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노부나리의 수상 이력 | |||||||||||||||||||||||||||||||||||||||||||||||||||||||||||||||||||||||||||||||||||||||||||||||||||||||||||||||||||||||||||||||||||||||||||||||||||||||||||||||||||||||||||||||||||||||||||||||||||||||||||||||||||||||||||||||||||||||||||||||||||||||||||||||||||||||||||||||||||||||||||||||||||||||||||||||||||||||||||||||||||||||||||||||||||||||||||||||||||||||||||||||||||||||||||||||||||||||||||||||||||||||||||||||||||||||||||||||||||||||||||||||||||||||||||||||||||||||||||||||||||||||||||||||||||||||||||||||||||||||||||||||||||||||||||||||||||||||||||||||||||||||||||||||||||||||||||||||||||||||||||||||||||||||||||||||||||||||||||||||||||||||||||||||||||||||||||||||||||||||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 |
이름 | 오다 노부나리([ruby(織田, ruby=おだ)] [ruby(信成, ruby=のぶなり)], Nobunari Oda)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출생 | 1987년 3월 25일 ([age(1987-03-25)]세) |
오사카부 타카츠키시 | |
학력 | 간사대학부속중학교 간사이대학부속고등학교 간사이대학 문학부 |
종목 | 피겨 스케이팅 |
신체 | 164cm |
링크 |
1. 개요2. 선수 경력
2.1. 2002-03 시즌2.2. 2003-04 시즌2.3. 2004-05 시즌2.4. 2005-06 시즌2.5. 2006-07 시즌2.6. 2007-08 시즌2.7. 2008-09 시즌2.8. 2009-10 시즌2.9. 2010-11 시즌2.10. 2011-12 시즌2.11. 2012-13 시즌2.12. 2013-14 시즌2.13. 2017-18 시즌2.14. 2018-19 시즌2.15. 2022-23 시즌2.16. 2023-24 시즌2.17. 2024-25 시즌
3. 평가4. ISU 공인 최고점수5. 커리어6. 기타[clearfix]
1. 개요
일본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다.2. 선수 경력
2.1. 2002-03 시즌
2002 JGP 슬로바키아에서 은메달을 따며 주니어 그랑프리 데뷔를 했다. 2002 JGP 이탈리아에서는 7위를 했다. 2002 전일본 주니어선수권에서 동메달, 2002 전일본선수권에서는 6위를 기록했다.2.2. 2003-04 시즌
2003 JGP 슬로바키아 은메달, 2003 JGP 일본에서 동메달을 따며 파이널에 진출했다. 2003-04 JGP 파이널에서는 8위를 기록했다. 2003 전일본 주니어선수권에서 은메달, 2003 전일본선수권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2004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는 11위를 기록했다.2.3. 2004-05 시즌
슈퍼 마리오 시리즈의 음악을 사용한2004 JGP 미국에서 4위, 2004 JGP 우크라이나에서 동메달을 땄다. 2004 전일본 주니어선수권에서 우승하고, 2004 전일본선수권에서는 동메달을 따며 첫 내셔널 포디움에 들었다. 2005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했다.
2.4. 2005-06 시즌
2005 NHK 트로피 | 2005 전일본선수권 |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2005 전일본선수권에 출전해야 했다. 당시 일본 남자 싱글 올림픽 출전권이 1장 뿐이어서 무조건 우승을 해야 출전이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경기를 끝냈을 때는 오다의 점수가 가장 높아 우승자로 발표되었고 시상식까지 마쳤다. 그런데 시상식 직후 오다가 프리에서 자약룰을 어기고 같은 점프를 3번을 뛰었는데도 세 번째 점프가 무효 처리되지 않은 것이 발견되었다. 이에 따라 점수를 정정한 결과 순위가 뒤바뀌어 다카하시 다이스케가 1위, 오다가 2위가 되었다. 결국 2005 전일본선수권 우승과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출전권은 다카하시에게 돌아갔고 오다에게는 2006 세계선수권 출전권만이 주어졌다.
