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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라이트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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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라이트 Richard Wright | |||
<colbgcolor=#000><colcolor=#fff> 본명 | 리처드 윌리엄 라이트 Richard William Wright | ||
출생 | 1943년 7월 28일[1] | ||
영국 잉글랜드 미들섹스 해치엔드[2] | |||
사망 | 2008년 9월 15일 (향년 65세) | ||
영국 잉글랜드 런던 | |||
국적 | 영국 | ||
직업 |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 ||
소속 | (1965 - 1979, 1990 - 1995)[3] Zee (1984) 무소속 (1995 - 2008)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000000,#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color=#fff><colbgcolor=#000> 부모님 | 아버지 : 세드릭 라이트 어머니 : 브리디 라이트 | |
배우자 | 줄리엣 게일 (1964 - 1982, 이혼) 프란카 라이트 (1984 - 1994, 이혼) 밀프레드 홉스 (1994 - 2007, 이혼) | ||
자녀 | 갈라 라이트[4], 벤 라이트, 제이미 라이트 | ||
학력 | 리전트 스트리트 폴리테크닉 (건축학 / 중퇴)[5] 런던 음악 대학(중퇴) | ||
사용 악기 | 키보드, 보컬 | ||
장르 | 사이키델릭 록, 프로그레시브 록, 익스페리멘탈 록, 일렉트로닉, 재즈 록, 아트 록 | ||
활동 기간 | 1962년 - 2008년 | ||
레이블 | 하베스트, 콜럼비아, EMI, 캐피톨 | ||
링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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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rowcolor=white> 전성기 시절의 사진. | 2006년 라이브 공연에서 찍은 사진. |
핑크 플로이드의 키보디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2. 상세
가장 위대한 프로그래시브 록 작곡가 중 한 명으로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며, 키스 에머슨, 존 로드, 릭 웨이크먼, 토니 뱅크스, 레이 만자렉 등과 함께 록 음악 역사상 명실상부한 최고의 키보디스트 중 한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핑크 플로이드 멤버들중 가장 내향적이고 대중 앞에 나서길 꺼렸지만, 핑크 플로이드의 명곡으로 인정 받고 있는 The Great Gig in the Sky나 Us and Them은 그가 작곡을 주도한 곡들이며 Echoes, Breathe (In the Air), Time, Shine on You Crazy Diamond의 작곡에 관여했다. 이외에도 Paintbox, Remember a Day, Sysyphus, Love Scene (Version 4), Summer '68, Wearing the Inside Out등 핑크 플로이드 음반 내에 단독 자작곡이나, Careful with That Axe, Eugene, Atom Heart Mother, Burning Bridges, Stay, Any Colour You Like, Marooned, Keep Talking등 수많은 핑크 플로이드 곡들에 작곡을 관여했다.
3. 생애
3.1. 초기 생애
1943년 7월 28일 런던 북서쪽에 있는 해치 엔드에서 생화학자인 로버트 찰스 라이트와 그의 아내인 데이브 휴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 사립학교인 해버더셔 애스크 남학교를 다녔고, 12살 때 다리 부상을 회복하던 중 부모의 도움으로 피아노, 기타, 트럼펫을 배운 적이 있다. 그 후 에릭 길더의 음악 학교[6]에서 음악 이론과 트럼본, 피아노, 작곡 개인 레슨을 받았다.하지만 라이트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갖고 있었고, 1962년에 리전드 스트리트 폴리테크닉(현재 웨스트 민스터) 대학의 건축과 학생으로 들어갔다. 또한 그곳에서 로저 워터스와 닉 메이슨을 만났다.
하지만 음악공부가 하고 싶었는지 건축과에 들어간지 1년 만에 건축과를 그만두고 런던음악대학(London College of Music)에 들어가 교육을 받았다.
3.2. 핑크 플로이드에서의 활동
밴드가 '시그마 6'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기부터 있었던 멤버이다. 자세한 사항은 핑크 플로이드/역사 문서 참고.3.3. 솔로 활동
Rick Wright Discograph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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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 | 1984 | 1996 | }}}}}}}}} |
핑크 플로이드가 로저 워터스의 독주체제가 강화되기 시작했던 시기인 1978년 첫 솔로 음반 《Wet Dream》을 발매했다. 차트 성적은 노르웨이 차트 20위, 빌보드 팝음반 차트 203위에 올랐으며, 비슷한 시기 발매 되었던 데이비드 길모어의 David Gilmour(앨범)가 영국차트 17위, 미국차트 29위를 기록과 비교하면 저조한 성적이다.
