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14:02:32

마츠오카 신야 군 실종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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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오카 신야 군 실종 사건
徳島男児失踪事件
(松岡伸矢くん行方不明事件)
파일:wada-ryuto-matuoka-sinnya.jpg
실종 당시 마츠오카 신야 군의 모습
<colbgcolor=#ddd,#0f0f0f> 발생일 1989년 3월 7일
발생지 일본 시코쿠 지방 도쿠시마현 사다미츠정(貞光町)
유형 실종
원인 납치 (추정)[1]
위치
1. 개요2. 실종자3. 20초 만에 사라진 아이4. 의문의 전화5. 신야에 대한 목격담6. 그 밖의 정보7.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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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9년 3월 7일, 일본 시코쿠 지방 도쿠시마현 사다미츠정(貞光町)[2]에서 일어난 미스테리어린이 실종사건으로, 당시 4세였던 마츠오카 신야 군이 아버지의 시야에서 멀어진 20초 사이에 실종되어 [age(1989-03-07)]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행방이 묘연한 사건이다. 일본 3대 미해결 어린이 실종사건으로도 꼽힌다.

2. 실종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마츠오카 신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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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초 만에 사라진 아이

1989年徳島県男児行方不明事件

이 사건의 발단은 신야의 외할머니의 죽음이었다. 신야는 가족과 함께 이바라키현(茨城県) 우시쿠시(牛久市)에 살고 있었는데 신야의 외할머니, 즉 신야의 어머니 마츠오카 케이코의 친정어머니가 사망하자 온 가족이 도쿠시마현 코마츠시마시에 가서 장례식에 참석했다. 이들은 코마츠시마시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사다미츠정[3]에 있는 케이코의 친척집에 가서 하룻밤을 지냈다.

다음날인 3월 7일 신야의 아버지 마츠오카 마사노부(松岡正伸)는 아이들과 친척, 조카들을 데리고 집 근처를 가볍게 산책했다. 아침밥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산책은 10여 분 정도로 끝났다.

마사노부의 진술에 따르면 친척집에서 현관까지 10m 정도 돌계단이 있는데 이때 신야가 분명 자신의 뒤를 따라서 현관 앞까지 왔다고 한다. 신야가 좀 더 산책하고 싶은 것 같아서 마사노부는 빠른 걸음으로 돌계단을 지나 집 앞 대문으로 가서 안고 있던 둘째 아들을 부인 케이코에게 넘겨주고 다시 현관 밖으로 나왔는데 현관 앞에 서 있어야 할 신야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마사노부가 둘째 아들을 부인에게 건네주고 현관으로 나올 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0초 정도였다.[4] 마사노부는 신야가 근처에 갔나 해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신야를 찾을 수 없자 온 가족이 나서서 근처를 샅샅이 뒤졌지만 도무지 아이를 찾을 수 없었고 친척의 연락으로 마을의 소방대원도 동참해서 수색했지만 신야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오전 10시에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처음에는 신야가 근처 산을 헤매다가 실종된 걸로 여겨서 관할 경찰서 인력의 절반을 비롯해 현경기동대, 마을 소방대원, 자원한 일반 시민 등 100여 명이 나서서 을 수색했지만 그럼에도 신야를 찾지 못하자 다음날에는 수색 인원을 배로 늘려 200여 명이 동원되었고 3개월 동안 수색을 벌였지만 신야의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사건 현장인 케이코의 친척집은 길목의 끝자락에 위치한 곳이라서 외부인의 출입이 거의 없었던 데다 마사노부의 시야에서 신야가 사라진 시간이 불과 1분도 안 되는 매우 짧은 시간이라서 그 사이에 신야를 누군가 납치한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경찰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사건 현장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밭이 있었는데 그 밭에서 일하던 마을 주민들은 '외부에서 온 차 같은 건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더군다나 신야의 가족이 이곳에 온 것은 사건 발생 전날로, 마을 사람들은 신야의 가족이 온 것을 신야가 실종된 당일에야 알았다고 한다. 뺑소니 가능성도 제기되었지만 경찰의 수색 결과 교통사고의 흔적을 일절 찾지 못했다.

4. 의문의 전화

신야의 가족들은 도쿠시마현의 친척집에 남아서 신야의 소식을 기다렸지만 도무지 신야를 찾을 수 없게 되자 열흘째가 되는 3월 17일이바라키현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출발 전날인 3월 16일 도쿠시마의 친척집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자신을 신야와 신야의 누나가 다니던 유치원인 '이바라키현 세이케이 유치원'에 다니는 나카하라 마리코의 어머니라고 말하면서 "세이케이 유치원 달님반에서 신야의 실종사건과 관련해 가족들을 위로하려고 위문금을 모았는데, 언제 집으로 돌아오시느냐?"라고 묻자 케이코는 "내일 돌아갈 예정"이라고 대답했고 통화가 끝났다.