2006 사대륙선수권 |
2.5. 2006-07 시즌
2006 스케이트 아메리카 | 2006 NHK 트로피 |
2006-07 그랑프리 파이널 | 2006 전일본선수권 |
2.6. 2007-08 시즌
2007년 7월 26일 음주운전 단속에 걸렸다. 당시 적발한 경관 이름이 아케치였다는 유머가 떠돌았으나 전적으로 헛소문으로 밝혀졌다.[2]2007년 8월 2일, 일본 빙상연맹은 10월까지 오다를 국제대회, 국내대회, 아이스 쇼에 출전을 금지시켰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2007 스케이트 캐나다와 2007 트로피 에릭 봉파르를 기권했다. 또한 징계가 끝난 이후 오다가 2007 전일본선수권에 출전해 2008 세계선수권 출전권을 따내는 대신, 사회봉사 명령을 내렸다. 오다는 연맹에서 내린 징계를 받아들였고 10만 엔(한화 약 113만원)의 벌금을 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시즌을 스킵하였다.
2.7. 2008-09 시즌
네벨혼 트로피와 카를 샤퍼 메모리얼에서 우승하며 복귀하였다.2008 NHK 트로피 | 2009 월드 팀 트로피 |
2.8. 2009-10 시즌
2009 트로피 에릭 봉파르 | 2009-10 그랑프리 파이널 |
2009 전일본선수권 |
아까운 실패를 만회할 좋은 기회가 2010 세계선수권이였지만 올림픽의 실수로 인해 멘탈이 무너져 버렸는지 쇼트에서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2.9. 2010-11 시즌
2010 스케이트 캐나다 | 2010 스케이트 아메리카 |
2010-11 그랑프리 파이널 | 2010 전일본선수권 |
2.10. 2011-12 시즌
2011 컵 오브 차이나 |
2.11. 2012-13 시즌
네벨혼 트로피에서 우승하며 시즌을 시작했다.2012 스케이트 캐나다 |
2.12. 2013-14 시즌
전 시즌처럼 네벨혼 트로피에서 우승하며 시즌을 시작했다.2013 스케이트 캐나다 | 2013 NHK 트로피 | 2013-14 그랑프리 파이널 |
2.13. 2017-18 시즌
은퇴 선수 자격으로 재팬 오픈에 출전해 개인 4위, 팀 2위를 기록했다.2.14. 2018-19 시즌
은퇴 선수 자격으로 재팬 오픈에 출전해 개인 2위, 팀 1위를 기록했다.2.15. 2022-23 시즌
2022년 11월 1일, 개인 유튜브를 통해 현역으로 복귀하겠다고 발표했다.2.16. 2023-24 시즌
2023 전일본선수권 출전을 목표로 1차 지역예선인 간사이 지역예선에서 2위를 하며 2차 지역예선에 진출했다. 서일본선수권 쇼트에서는 트리플 러츠에서 중심이 쏠려 컴비네이션 점프를 연결하지 못했고, 마지막 플립 점프를 더블링하며 넘어졌다. 비점프 요소에서도 레벨을 놓치는 실수가 다수 나와 61.30점을 기록했다. 프리에서는 쿼드러플 토룹+트리플 토룹, 단독 쿼드러플 토룹을 모두 성공시키며 프리 155.45점, 총점 216.75점으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그러나 정작 경기 출전에 필요한 복귀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이 밝혀지며 전일본선수권 출전이 무산되었다. 은퇴 선수가 복귀하기 위해서는 JADA 측에 신고서를 제출해야 하며, 6개월 간 대회에 출전하지 않고 도핑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데 오다는 이를 제때 이행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상적인 현역 복귀는 2024년 1월 19일부터나 가능하다.