The Wall 음반 작업 도중, 워터스에 의해 핑크 플로이드에서 탈퇴당한 이후 라이트는 한동안 그리스에서 요트를 타며 지냈다고 한다. 몇년뒤 1983년 슬슬 음악계로 돌아오겠다고 선포하면서, 영국의 뉴 웨이브 밴드 패션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데이브 디 해리스와 지(ZEE)라는 일렉트로닉 듀오를 결성했다. 당시 라이트는 핑크 플로이드와는 다른 일렉트로닉한 음악을 하고 싶어했고, 해리스는 10대때 핑크 플로이드의 콘서트에도 찾아갔을 정도로 핑크 플로이드의 팬이었고, 당시 패션을 나온 상태였다. 해리스는 라이트의 하몬드 오르간 연주를 원했으나, 몇 년간 연주 및 작곡을 중단했던 상태였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의 퀄리티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둘은 당시 최신 디지털 워크스테이션 신디사이저인 Fairlight CMI에 푹 빠지면서, Fairlight로 곡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져 1년뒤 1984년에 발매된 ZEE의 음반 《Identity》는 평론가들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상업적으로 완전히 실패했다. 중년나이의 60~70년대 인기 록밴드의 전 멤버가 젊은 1980년대 최신 유행인 신스팝/뉴웨이브 뮤지션과 듀오를 시도했다는 점은 굉장히 파격적이긴 하지만, Identity는 지나치게 Fairlight CMI를 과도하게 사용해 살짝 낡은 분위기를 주는 음반이었다. 심지어 훗날 라이트도 “공개되지 말았어야 했던 실험적인 실수”라고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다.
이후 라이트는 런던, 아테네, 로도스를 오가며 살아간다. 같은 시기 로저 워터스가 핑크 플로이드를 탈퇴하면서, 라이트는 A Momentary Lapse of Reason 앨범부터 다시 핑크 플로이드에 합류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법적인 이유로 세션멤버로 활동했지만, 이후 (비록 완벽한 계약적 위치는 아니지만)정식 멤버로 다시 재가입하게 되었다.
1994년 핑크 플로이드의 The Division Bell 투어 이후, 라이트는 새 솔로 음반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7] 프로듀싱은 Division Bell 수록곡 Wearing the Inside Out에서 가사를 담당했던 앤서니 무어와 공동으로 맡았고, 당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아내 밀리 라이트에게서 영감을 얻어, 우울증을 주제로하는 컨셉 음반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렇게 제작되어 1996년 발매된 두번째 솔로 음반 《Broken China》는 평론가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영국 차트 61위(출처), 스위스 차트 39위, 노르웨이 차트 24위, 스웨덴 차트 52위까지 진입했다.(출처)
2008년 연주곡으로만 구성된 세번째 솔로 음반을 준비중이었으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현재 미완성된 작업으로 남아있다.
라이트의 사후 한동안 그의 유족들이 허가를 안 해줬는지, 그의 솔로 음반은 핑크 플로이드의 멤버들의 솔로 음반중 유일하게 다운로드/스트리밍이 불가능했었다. 하지만 2019년 ZEE의 음반 같은 경우 데이브 해리스가 오랫동안 라이트의 유족들을 설득시킨 끝에 Identity 2019라는 타이틀로 발매되었다.
2023년 7월 28일 리처드 라이트의 80번째 생일을 기념해서 그의 솔로 데뷔작인 Wet Dream이 리믹스 & 재발매 되었다.
킹 크림슨등 여러 프로그레시브 록 명반들을 리믹스 해온 뮤지션 스티븐 윌슨이 리믹스 작업으로 참여했으며, 라이트의 자녀인 갈라 라이트와 제이미 라이트가 아트 디렉션으로 참여했다. [8]
새로 재발매된 Wet Dream은 스티븐 윌슨의 작업으로 새롭게 작업된 스테레오 및 돌비 & 서라운드 사운드 믹스와 이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사진들이 포함된 새로운 아트워크가 특징이다. 해당 음반은 발매 직후 영국 차트 34위, 스위스 차트 20위까지 진입하면서 초반에 음반을 발매 했을때 보다 훨씬 높은 주목을 받았다.
3.4. 기타 활동
1970년에 데이비드 길모어와 함께 시드 바렛의 두 번째 솔로 앨범 《Barrett》 녹음에 참여했으며 공동 프로듀서를 맡았다.2006년 데이비드 길모어의 솔로 앨범 《On an Island》에 참여했다. 앨범 발매 후 데이비드 길모어의 투어에 참여해 키보드를 담당했다.
