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97년 7월 20일 아카이브인기가요 BEST 50은 "결정! 최고 인기가요"의 후신 프로그램이자 생방송 음악캠프의 전신 프로그램이며 문화방송에서 1995년 4월 21일부터 1998년 1월 17일까지 전 124회까지 방송되었다. 초기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5분에 방송했다가 1996년 3월 9일 방송분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5시로 바꿨다. 생방송 녹화는 여의도 MBC사옥 공개홀에서 했다.[1]
1995년 6월 30일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특보로 인하여 긴급 취소되기도 했고, 1996년 들어선 방송일 연기 횟수가 가장 많아 총 7번이나 방송을 연기했으며 1997년에는 방송일 연기가 2번밖에 없었다.
KBS가 방영했던 가요톱텐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일찍 종영된 프로그램이다. 당장 MBC에서 방영한 가요 프로그램이 1990년대에만 해도 8개[2]가 넘어간다. 게다가 순위 제도마저 가족캠프로 넘어가면서 사라졌다가 2000년 5월 20일 음악캠프 방송분에 들어서야 부활했다.
1998년 1월 17일을 끝으로 베스트 50이 종영되었는데 이유로는 외환위기로 인한 제작 여건의 악화와 10대 위주의 가요문화를 다변화하기 위해 종영했다는 의도였으나 그 후 H.O.T.와 젝스키스의 인기가 초절정에 치달았다.
종영 후에는 최지우가 진행하는[3] '젊은 그대'라는 가요 프로그램이 신설 방영되었으나 얼마 못 가 종영되었고 그 뒤 생방송 음악캠프가 탄생했으며 과거엔 '콘팅'이라는 지상파 프로그램 다시보기/다운로드 사이트에서 이용권을 구입하면 1회부터 모든 회를 골라서 다시보고 다운로드 할 수 있었으나, 2017년 6월 30일 서비스가 종료되어 현재는 유튜브 MBCKpop에서 컷된 영상을 보거나, 혹은 풀버전을 보려면 MBC C&I에서 구입해서 시청해야 한다.
2020년 9월 현재는 옛송TV 유튜브를 통한 스트리밍, MBC ON, 그리고 MBC 홈페이지를 통해서 시청할 수 있다.
2. 순위 선정 방법
베스트 50은 1995년 10월 27일부터 3주 연속 1위를 하면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BEST)상패를 주고 이 순위제에서 명예졸업하는 제도가 도입되었으며, 이전에는 한 곡이 무제한으로 1위를 할 수 있었다. 여기서의 최장 기간 수상곡은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7주 연속)[4]이 제도 도입으로 인해 피를 본 팀이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인데, 하필이면 10월 초에 발표된 Come Back Home이 롱런 기미를 보이자마자 들어온 제도라서...
베스트 50의 투표 방식은 ARS 집계와 천리안(매직콜)[5] 집계, 그리고 전국투표인단을 통해 1위를 선정했다.
3. 역대 MC
<rowcolor=#f5fffa> 대수 | MC | 기간 | 비고 | |||||
1 | 신은경 | 김지수 | 1995년 4월 21일 ~ 10월 20일 | [6][7] | ||||
2 | 이본 | 정찬 | 1995년 10월 27일 ~ 1996년 3월 1일 | |||||
3 | 김용만 | 김지수 | 1996년 3월 9일 ~ 1996년 5월 18일 | |||||
4 | 김남주 | 1996년 5월 25일 ~ 1997년 3월 1일 | ||||||
5 | 이윤석 | 김소연 | 김진수 | 1997년 3월 8일 ~ 10월 18일 | [8] | |||
6 | 홍경인 | 우희진 | 1997년 11월 1일 ~ 1998년 1월 17일 | [9] |
4. 기타
- 방송 첫 회에는 당시 3집 활동을 끝내고 미국에서 4집 작업 중이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1995년 1월 공연실황(널 지우려 해)을 독점 영상으로 내보냈다.[10] 또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마지막 정규활동이던 1995년 하반기, 4집 컴백쇼를 위한 티저 영상이 방영되는 등 서태지와 아이들과의 사이는 타 방송에 비해 각별한 편이었다. 참고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마지막 정규방송 무대인 뚝섬 특설무대 공연도 이 프로그램의 기획이었다.
