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여성국극(女性國劇)대한민국의 여성국극은 1945년 8.15 해방 이후, 여성들이 모여서 시작한 일종의 창극으로, 195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공연예술이다. 국악 중에서도 창극의 갈래로서 연극의 한 장르이며, 여성 소리꾼이 여성과 남성 배역을 모두 소화하는 국악 연극이다. 소리 중심이었던 기존의 창극과 달리 소리와 춤과 연기가 어우러졌다는 특색이 있다. 소리 외에 춤, 연기, 연출, 의상, 무대 매너를 극대화하고 쇼와 엔터테인먼트의 볼거리를 제공하여, 판소리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기보다는 대중성과 오락성에 더 큰 비중을 둔다.
2. 역사
2.1. 1900년-1930년대
1909년: 관기(官妓) 제도 철폐와 여성 예술가들의 새로운 길1909년, 조선 말기 사회개혁의 일환으로 관기 제도가 철폐되었다. 관기는 국가에 소속된 ][기생]]으로, 국악과 무용 등에서 실력을 인정받았으나 사회적 지위가 낮았다. 관기제도가 사라지면서 그동안 관기로 활동하던 여성 예술가들, 특히 광대 집안의 여자들은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했다. 이들은 기생이 되어 생계를 이어갔고, 이 시기에 전통 국악인 판소리도 배워 다양한 예술적 기량을 발전시켰다. 여성들이 판소리와 같은 전통예술을 습득하게 되면서, 이는 이후 여성국극의 토대가 되었다.
1930년대: 여성 명창들의 독립과 국악판에서의 활약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 명창들이 기생조합을 떠나 순수한 예술가로서 활동하기 시작. 기생의 신분으로만 인정받던 여성 예술가들이 이제는 독립적인 명창으로서의 자리를 확립해 나갔다. 남성 중심이었던 전통국악 무대를 벗어나 여성 예술가들만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으며, 판소리와 민속예술을 중심으로 새로운 형태의 국악 공연을 선보였다. 이는 전통예술에서 여성의 역할이 크게 확장되는 중요한 시기였다.
2.2. 1940년대
여성국악동호회 광고(동아일보 1949.5.19 및 1954.5.1)1948년: 여성국악동호회의 결성과 여성국극의 시작
1948년 여성국악동호회가 결성. 여성국악동호회는 남성 중심의 국악판에서 벗어나 여성들만의 독립적인 국악 활동을 활성화하고, 여성 예술가들에게 공연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였다. 특히 이 시기에 <옥중화>라는 작품이 큰 인기를 끌면서 여성국극이 본격적으로 시작. <옥중화>는 여성 배우들만의 연기와 노래로 이루어진 공연으로,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대중의 관심을 크게 끌었다. 여성국악동호회는 이를 기점으로 여성국극의 전성기를 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박녹주를 대표로 하여 김소희, 박귀희, 임춘앵, 정유색, 김경희 등 30여 명이 조직한 여성국악동호회는 1948년 10월에 <옥중화獄中花>로 시공관에서 창립공연을 가졌다.
1949년: <햇님과 달님>의 성공과 여성국극의 대중화
1949년에는 여성국악동호회가 선보인 <햇님과 달님> 공연이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한국의 전래동화를 바탕으로 하여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갔고, 여성들만의 뛰어난 연기와 가창력을 통해 큰 인기를 얻었다. <햇님과 달님>의 성공으로 인해 여성국극이 대중 속으로 더 널리 퍼졌으며, 여성 예술가들이 중심이 되어 무대를 주도하는 문화가 확립되기 시작했다.
2.3. 1950년대
1950년대: 한국전쟁과 부산에서의 여성국극 활동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전국의 공연예술계는 큰 타격을 입는다. 그러나 전쟁 중에도 여성국극의 열기는 식지 않았고, 임시수도가 된 부산에서 공연이 활발히 열렸다. 부산극장을 중심으로 여성국극단들은 전쟁 중에도 관객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기 위해 공연을 이어갔다. 이는 여성국극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선 예술적ㆍ사회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전쟁 중 피난지에서도 여성국극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1955년: 여성국극의 전성기와 국악양성소 설립
한국전쟁 휴전 이후인 1955년에는 무려 12개의 여성국극단이 활동하며 본격적인 여성국극 시대가 열렸다. 여성국극이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며 다양한 작품들이 무대에 올랐고, 여성 배우들이 국악과 극의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여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였다. 또한 이 시기에는 국악양성소가 설립되어 국악 예술가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시작했다. 국악양성소는 여성 국악인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며, 여성국극의 질적 향상과 후속 세대 예술가 양성에 기여했다.
