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02:01:14

안철수/다른 정치인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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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보수진영 정치인
2.1. 윤석열2.2. 홍준표2.3. 이준석2.4. 유승민
2.4.1. 연합의 계기2.4.2. 연합 정당을 창당했으나...2.4.3. 다른 정당 소속이 되다2.4.4. 다시 같은 정당 소속이 되다
2.5. 황교안
3. 민주당계 정치인
3.1. 문재인
3.1.1. 두 사람의 성격 탓?3.1.2. 상세3.1.3. 그래서, 결국 진검승부
4. 제3지대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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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치인 안철수와 다른 정치인들과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 문서.

2. 보수진영 정치인

2.1.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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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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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이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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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유승민

안철수가 문재인과 결별한 후, 2018년부터 개혁보수 계열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유승민바른미래당을 통해 연합을 했기에 이 관계 역시 지금도 주목받고 있다.

2.4.1. 연합의 계기

2017년 후반부터는 유승민과 연대를 하기 시작하면서 이 두 사람의 관계 또한 주목받기도 한다. 본래 2012년까지 유승민은 대권주자로서는커녕 잠룡으로도 거론이 되지 않았으나,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정부와의 대립, 소신 발언 등으로 사이가 나빠지면서 "개혁 보수"와 비박계의 대표 주자로 떠오른 인물이었다.

2017년 후반 들어 두 사람의 경우 당내외에서 여러모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국민의당은 19대 대선 때 3위로 패배한 이후 여러 사건사고가 터지면서 지지율이 나빴고, 바른정당2차에 걸친 탈당 사태로 당세가 크게 위축되었기 때문. 그러한 관계로 이 두 사람의 연대설 혹은 연대론이 본격적으로 흘러나오게 된다. 애당초 두 당의 스펙트럼이 어느정도 겹치는 편이었던 것도 컸다.

2.4.2. 연합 정당을 창당했으나...

파일:PS18021300830.jpg
바른미래당 창당 당시

그러다가 2018년 2월 13일 바른미래당을 창당하면서 동료가 된다. 지금 안철수는 2선으로 후퇴하긴 했으나, 향후 서울시장, 부산시장 등의 광역지자체장 선거에 출마하거나, 당내에서 선대위원장 등 요직을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심지어 바른미래당 지역위원장들이 안철수 출마 요청 성명을 발표했을 정도. 특히 구 국민의당, 바른정당의 민주계를 형성하는 박주선 전 공동 대표와 정병국 전 대표도 안철수에 호의적이니... 일부에서는 바른미래당이 창당 직후의 지지율이 저조한 것이 안철수라는 이름이 전면적으로 나서지 못했던 것도 있다는 견해가 있다. 다만 바른미래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확정되었다 하더라도 너무 일찍 출격한다면 일찍이부터 양념(...) 당하거나 견제당할 수 있으니 최대한 늦추는 것도 방법이라는 견해도 존재한다.

다만 사실상 안철수 전 대표가 출마한다 해도 서울시장에 당선되는 것이 극도로 어려운 상황이라, 바른미래당 지역위원장들이 안철수 출마 요청을 한 것은 안철수를 보내버리기 위함이라는 견해도 있다. 대선 패배와 서울시장 패배는 후폭풍의 정도가 다르며 사실상 서울시장에 출마했다가 낙선하면 안철수 측에서는 강제 정계은퇴가 되어버리기 때문. 오히려 이 해석이 지지를 얻고 있는데 구 바른정당 측에서 안철수의 서울시장 출마를 요청하자 구 국민의당 측에서는 유승민의 경기도지사 출마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 '같이 죽기 싫으면 그만하자'는 뉘앙스로 읽힌다.

하지만 막상 선거 결과 안철수는 김문수에게 밀려 3위로 낙선하게 되면서 잠시 정계에서 손을 떼게 된다. 이후 호남계와 친안계의 등을 업은 손학규가 바른정당계인 하태경을 꺾고 당 대표가 된 이후로는 한동안 별도의 문제가 없다가...

2019년 재보궐선거에서 바른미래당이 대참패를 하면서 손학규의 사퇴 여론이 친안, 친유 모두에서 불거지게 된다. 그러나 손학규는 여기에 노욕에 가까운 거부 반응을 보이면서 당이 와해되기 시작했다. 이 때 강경보수 계열인 이언주가 탈당했고, 당의 구도는 호남계+손학규계 당권파 vs 친안계+바른정당계의 구도로 바뀌게 된다. 특히 김관영원내대표의 강제사보임 사건으로 친유계 법사위원인 오신환과 친안계 법사위원인 권은희가 반발할 정도로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갈등은 더 심해지게 된다.

