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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이탈주민의 대한민국에서의 현황에서 북한이탈주민의 경제 활동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2. 북한이탈주민이 생기는 역사와 경제적 이유
한 탈북자가 말하길 "자신은 나이든 남자 탈북자들 중 꽤 드물게 남한에서 자격증도 여러 개 따고 취직하여 성공한 사람이라면서 같은 기수로 남자 하나원을 수료한 10여명의 비슷한 나이대의 친하게 지내던 이들 중 두 사람은 자살하고 나머지는 죄다 실업자에 알코올 중독, 정신 이상으로 인한 치료, 한 사람은 교회에 광적으로 빠져들어서 다른 탈북자에게 신앙을 강요하다가 그만 싸움이 벌어져 칼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특히 나이든 남자 탈북자 동료들 가운데 자신만이 성공했다고 아쉬워하면서 나이든 남자 탈북자들은 여성이나 젊은 남자 탈북자에 비해 적응을 못해 처지가 힘들다고 증언했다. 이렇듯 남한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례가 많다.이걸 가볍게 보면 안 되는 이유가 탈북민들이 남북통일의 바로미터이듯 통일 이후 발생하는 위화감이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실상을 잘 아는 집단이 북한이탈주민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탈북민은 일반적인 북한 주민들에 비해 굉장히 적극적으로 자유를 찾아나선 사람들이고 그렇게 목숨 걸고 탈출하지 않은 일반 주민들은 통일 후를 가정하면 더더욱 적응하기 힘들어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탈북민조차도 적응하지 못하는 사회라면 통일 후 치안이나 경제적인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일부, 이북5도위원회에서 특별한 복지 프로그램 등을 만드는 것이다.
보편적인 이민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엘리트 출신이 여기서도 적응을 잘한다고 한다. 1980년대 동유럽에서 유학한 엘리트라든지 아님 북한의 유수의 대학 출신들이나 외국에서 노동한 사람들의 경우 적응력이 강하다. 아무리 폐쇄적인 나라라고 해도 바깥 세상에 더욱 잘 알고 교육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의 탈북자 사회 부적응 문제는 이런 엘리트층이 아닌 일반 주민들이, 특히 현재보다도 정보 유통이 잘 되지 않으며 시장화가 더딘 시절 대거 탈북하여 한국에 입국한 결과이기도 하다.[1] 또 이들 중 북한에서부터 외화를 많이 소지하고 있던 사람들도 많아서 그 돈을 그대로 남한에서 사용하며 경제적으로 풍족한 부유층이나 못해도 중산층으로 사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북의 외교관, 무역일꾼 중에 외화벌이 사업으로 벌어들인 거액의 달러를 들고 넘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해외에서 한국의 정보기관에 접촉해서 정보를 넘겨주는 대가로, 보통 자신이 관리하던 달러에 대해서 일체의 조사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부연하면 북한의 대외 비자금 중 일부는 마약, 위조지폐, 밀수 등 범죄행위로 번 것이다. 이들은 이런 출처가 불분명한 돈을 들고 올테니 묵인해달라는 것이다. 놔두면 어차피 북한 정권으로 들어갈 돈이니 그냥 넘어가는 듯하다. 심지어 북한의 상류층, 엘리트층에는 자녀 교육 문제 때문에 탈북해서 대한민국으로 오는 사람들도 있다.[2] 수적으론 많지 않지만 북한군 현역 군인, 특히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은 장교의 경우엔 특별임관을 통해 한국군 장교로 복무하는 경우도 있다. 북한군 공군 조종사 출신인 이웅평 대령이나 이철수 대령, 북한 민경대대 참모장 출신인 신중철 예비역 대령이 대표적인 예이다.#
젊은 세대, 도시 지역에 거주했던 거주민, 최근에 온 사람일수록 적응에 소요되는 기간이 짧은데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경우 탈북한 지 1년이 되지 않아도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그리고 같은 농촌이라도 국경 지대가 훨씬 더 적응에 유리하다. 주민들끼리 자본주의를 하는 경향이나 의지가 정부의 의지와 무관하게 심화되기 때문이다. 북한 자체가 1960년대~80년대의 사회적 변화보다 90년대 이후의 변화, 특히 2010년 이후의 변화가 심하다.