2.17. 2024-25 시즌
1차 지역예선 2위, 2차 지역예선 1위를 하며 전일본선수권에 진출했다.3. 평가
한때 많은 일본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의 문제인 잘못된 러츠 점프 때문에 까였다.[4]4. ISU 공인 최고점수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ISU 공인 최고점수 | |
쇼트 | 87.65(2009-10 그랑프리 파이널) |
프리 | 175.64(2013 네벨혼 트로피) |
총점 | 262.98(2013 네벨혼 트로피) |
5. 커리어
사대륙선수권 | ||
금메달 | 2006 콜로라도 스프링스 | 남자 싱글 |
그랑프리 파이널 | ||
은메달 | 2009-10 도쿄 | 남자 싱글 |
은메달 | 2010-11 베이징 | 남자 싱글 |
동메달 | 2006-07 상트페테르부르크 | 남자 싱글 |
동메달 | 2013-14 후쿠오카 | 남자 싱글 |
월드 팀 트로피 | ||
동메달 | 2009 도쿄 | 단체전 |
유니버시아드 | ||
금메달 | 2011 에르주룸 | 남자 싱글 |
은메달 | 2007 토리노 | 남자 싱글 |
주니어 세계선수권 | ||
금메달 | 2005 키치너 | 남자 싱글 |
국제대회:시니어 | ||||||||||||||||
대회 | 01–02 | 02–03 | 03–04 | 04–05 | 05–06 | 06–07 | 08–09 | 09–10 | 10–11 | 11–12 | 12–13 | 13–14 | 17–18 | 18–19 | 23–24 | 24–25 |
올림픽 | 7th | |||||||||||||||
세계선수권 | 4th | 7th | 7th | 28th | 6th | |||||||||||
사대륙선수권 | 1st | 4th | ||||||||||||||
GP 파이널 | 4th | 3rd | 2nd | 2nd | 3rd | |||||||||||
GP 로스텔레콤 컵 | 5th | |||||||||||||||
GP 컵 오브 차이나 | 1st | 2nd | ||||||||||||||
GP 트로피 에릭 봉파르 | 1st | 7th | ||||||||||||||
GP 스케이트 아메리카 | 1st | 2nd | ||||||||||||||
GP NHK 트로피 | 1st | 2nd | 1st | 2nd | ||||||||||||
GP 스케이트 캐나다 | 3rd | 2nd | 3rd | 3rd | ||||||||||||
바바리안 오픈 | 1st | |||||||||||||||
카를 샤퍼 메모리얼 | 1st | |||||||||||||||
네벨혼 트로피 | 1st | 1st | 1st | |||||||||||||
유니버시아드 | 2nd | 1st | ||||||||||||||
국제대회:주니어 | ||||||||||||||||
주니어 세계선수권 | 11th | 1st | ||||||||||||||
JGP 파이널 | 8th | |||||||||||||||
JGP 우크라이나 | 3rd | |||||||||||||||
JGP 미국 | 4th | |||||||||||||||
JGP 일본 | 3rd | |||||||||||||||
JGP 이탈리아 | 7th | |||||||||||||||
JGP 슬로바키아 | 2nd | 2nd | ||||||||||||||
믈라도스트 트로피 | 1st J | |||||||||||||||
국내대회 | ||||||||||||||||
전일본선수권 | 16th | 6th | 5th | 3rd | 2nd | 2nd | 1st | 2nd | 2nd | WD | 4th | 4th | ||||
전일본 주니어선수권 | 4th | 3rd | 2nd | 1st | ||||||||||||
서일본선수권 | 1st | 1st | ||||||||||||||
간사이 지역예선 | 2nd | 2nd | ||||||||||||||
단체전 | ||||||||||||||||
월드 팀 트로피 | 3rd T 3rd P | |||||||||||||||
재팬 오픈 | 1st T 1st P | 2nd T 4th P | 1st T 2nd P | |||||||||||||
GP=그랑프리, JGP=주니어 그랑프리, T=팀 결과, P=개인 결과, WD=기권, J=주니어 |
6. 기타
- 동안이다. 2009년에 22세였는데도 불구하고 어리다는 소리를 들었다.[6] 남자 싱글 팬들 대부분이 노부나리가 어려 보인다는 거에 동의한다고 한다. 같은 일본인인 다카하시 다이스케와 비교해보아도 거의 같은 연배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다카하시가 딱히 노안인 것도 아니고 그냥 제 나이로 보이는 것인데도 그렇다.