이 때 안철수계와 유승민계는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손학규 및 당권파의 독재적 행태를 비판하고 사퇴를 요구하였으나, 정작 호남계+당권파가 강경하게 나오면서 더더욱 갈등이 심해지게 되었고, 결국 2020년 1월, 바른미래당 분당으로 이루어지게 되며. 바른정당계가 1차 탈당, 안철수계가 2차 탈당을 하면서 바른미래당은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게 된다. 그럴 법도 된게 안철수와 유승민이라는, 당내 유력 주자이자 창당 주역 2명을 손학규가 동시에 내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2.4.3. 다른 정당 소속이 되다

이후 국민의당새로운보수당미래통합당으로 둘 다 탈당하게 되면서 사실상 갈라졌으나, 정작 바른미래당 내 변혁으로 활동했던 친안철수계친유승민계 20대 의원들이[1] 정기적으로 회동하고 있다고 하여, 향후 만일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합당하거나 연대를 하게 될 경우 가교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다. 심지어 김수민, 이동섭, 김철근 등 일부 친안계 인사들은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지역구 출마를 했기에 더더욱 가능성이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친안계인 김철근 전 대변인이 유승민계 지지자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고, 김수민 홍보위원장이 실질적으로 유승민계 + 오세훈, 원희룡 등 소장파 계열 빅텐트 모임 HOW's의 이름과 디자인까지 책임질 정도.

그리고 2020년 12월, 안철수가 서울특별시장 출마 선언을 하면서 사실상 재회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었다. 국민의힘-국민의당 연대가 논의되는 상황인 데다가 유승민, (부산시장 출마를 선언한) 박형준 등이 "만일 안철수가 서울시장에 출마한다면 그를 중심으로 도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었기 때문. 특히 국민의힘에 합류한 친안계 인사들이 주로 친유계 인사들과 같이 활동했다는 점을 본다면 적어도 안철수가 서울시장에 출마한다면 큰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유승민은 "단일화는 당연히 돼야 한다"면서도 "단일화 전까지 당적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오세훈 후보를 열심히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승민이 2021년 3월 10일에 국민의힘 서울시장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결국엔 안철수는 오세훈 후보와 단일화에서 패배하였다.

2.4.4. 다시 같은 정당 소속이 되다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를 하고 국민의힘과 합당까지 약속하였다.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었고, 국민의힘과 합당을 하여 다시 같은 정당 소속이 되었다.

2.5. 황교안

유승민 vs 황교안 포지션마냥 황교안이 바른미래당(바미당)의 출신이라고 굉장히 비난했다.

하지만 결국 김기현 후보를 물리치기 위해서 민주당 전 대표 출신인 안철수와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진 강경보수 황교안은 회동을 한 후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3. 민주당계 정치인

3.1.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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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img.hani.co.kr/145144123640_20151231.jpg
이랬던 두 사람이 이렇게 됐다.
'화성'재인, '금성'철수[2]

21세기의 양김. 비슷한 듯 다르다.[3] 넓게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좁게 보면 18대 대선으로 대한민국 민주당계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2명의 정치인의 관계에 대해 서술하는 항목.

3.1.1. 두 사람의 성격 탓?

현직 정치인이며 두 사람 모두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박영선은 자신의 저서인 <누가 지도자인가>에서 안철수 의원은 꼭 필요한 말만 에둘러 표현하는 편으로, "대화 중 자신의 생각이 잘못 이해되는 듯 해도 곧바로 지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고 문재인 의원은 "상대가 반론을 제기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에 동의한 것처럼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이 내용을 신뢰할 수 있다면 굵게 표시한 내용은 서로 상극이라고 할 수 있을만하다. 따라서 두사람의 이러한 기본적인 성격차로 인해 나타난 불신 등이 오늘날의 사태를 만들었다는 말도 있다.