2010년대 이후에 온 사람 중에는 한국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 북한에서 한국식 외래어를 익혔거나, 북한에서 부동산 투자를 한 경우, 단순 장사를 넘어 20대 때 빌린 돈으로 인건비 등을 지급하는 투자를 한 경우도 있다.# # 금융 지식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으나, 2015년 기준 다문화가정을 포함한 이민자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평균적으로 거주 기간이 늘어나고, 북한 자체에서도 기본적 시장경제를 경험한 사람이 늘며 2021년 기준 일반 국민과의 더 격차가 줄어들었을 수도 있다.# # 다문화가정 등 이민자들도 금융 지식이 부족하니 2021년에도 탈북민에게도 금융 교육에 대한 관심이 있긴 하지만, 완전한 문외한은 아니다. 사기를 많이 당하는 것은 이들이 한국어를 잘해서 혹은 같은 나라라고 여기기 쉽기 때문이다.
대체로 북한에서 한 일과 비슷한 일을 탈북 후에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술이나 선전 분야 종사자, 안내원 등의 일을 했던 사람은 가수나 유튜버, 기타 분야의 예술인이나 관광 가이드 등이 되는 경우가 있다. 북한에서 장사를 잘했던 사람은 여기서도 장사를 잘 하는 경향이 있다. 옥류관 등에서 요리한 요리사들이 남쪽에서도 식당 등 요식업에 종사한다. 기술을 잘 다루는 사람도 여기서도 그와 관련된 일을 할 가능성이 높다. 당 간부, 명문대 출신이나 공부를 잘했던 사람은 정치 활동을 하거나 대학원을 가거나 기자를 한다.
물론 경제적 여건이 약간 어렵기는 하지만, 이런 저런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탈북자가 전체 중 확실한 다수를 차지한다. 탈북자가 없는 것 같아 보여도 한국 사회 내부에는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가게에서 단골 손님인 사람이 친해져서 아무렇지도 않게 탈북자라는 사실을 밝힌 적이 있다. 그 사람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북한에 비하면 생활 여건이 엄청나게 좋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한국인 서민층이 조선로동당 간부보다 더 부유하다고 한다. 물론 이는 사실이다. 특히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 성장을 이루어 70년대 이후 북한 경제와 엄청난 격차가 벌어졌으며, 명실한 선진국으로써 소득면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에 반해 북한은 고난의 행군기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아직 탈북민에 관한 차별, 부적응 문제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지만 한국에 정착하는 것에 만족하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다수다. 통일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74.2%가 한국 생활에 만족한다. 경제 활동 참여율은 2018년 이후 한국인의 평균 값과의 차이가 1%대로 줄어들었고, 고용률과 실업률 지표도 2010년대 초반에 비하면 개선된 편이다. 과거에 비해 취업 인구도 증가하고 그 만큼 중산층 이상에 편입되는 비율도 높아졌다. 임금 격차도 아직은 2019년 기준 일반국민의 임금이 260만원 대이지만 탈북민이 200만원 대라 60만원 대인데, 2011년에 한국인들의 평균 소득이 200만원인데 차이가 80만원이 나던 시대보다는 개선된 편이다.# 한국 정착 탈북자의 성비는 2019년 기준 남성 28%, 여성 72% 정도 되는데 여성이 220만원, 남성이 324만원을 받는 남한에 이 성비를 대입하면 250만원 가량이 되어 성별이 같을 경우 남한이 25% 가량 높다.# # 참고로 2019년 독일 기준 서독 출신이 성별, 직업, 경력을 유사하게 맞출 경우 동독 출신보다 17% 정도 높다. 물론 이는 독일이 통일되고 난 뒤 구 동독 지역의 인구가 베를린을 제외하면 유출된 것도 있다. 경제 문제에서 참고하기 좋은 예시다.# 경제 활동 참여율도 2019년 한국은 남성 73.5%, 여성 53.5%에 전체 63.3%인 격이라 같은 기간 62.1%인 탈북민과 비교하면 성별 비중을 유사하게 맞춘 집단에서는 탈북민 쪽이 경제활동 참여율이 높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에 대한 연구 같은 건 부족하지만 돈을 벌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모양이다.
