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루카스 장편 연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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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낙서 (1973) American Graffiti | |
장르 | 드라마 |
감독 | 조지 루카스 |
각본 | 조지 루카스 글로리아 캣츠 윌러드 휴익[1] |
제작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게리 커츠 시드 셴버그 |
출연 | 리처드 드레이퍼스 론 하워드 폴 르맷 |
촬영 | 얀 달퀜 |
편집 | 베나 필즈 마리아 루카스 |
배급사 | 유니버설 픽처스 |
개봉일 | 1973년 8월 11일 1974년 3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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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3년에 개봉한 조지 루카스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로 원제는 American graffiti(미국의 낙서)이다. 루카스의 청소년기를 반영한 내용으로, 특히 청소년들의 드라이브 문화인 크루징(cruising)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루카스가 밝힌 적이 있다.[2] 크루징은 당시 청소년들의 치기와 영웅심리, 그리고 연애담을 관통하는 코어였다. 참고로 크루징은 영화 개봉 당시인 70년대 초엔 이미 죽어가던 문화였다. 교통 안전 강화와 기름값 상승이 큰 원인이었다고.작품의 배경은 1962년인데, 브리티시 인베이전, 즉 비틀즈와 롤링스톤즈 등이 대변하는 영국 록 음악의 유행과 히피가 주창하는 마약 문화의 만연으로 넘어가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50년대 감성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 빌 헤일리, 엘비스 프레슬리 등의 고전 로큰롤 넘버가 영화 내내 흐르고 있고, 로맨스 분위기를 연출할 때도 플래터즈의 50년대 대표곡들(Only You, Smoke Gets in Your Eyes, The Great Pretender)이 깔린다. 고등학교 무도회(sock hop) 장면도 50년대식 댄스가 수를 놓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을 곤란케 하는 양아치 패거리인 그리서(greaser)도 특히 50년대에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던 집단이다. 이런 양아치들의 발생은 2차대전 후 서양 사회 대부분이 가치관의 붕괴로 인해 겪을 수밖에 없던 사회현상이었다.[3]
2. 흥행 및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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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스코어 97 / 100 | 점수 7.2 / 10 | 상세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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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도 95% | 관객 점수 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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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만 달러라는 저예산으로 무려 1억 4천만 달러[4]를 벌어들인 데다가 아카데미 후보에까지 올라 평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루카스는 각본 면에서는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감독이지만, 이 작품은 자기고백적인 진솔한 매력과 더불어 뉴 할리우드적 풍조를 잘 따라간 사실적인 연출로 호평을 받았다.
3. 여담
- 조지 루카스는 이 영화의 성공으로 평생의 숙원이었던 스타워즈를 제작하게 되는데, 그 영화는 장차 20세기 영화계의 상징이자 미국인들에게는 신화 그 자체인, 문화예술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거대 프랜차이즈의 서막이 된다.
- 조지 루카스 문서의 그 외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청춘낙서를 통해 영화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바로 이 영화를 기점으로 엔딩 크레딧에 모든 제작진들의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중요한 사람들의 이름만을 남겼는데, 이 영화의 촬영 당시 제작비 부족으로 스태프들에게 돈을 다 지급하지 못해서 크레딧에 이름을 적어 주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 영화 끝에서 등장인물들의 향후 인생을 한줄로 요약하는 영화들의 원조이다. 주요 등장인물 네 명 중 두 명이 영화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고(한 명은 음주운전 교통사고, 한 명은 월남전 MIA) 알려 주며 충격을 준다.
- 오늘날 미국 영화계의 거물들의 새파랗게 젊은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설명이 필요 없는 해리슨 포드, 연기자보다 명감독으로 더 유명해진 론 하워드[5][6], 죠스를 비롯해 여러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에 출연한 감초 전문 배우 리처드 드레이퓨스가 젊은 시절 어떤 얼굴이었는지 구경해 보자.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조지 루카스를 지원하기 위해 직접 제작에 나서긴 했지만, 루카스의 자유도를 보장해 주기 위해 얼굴마담으로 나선 것일 뿐, 제작 자체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편집본을 본 유니버설 측의 반응이 좋지 않자, 정 안 되면 자신이 판권 자체를 사겠다고 했을 정도로 루카스를 두둔했다. 결국 코폴라뿐만 아니라 다른 스튜디오들까지 판권을 사겠다고 달려들자 유니버설이 한 수 접고 몇 가지 장면만 편집한 후 개봉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매출을 올리자 코폴라는 자신이 판권을 사지 않은 걸 후회했고[7], 이로 인해 역설적으로 이후 루카스와의 사이가 멀어졌다고 한다.
-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의 대성공 후 루카스는 재개봉 조건으로 최초 개봉 때 유니버설이 편집한 장면[8]을 모두 복원시켜달라는 요구를 했고, 유니버설은 이에 순순히 따라서 1978년에는 감독판으로 재개봉했다. 이 때 6,3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첫 개봉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
- 영화 포스터를 미국 만화가인 모트 드러커(Mort Drucker)에게 의뢰해 그렸다. 그런데 드러커는 미국 만화잡지인 매드(Mad)의 영화 패러디도 그리고 있었기에, 이 영화의 패러디 역시 그가 그렸다(아래 이미지).
[1] 캣츠와 휴익은 루카스와 동업자였던 각본가 커플로 데드 피플이라는 컬트 호러 영화를 감독한 적 있다.[2] 출처: The Making of American Graffiti[3] 예컨대 서독에선 이들을 할프슈타커(Halbstarker)라 불렀다.[4] 이중 첫 개봉 때는 5,500만 달러, 루카스가 스타워즈로 유명해진 이후인 1978년에 재개봉했을 때는 6,300만 달러를 벌었다. 재개봉이 첫 개봉 때보다 훨씬 버는 일 자체가 드물다.[5] 참고로 배우로서는 마지막 영화다. 이후론 완전히 감독으로 전업했다.[6] 정확히는 이 영화의 속편에 나온 것이 마지막이다.[7] 단순 허풍이 아니었다. 코폴라는 당시 대부의 성공으로 유명 감독이 됐던 데다가, 영화 제작비가 워낙 적었기에 코폴라가 사비로 충분히 판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8] 루카스가 마음에 드는 장면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도 싸웠기 때문에 정작 편집된 건 2-3분 정도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