- 대구 도시철도 1호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가 일어났을 당시 이 프로그램을 정상적으로 생방송했다. 다만 이 프로그램의 당시 MC였던 신은경-김지수가 오프닝에 이번 참사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는 멘트를 날리긴 했지만... 방송 성격이 성격이다 보니..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에는 당시 지역민방 개국의 영향으로 지방순회 공연을 했는데 그 시작으로 대구를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뉴스특보 방송으로 긴급 취소되어서 다음 주에 정상방송했으며 녹화방송으로 진행되었다.
- 당시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1990년대 비디오형 아이돌 가수가 무더기로 쏟아져나와 너도 나도 립싱크로 무마했던 터라 이 시대에는 1~2곡 정도 히트치고 사라져버리는 이른바 '반짝가수'들이 많았는데 1997년 2월 15일 방송부터 '우리는 지금 라이브 중입니다!'라는 부제를 달고 얄짤 없이 모든 가수들이 ALL 라이브를 시전해야 했기에[11] 이로 인해 득을 본 실력파들도 있는가 하면 처참한 노래 실력을 가진 가수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가버리는 효과를 봤다. 그리고 가수들의 컴백 무대가 SBS TV가요 20과 KBS 가요톱10에서 먼저 치러지고 나중에서야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라이브 무대에 대한 부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세로 1997년 2월부터 종영 때까지 이 방송에서는 립싱크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때에 따라 부분 립싱크는 존재했지만.[12] 사실, 립싱크를 하는 가수들이 사라진 원인은 그 유명한 걸프렌드 대리 녹음 사건 때문이다.
- 유튜브 MBC Kpop 채널에서 인기가요 베스트 50 전편을 각 노래마다 따로 따로 나누어 모두 올려놓았다. 90년대 녹화본이 현 시대까지 고화질로 보존된 걸 보면 신기한 따름이지만 몇 편은 화질 상태가 맛이 갔고 어느 날짜에 방영된 편은 아예 사라졌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MBC C&I 판매처에도 그 날짜 녹화본은 없다. 그리고 2014년 12월을 기점으로 모두 국내 IP는 못 보게 막아놓았다. 그리고 2015년 가을을 기점으로 MBC의 파일럿 프로그램 어게인이 방영되자 유튜브에는 약 10편정도 되는 영상을 차단 해제해 주었으며 2017년에는 다시 모든 영상의 차단이 풀어졌다.
- KBS, SBS와는 달리 방송 무대 조성 방식에 매주 갖가지 색다른 컨셉을 넣어왔는데, 이는 1996년 후반부터 무대 컨셉을 시청자들에게 공모전 방식으로 매주 문의를 받아서 다른 음악방송과는 달리 무대에 공을 쓴 흔적이 많이 보인다. 여기서 채택된 사람에게는 전화기, 홈 비디오 카메라 등의 선물이 주어졌다.
- 1997년 여름에는 100회 특집으로 무려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에서 초대형 공개방송을 했다. 100회 특집에는 역대 MC들이 총출동했으며, 타 방송사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 MC들도[13] 직접 축하 메세지를 보내는 등 훈훈한 분위기도 있었으며, 당시 가요프로그램으로는 이례적으로 1, 2부로 나뉘어 편성이 되는 등 매우 성대하게 치러졌다.