- 잘 운다. 거의 카이지 수준이다. 저때 운 것으로 길이길이 피겨계의 놀림감이 되었다. 장훈은 오다의 모습을 보고 "떽!" 하고 일갈했다.
- 2010년 4월, 중학교 시절의 동급생과 결혼을 발표하였다. 신부가 되는 쪽은 이미 임신 4개월이였다. 모로조프 가 인터뷰 도중 오다가 결혼 전 "여자친구가 임신했대요. 어쩌죠?" 라는 말을 했다는 코멘트 를 남긴 적이 있다.[7] 득남 이후 한국 팬들 사이에서 실수를 한 번씩 할 때마다 '애아범 잘해', '분유값 벌어야지' 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 일본에선 아이유의 백댄서 중 아이유 상대역을 자주 하는 사람을 노부나리와 닮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해당 인물이 등장하는 동영상이 니코니코 동화에 올라오면 "노부나리ww"라는 코멘트가 반드시 달렸다.
- 본인은 한때 오다 노부나가의 후손이라는 이미지가 피겨 스케이터라는 이미지를 덮기 때문에 기분 나빴다고도 했지만 결국은 이래저래 노부나가의 후손이라는 것을 광고 전략에 이용하고 있는데, 문제는 그 혈통의 신뢰도에 대해서 이런저런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 토크쇼에서는 "우리 집에서는[8] 재수 없다고 생각해 도라지꽃을 절대 (장식 등에) 쓰지 않는다" 라고 했었는데 오다 종가에서는 그런 가문 내 전통이 없다고 말해서 더 한층 수상하게 보는 사람이 늘었다. 그리고 인터넷상으로 자주 의혹제기가 된다고 해서 가계 의혹 자체를 낭설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로 노부나리의 가계는 어디까지나 자칭이다.[9] 메이지 유신 이후 성공한 실업가였던 노부나리의 증조부가 갑자기 오다 가문과의 혈연을 주장했는데, 신분 증명에 있어 필수적인 에도 시대의 족보나 주민등록[10] 등의 신빙성 있는 자료가 일체 존재하지 않고 본인만 열심히 주장했기 때문. 노부나리의 집안이 주장하는 가계 자체도 중간에 빠진 대가 존재하는 등 상당히 이상하다. 즉,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11][12] 다만 만약 오다 노부나리가 속한 오다 가문이 오와리 오다 가문의 피가 흐르는 집안과의 사이에서 통혼이 이루어져 자식을 얻는다면 그 자식 세대부터는 정통성 문제와 별개로 어쨌든 오와리 오다 가문의 후손이 맞게 되므로 오다 정권 수장직의 비정통 요구자로 인정받을 수는 있다.
