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반스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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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반스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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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 ||||
| 1987-88 · 1989-9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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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 ||||
| 1987-88 · 1989-90 · 1990-91 |
존 반스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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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FC 앰버서더 | ||
Liverpool Football Club Ambassador | ||
존 반스 John Barnes | ||
<colbgcolor=#d00027,#191919> 본명 | 존 찰스 브라이언 반스, MBE John Charles Bryan Barnes, MBE | |
출생 | 1963년 11월 7일 ([age(1963-11-07)]세) | |
자메이카 킹스턴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자메이카|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2cm / 체중 76kg | |
직업 | 축구선수 (윙어,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 |
소속 | <colbgcolor=#d00027,#191919> 선수 | 서버리 코트 (1980~1981 / 유스) 왓포드 FC (1981~1987) 리버풀 FC (1987~1997)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1997~1999) 찰튼 애슬레틱 FC (1999) |
감독 | 셀틱 FC (1999~2000) 자메이카 대표팀 (2008~2009) 트란메어 로버스 FC (2009) | |
기타 | 리버풀 FC (2022~ / 앰버서더) | |
국가대표 | 79경기 10골 (잉글랜드 / 1983~1995) |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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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현역 시절 레프트윙으로 뛰며 본인의 장점인 엄청난 주력을 이용해 리버풀, 왓포드에서 맹활약을 했다.2. 선수 경력
2015년에 ITV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
2.1. 데뷔 이전
유년 시절 모습[1] |
유년 시절 모습[2] |
1963년 11월 7일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턴에서 자메이카군 장교인 켄 반스[3]와 트리니다드계인 어머니 진 힐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일하는 기지 내에서 축구를 즐겼으며, 스포츠에 관심을 가진 아버지는 스쿼시와 축구를 가르쳐주며 그를 격려해주었고, 1976년에 가족과 함께 영국 런던으로 이주한 뒤 반즈는 학창시절에 럭비를 즐기다가 청소년 시절에는 스토 보이즈 클럽이란 유소년 축구팀에서 4년간 뛰었다고 한다.
이후 1980년부터 아마추어 팀인 서버리 코트 팀에서 뛰다가 이를 눈여겨 본 왓포드의 감독 그레이엄 테일러의 눈에 들어 왓포드로 소개받아 2군에서 연습 시합을 하여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왓포드와 계약을 하게 된다.
2.2. 왓포드 시절
팀 선배인 루더 블리슬렛과 함께 |
그는 데뷔 첫 경기인 1981년 9월 5일에 있었던 올덤 애슬레틱과의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만들어 첫 신호를 알린 반스는 같은 흑인 선수인 루더 블리슬렛과 호흡을 맞추어 1981/82 시즌에 당시 2부 리그로 승격한 지 3시즌 만에 팀을 2부 리그 준우승으로[4] 1부 리그로 끌어올리는 데 공헌하였다. 이후에도 기세를 이어가서 1982/83 시즌 리그 준우승, 1984년 FA컵 결승 진출 등을 이루며 리그에서 중상위권을 수성했다.
이후 전성기가 저물어 가던 시절인 1986/87 시즌에 FA컵 준결승에서 토트넘 핫스퍼에게 패배한 것을 끝으로 그는 1987년에 당시 최강팀인 리버풀로 이적을 하게 된다.
2.3. 붉은 군단의 일원으로
그가 리버풀로 오기 전인 1986년 12월 초에 리버풀은 왓포드와의 경기를 치르러 비커리지 로드로 원정을 갔는데, 1위 수성을 위해서는 승점 3점을 기대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왓포드는 1980년대 초반처럼 예전의 기세를 보이지 못했지만, 당시 반스는 잉글랜드에서 제일가는 포워드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당시 왓포드가 이미 1골을 올린 경기의 후반전에서 반스는 센터서클 근처에서 공을 잡아 득점을 위해 이리저리 질주하여 앨런 핸슨과 게리 길레스피를 젖히고 골키퍼 브루스 그로벨라를 지나치는 절묘한 슛을 보내며 리버풀에 타격을 입혔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리버풀에 반스의 멋진 모습을 각인시켜 주기도 했다.
그런 반스를 1987/88 시즌을 앞두고 케니 달글리시 감독이 90만 파운드로 구매하여 그는 팀에 합류했고, 존 올드리지의 득점력, 피터 비어즐리의 날카로움, 그리고 상대를 교란시키는 반스의 활약이 시너지를 일으켜 1987/88 시즌에 팀을 우승으로 이끌게 되었다. 이 공로로 반스는 PFA와 축구기자협회 두 곳에서 올해의 선수상을 들어올렸다. 다만 FA컵에서 1부 리그 약체인 윔블던 FC에게 패함에도 불구하고 이 시즌은 기념비적인 시즌으로 남았다.
