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19 20:34:08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אֵלִי אֵלִי, לָמָה עֲזַבְתָּנִי
ελωι ελωι λαμα σαβαχθανι
Eloi Eloi Lama Sabachthani

파일:attachment/jesus.jpg
1. 개요2. 언어적 해설3. 의미 해설
3.1. 종파별 해설
3.1.1. 개신교3.1.2. 가톨릭3.1.3. 정교회
3.2. 역사적 예수론
4. 기타
세 시쯤 되어 예수께서 큰소리로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이 말씀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이다.
마태오의 복음서 27장 46절(공동번역성서)
세 시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이 말씀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뜻이다.
마르코의 복음서 15장 34절(공동번역성서)

1. 개요

마태오의 복음서 27장 46절, 마르코의 복음서 15장 34절. 예수죽기 전에 남긴 말 중 하나. 그 밖에 복음서마다 다른 말이 기록되어 있어서 성경을 따르면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채로 한 말은 총 일곱가지다. 이 일곱가지 유언을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하며, 본문은 제4언. 사이비 종교 및 이단과 과거 반기독교, 그 외 몇몇 종교에서 예수의 대속 실패설을 근거할 때 자주 내세우는 문장이기도 하다.

2. 언어적 해설

마태오의 복음서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히브리어 음역이고 마르코의 복음서의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다니'는 아람어라는 주장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두 표기 모두 하느님/하나님이나 신이라는 의미인 단어 "엘"에 1인칭 소유격 접미사 -이를 붙여 "엘리"로 발음되었을 것인데 마르코의 복음서에서 "엘로이"라고 음차된 것도 실제로는 "엘리"로 발음되었던 것의 다른 표기법일 뿐이다. 그리스어는 기원전/후 1세기 무렵에 모음 추이[vowel shift]를 겪었고 이때 -i가 포함된 이중모음들이 /i/ 발음으로 퉁쳐지는 현상이 발생했으며, 이것을 iotacism(이오타화)이라 이른다. 즉 eli라고 쓰든 eloi라고 썼든 실제 발음은 /eli/였을 것.

또한 '사박다니'는 히브리어일 수가 없다. '(שבק)šbq' 어근은 히브리어에 없는 아람어의 어근으로서 히브리어라면 '(עזב)'zb' 어근이 사용되어 '아자브타니(עֲזַבְתָּנִי)'가 되어야 할 것이다. šabaqta는 2인칭 단수 남성 완료형으로 "(네가) 저 버렸다", 그 뒤의 -ni는 1인칭 단수 목적어 "나를"이 된다.

3. 의미 해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살려달라 울부짖는 소리 들리지도 않사옵니까?
시편 22편 1절 (공동번역성서)
 
원래는 위의 시편 22 편 1절에 기록된 다윗의 탄식을 예수가 인용한 것. 여기서는 '버리셨나이까'가 '사박다니'가 아니라 '아자브타니'로 기록되어 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게 히브리어니까.

"버리다"는 동사의 어감이 너무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인지 기독교 신자가 아니거나 기독교 신자라 해도 시편을 세세하게 기억하지 못 하는 때, 신학에 기초해 독해하기에 앞서 "예수가 죽음 앞에 실패했다" 정도로 곧장 받아들이는 일이 많아 대중을 중심으로 오해가 상당히 많다.

'하느님과 예수는 실제로는 같은 것이나 모습만 다른 것'이라는 양태론을 반박하는 근거로 쓰이기도 하며 삼위일체론 교리도 이 구절로 말미암아 한동안 논쟁을 겪어야 했다. 해당 항목 참조.

3.1. 종파별 해설

3.1.1. 개신교

개신교에서는, 예수가 본디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 항상 하나님에게 총애받으며 존재했으나 땅에 내려온 뒤 인간의 죄를 대신 받는, 죽는 순간 그 원죄로 인해 하나님의 은총이 일시적으로 단절되면서 외친 좌절의 목소리라고 해석한다.