[1] 김연아의 자서전에 따르면 2004년 토론토에서 윌슨이 오다에게 마리오 프로그램을 안무해주었는데 오다가 연기할 때엔 다른 선수들이 모두 벽에 붙어 구경할 정도로 재미있었다고 한다. 이때 김연아는 윌슨을 처음 만났다.[2] 노부나리가 자기 조상이라고 하는 오다 노부나가가 부하인 아케치 미츠히데의 손에 죽은 것 때문에 이런 낭설이 생긴 듯 하다.[3] 이 장내 아나운서는 그 대회에서 1위를 한 김연아를 소개할 때도 보통 해외에서 통용되는 이름인 Yuna Kim이 아니라 나름 한국어에 가까운 발음을 시도했었는데 발음이 꼬여 "전하~ 킴" 으로 들리기도 했다. 무엄하다 감히 여왕 폐하가 아니라 전하라니 여왕이 아니라 여제다.[4] 얼마나 엣지가 잘못되었는지 보여주는 반증으로는 한 대회에서 해설자가 오다가 트리플 러츠를 뛰었는데 해설자가 헷갈렸는지 안쪽 날로 뛰는 점프인 플립으로 착각해버렸다.[5] 짤방 해설: 강의 중인 코치는 니콜라이 모로조프 코치이다. 칠판 위에 액자 중 왼쪽 액자는 아라카와 시즈카이며, 오다를 기준으로 오른쪽에 있는 남자 선수는 코즈카 다카히코, 뒤쪽에 있는 여자 선수는 안도 미키, 안도 미키 옆에 분홍색 옷을 입은 선수는 스구리 후미에, 왼쪽에 있는 여자 선수는 아사다 마오, 문틈으로 몰래 쳐다보는 선수는 다카하시 다이스케(왜 문틈으로 몰래인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자약룰에 따르면 같은 점프를 뛸 수 있는 것은 2종류 2번씩 뿐이므로 이미 앞에서 3A, 3T를 2번씩 뛰었기 때문에 이 점프들은 더 이상 뛰면 안 된다. 또한 자약룰에는 트리플 이상의 점프는 한 개는 무조건 컴비네이션으로 뛰어야 하는 규정이있고 만약 2 개 모두 싱글 점프로 뛸 경우에는 뒷점프를 시퀀스로 처리해 컴비네이션으로 인정하고 80%의 점수만 받게 하는 규정이 있다. 그리고 프리 프로그램에서의 컴비네이션 점프는 최대 3개다. 그런데 이미 4T+3T와 3S+3T, 3A+SEQ를 이미 뛰었으므로 컴비네이션 점프 모두를 뛴 셈이다. 그런데 오다는 천연덕스럽게 3A+3T를 뛴다고 하고 거기에 3Lo까지 붙이겠다고 하고 있다. 실제로 이렇게 뛰면 점수는 0점으로 처리된다. 거기다가 원래 계획에 따라 나중에 뛸 3Lo조차 뛸 수 없게 되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게 된다. 참고로 아사다 마오의 말풍선에는 3F이 아니라 '...'이 쓰여 있었는데, 수정된 것으로 보인다.[6] 이 말을 한 예브게니 플루셴코는 당시 27세였고, 그 시절 남자 싱글 선수들 중 어려보이지 않은 선수는 없었다.[7] 모로조프의 말로는 앞에서 이야기했던 2010 세계선수권 쇼트의 싱글 어게인 사태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고 한다.[8] 혼노지의 변을 일으켜 오다 노부나가를 배신한 아케치 미츠히데의 문장이 하늘색 도라지꽃이기 때문이다.[9] 구한말에 한국의 평민들이 특정 양반 가문의 일원을 자칭하여 해당 가문의 성씨를 쓴 사례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10] 일본에서 혈통을 인정받기 위한 자료는 상당히 까다로운 편인데, 주로 에도 시대에 신분제 유동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된 여러 족보와 마을별 주민등록 등의 자료를 증거로 요구한다.[11] 자칭이 아닌 진짜 오다 노부나가의 후손으로는 현 오다 가문 당주 오다 노부타카, 노부나가의 7남 노부타카(信高, 3남 노부타카(信孝)와는 다른 인물)의 후손인 쇼와 시대의 석판화가 오다 카즈마(織田一磨) 정도가 알려져 있다.[12] 사실 한국과 중국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구한말에는 양반 가문을 자칭하거나 아예 정식으로 양반 가문의 족보를 사는 식으로 양반 가문의 성을 쓰는 평민들이 대거 생겨났으며, 청나라 또한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출세를 위해 만주족을 사칭하거나 아예 정식으로는 만주족 가문에 양자로 들어가는 한족들이 늘어나 이들이 현대 만주족의 조상군에 포함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