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anderer 반더러 | |
| | |
| <colbgcolor=#20613B><colcolor=#FFFFFF> 기업명 | <colbgcolor=#FFFFFF,#1F2023> 정식 Wanderer-Werke AG |
한글 반더러-공업 주식회사 | |
| 설립일 | 1896년 |
| 해체 | 1945년 |
| 설립자 | 요한 밥티스트 윙클호퍼 리하르트 아돌프 예니케 |
| 소재지 | 작센 자유주 |
| 업종 | 자동차 제조업 |
| 모기업 | 아우토 우니온 |
1. 개요
독일에 존재하였던 프리미엄 자동차 제조사이다.2. 역사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승합차 및 기타 기계를 제조했으며, 1941년까지 민수용 자동차를, 1945년까지 군용 차량을 생산했다.1896년 요한 바프티스트 빈클호퍼와 리하르트 아돌프 예니케가 빈클호퍼 앤 예니케라는 이름으로 켐니츠에서 설립되었다. 1902년부터 오토바이를, 1903년부터 자동차를 생산했으며, 현재의 명칭은 1911년 수출을 염두에 두면서 추가되었으며, 이후 독일 내수 시장에서도 적용하였다.
최초의 2인승 또는 3인승 차량은 4기통 1,145cc 및 1,220cc 엔진을 사용했다. 1,220cc 차량은 1925년까지 유지되었다. 최초의 6기통 차량은 1928년에 등장했다. 반더러가 성공적인 Typ 10을 선보인 1926년까지 이 회사는 하루에 25대의 차량을 생산했으며, 부품은 켐니츠의 옛 공장에서 만들어져 1927년에 지어진 지크마르의 새 공장으로 조립 라인까지 철도로 바로 배달되어 조립되었다. 오토바이 생산은 켐니츠에서만 계속되었다.
대공황 기간인 1929년에 회사 소유주인 드레스드너 은행은 오토바이 사업을 프란티셰크 야네체크에게 매각했고, 1932년에는 반더러의 나머지 부문을 매각했다. 지크마르 공장이 있는 자동차 부문은 호르히, 아우디, DKW와 함께 아우토 우니온의 일부가 되었다. 이 4개 회사 체제에서 호르히는 고급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DKW와 슬라비-베링거는 저렴한 2행정 자동차를 만들었으며, 아우디와 반더러는 뷰익 및 올즈모빌의 매스티지 역할을 담당하였는데, 중형 및 준대형급에서 기술적으로 진보된 소형차로 경쟁했다. 나치 시대의 반더러 차량은 문장 방패 모양의 트레이드 마크 라디에이터 디자인으로 변경되었다.
다음 차량인 W17 7/35 PS는 페르디난트 포르셰가 개발한 새로운 1,692cc OHV 4기통 엔진으로 구동되었다. 1933년에 새로운 아우디의 전면부에는 역시 포르셰가 설계한 1,950cc OHV 6기통인 반더러 W22 엔진이 장착되었다. 1936년부터 1939년까지의 최고급형은 2,257cc 6기통 엔진으로 구동되는 W50이었으며, 1937년부터는 스포츠형 4기통 차량과 아우토 우니온이 자체 제작한 새로운 플랫헤드 엔진으로 구동되는 ,2632cc의 또 다른 6기통 사양도 있었다. 반더러 자동차는 항상 높은 품질과 스포츠 특성으로 당시에 찬사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부터 모든 민수용 생산은 슈타이어 1500A 경트럭과 같은 라이센스 생산 군용 차량으로 대체되었다. 플로센뷔르크 강제 수용소의 하위 수용소인 KZ 지크마르-쇠나우는 반더러 차량 공장에 노예 노동력을 공급하는 형태로 공장 운용을 지속하였다. 1943년부터 아우토 우니온 지크마르 공장은 독일 국방군의 많은 중전차에 사용된 마이바흐 HL230 V12 엔진을 생산하였다.
아우토 우니온의 반더러 지크마르 공장은 1945년 초에 파괴되어 자동차 역사의 이 장을 마감하였다. 동독 자동차 산업을 복구하려는 전후의 노력은 츠비카우와 초파우에 있는 아우토 우니온 시설에 집중되었다. 반더러 자동차 전후에 완전히 중단했으며, 아우토 우니온은 서독의 잉골슈타트로 이전하여 DKW, 아우디 위주로 재건하였다.
2.1. 해체 이후
1946년 6월 30일에 실시된 국민투표를 통해 점령군인 소련군이 전쟁 및 나치 전범들의 재산을 몰수하면서, 동독 지역에서 아우토 우니온 기업 모두가 부분적으로 해체되었고, 그들의 자산은 1948년까지 소련에 대한 배상금으로 징발된 후 국영기업의 재편성으로 이어졌다. 지크마르의 자동차 공장은 차량 건설 산업 협회의 일부로 할당되었고, 나중에 VEB 바르카스-베르케의 일부가 되었다.한편, 초기에 VEB 반더러-프레스마쉬넨바우로 계속되던 공작 기계 부문은 1951년에 VEB 프리츠-헤케르트-베르크로 변경되었다. 이 회사는 나중에 VEB 공작 기계 콤비나트인 프리츠-헤케르트의 모회사가 되었다.
쇠나우의 사무용 기계 사업은 VVB 메카니크의 산하에 있는 VEB 반더러-콘티넨탈 사무용 기계 공장으로 재구성되었다. 이후 이전의 아스트라베르케 AG와 합병되어 1953년에 VEB 뷔로마쉬넨 켐니츠로 형성되었으나, 2년 후 VEB 인두스트리베르케 카를-마르크스-슈타트로 다시 분사되어 항공기 엔진 생산을 위임받았다. 타자기 생산은 에르푸르트의 옵티마 사무용 기계 공장으로 넘어갔고, 계산기와 부기 기계는 카를-마르크스-슈타트의 VEB 부기 기계 공장에서 추가로 개발 및 제작되었다. 1961년 동독의 자체 항공기 제작이 중단된 후, 이 산업 공장에서는 유압 펌프와 차량 엔진을 제조하였다. 그 중 작은 부분은 통일 후에도 작센히드라울릭 GmbH로 가까스로 남아 있다가 결국 미국 기업 파커-하니핀 쪽으로 넘어갔다.
한편, 1945년 이후 반더러의 모체는 자체 사업 운영이 없는 금융 지주 회사로 마지막까지 활동하다 2010년 7월에 파산하였다. 이후 이 브랜드는 쾰른에 기반을 둔 제조업체 츠바이라트 아인가우프스 게노센샤프트에 인수되었다.
3. 생산 차량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word-break:keep-all; min-height:2em"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colbgcolor=#20613B> 분류 | 단종 차량 |
| 중형차 | W22 · W24 | |
| NSU의 차량 | ||
| 데카베의 차량 | ||
| 호르히의 차량 | ||
| 아우토 우니온의 차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