제4언을 맥락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후속되는 유언들을 함께 보아야 한다. 어찌 나를 버리냐는 절규에 뒤이어 예수가 한 제5언은 19:28에 따르면 ‘내가 목이 마르다.’이다. 고난으로부터의 고통은 쓰지만 그로 인해 성취하는 인류에의 사랑과 구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을 다음 유언해서 밝히는데, 제6언은 같은 책 같은 장 30절의 ‘다 이루었다.’이다. 십자가에 매달림으로써 희생 제물이 된 예수는 고통을 감내해 결국 구원의 문이 되었음을 십자가 앞에서 선언한다.

이어서 마지막 유언인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23:36)를 통해 이생에서의 죽음을 수긍하는 내용으로 하는 기도를 재차 성부 하나님에게 올림과 더불어 고통과 구원 이후에 기다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그리고 관계가 회복된 인간은 부활했던 예수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약속의 때에 부활하며, 예수에게로 다시 모였던 남은 제자들과 예수가 부활했노라고 증언한 자들과 같이 성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할 드러내고 있다.

죄성 있는 죽음을 기독교답게 표현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을 이르는데 십자가에 예수가 못 박힌 이유 자체가 인류의 죄를 모두 뒤집어써 원죄 없이 태어난 자신이 대신 희생 제사를 치르는[1],

예수는 참된 인간이며 참된 하나님인 존재이다. 그야말로 희생 중의 희생으로 제4언인 본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인간으로서는 최대의 시련인 하나님과의 단절을 가장 잘 드러내는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다. 현대 개신교에서는 로마서 10장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러한 예수를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에 이르고,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구원을 두고 예정론과 알미니안주의가 격한 대립이 있었다. 웨슬리의 신인합일까지 소개하지 않더라도, 믿으면 무조건 구원 받는다거나 불교의 선문답 유사한 깨달음으로 내가 구원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받은 예수가 이미 다 이룬 나의 구원을 확신하고 시인하는 것이다.

3.1.2. 가톨릭

가톨릭에서는 해당 시편 구절의 성격을 비탄과 절망이 아닌, 하느님에 대한 감사, 특히 박해받는 올바른 이의 고통에 대한 호소와 밑바닥에 깔린 하느님을 향한 신뢰에 관한 것으로 해석한다.자세한 내용은 이 링크를 참고. 가톨릭교회 측에선 예수가 사람들을 이롭게 하려고 시편 기도를 드린 것으로 받아들인다.

3.1.3. 정교회

3.2. 역사적 예수론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신학자들에게선 다양한 해석이 있다.

알버트 슈바이처나 게자 버메스(Geza Vermes)는 '자신이 죽기 전에 하느님 나라가 도래할 줄 알았다가 그 소망이 물거품이 되자 토로한 인간다운 절망의 표현' 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예수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들처럼 자신이 결국 세속 권력의 손에 죽임당할 줄을 알고 있었고 원문인 시편 구절의 의미처럼 지금 내 몸은 죽어도 하느님께서 결국 나를 구하시리라는 희망의 표현'으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참조

반면 예수의 죽음 자체를 제자들은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경에서 묘사한 예수의 유언의 역사성 자체를 의심하는 해석도 존재한다. [2]

4. 기타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에서는 요한의 펜상태의 인덱스이노켄티우스를 파훼하는 데 사용한 주문으로 나온다.

이 말에서 따온 동명의 일본 영화가 있다. 자살병으로 절멸 위기에 놓인 전염병 아포칼립스 영화로 아사노 타다노부미야자키 아오이가 나온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 중 일부는 예수가 엘리야를 부른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거기에 서 있던 몇 사람이 이 말을 듣고 "저 사람이 엘리야를 부르고 있다." 하고 말하였다.
마태오의 복음서 27장 47절(공동번역성서)
또 엘리야가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려주나 보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만두시오.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해 주나 봅시다." 하고 말하였다.
마태오의 복음서 27장 49절(공동번역성서)

[1] 기독교다운 관점에서, 일반 생식, 즉 성관계를 거치는 과정으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아담에서 내려오는 원죄에 속박되어 있다. 그리고 사람은 속죄하려고 구약시대에는 자기 대신 이나 같은 짐승을 대신 도축하여, 희생하게 하여 제사했다.[2] 사도 요한이 성모 마리아와 함께 예수의 죽음을 지켜봤다는 말은 요한 복음서의 자칭 저자를 요한으로 보는 전통적 해석인데, 역사적 예수 신학에서는 사실로 인정받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