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1 11:43:56

고든 호지슨

고든 호지슨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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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항
* 각 년대별로 2명을 헌액한다.
출처: 리버풀 FC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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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잉글랜드의 前 축구인
파일:Gordon Hodgson.jpg
고든 호지슨
Gordon Hodgson
출생 1904년 4월 16일
트란스발 식민지 베노니
사망 1951년 6월 14일 (향년 47세)
잉글랜드 웨스트 미들랜즈주 스토크온트렌트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
[[남아프리카 공화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7cm / 체중 88kg
직업 축구선수 (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유스 베노니 (1919~1921)
루스텐버그 (1921~1922)
프리토리아 (1922~1924)
트란스발 (1924~1925)
프로 리버풀 FC (1925~1936)
아스톤 빌라 FC (1936~1937)
리즈 유나이티드 FC (1937~1939)
감독 포트 베일 FC (1946~1951)
국가대표 2경기 (남아프리카 공화국 / 1924)
3경기 1골 (잉글랜드 / 1930~1931)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감독 경력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기록
6. 여담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 국적의 축구인. 리버풀 FC에서 377경기 241득점을 기록하여 통산 득점 3위에 랭크되어 있다.

2. 클럽 경력

남아프리카 공화국 태생의 호지슨은 트란스발 공화국의 베노니에서 아마추어로 축구를 시작해 보일러 제조업 일을 병행하면서 여러 팀을 거치며 실력을 키웠다. 그러던 1924년 10일 1일, 리버풀 FC가 남아공 대표팀을 안필드로 초청한 친선경기를 위하여 남아공 아마추어 국가대표팀에 최연소의 나이로 소집되었고, 해당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작렬하는 맹활약을 펼치게 되었다. 호지슨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은 리버풀은 1925년 11월 17일, 정식 프로 계약을 제안했고 호지슨은 안필드에 본격적으로 입성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호지슨은 리버풀에 입단한 이후 해리 체임버스와 딕 퍼쇼를 대체하기 시작하며 리버풀 공격진의 에이스로 단숨에 거듭났다. 그는 187cm의 우월한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날렵한 몸동작을 보여줄 수 있었고, 양발에서 나오는 강력한 슈팅과 헤딩 능력, 컨트롤과 속력은 그의 다재다능함을 빛냈다. 호지슨은 1926년 2월 27일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데뷔했고, 11일 뒤인 3월 10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득점포를 가동했다. 이후 풋볼 리그에서 호지슨은 가공할만한 득점 행진을 펼치며 377경기에 나서 241골을 득점했는데, 이는 로저 헌트 이전까지 리버풀의 통산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있었으며, 현재까지도 역대 리버풀 선수들 가운데 경기장 득점 비율로는 최고 수치를 자랑한다. 또한 호지슨이 1930-31 시즌에 기록한 리그 36득점은 1902-03 시즌 샘 레이볼드가 기록한 31득점을 초월하며 오래 회자되었고, 로저 헌트에 의해 경신되기 이전까지 리버풀 역대 단일 시즌 리그 최다 득점 기록이었다. 호지슨은 리버풀에서 뛰었던 9번의 풀 시즌 중 7차례 구단 최다 득점을 올렸으며, 안필드 커리어 동안 총 17회의 해트트릭을 올려 구단 최다 해트트릭 기록을 세웠다.

호지슨은 이러한 압도적인 득점 행진과 날카로운 공격력에 의해 당시 리버풀이 우승과 먼 위치에서 침체기를 보내고 있었음에도 머지사이드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스타 플레이어로 거듭났으며, 1935-36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나는 시점에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받게 되었다. 호지슨은 약 10년간의 리버풀 커리어를 마치고 1936년 1월 8일, 4,000 파운드의 이적료로 아스톤 빌라로 이적하며 구단과 작별하게 되었다.

아스톤 빌라로 이적한 이후 호지슨은 첫 시즌에 15경기에 출전, 4골을 득점했지만 빌라는 강등을 피하지 못했고, 호지슨은 2부 리그에서 뛰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1937년 3월 2일, 리즈 유나이티드가 호지슨에게 오퍼를 넣었고, 1,500 파운드의 이적료로 곧바로 퍼스트 디비전으로 복귀한 그는, 리즈에서 이름값에 걸맞는 플레이를 펼치며 다시금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1946-47 시즌 후반기에 즉각적인 활약을 선보이며 리즈의 강등을 막았고, 그 다음 시즌인 1937-38 시즌엔 38경기에서 26골을 넣으며 풋볼 리그 스타 플레이어의 위용을 보였다. 그는 리즈에서 뛰는 두 차례의 풀시즌 동안 구단 최다 득점자로 활약했으며, 총 85경기에 출전에 53골을 넣었다. 그러나 1939-40 시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호지슨은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없었고, 전쟁 기간 중 군수품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1941년까지 리즈 소속으로 뛰었다. 전쟁 기간 중의 전시 경기에 출전하며 커리어를 이어가던 그는, 1942년부터는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리즈에서 유소년 지도자 역할을 맡아 1946년 10월까지 어린 선수들을 육성하기도 했다.

호지슨은 풋볼 리그 통산 총 467경기에서 295골을 넣었고, 지미 그리브스, 스티브 블루머, 딕시 딘에 이어 잉글랜드 풋볼 리그 통산 최다 득점 4위의 고지에서 전설적인 커리어를 마쳤다.