2.4. 1956년 이후의 쇠퇴
1956년에 국산영화 진흥정책으로 인해 영화산업이 발전하면서 여성국극은 급격히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여기에 여성만 들어갈 수 있다는 한계로 인한 인력 부족과, 국악인이라기보다는 아이돌같은 모습으로 변모해, 갈수록 국악인으로서의 수준이 하향평준화됐다. 이 탓에 실력보다는 스타성을 살려 무대를 구성하고, 그럴수록 실력은 더욱 하향되는 악순환을 낳아가고 있었다. 더욱이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인해 여성국극은 대중에게 시대착오적이리만큼 진부하게 비쳐졌다. 1960년대에는 사실상 명맥이 끊어진다. 1970년대 후반부터 간간이 재기의 몸부림을 한 바 있으나, 옛날 관객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데 그치고는 하였다.2.5. 유물 및 사료
결국 1960년대 이후로 쇠퇴한 여성국극을 시작했던 박녹주를 포함한 여성국극의 관련멤버들은 대부분 국악계로 돌아갔으나, 이들은 현재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고, 그 후로는 제자 양성에 힘쓴다.3. 의의
여성국극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독특하고 혁신적인 문화 현상으로, 여러 사회적·예술적 의의를 지닌다. 여성국극은 기존의 전통적인 성 역할의 경계를 허물며 여성 배우들이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연기함으로써 생물학적 남성성만이 남성다움을 구현할 수 있다는 통념에 도전하고, 이를 통해 젠더 수행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갔다. 또한, 당시의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얻고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며, 여학생이나 가정주부와 같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할 수 있는 정치적·문화적 장소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또한, 여성국극은 예술적으로 고급예술과 대중문화를 혼합하며 독창적인 미학적 정체성을 형성한 예술이다. 전통적인 요소를 차용하면서도 이를 과감히 부수는 태도를 통해 독특한 예술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는 당시 미학적 관습에서 이탈한 반항적인 예술 형태로 평가받는다. 웅장한 무대미술과 정교한 음악, 춤은 고급예술로서의 품격을 유지했으나, 동시에 약간 과장되고 극적인 요소를 추가하여 관객들의 감각을 자극했다. 이러한 방식은 당시 순수예술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그것을 해체하는 전복적 성격을 띠었다. 또한 대중적 취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관객들과의 감정적 연결을 강화했다. 특히, 남역 배우가 연기하는 낭만적이고 이상화된 남성상은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접근은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보다 폭넓은 관객층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거기에 더해 남녀 간의 전통적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서사는 대중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두 여성 배우가 남녀를 연기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이성애 중심 서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결론적으로 여성국극은 전통적인 예술 형식과 고급예술의 엄숙함, 대중예술의 접근성을 융합하며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미학적 질서를 구축했다. 이는 당시의 사회적·문화적 관습을 전복하면서도, 전통과 현대를 잇는 독보적인 예술로 자리잡게 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4. 해외 유사 연극
4.1. 다카라즈카 가극단
미혼 여성들로 구성된 일본의 극단으로, 여성국극과 마찬가지로 여성 배우들이 남성 역할을 포함한 모든 배역을 맡아 공연을 진행한다. 1909년 미츠코시 백화점에서 음악을 연주할 소년들로 구성된 미츠코시 소년음악대가 그 시초이며, 최초의 소녀가극단은 시로키야 백화점에서 운영한 시로키야 소녀음악대이다. 1911년부터 1917년까지 활동하였다고 한다. 2번째로 창단한 소녀가극단이 그 유명한 다카라즈카 가극단이며, 1914년 일본의 도시화와 대중문화의 확산 속에서 출발한 상업적인 극단으로 서양 뮤지컬과 연극의 요소를 받아들여 현대적인 공연 스타일을 지향하는 것이 특징이다. 1960년대에 들어서 쇠퇴의 길을 걸어간 여성국극과 달리 소녀가극은 현재까지 살아남으면서 점차 매우 상업화되어 있으며, 일본 내에서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매년 정기 공연과 굿즈 판매, 스타 배우 시스템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일본 문화에서 독특한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소녀가극 문서 참고하십시오.