전성기 시절에 반스는 '검은 스티브 하이웨이' 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팬들에게 승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져다 주었는데, 처음에는 그를 데려오려는 구단의 결정에 몇몇 사람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시 반스가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한 데다 흑인이 한 명도 주전으로 뛰지 않던 머지사이드에 흑인이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스는 잔디 위를 내딛자 자연스럽게 녹아내렸으며, 구디슨 원정에서도 누군가가 바나나를 던지자 시크하게 차버리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그의 뛰어난 실력과 태도는 어떠한 핸디캡도 무너뜨린 셈이다.
그는 힐즈브러 참사 때도 비탄에 빠진 이들을 도왔던 1989년에도 팀의 일원으로써 FA컵 우승을 하여 웃음을 가져다 주었고, 1989/90 시즌에는 또 한번 리그 우승을 하여 축구기자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 역동적이고 폭발적인 윙어로써의 전성기는 끝을 고하기 시작했는데, 1991년에 부임한 그레이엄 수네스 시절에 아킬레스건 부상이 심해져 점점 힘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1994년에 대신 부임한 로이 에반스 감독이 그를 딥라잉 미드필더로 바꾸어 탁월한 패스 실력을 선보이며 다시 전성기를 누렸다. 그는 에반스가 지휘하는 젊은 군단들의 슬기로운 리더로써 1995년에 리그컵을 우승시켜 자신의 컬렉션에 넣었고, 이후 1996/97 시즌을 끝으로 정든 리버풀을 떠났다.
1998년, 대영제국 훈장 5등급 (MBE)을 받았다.#
2.4. 리버풀 이후
이후 뉴캐슬로 이적하여 1시즌을 뛰다가 1998/99 시즌 도중에 찰튼으로 이적했으나, 그 시즌에 팀이 강등되자 은퇴했다.3. 플레이 스타일
군사학교 출신의 헤비급 권투 챔피언이자 자메이카 국가대표팀 선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182cm의 키와 건장한 체격의 우월한 피지컬, 엄청난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화려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휘젓고 다니는 선수였다.윙어로서의 재능을 타고났던 선수로 기술적으로 매우 훌륭한 선수였고 특히 상대 선수를 속이는 동작을 잘했다. 상기된 유전적으로 축복받은 피지컬로 투박한 드리블은 커녕 절륜한 개인기와 볼 컨트롤 능력까지 겸비했으니 상대 수비수들은 반스를 상대로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중앙을 향한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도 잘 올리는 클래식 윙어로서, 무려 피지컬+스피드+공격력 삼박자를 모두 갖춘 컴플리트 윙어였다. 당시 만연했던 영국축구계의 인종차별을 정면돌파하며 이 같은 활약상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은 능력은 당시 잉글랜드 리그 내에서도 주목받던 재능으로, 알렉스 퍼거슨은 훗날 본인의 커리어에서 영입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던 선수로 왓포드 시절의 존 반스를 꼽을 정도였다. 당시 케니 달글리시와 영혼의 투톱을 이뤘던 이언 러시를 유벤투스로 빼앗기고 86/87 시즌을 무관으로 끝마친 리버풀은 감독으로 전환한 달글리시 휘하에서 전면적인 리빌딩을 단행하게 되는데, 반스는 영입생 중에서도 특히 그 탁월한 재능을 십분 활용하여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저물어가는 리버풀 '붉은 제국'의 군계일학으로 팀을 이끌게 된다.
그의 이같은 활약에 힘입어 리버풀은 먼 훗날 위르겐 클롭의 리버풀 팀이 또 한번의 전성기를 가져오기 이전까지 그 역사에서도 손꼽힐 강팀을 구축하게 되었고, 이와 별개로 힐즈버러 참사 당시 선발이었던 선수로서 리버풀 팬들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행동을 많이 하며 인간적으로 팬들과 쌓은 유대도 단단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리버풀 팬들에게 존 반스라는 이름은 여전히 향수와 함께 재조명되고 있다.
4. 평가
다른 월드클래스 윙어들에 비해 이렇다 할 개인 수상이 없어 초라해보일 수 있지만, 리버풀 역대 베스트 일레븐을 선정할 때 항상 레프트윙 자리에 들어가는 선수이다. 1985년의 헤이젤 참사로 인해 "붉은 제국"이라고 불리며 세계 최강의 위용을 뽐내던 리버풀과 잉글랜드 축구계는 완전히 몰락했고, 1990년에는 리버풀이 힐스버러 참사를 겪으며 비탄에 잠겼다. 그런 와중에 리버풀의 절대적인 주축으로 활약하며 팬들을 달래주었던 선수가 바로 존 반스이다. 즉, 영국 축구 리그와 리버풀 FC의 암흑기에서 가장 빛났던 진흙 속의 진주 같은 인물이다.국가대표로서는 폴 개스코인, 게리 리네커 등의 선수와 함께 1990년 월드컵 4강에 진출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5. 감독 경력
셀틱 시절의 모습 |
자메이카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의 모습 |
은퇴 이후 1999년에 케니 달글리시 단장의 부름을 받고 셀틱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성적 부진으로 시즌 도중에 쫓겨났고, 이후 야인으로 지내다 2008년에 자메이카 국대 감독을 1년간 맡다가 2009년에 트란미어 로버스 감독을 끝으로 더 이상 감독 생활을 하지 않았다.