그외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헬렌 볼딩(Helen Boulding)에게 Hazel Eyes라는 곡을 작곡해준적이 있다.
3.5. 사망
2008년 9월 15일(현지시간)에 밝혀지지 않은 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그의 죽음 이후 나머지 세 멤버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추모했다.
“누구도 릭 라이트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는 저의 음악적 파트너였고 친구였죠. 누구 혹은 무엇이 핑크 플로이드였는지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논쟁 속에서도 릭의 막대한 기여는 자주 잊혀졌습니다. 그는 온화했고 잘난 체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얘기를 잘 안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감정 풍부한 목소리와 연주는 가장 잘 알려진 핑크 플로이드 사운드의 필수적이며 매혹적인 요소였습니다. 저는 정말 그와 같은 사람과 연주해본 적이 없어요. 그와 제 목소리의 조합, 그리고 우리의 음악적 텔레파시는 1971년 〈Echoes〉에서 활짝 꽃을 피웠죠. 제 생각에 가장 좋았던 핑크 플로이드의 순간은 그가 모든 역량을 다 발휘하던 때입니다. 결국 그가 작곡한 〈Us and Them〉과 〈The Great Gig in the Sky〉가 없었다면 《The Dark Side of the Moon》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의 조용한 손길이 아니었으면 《Wish You Were Here》는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겁니다. 비록 중년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잠시 길을 잃었지만, 90년대 초 《The Division Bell》과 함께 그의 활력, 스파크, 유머가 그에게 돌아왔고, 2006년 On an Island 투어에서 그의 출연에 대한 관객 반응은 매우 고무적이었고, 그러한 기립박수가 그에게 큰 놀라움으로 다가왔다는 것은 그의 겸손함의 표시였습니다. 릭처럼, 저 또한 제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지만, 저는 그를 사랑했고 그를 엄청나게 그리워할 것입니다.”
-데이비드 길모어
-데이비드 길모어
”밴드에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를 정확히 계량화할 수는 없죠. 하지만 릭이 없었다면 핑크 플로이드는 핑크 플로이드가 될 수 없었을 겁니다… 핑크 플로이드의 사운드는 기타, 베이스와 드럼이 만들어내는 그 이상의 음악이니까요. 릭의 사운드는 이 모든 걸 긴밀히 결합해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닉 메이슨
-닉 메이슨
“릭이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슬픕니다. 그가 아팠다는 것을 알았지만, 갑작스럽고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나는 그의 가족, 특히 제이미, 갈라와 그들의 엄마 줄리엣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략) 60년대와 70년대의 핑크 플로이드에서 그의 음악적 역량의 중요성은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재즈에 영향을 받은 지극히 흥미로운 조음과 하모니의 작법은 그가 작곡한 〈Us and Them〉과 〈Great Gig in the Sky〉로 친숙하죠. 여기서 볼 수 있는 인간적 매력과 장엄함은 그 시절 우리 네 명이 함께 한 모든 작품들에 담겨 있습니다. 화성적 진행에 대한 릭의 귀는 우리 음악의 기반이었습니다. 라이브 8에서 마지막으로 그와 데이비드와 닉과 함께 할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대해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기회가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로저 워터스
이외에도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의 키보디스트인 키스 에머슨은 자신의 웹사이트에 그를 핑크 플로이드의 중추로 표현하면서, 다른 핑크 플로이드 멤버들과 라이트의 가족들에게 조의를 표한다고 추모글을 올렸고, 엘튼 존은 새스커툰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그에게 Believe를 헌정했다.-로저 워터스
라이트는 2천 4백만 파운드의 유산을 남겼다고 하며, 대부분 유산과 그의 저작인접권은 자식인 제이미, 갈라 라이트, 그리고 벤 라이트가 물려 받았다고 한다. 특히 그의 차 애스턴 마틴 DB55는 딸 갈라 라이트가, 라이트가 아꼈던 뵈젠도르퍼 피아노는 갈라의 남편이자 핑크 플로이드 투어에서 베이스 세션을 맡았던 가이 프렛이 물려 받았다.
이후 2014년 핑크 플로이드의 남은 두 멤버는 라이트를 추모하는 의미로 Division Bell 세션 시절 녹음한 자료들을 다시 작업해 마지막 정규 앨범 《The Endless River》를 발매했다.