물론 반박도 있다. 바로 두 사람 모두 현실 정치인이라는 것. 정치인이다보니 자신이 대표하는 지지층, 세력이 서로 융화하기 어려워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었다는 반박의견이다.[4]

3.1.2. 상세

2015년 12월 초, 둘 사이에서 펼쳐지는 끝모를 일종의 핑퐁 게임은 2012년 대선의 불완전했던 단일화의 앙금을 해소하지 못한 탓에 나온 공산이 크다. 비록 단일화가 불완전했더라도 18대 대선 야권 단일 후보였던 당시 문재인 후보가 승리했으면 '자동으로 안철수 차기 1순위 후보'가 되어서 이 정도로 심각한 분란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문재인은 대선에서 패배했고 그 결과로 양측의 앙금이 곪아터지다 못해 이 지경에 이르렀다. 대선이 끝난지 한참 지났음에도
  • 대선 당시 친노 지도부 2선 후퇴
  • 문재인의 안철수 자택 방문 시 문전박대 논란
    문재인 측과 지지자 일부는 안철수의 협량함을 비난했으나 안철수 측은 자신이 자택에 없음을 사전에 알렸는데도 불구하고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그런 행동을 했다고 반박한다.
  • 유세, 선거지원 논란
    • 안철수의 대선 날 미국 출국
      문재인의 지지자 중 일부는 '안철수가 미국으로 도망쳤다!'는 등 행보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안철수는 자신이 문재인 후보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문재인 후보 측에 사전에 통보하고 미국으로 출국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사후에 당시 문 후보와 민주통합당측이 고마워했다고 밝혔다. 당시 민주통합당의 박영선 의원은 기존 정치인과 다른 순수함이 드러났나고 말하기도 하였다.
      • 안철수는 당시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될 줄 알았다고 밝혔다. 당시 인터넷의 여론도 마찬가지였으나(특히, 투표율 75%가 넘자 더욱 그랬다.) 현실은...
        물론 인터넷의 주 이용층이 10대~30대이고 40대 이상의 이용자들은 상대적으로 10대~30대 이용자들보다 적은비율을 차지한다. 더불어 (구)정치, 사회 갤러리일베저장소등 보수적인 성향의 유명한 사이트가 있다 해도 20~30대 젊은 유권자는 중도 내지 진보 성향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세대별로 대통령과 정권에 대한 선호도의 차이가 있다.[5]
  • 앞의 내용을 종합한 18대 대선 책임론
    일부의 문재인 측과 지지자는 '안철수가 제대로 도와주지 않아서 대선해서 패배했다!'라고 주장하고 그에 대한 반박으로 일부의 안철수 측과 지지자는 '더 높은 지지율에도 대선후보를 양보했음에 불구하고 대선 패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3.1.3. 그래서, 결국 진검승부

위의 모든 사항이 합쳐져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 둘의 승부가 벌어졌다. 그리고 이후 사항은 제19대 대통령 선거/지역별 결과제19대 대통령 선거/정당별 결과 내용 참조.

4. 제3지대 정치인

4.1. 금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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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21대 국회 기준으로 전현직 모두 참여하고 있다.[2] 《화성남자 금성여자》라는 유명한 베스트셀러의 제목을 따서 둘을 비유하는 말.[3] 보수 정권 연장을 막기 위해 똑같이 출마했었지만 양김은 단일화가 무산되었고, 문/안은 단일화를 하였다. 그렇지만 똑같이 보수 정권이 연장된다. 그리고 똑같이 같은 당에 있었다가 양김은 김대중이 대선을 앞두고 탈당하였고 문/안은 안철수가 총선을 앞두고 탈당하였다. 이후 양대 민주정당이 공존하다가 양김은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이 3당 합당으로 보수 계열 쪽으로 이동하였고 문/안은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바른정당과의 합당을 통해 바른미래당을 창당하여 똑같이 보수 계열 쪽으로 이동했다. 안철수는 동교동계 인사들로 인해 김대중과 접점이 있고 문재인은 노무현으로 인해 김영삼과 접점이 있으나, 정작 보수 쪽으로 합당한 것은 문재인과 친노계가 아니라 안철수와 동교동계였다.[4] 그런데 단순히 지지기반에 따른 불화(?)라기엔 문재인김무성의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가 설명이 안 된다. 이 둘의 관계는 지지기반이 아예 정반대인데.[5] 20~40대까지는 노무현에 대한 선호도가 높거나 같고 50대는 차이가 조금 나기 시작하고, 60대 이상부터는 박정희의 압승 참고 자료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에게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낮은 이명박은 퇴임 시 김대중의 기록을 깨고 역대 최고 지지율로 퇴임했다. 심지어 넷상에선 굉장히 험한 말까지 나오는 박근혜 대통령은 30%의 탄탄한 지지율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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