6. 근황
현재는 ITV 등지에서 축구전문가로 출연 중이다. 그러나 종종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망언을 날리는 편이라서 팬들로부터의 평가는 좋지 못하다.2022년 11월 18일, 리버풀 FC의 공식 앰버서더로 임명되었다.#
7. 기록
7.1. 선수
7.1.1. 대회 기록
- 리버풀 FC (1987~1997)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987-88, 1989-90
- FA컵: 1988-89, 1991-92
- 풋볼 리그 컵: 1994-95
- FA 채리티 실드: 1988, 1989, 1990
7.1.2. 개인 수상
- PFA 올해의 선수: 1987-88
- PFA 올해의 팀: 1987-88, 1989-90, 1990-91
- FWA 올해의 선수: 1987-88, 1989-90
- PFA 세기의 팀 (1907~2007)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2005
7.2. 감독
7.2.1. 대회 기록
- 자메이카 축구 국가대표팀 (2008~2009)
- 캐리비안컵: 2008
7.3. 서훈
- 대영제국 훈장 5등급 (MBE): 1998
8. 여담
- 잠깐 래퍼로 활동 한 적도 있다. 1988년에는 당시 리버풀 팀메이트들과 함께 'Anfield Rap (Red Machine in Full Effect)'이라는 음반을 내어 무려 UK 싱글 차트 3위까지 올랐으며, 이듬해 영국의 록 밴드 New Order의 'World In Motion'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 FIFA 20에 신규 아이콘으로 추가되었다.
- 클롭의 고별 파티에서 래핑을 선보이고 클롭이 거기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9.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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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1888~1897) | 초대 말리 (1897~1940) ★★★★★★★★★★★★★★★★ ★★★★★★★★★★★★★★ | 2대 맥스테이 (1940~1945) | 3대 맥그로리 (1945~1965) ★ ★★ ★★ | 4대 스타인 (1965~1978) ★★★★★★★★★★ ★★★★★★★★ ★★★★★★ ★ | |
대행 팔론 (1975) | 5대 맥닐 (1978~1983) ★★★ ★ ★ | 6대 헤이 (1983~1987) ★ ★ | 7대 맥닐 (1987~1991) ★ ★★ | 8대 브래디 (1991~1993) | |
대행 코너 (1993) | 9대 마카리 (1993~1994) | 10대 번스 (1994~1997) ★ | 대행 스타크 (1997) | 11대 얀선 (1997~1998) ★ ★ | |
12대 벵글로시 (1998~1999) | 13대 반스 (1999~2000) | 대행 달글리시 (2000) ★ | 14대 오닐 (2000~2005) ★★★ ★★★ ★ | 15대 스트라칸 (2005~2009) ★★★ ★ ★★ | |
16대 모브레이 (2009~2010) | 17대 레넌 (2010~2014) ★★★ ★★ | 18대 다일라 (2014~2016) ★★ ★ | 19대 로저스 (2016~2019) ★★ ★★ ★★★ | 20대 레넌 (2019~2021) ★★ ★★ ★ | |
대행 케네디 (2021) | 21대 포스테코글루 (2021~2023) ★★ ★ ★★ | 22대 로저스 (2023~ ) ★ ★ | |||
★: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 ★: 스코티시컵 ★: 스코티시 리그컵 / ★: 유러피언컵 |
[1] 맨 오른쪽 인물[2] 왼쪽 세 번째 인물[3] 그분은 자메이카 수영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나중에 자메이카 최초의 봅슬레이 팀도 만들어낸다.[4] 당시 2부 리그 우승팀은 라이벌인 루튼 타운이었다.
]
분류
- 1963년 출생
- 영국으로 귀화한 인물
- 자메이카계 잉글랜드인
-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 잉글랜드의 축구감독
- 리버풀 엠버서더
- 왓포드 FC/은퇴, 이적
- 리버풀 FC/은퇴, 이적
-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
- 찰턴 애슬레틱 FC/은퇴, 이적
- 셀틱 FC/역대 감독
- 자메이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트란메어 로버스 FC/역대 감독
- 잉글랜드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참가 선수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참가 선수
- 잉글랜드의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참가 선수
- UEFA 유로 1988 참가 선수
- PFA 올해의 선수 수상자
- FWA 올해의 선수 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