신야의 가족이 이바라키현 집으로 돌아온 뒤 며칠이 지나도록 위문금을 전달하겠다는 소식이 없자 신야네 가족이 먼저 세이케이 유치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유치원 측으로부터는 "위문금을 모은 사실이 없으며, 나카하라 마리코라는 원생도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당시 전화가 걸려왔을 때 케이코에게 전화를 건네준 마사노부는 전화를 건 사람이 어미(語尾)가 올라가는 도쿠시마 사투리를 썼던 것을 기억해냈다.

이 전화가 미스테리한 것은 '만약 이바라키현에 사는 사람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면 어떻게 신야네 친척집의 전화번호를 알고 전화를 걸었으며, 반대로 도쿠시마현에 사는 사람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면 어떻게 신야가 다니던 유치원의 이름을 알았겠는가.'라는 의문점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전화를 건 상대가 유치원명을 먼저 언급한 게 아니라 “유치원에서 위문금을 모았는데요”라는 말에 신야의 어머니가 “세이케이 유치원인가요?”, “달님반인가요?”라고 먼저 대답해 버렸다는 설이 있다.

이상한 전화를 걸었던 도쿠시마 억양 여자가 신야를 납치한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5] 우선 전화를 건 핵심 목적은 '신야의 가족이 언제 이바라키현으로 돌아가느냐를 알아내기 위함'이다. 신야 가족의 귀가 날짜를 알아내기 위해 나카하라 마리코라는 가상인물의 어머니라고 사칭하며 있지도 않은 위문금을 미끼로 질문을 던진 것으로 보아야 자연스럽다. 이런 행동을 할 사람은 범인밖에 없다. 만약 범인이 아니라면 굳이 있지도 않은 위문금 지급을 미끼로 신야 가족의 귀가 날짜를 알아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범인이 이바라키현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이바라키의 신야 집 주변에서 납치하는 게 편리하지, 굳이 멀리 떨어진 시코쿠의 도쿠시마까지 가서 납치할 이유도 없다.[6]

어쨌든 전화를 건 사람은 분명 신야네 가족의 신상을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있지만 이 전화가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되지는 못했다.

5. 신야에 대한 목격담

사건 이후 신야의 가족들은 TV에 출연하고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신야를 찾았지만 끝내 신야의 행방을 찾을 수는 없었다. TV 출연으로 일본 각지에서 신야를 봤다는 목격담이 나왔지만 신빙성 있는 목격담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중 가장 신빙성 있는 목격담은 2000년에 어머니 케이코의 친구의 지인이 전한 목격담으로, 신야가 사라진 다음 달에 도쿠시마현의 히와사쵸 해안에서 신야와 비슷한 남자아이를 봤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30대 후반의 남자가 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부모로 보기에는 조금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부모라면 아이에게 뭔가 말을 걸거나 할 텐데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남자아이의 얼굴도 신야와 많이 닮았다.'고 했다.

목격자는 도쿠시마현에서 자란 사람이었고 신야의 실종 사실도 알았기 때문에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다가가자 남자가 아이를 숨기려는 듯 회피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근처에 세워둔 흰색 자동차를 타고 사라졌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 남자가 북한 공작원이고 신야가 납북된 게 아니냐는 주장을 펴기도 했지만 실상은 알 수 없다. 1980년대는 북한이 일본인을 납치해가는 납북 일본인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에 미제 실종사건이 일어나면 납북 가능성을 한 번씩 짚어 보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런데 대개 납북 일본인들은 적어도 청소년, 주로 성인이었고 북한이 일본인을 납치한 주된 이유는 공작원을 외모가 비슷한 일본인으로 위장시켜서 세계 각국에 침투시키기 전에 그들에게 원어민의 자연스러운 일본어일본 문화를 가르쳐 주는 교관으로 이용하는 목적이라고 김정일이 직접 밝혔으므로 북한 공작원이 사건 당시 고작 4살밖에 안 돼 일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굳이 납치할 이유가 있는가 하는 점에서 신빙성이 낮다.

6. 그 밖의 정보

1989년은 일본 사회가 어수선한 해였다.[7] 1988년부터 이어진 도쿄·사이타마 연쇄 유아납치 살해사건이 발생하였고 1월쇼와 덴노가 사망했으며 3월에는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이 발각되었고 같은 달에는 신야 군이 실종되었다.