- 당시 가사 자막 표출이 영 좋지 못했다.(그것도 매우) 현재 방송 3사 음악 프로그램 좌측 하단에 보이는 그 가사 자막 시스템을 말하는 건데, 맞춤법이라든지, 타이밍이라든지, 가사 순서라든지, 모든 게 엉망이었다. 이 당시는 아날로그 화질에다가 가격 때문에 큰 인치의 TV를 사는 것이 흔치 못했으므로, 모든 자막이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다. 이것은 그때 당시 모든 방송이 그러했다. 문제는 이 자막크기가 자막사고를 더 부각시켰다. 이 자막제공은 1997년 1월 25일 방영분[14]부터 모든 곡에 자막을 제공했는데(소수 제외), 예를 들자면, 펑자가 써지지 않고 평자가 써져 평크락,[15] 평평 운다,[16] 평크[17]등 시스템 상의 한계도 보이고, 부르지도 않은 가사가 툭 튀어나오기도 하고, 1997년 8월 16일 H.O.T.의 행복 방송 시에는 자막이 모두 한 박자씩 밀려 도중에 자막을 없애버렸다.[18]
- 1997년에 솔로로 데뷔한 가수 황선영이 동년 8월 2일자 이 프로그램 102회에서 오감도를 부른 장면으로 2015년 경부터 당시 메이플스토리 커뮤니티였던 인소야닷컴에서 가상 인터뷰 글을 많이 만들었는데, 사이트가 사라졌다. 그 후 루리웹의 한 피규어 동호인이 특정 피규어 회사(알터)를 논평하는 가상 인터뷰 장면을 만들었는데, 당시 인소야에서 만들었던 황선영 가상 인터뷰 글과 비슷한 방식이다.
- 후에 2015년 9월 24일 MBC는 추석특집으로 '어게인 인기가요 BEST 50 95~96'을 방영했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방송된 '인기가요 BEST 50'을 재현한 프로그램으로, 당시 이본이 MC를 맡았던 적이 있다. 출연자는 영턱스클럽, DJ DOC, 임창정, 클론, R.ef, 영턱스 클럽, 김정민, 김원준, 박미경, 육각수, 주주클럽 등이 참가했다. 특히 이 프로는 육각수 멤버 도민호가 생애 마지막으로 출연했는데, 위암 투병으로 30kg이나 빠져 수척해진 모습에도 불구하고 조성환과 잠깐이나마 재결합해 무대에서 투혼을 다했다.
- 1995년 5월 26일에 방송된 제6회 방송분에서 신은경이 진행하는 내내 가방을 매고 있어서 시청자들의 의혹이 증폭되었다. 영상 이날 방송에서 신은경이 캠코더를 들고 대기실과 부조정실 내부를 촬영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이를 봤을 때 가방에 비상시를 대비해 비디오 테이프와 배터리, 충전기가 들어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캠코더가 동축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점으로 봐 무선 중계기도 들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했으나, 동축선이 가방안으로 이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신빙성이 낮다.
또한, 몇몇 시청자들은 신은경이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나서 급히 MBC 공개홀로 간 탓에 가방을 내려놓지 못 하고 생방송을 진행한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하지만, 이 주장도 생방송을 수 시간 앞두고 리허설을 해야 한 점과 광고 시간에 가방을 내려놓고 나올 수 있었던 점을 들어 신빙성이 낮다고 봐야 한다. 다만, 캠코더 촬영을 위해 전술한대로 비디오 테이프, 배터리, 충전기 등을 가방에 담아서 휴대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방에 태그가 달려 있었던 점을 봤을 때 신은경이 제3자의 협찬을 받았음을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착용하고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이보다 더 놀라운 점은 귀걸이를 짝짝이로 착용하고 나왔다는 점인데, 한 쪽에는 고리를, 다른 한 쪽에는 십자가 모양을 착용했다. - 인기가요 베스트 50의 1위 팡파레는 MBC 자료실에 남아있어서 2023년 현재에도 MBC 프로그램의 효과음으로 쓰이고 있는데 GOT7 영재의 친한친구에서 효과음으로 쓰이고 있다.
5. 방송사고
- 1995년 11월 3일 카메오로 당시 MC였던 이본, 정찬이 나와 함께 편승엽의 '찬찬찬' 을 불렀는데 정찬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했고 이본은 나나나나나로 불러서 오히려 안 나오느니만 못하는 사태가 되었다.영상보기 (1:45 쯤부터) 또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앵콜 무대 도중 음악이 빨라지는 일이 있었다. # (0:11 쯤부터)
- 1996년 11월 2일 터보의 'Love is...' 라이브 공연 중 김종국의 마이크 상태가 영 좋지 못했다. 완전한 음소거는 아니었으나 김종국의 모기 창법과 거의 들리지도 않는 모기 음량이 합쳐지니 더욱 처참했다. 이에 김정남이 팬들과 다 같이 부르자고 마이크를 넘겼지만 이마저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 1996년 12월 28일 H.O.T.의 '캔디'가 1위를 차지하고 앙코르 공연을 시작할 때 1위 자막이 이문세의 '조조할인'으로 잘못 나가는 사고가 일어났다.