3. 탈북자들 중 북한에 남은 가족들과 연락이 될 경우
탈북자들 중 북한에 남은 가족들과 연락이 될 경우[3] 번 돈을 브로커를 통해서 북한의 가족들에게 송금해 주는 경우가 있다. 일부 탈북자 가족들은 이렇게 송금한 돈으로 북한에서 제법 윤택한 생활이 가능해서 다른 북한 주민들에게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백두혈통과 연결된 특권층들을 '백두산 줄기'라고 부르는 것에 빗대 '한라산 줄기'[4], '후지산 줄기'[5][6]라고 해서 일종의 특권층 대접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탈북자들이 보내 준 돈들이 장마당 등을 통해 북한 사회에서 유통되면서 북한 내 자본주의 경제를 돌아가게 한다는 건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그러나 2020년 들어서는 북한 당국의 단속이 심해졌다. 국가보안법과 같은 다른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단순 송금 행위는 불법이 아니다. 대북전단금지법에 따라 그동안 법적 지위가 불안정하였던 이 행위가 아예 불법이 된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정부는 이것을 아예 허용한다고 주장했다.# #4. 결론
이제는 단순 경제적인 지원보다 사회 통합을 원하는 의견도 있다. 강렬한 '고난의 행군'과 빈곤 이미지가 일반 국민들에게 편견을 불러일으켜 남북 통합과 탈북민들의 남한 사회 적응에 걸림돌이 된다고 한다는 요지이다. 또한 북한이탈주민 정착 지원 사업을 통일부가 아닌 행정안전부 혹은 광역자치단체에 옮기고, 일반 국민과 굳이 구분하기 보다는 저소득이면 저소득계층을 위한 행정을 주장하기도 한다. 2019년 탈북 모자의 사망도 지원 제도의 부재가 아니라, 일선 공무원의 관심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탈북민들이 대체로 대한민국에 호의적이고[7], 한국 사회에서도 북한 지역을 대한민국의 일부로 교육하기에 조선족에 비하면 국민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반감이 적다. # 다만 복지 혜택에 대해서는 부정적 정서도 존재해 정부가 탈북민의 자립 능력을 효율적으로 키우고, 공정성을 더 세심히 고려하는 등 이를 반영한 정책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1] 태영호는 같은 외교관 출신인 고영환과 같은 2000년대 이전 탈북자와 달리 10년 넘게 한국 매체를 접하기도 하여(2010년대 이후에 오는 사람의 경우 90% 이상은 한류를 접하고 온다.) 적응이 빨랐고 거기에 애당초 태영호 본인은 외교관, 아내도 오백룡의 자손으로 엘리트층에 가까웠고, 그 덕에 상당히 빠르게 재적응하여 국회의원 직까지 수행 중이다. 고영환도 아예 사회부적응자는 아니고 공부는 잘했으므로 정치적인 이해를 잘해 태영호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2] 태영호의 '3층 서기실의 비밀'에서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양외국어대학 출신 탈북자들이 생각보다 많고 이들 중 상당수가 중산층보다 잘 산다고 밝혔다.[3] 탈북자의 한국행이 발각되지 않아 가족이 수용소 행 등 크게 처벌받지 않은 경우이다. 북한에서 생계를 위한 중국으로의 탈북은 한국으로의 탈북보다 처벌 수위가 훨씬 약하다. 북한의 국경 경비대도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뇌물을 뜯으려고 잡으러 다닐 정도. 물론 재수없이 단속강화기간에 걸리면 짤없다.[4]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의 가족들.[5] 일본에 정착한 탈북자, 혹은 재일 조선인의 가족들.[6] 다만 재일교포에 대한 북한에서의 대접이 나쁘고 혈연적으로도 거의 단절되어 가는데다 조총련의 상태도 그리 좋지 않기 때문에 '후지산 줄기'는 여러모로 전망이 좋지 않다.[7] 탈북민은 자신을 한국인으로 여긴다. 북한 정권, 북한군을 부정적으로 보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도 북한 주민 전원을 한국인으로 간주하며 통일을 지지하며, 탈북민들도 같은 의견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