4.2. 월극
월극(越劇, Yueju)은 중국 전통 오페라의 한 종류로, 중국 저장성의 전통 연극이다. 특히 강남(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이 예술 형식은 북방 오페라의 웅장한 분위기와는 달리, 섬세하고 서정적인 음악을 사용하여 관객들에게 강한 감동을 준다. 초기인 1900년대 초반에는 남성들만으로 구성된 극단이 주도했으나, 1920년 이후 여성들이 무대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여성 관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아졌고, 오늘날까지 월극은 여성 배우들이 주축이 되는 예술 형태로 정착되었다. 월극의 이야기는 대부분 사랑과 가족, 전통과 신념을 주제로 하며, 이를 여성의 시각으로 풀어내는 작품들이 많아 고유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중국의 월극은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단과 비교해서 상업화의 정도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중국 내에서 전통 예술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현대적으로 꾸준히 재해석 되고 있다.
4.2.1. 대표적인 월극 작품들
1.《梁山伯与祝英台》(양산백과 축영대)월극의 대표작으로, 중국의 전통적 사랑 이야기. 주인공 양산백과 축영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중국 내에서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비유되곤 한다. 축영대가 남장하고 학교에 들어가며 이야기가 시작되며, 양산백과 깊은 우정을 나누다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축영대가 이미 다른 사람과 정혼하게 되어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
2.《红楼梦》(홍루몽)
청나라의 문학작품 홍루몽을 원작으로 한 월극으로, 자아와 사회의 갈등, 애정, 인간의 허무함 등을 다루는 서사적 작품이다. 소설의 방대한 이야기를 월극에 맞춰 축소하고 재해석하여 무대에 올린 이 작품은 고전문학을 새롭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3.《白蛇传》(백사전)
전설 속의 사랑 이야기인 백사전은 사람과 요괴 간의 사랑을 다룬다. 인간 남자 허선과 백사 요괴인 백랑의 사랑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며, 인간 세상의 규율과 편견, 순수한 사랑을 표현한 고전 작품으로 중국 오페라의 중요한 레퍼토리 중 하나이다.
4.《孔雀东南飞》(공작동남비)
이 작품은 중국의 유명한 시 공작동남비를 각색한 월극으로, 사랑과 인내, 운명에 대한 주제를 다룬다. 강한 의지를 가진 두 주인공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통해 고전적 가치와 삶에 대한 철학을 그려낸다.
5. 유명인물
5.1. 임춘앵
임춘앵은 한국의 여성국극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여성국극동지사를 설립하여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다. 그녀는 여성국극의 발전과 대중화를 이끌며 한국 전통 공연 예술의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자세한 내용은 임춘앵 문서 참고하십시오.
5.2. 박녹주
박녹주는 한국의 저명한 판소리 명창으로, 특히 춘향가에 뛰어난 실력을 보여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국악의 보존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쓴 인물로 평가된다.
자세한 내용은 박녹주 문서 참고하십시오.
5.3. 조금앵
조금앵(본명: 조윤순, 1930년 출생)은 1세대 여성국극을 대표하는 배우로, 남성 역할을 맡아 큰 인기를 끌었다. 1940년대 후반 여성국극에 입문하여 ‘햇님달님’, ‘무영탑’ 등의 작품에서 주연을 맡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여성국극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에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이며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매력을 선사했다. 그녀의 인기 덕분에 열성팬들과 가상 결혼식 사진을 찍는 등 독특한 팬 문화를 형성하기도 했다.조금앵과 열성팬의 가상결혼식 사진
조금앵이라는 이름은 그녀의 예명으로, 본명인 조윤순 대신 무대와 팬들에게 친숙한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예명은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더욱 인상 깊은 인물로 남기 위해 종종 사용되었고 조금앵 역시 이러한 이유로 예명을 택했다. 그녀는 여성국극의 상징적 인물로서 한국 전통 공연예술의 발전에 기여했다. 2012년 8월 3일, 향년 82세로 별세했다.