- 1997년 2월 15일 올라이브 첫 생방송 때 방송사고가 많았는데, 삐삐롱스타킹의 '바보 버스' 공연 초반 보컬(고구마(본명 권병준))[19]이 카메라에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었고, 기타리스트(박현준)가 카메라를 향해 침을 뱉는 만행으로 인해 이 날 생방송은 한바탕 초토화되었고 이들은 지상파 3사로부터 1년간 출연정지 처분을 받았다.[20] 또한 졸지에 피해자가 된 인기가요 베스트 50 측에서도 이후 방송에서 시청자들에 대한 사과도 내보냈고, 삐삐롱스타킹은 다다음 날(1997년 2월 17일) MBC에 찾아가 사과했다.[21] 그리고 주영훈의 젊은 날의 초상 다음 김용만과 김남주가 진행 멘트를 해야 했는데 큐사인이 늦어서 약 십수초 동안 정적이 흘렀다. 김용만은 급하게 발 밑에 대본을 놓은 다음 급하게 멘트를 쳤고 다음 장면은 김성림의 순위 소개였는데 김남주가 지니의 바른생활이라고 방송사고를 냈다. 설상가상으로 화면이 넘어가질 않아 김남주가 김용만의 어깨를 치며 어쩔줄 몰라 하는 모습이 방송되었고 그 다음 지니의 바른 생활도 초반에 음향 사고를 냈다. 그야말로 이 날 방송은 최악의 방송이었다.
- 1997년 5월 10일 젝스키스의 '연정' 공연 초반에 강성훈의 음성이 나오지 않는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음향 상태도 굉장히 나빴다고 한다.
- 1997년 8월 9일 쿨의 '해변의 여인' 공연 초반에 이재훈의 음성이 몇 초 간 나오지 않는 일이 발생했으나 이재훈은 유리와 마이크를 바꾸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노래를 하면서 이 상황을 정리했다.
- 1997년 12월 13일 김경호의 '금지된 사랑' 공연 초반에 가사 중 '젖어버리잖아'가 있는데 '젓어버리잖아'로 자막을 써버렸다. 그리고 이건 시작에 불과했는데, 다음 가사인 '슬퍼마'가 나와야 하지만 밴드 멤버들이 사인이 맞지 않아 바로 '내 사랑에'가 나오는 싸비 부분으로 연주가 건너뛰어버렸고, 이 때문에 김경호가 당황한 나머지 밴드가 있는 뒤를 돌아보며 그대로 공연이 중단되기 1초 전이 되어버렸다. 다행히 김경호의 빠른 판단으로 다시 노래를 불러 중단까지는 막았다. 이후 자신을 당시 코러스라고 밝힌 인물의 유튜브 댓글에 따르면, 방송국에서 곡 시간을 줄여달라고 하여 멤버들끼리 잘 줄이고 리허설도 잘 끝냈지만 녹화때 사인이 맞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공연 끝나고 드러머가 실수했다고 자책하며 울었다고 한다.[22] 당시 영상
- 1998년 1월 3일 젝스키스의 '기사도' 공연 초반에 강성훈의 마이크 음성이 나오지 않는 사고가 발생했다. 초반에 당황을 해서 무대 밖으로 나가려 하자, 스태프가 무대로 와서 마이크를 바꿔 주었다. 참고로 바로 일주일이 지난 10일날 또 다른 '기사도' 공연시에 매우 화끈한 도발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노래 초반에서 은지원이 즉흥 랩으로 ah yeah, listen to my word, the f○○kin' d○○k is in your p○○sy 라고 당당하게 말했으나 아무런 저지도, 경고도 없었다는 것. 당시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많았던 건지, 알고도 입닫은 것인지 그것도 미스테리라고 한다.
