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13:41:00

박해민/선수 경력/2014년

박해민/2014년에서 넘어옴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박해민/선수 경력/삼성 라이온즈
박해민의 연도별 시즌 일람
2013년 2014년 2015년

1. 페넌트 레이스
1.1. 4월1.2. 5월1.3. 6월1.4. 7월1.5. 8월1.6. 9월 ~ 10월
2. 포스트시즌3. 총평4. 관련 문서

1. 페넌트 레이스

1.1. 4월

원래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가 4월 12일에 이상훈과 함께 1군으로 올라와 주로 대주자 및 외야 백업으로 출장했다.

4월 18일 NC 다이노스전에서 9회 초 정형식의 대수비로 출장해 이후 타석에서 3루수 앞 번트안타를 기록해 데뷔 첫 안타를 기록하였다.영상 그 당시 박해민에 대한 정보가 없었는지 3루수로 출장한 지석훈이 여유 있게 볼 처리를 했고 빠른 발로 열심히 달려 안타로 만들 수 있었다.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깔끔하게 안타를 쳐내고 싶었다고 한다.

4월 24일 LG 트윈스전에서 9회 말 이승엽 대신 대주자로 출장해 재치 있는 주루를 보였다. 1사 1,3루 상황에서 3루 주자로 있던 중 이영욱봉중근의 견제에 걸리자, 박해민은 홈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박해민이 동점 주자였기에 LG 내야진은 박해민을 견제했고, 그 사이 이영욱은 무사히 1루로 복귀할 수 있었다. 실제로는 박해민은 홈으로 달리려고 하지 않아 바로 3루로 복귀했고, 공이 3루로 가는 사이 2루가 비면서 이영욱은 다시 2루로 향했다. 이영욱의 단독 도루로 기록되긴 했지만 박해민의 재치 있는 주루플레이 덕분에 자칫 2사 3루가 될 상황이 1사 2,3루로 변한 것. 결국 봉중근은 이흥련김상수를 상대로 연달아 볼넷을 내주면서 동점을 허용했고, 결국 10회 말에는 최형우에게 끝내기 안타까지 맞았다.

이후로도 꾸준히 1군 경기에 대주자 및 대수비로 출장하고 있었다. 물론 기존 대주자로 쓰던 강명구가 스캠에서 입은 부상으로 DL이었던 점도 감안해야 하고. 5월 말에 강명구가 1군으로 콜업되면서 대주자로 경쟁하게 되었다.

1.2. 5월

5월 9일 경기 전, 호텔에서 나가기 전에 전력 분석을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었다. 대주자나 대수비로 나가리라 생각했는데 7번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왔다. '좌투수' 선발이라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부모님에게 전화해야 하는데 손이 떨려서 전화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박해민은 서울 출신이고 잠실 구장을 많이 가고 잠실 구장에서 뛰어보는 게 꿈이었는데 그 꿈의 무대에 선발로 나간다는 것에 크게 긴장했고, 최형우를 포함한 많은 팀 동료들이 긴장을 풀어주려고 많은 도움을 줬다. 유희관이 컨트롤이 워낙 좋은 선수인지라 경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 초구를 쳐도 되냐고 물어봤다. 팀 동료들은 초구를 쳐도 된다고 조언했다.

정형식을 대신해 생애 처음으로 중견수로 선발 출장을 했다. 2회초 첫타석에는 보내기 번트 사인이 와 보내기 번트를 성공했다. 4회초 두 번째 타석에 두산 베어스 유희관을 상대로 초구에 스윙해 프로 첫 3루타를 쳤다.영상9회초 이용찬을 상대로 2타점 적시타를 때려내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5월 16일,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미칠 듯한 호수비를 보여주며 주목받는 선수가 되었다.영상

1.3. 6월

6월 8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선 선발 1루수로 나왔던 채태인이 1회초 상대 선발 투수 송창현의 사구에 무릎 부상을 입자 1회말부터 1루수를 봤다. 당초 채태인의 부상 소식에 박석민의 포지션 이동설이라든가 이승엽의 1루 투입설[1]이 있었으나 6이닝 넘게 1루 수비를 보며 안정적으로 끌어가 주었다. 공격에서도 7회 상대 3루수였던 송광민이 번트된 공을 잡기 위해 뛰어오는 것을 노려 키를 넘겨버리는 번트를 성공시켜[2] 번트 2루타로 출루 후 최형우의 안타로 득점에 성공했다.영상 결국 이날 경기는 7:2로 삼성이 승리했다. 이후에도 종종 1루 수비를 맡는데, 강습타구를 제외하면 나쁘지 않은 수비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6월 14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야마이코 나바로가 복통으로, 채태인이 타격 부진으로 선발 라인업에서 빠지면서 처음으로 1번 1루수로 선발 출장해 5타수 5안타로 맹활약했다.영상 그 날 팀은 임창용이 블론했음에도 김상수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했다.