2018년 1월 31일 방송된 실종자 특집 프로그램 TBS 테레비 <공개 대수색 18' 봄 오늘밤 당신이 해결한다! 기억상실, 행방불명 스페셜>에 출연한 신원불명의 남자가 실종된 신야와 비슷하다고 일본에서 화제가 되었다. 이 남자는 자신을 25살 와다 류토(和田竜人)라고 소개했고 '4년 전 쇼핑몰 화장실에서 기억을 잃고 쓰러졌고, 4세 때부터 21세 때까지 모르는 아저씨에게 17년 간 감금되었다가 도망친 후 현재 보호센터에서 거주 중'이라고 밝혔다. 방송을 본 많은 사람들이 '28년 전 실종된 마츠오카 신야 군과 너무 닮았다!'는 제보를 넣어 도쿠시마현 경찰이 실종된 신야의 부모를 통해 DNA 검사를 진행하였지만 2월 6일 마츠오카 신야의 아버지 마츠오카 마사노부가 페이스북 계정으로 "검사 결과 친자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파일:DVWoPCUVwAAAOkv.jpg
DNA 감정 결과가 나왔습니다.
TV 공개수사의 신원불명의 남성 와다 씨와 저희 부부의 DNA 감정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늘 밤 도쿠시마 현경에게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결과는 '부모 자식 관계로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마크가 하나 해결되었습니다. TV 공개수사도 이걸로 한 걸음 나아가게 되었네요.
계속해서 와다 씨의 신원이 판명되길 빕니다.
저희들도 계속 포기하지 않고 아들을 품에 안는 그날까지 긍정적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응원해주신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ps.(결과를 듣고) 전혀 놀라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직감으로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의 모습은 몇 년이 지나더라도 남아있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와다 류토라고 소개한 인물은 미에현 출신으로 편의점 체인인 로손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키타자와 히사시(北澤ひさし)며 신야 군과는 다른 인물이라는 증언이 퍼지던 가운데 남자의 친부로 추정되는 인물이 경찰서로 연락해 와 따로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검독수리 같은 대형 맹금류에게 끌려갔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데 실종된 장소가 인적이 드문 시골에 산골짜기라서 인간 성인이 주의를 돌린 틈을 타 몰래 힘 없는 존재를 납치해 갔다는 이야기다. 특히 마츠오카 신야가 실종되기 전에 아버지와 친척 아이들과 함께 산책하다가 한적한 마을에 아이들이 많이 모여있으니 불행히도 대형 맹금류의 눈에 띈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다. 다만, 일본에 사는 검독수리는 몸집이 검독수리의 아종 중 제일 작은 편이라서 인간 아이를 납치해서 날 정도로 힘이 세지 않기 때문에 이 역시 확실하지 않다.

신야의 어머니인 마츠오카 케이코는 아들과의 재회를 이루지못하고 2020년 10월 사망하였다.

7. 매체

  •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 <부드러운 볼>이 이 사건을 모티브로 했는데 기본적인 개요만 일치할 뿐 세부적인 전개는 실제 사건과는 거리가 멀다. 주인공인 아이 엄마가 불륜을 저지른다든지.


[1] 하지만 납치를 당한 것이라면 마츠오 신야 군이 소리를 질렀을텐데 가족들이 듣지 못하였다는 것도 있고 그 외에도 수상한 점이 많아서 납치라고 단정을 지기는 어렵다.[2]츠루기정(つるぎ町)[3] 2005년 츠루기정으로 통합되었다.[4] 40초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아이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지만 미국 워싱턴 대학교에서 실험한 결과 납치에 걸리는 시간은 놀랍게도 평균 30초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30초는 성인일 경우이고 어린아이는 10~20초라고 한다. 미국 드라마크리미널 마인드》에도 놀이공원에서 자기 엄마와 함께 서 있는 아이를 30초도 안 되어서 납치하는 장면이 나온다. 범인이 이상하고 요란스러운 행동으로 부모주의를 끌고 부모가 이에 정신이 팔렸다 싶으면 다른 공범이 아이를 얼른 자기 품에 마주 안아들고 달려가는 식이다. 아이의 얼굴이 범인의 품에 묻히도록 머리를 누르기 때문에 소리도 지를 수 없고 누가 본다고 해도 그냥 '아이가 우니까 품에 안고 달래며 뛰어가는 부모이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기 딱 좋다.[5] 아니면 진범을 숨기기 위해 범인 본인이 아닌 그의 관계자가 걸었을 수도 있다.[6] 참고로 이바라키와 도쿠시마는 엄청나게 멀다. 차로 9시간 거리다.[7] 경제적으로는 황금기였지만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