3. 국가대표 경력

남아프리카 공화국잉글랜드 대표팀에서 모두 활약한 특이 이력을 가지고 있다. 호지슨은 1924년 9월 24일, 벨파스트에서 열린 아일랜드와의 친선경기에서 첫 남아공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1924년 11월 2일,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두 번째 남아공 대표팀 경기를 뛰었고, 수 많은 비공식 국제 경기에 출전하며 득점을 올렸다.[1]

그러나 리버풀에서 뛰며 풋볼 리그로 입성한 이후에는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호지슨은 1930년 10월 20일, 아일랜드와의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1930년 11월 22일, 웨일스와의 해당 대회 2차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했다. 1931년 3월 28일에는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출전했다. 이후 잉글랜드 대표팀의 시범 경기와 풋볼 리그 대표팀 경기에서 몇 차례 줄전했고, 다수의 비공식 국제 경기를 뛰었다.

4. 감독 경력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호지슨은 지도자 생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1946년 10월, 3부 리그 포트 베일 FC의 지휘봉을 잡았다. 호지슨이 부임했을 당시 포트 베일은 새로운 구장을 신축하였고, 구단의 모든 재정이 신구장에 투입되어 이적 시장에서 어떤 선수도 사오지 못하는 악조건을 맞이했다. 그러나 호지슨은 이전의 커리어 덕분에 선수들에게 상당히 명망이 높은 인물이었고, 당시 팀의 젊은 선수들을 격려하고 결집시켜 나름의 호성적을 이끌어 냈다. 그는 재능있는 선수들을 발굴해 팀을 리빌딩했고, 리그에서 용맹한 플레이 스타일을 정착시킨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호지슨은 포트 베일에서 총 222경기에 나서 84승 54무 84패를 기록했다.

그는 1948년 에버튼 FC의 감독직에 지원하기도 했고, 1951년 1월, 건강상의 이유로 감독직을 사임한 조지 케이 감독의 대체자를 찾던 리버풀 FC에 지원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리버풀은 돈 웰시 감독을 선임했고, 레전드의 귀환은 이뤄지지 못했다. 호지슨은 몇 달 후 암에 걸려 투병 생활을 시작하게 되어 더 이상 감독 경력을 이어가지 못했고, 결국 1951년 6월 14일 겨우 47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포트 베일은 호지슨을 최초의 보스로 평가하며 그를 애도했고,그를 위한 자선 경기를 펼쳐 모금된 금액을 그의 가족들에게 건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기록

6. 여담

  • 당시 트란스발 공화국의 베노니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영국 혈통이었다.
  • 1928년 지금의 멜우드 훈련장이 있는 리버풀 웨스트 더비에서 도리스 허켈과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다. 그러나 도리스 허켈은 1938년 3월 8일, 리즈의 지역 축제에서 27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호지슨은 아내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쳐 대단한 프로 정신으로 당대 대중들의 극찬을 받았다.
  • 남아공에서 아마추어 생활을 할 때는 보일러 제조업자로 일했고, 제2차 세계대전 도중에는 군수품 공장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 뛰어난 축구선수였을 뿐 아니라 크리켓에도 재능이 있어 선수로 활약했다. 호지슨은 리버풀 경찰팀과의 아마추어 경기에서 상당한 활약을 펼쳤고, 지역 랭커셔 팀이 그를 선수로 영입하여 축구와 겸하여 선수 생활을 했다. 호지슨은 지역 대회와 국제 대회까지 나설 정도의 실력자였으나 축구 커리어를 우선시 했기 때문에 1928년과 1930년 지역 대회 이후 크리켓 경기는 뛰지 않았다고 한다.
  • 남아공 대표팀 소속으로 치른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맹렬한 활약을 펼쳐 5-2 승리를 견인해 당대 머지사이드 축구계에 엄청난 충격을 줬던 장본인이다. 리버풀 지역지는 "첫 순간부터 눈을 사로잡은 우측 공격수는 겨우 열아홉 살이지만 노련한 프로처럼 경기한다."라는 평을 남겼다.
  • 남아공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감명을 받은 리버풀 이사회는 호지슨과 함께 남아공 대표팀에 소속되어있던 아서 릴리를 함께 팀에 데려왔다. 아서 릴리가 먼저 계약하여 팀에 데뷔했고, 호지슨이 이를 뒤따랐다. 몇년 뒤에는 남아공 출신의 베리 니우엔후이스가 합류해 남아공 트리오로 이름을 날렸다. 이들은 리버풀 최초의 아프리칸으로 이름을 알렸다.
  • 호지슨은 활약 당시 리버풀에서 대단한 인기를 구가했고, 리버풀의 비스킷 제조업자가 호지슨의 이름을 팔아 그의 비스킷을 홍보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그는 안필드 홈경기가 오면 경기장 근처에서 '호지슨의 선택!'이라는 문구로 홍보를 했다고 한다.[2]


[1] 이 비공식 국제 경기 중 리버풀과의 경기가 있었다.[2] 하지만 해당 비스킷 제조업자는 에버튼 구디슨 파크의 홈경기에선 '딕시 딘의 선택!'이라는 문구를 내세웠다고 한다. 당시 머지사이드 더비 최고 스타 공격수이던 호지슨과 딘의 인기를 알 수 있는 대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