의 기병을 거느리고 있었다. 해당 대목 자체는 이후 나레이션의 설명으로 나오긴 한다.[2] 총사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