5.4. 조영숙
조영숙(1934년 출생)은 대한민국의 여성국극 1세대를 대표하는 명인으로, 1951년 임춘앵 선생이 이끌던 여성국극 동지사[1]에 입단하여 소리꾼으로서의 길을 시작했다. 이후 70여 년간 무대에서 활약하며 여성국극의 명맥을 이어왔다. 조영숙 명인은 특히 재담과 연기를 겸비한 ‘삼마이’ 역할로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남성 역할을 주로 맡아 무대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며 여성국극의 전성기를 이끌었다.최근에는 여성국극의 부활과 전승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24년 7월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조 도깨비 영숙’이라는 공연을 통해 1인 5역을 소화하며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웹툰과 드라마로 제작된 정년이의 자문을 맡아 여성국극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5.5. 이옥천
이옥천(1946년 출생)은 대한민국의 여성국극 2세대를 대표하는 남역 배우이다. 동편제 거장 박녹주의 수제자이자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흥보가> 보유자이며, 우스갯소리로 "첫 번째 장가는 판소리에 들었고, 2번째는 국극에 들었다"고 할 정도로 한평생 국극의 명맥을 잇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자세한 내용은 이옥천 문서 참고하십시오.
6. 관련 작품
6.1. 정년이
자세한 내용은 정년이 문서 참고하십시오.
6.2. 조 도깨비 영숙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4833335
<조 도깨비 영숙>은 여성국극 1세대인 조영숙 명인의 삶과 예술을 재조명하는 공연으로, 세종문화회관의 여름 축제인 ‘싱크넥스트24’의 일환으로 열렸다. 이번 공연은 2024년 10월부터 방송을 시작한 여성국극단 소재의 웹툰 원작 드라마 ‘정년이’(tvN)의 음악감독인 장영규, 박민희가 조 명인에게 자문을 구하며 성사됐다. 조영숙 명인은 1951년 광주 여성국극동지사에 입단해 여성국극의 전성기였던 1950-60년대부터 활동해온 명인이다. ‘정년이’ 역시 여성국극의 2명인 조영숙, 임춘앵의 이야기를 참고해 쓴 작품이다.
'조 도깨비 영숙'은 국극 선화공주를 현대적으로 연출한 작품이다. 제목에 '도깨비'가 들어간 이유는 과거 조 명인의 별명이 도깨비였기 때문이다. 도깨비처럼 무엇이든 기막히게 잘한다는 의미로 동료들이 붙여줬다고 한다. 이번 공연은 전통과 현대를 융합한 형태로 영상과 실연을 결합한 독특한 방식을 채택했다. 감독은 여성국국이 60년대 이후 대중적 인기를 잃고 오늘날 젊은 세대와 만날 기회가 적음을 안타까워하며, 현대적 감각으로 이를 재해석해 2030세대에게 ‘잊혀진 명인’을 소개하고자 했다.
6.3. 레전드 춘향전
(왼)황지영·춘향役/(우)박수빈·이몽룡役https://news.bbsi.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22697
<레전드 춘향전>은 2023년 경기 안산 문화예술의전당 달맞이극장에서 개막한 여성국극 공연이다. 여성국극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1세대 배우 이소자, 조영숙을 비롯해 2세대 배우 이미자, 이옥천, 김성예, 그리고 최근 여성국극의 부활에 힘쓰고 있는 3세대 배우들까지 참여해, 다양한 세대의 배우들이 춘향전의 주요 장면을 선보였다. 원래 고어(古語)로 구성된 대사를 현대어로 개사하고 일렉트로닉 음악을 활용하는 등 여성국극의 멋을 유지하면서도 현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재해석한 무대를 구성함으로써 관객층 확대를 위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6.4.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https://www.reader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2661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는 2024년 8월에 개막한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라는 프랑스 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 여성극이다.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는 뛰어난 언변과 검술을 지닌 시라노가 자신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로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대신 친구 크리스티앙을 위해 사랑의 편지를 써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7. 관련 문서
[1] 여성국악동호회에서 활동하던 임춘앵 선생이 1949년 독립적인 방향으로 여성국극을 발전시키기 위해 설립한 단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