1.4. 7월

7월 6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6회 초 노경은을 상대로 담장을 살짝 넘기는 데뷔 첫 홈런을 때려냈다.영상 그런데 이 공[3]을 잡은 아이의 어머니가 쉽사리 공을 넘겨주지 않았고, 결국 가방에 보관했다가 따로 뒤에서 협상까지 하러 가는 듯한 모습까지 생중계로 비춰졌다. 보통 이런 소소한 홈런볼은 싸인볼이나 싸인유니폼 정도로 교환하는 게 보통이나, 야구문화에 익숙지 않아서 선뜻 건네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파울볼이든 홈런볼이든 전적으로 잡은 사람 마음이고, 진짜 그 관중이 협상까지 갈 정도로 딜을 했는지도 불분명한 상태지만 이미 웹상에선 신인 공 하나로 팔자 고치려든다, 신인한테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광역으로 까이는 중. 결국 그 관중은 정수빈과의 사진촬영 + 정수빈 유니폼 + 테이블석으로 이동하는 것까지 세 가지를 모두 받아내 협상왕이라는 찬양을 받는 한편 팬들이 정수빈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했다. 자세한 내용은 두산 베어스/사건 사고 문서 참고.

KBO 올스타전에 감독추천 선수로 선발되었다

1.5. 8월

8월 23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6:4로 끌려가던 3회 1사 2,3루 상황에서 동점 적시타를 때리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9:8로 다시 끌려가던 7회 상황, 선두타자로 나서 3루 쪽으로 기습번트를 댔고, 무난하게 1루에 안착하는 사이 3루수 최정의 악송구로 3루까지 진출, 후속타자 김상수의 유격수 땅볼 때 득점에 성공했다. 이 날 삼성은 많은 기록[4]을 쏟아내며 10:9로 승리했다.

8월에 음주운전 사고로 정형식이 시즌 아웃되면서 기회를 완전히 잡았다.[5]

1.6. 9월 ~ 10월

9월 들어서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역적이 된 경기가 많다. 주루사, 견제사, 상황에 맞지 않는 타격이 잦아졌다. 휴식이 필요한 상황.

2. 포스트시즌

2.1. 한국시리즈

2014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주전 중견수로 나왔으나 10월 5일 2차전에서 3회말에 도루하는 과정에서 왼손 약지가 꺾이는 부상을 당했다. 공수교대 후 병원에서 검진 받은 결과 약지 인대 50%가 손상됐다. 이로 인해 박해민의 향후 한국시리즈 출장은 불투명해졌지만 6일 병원에서 진통 주사를 맞고, 7일 경기를 앞두고는 배팅 훈련까지 소화했다. 하지만 류중일 감독은 보호 차원에서 대주자나 대수비로만 기용할 것이라고 한다.

파일:/image/076/2014/11/07/2014110701000976100056811_99_20141107212302.jpg
11월 7일 3차전에서는 8회초 최형우 대신 대주자로 출장했는데, 사진에서 보다시피 왼손에 벙어리 장갑 같은 보호장갑[6]을 끼고 나왔다. 이승엽의 중견수 앞 안타로 득점하면서 팀의 첫 득점을 기록했고, 9회초 박한이의 2점 홈런으로 팀이 역전한 후 타석에 들어섰는데 삼진으로 물러났다. 9회말에는 유한준의 안타성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잡는 호수비를 보여줬다.

11월 10일 5차전에서 선발로 투입되었다. 이틀 전 4차전에서의 큰 패배로 흐름이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 그 이유인 듯. 하지만 8회말 1사 만루 찬스에서 범타로 물러나는 등 4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다행히 팀은 9회말 최형우의 극적인 끝내기 안타로 이겨 무리하게 출장한 박해민이나 출장시킨 류중일에게 비난이 향하지는 않았다. 6차전에서는 대수비로 출장했다.

3. 총평


4. 관련 문서


[1] 이 경우 지명타자가 소멸되기에 채태인의 타순 3번엔 투수가 서야 한다! 것도 2회 공격부터! 졸지에 내셔널리그 또는 센트럴리그 식으로 경기를 풀어가야 한다![2] 선두 타자여서 장비를 차고 있는데 김한수 타격 코치가 3루수 키를 넘겨보라고 조언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보여주려고만 했던 것이 마침 공이 잘 와 닿아 성공했다.[3] 선수 개인에게는 굉장히 의미있는 공이다. 반대로 박해민 이외의 사람이라면 그냥 야구공이랑 다를 바가 없는 수준의 가치를 가진다. 사실 박해민이 이후 레전드급 선수가 된다면 가치가 더욱 오를 수는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시점에선 이미 시간이 크게 흐른 후일 테고 기록 경신한 공 같은 게 아닌 이상 개인이 가지고 있는 그 야구공이 1호 홈런공이란 어떠한 보증이나 인식장치도 없기에 그 가치를 절대 인정받지 못한다. 한마디로 선수 본인이나 그 선수의 열렬한 팬이 아닌 다음에야 딱히 의미가 없다. 그 선수의 팬이면 흔쾌히 기증할 거란 건 거의 불문율과 비슷해서 불 보듯 뻔한 일이고.[4] 박한이의 개인 통산 1000득점, 류중일 감독의 최소경기 300승, 김상수의 구단 역사상 한 시즌 최다 도루(48개)[5] 물론 정형식이 부진했기 때문에 정형식이 남았더라도 박해민에게 기회는 더 많이 갔을 것이다.[6] 스노보드용 장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