[1] MBC의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들이 여의도 사옥에서 32년간 제작됐으며 창사 53주년을 맞아 2014년에 마포구 상암동으로 사옥을 이전했다. 현재는 MBC가 떠난 자리에 브라이튼 여의도가 들어섰다.[2] 쇼 네트워크-여러분의 인기가요-결정! 최고 인기가요-인기가요 베스트 50-생방송 젊은 그대-음악캠프(1기)-가족캠프-음악캠프(2기)[3] 남자 MC는 한주마다 1명씩 돌아가면서 출연했다.[4] SBS의 TV가요 20도 처음에는 무제한 1위 수상제도로 갔다가 1995년 후반부부터 5주 수상제도를 도입했다. 여기서의 최장 1위 기록은 김원준의 '너 없는 동안'과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다.(6주)[5] 1997년에 나우누리로 변경되었다.[6] 마지막 방송 때 이들은 자신의 본업인 연기에 더 집중하겠다고 말했다.[7] 제8회 방송분은 신은경이 광고에 출연하러 프랑스를 방문한 관계로 강호동이 대신 진행했다.[8] 그 중 김소연은 이듬해 12월부터 2000년 4월 중순까지 SBS 인기가요를 진행했다.[9] 1997년 10월 25일에는 이제니가 같이 진행을 했다.[10]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위상을 짐작해볼 수 있는 부분으로, 프로그램 첫 회 스팟광고에 독점영상 공개를 매우 강조하며 홍보했다. 침고로 1회를 MBC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 공연 부분은 통편집되어 있다.[11] 게다가 가요톱텐도 이 추세를 따라 라이브 무대가 많아졌으며 립싱크 무대는 립싱크 표시를 해서 립싱크 무대를 한 가수들도 한번씩 라이브를 하는 효과를 보여줬다. 물론 여기는 자율적으로 진행돼서 끝까지 립싱크 무대로 하는 가수는 있었지만.[12] 피처링을 하는 랩가수들은 립싱크로 하는 경우가 있었으며, 대표적인 예가 랩 피처링이 있는 비비 <하늘땅 별땅>과 김애리 <Bad Boy> 같은 경우가 있다.[13] KBS 가요톱텐의 손범수, SBS TV가요 20의 류시원, 김희선.[14] 사실 예전부터 가요 프로그램에서는 아주 가끔씩 가사 제공을 해주었으나 이는 불규칙했고 소수에 불과했다.[15] 삐삐롱스타킹의 바보버스, 1997년 1월 11일 당시 그룹 소개 자막 중[16] 젝스키스의 연정, 1997년 5월 10일 가사 자막 중[17] 황선영의 오감도, 1997년 8월 2일 102회 가수 소개 자막 중[18] 그래도 지상파 3사 가운데선 가장 먼저 노래 가사 자막을 도입한 프로그램이며 가요톱텐과 SBS TV가요 20은 1998년 초부터 노래가사 자막을 도입했다. 다만 전부가 아닌 1절 가사만 제공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가요톱텐의 경우 신인가수와 오랜만에 컴백하는 가수들의 무대에 한하여 자막을 삽입했고, 모든 무대에 자막을 넣기 시작한 것은 뮤직뱅크때부터 였다.[19] 참고로 결성 초기(삐삐밴드 시절)의 보컬은 여성인 이윤정이였으며 그냥 펑크밴드였을 뿐 이런 컨셉도 아니었다. 후에 이윤정이 개인 사정으로 팀에서 탈퇴하고 고구마가 들어오면서 흑역사를 하나 창조했다.[20] 특히 MBC 관계자가 빡칠 만한 상황이었는데 MBC는 청취율이 높던 MBC FM(현 MBC FM4U) 11시 타임대의 '김현철의 밤의 디스크쇼'에서 무려 5일 연속으로 바보버스를 틀어주는 등 상당히 강력히 푸시해주고 있던 때였는데 정작 당사자들이 이런 거한 사고를 쳤던 것이다.[21] 삐삐롱스타킹은 이 일로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게 되면서 해체되었으며, 달파란(강기영)은 솔로로 전향했고 이 때부터 영화 OST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고구마와 박현준은 이후 신윤철과 원더버드를 결성하여 지상파에서 다시 잘 활동했다.[22] 실제로 드러머가 밴드 연주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드러머가 실수해버리면 다른 악기도 같이 따라가야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