4. 음악적 평가/스타일
핑크 플로이드하면 빼놓을수 없는것이 그의 음악성이다. 그의 안정적이고 차분하지만, 즉흥적이고 색채있는 음악적 사운드는 핑크 플로이드 음악에 거의 필수적인 요소였다. 이런 그의 스타일은 핑크 플로이드의 사운드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라이트가 1996년 한 잡지에서 뽑은 애청음반 10장에서 그의 음악 취향을 알수 있다.
4.1. 송라이팅
다른 핑크 플로이드 멤버들과 함께 프로그레시브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중 한명으로 꼽힌다. 특히 핑크 플로이드를 넘어 프로그레시브 록 사상 최고의 명곡 중 하나로 인정받는 Echoes, The Great Gig in the Sky, Us and Them은 라이트의 주도로 작곡되었으며, Shine on You Crazy Diamond 또한 모든 파트의 작곡에 관여했으며 그와 수많은 곡에 공동 작곡가로 참여했다.라이트는 작곡할때 즉흥연주와, 무작위로 시도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작곡을 했다고 한다. 또한 자신을 전형적인 작곡가로 여기지 않았으며, 본인을 테마가 있는 음악 앨범을 만드는 작곡가로 생각했다고 한다. 이러한 라이트의 작곡 방식과 음반을 구성하는 방식은 핑크 플로이드를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 나아가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으며, 이는 Dark Side of the Moon에서 완성되었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라이트는 마일즈 데이비스나 존 콜트레인 같은 즉흥 연주를 중시하는 재즈 음악에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블루스적인 취향도 있었다. 이러한 그의 취향이 반영되어, Us and Them이나 The Great Gig in the Sky등과 같은 그의 자작곡에는 재즈적인 요소가 크게 드러나 있다. 또한 Atom Heart Mother나 Echoes에서 그의 하몬드 오르간 스타일은 굉장히 블루스적이다. 반면 바흐, 베토벤등 클래식에서도 영향을 받았다고 하며, Sysyphus 같은 초창기 그의 작품을 들어보면 존 케이지나 슈톡하우젠에게서 영향을 받은것으로 추정된다. 그외 비틀즈[9], 피터 가브리엘 시기의 제네시스(밴드), 스틸리 댄 같은 동시대 아티스트나, 아론 코플랜드, 헨리크 구레츠키 같은 현대 음악가 들에도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라이트의 다양한 음악적 취향을 근거로 핑크 플로이드만의 프로그레시브적인 형태를 잡아 주었다고 평가 받는다. 워터스의 독주 체제 에서 그의 비중이 줄어들기에 작품성과는 별개로 색채의 차이가 큰 것 처럼 그가 없는 핑크 플로이드 앨범들은 핑크 플로이드 스럽지 않다는 평이 많다.[10] 그렇기에 그가 핑크 플로이드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알수 있다.
하지만 라이트의 이러한 음악적인 역량은 70년대 후반에 워터스의 독재 체제가 시작되며 서서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특히 Animals 앨범 이후부터는 작곡에 아예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워터스와 라이트의 불화는 The Wall 제작 과정에서 폭발했는데,[11] 막바지에 결국 워터스가 라이트를 핑크 플로이드에서 해고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핑크 플로이드에서 나간뒤 라이트는 피터 가브리엘이나, 브라이언 이노, 토킹 헤즈, 톡 톡등 뉴웨이브 음악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80년대 후반 워터스가 탈퇴하고 다시 그가 가입한 길모어 체제 핑크 플로이드에서 이러한 성향이 드러나는데, 대표적으로 라이트가 작곡에 참여한 The Division Bell의 Keep Talking이나 Wearing the Inside Out이 있다.
말년으로 갈수록 앰비언트에 영향을 받아 공감각적인 사운드를 구사하기도 하였는데, 대표적으로 The Division Bell의 Cluster One이나 Marooned, The Endless River의 수록된 대다수 곡들, 그리고 라이트의 솔로음반 Broken China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4.2. 악기 연주 / 사용 악기
작곡가적인 면 뿐만 아니라 연주력 또한 인정받는 편이다. 특히 라이트는 “최고의 키보디스트”를 논할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다. 특유의 안정적인 연주로 유명하며, 유사시엔 속주도[12] 능숙하게 해내는 “만능 연주자”로 평가받았을 정도. 말년에는 앰비언트 사운드에도 두각을 보였다.그 중에서도 파피사 오르간 연주나 하몬드 오르간 연주는 라이트만의 트레이드마크로 오늘날까지 인정 받고 있으며, 미니무그, Prophet 5 같은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나 커즈와일 신디사이저 등 여럿 건반 악기들을 다루는 것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실제로 세션을 활용하지 않던 70년대 초반엔 수많은 건반들을 쌓아놓고 동시에 다루는 묘기를 자주 보여주었다.
4.2.1. 1960년대
라이트가 초기에 썼었던 파피사 오르간(Farfisa Compact Duo) |
- London '66–'67
- Farfisa Compact Duo
-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 (1967)
- A Saucerful of Secrets (1968)
- Farfisa Compact Duo + Binson Echorec B1 + Azimuth Coordinator
- Hammond M102 Organ
- Piano[S]
- Mellotron M400 MK II[S]
- Vibraphone[S]
- More (1969)
- Farfisa Compact Duo + Binson Echorec B1 + Azimuth Coordinator
- Hammond M102 Organ
- Piano[S]
- Vibraphone[S]
- Ummagumma (1969)
- Farfisa Compact Duo + Binson Echorec B1 + Azimuth Coordinator
- Hammond M102 Organ
- Piano[S]
- Mellotron M400 MK II[S]
- The Man and The Journey
- Farfisa Compact Duo + Binson Echorec B1 + Azimuth Coordinator
- Hammond M102 Organ
- Piano
- Vibraphone
- Trombone
- Celesta
- Pipe Organ
4.2.2. 1970년대
1975년 Wish You Were Here Tour 때 라이트의 장비 |
- Atom Heart Mother (1970)/Meddle (1971)
- Farfisa Compact Duo + Binson Echorec B1 + Azimuth Coordinator
- Hammond M102 Organ
- Steinway & Sons Grand Piano
- Mellotron M400 MK II[S]
- EMS VCS3[23]
- Live at Pompeii (1971)
- Farfisa Compact Duo + Binson Echorec B1 + Azimuth Coordinator
- Hammond M102 Organ
- Bösendorfer Grand Piano
- Obscured by Clouds (1972)
- Farfisa Compact Duo + Binson Echorec B1 + Azimuth Coordinator
- Hammond M102 Organ
- Piano
- EMS VCS3
- EMS VCS3 Synthi A
- Rhodes MK 1 Suitcase[S]
- The Dark Side of the Moon (1973)
- Hammond RT3 Organ
- Wurlitzer 200A Electric Piano
- Rhodes MK 1 Suitcase Electric Piano[S]
- Steinway & Sons Grand Piano
- moog Minimoog
- EMS VCS3[S]
- EMS Synthi AKS
- Farfisa Compact Duo + Binson Echorec B1 + Azimuth Coordinator
- Wish You Were Here (1975)
- Hammond C3 Organ
- Steinway & Sons Grand Piano
- moog Minimoog
- moog Taurus II[S]
- ARP String Ensemble
- Wurlitzer 200A Electric Piano
- Rhodes MK 1 Suitcase Electric Piano[S]
- Hohner Clavinet D6
- EMS VCS3[S]
- EMS Synthi AKS[S]
- Animals (1977)
- Hammond B3 Organ
- Yamaha C7 Grand Piano
- moog Minimoog
- ARP String Ensemble
- Rhodes MK 1 Suitcase Electric Piano
- Wurlitzer 200A Electric Piano
- Hohner Clavinet D6
- Farfisa Compact Duo + Binson Echorec B1 + Azimuth Coordinator[S]
- KORG VC 10[S]
- EMS Synthi AKS[S]
- Wet Dream (1978)
- Hammond B3 Organ
- Yamaha C7 Grand Piano
- ARP String Ensemble
- Oberheim Polyphonic Four-Voice
- Rhodes MK 1 Suitcase Electric Piano
- Hohner Clavinet D6
- The Wall (1979)
- Hammond B3 Organ
- Rhodes MK 1 Suitcase Electric Piano
- SEQUENTIAL CIRCUITS Prophet 5
- ARP Quadra
- Piano
4.2.3. 이후
1994년 세션멤버들과 촬영한 커즈와일 K2000 광고[34] |
- Is There Anybody Out There? The Wall Live 1980-81
- Hammond B3 Organ
- SEQUENTIAL CIRCUITS Prophet 5
- Rhodes MK 1 Suitcase Electric Piano
- Wurlitzer 200A Electric Piano
- ARP Quadra
- ARP String Ensemble
- Yamaha C7 Piano
- Yamaha CP 70 Electric Piano
- Identity (1984)
- Fairlight CMI Series II
- Hammond B3/C3 Organ
- A Momentary Lapse of Reason (1987)
- Hammond B3/C3 Organ
- Kurzweil K250
- Roland JX10
- Delicate Sound of Thunder (1987 ~ 1989 Tour)
- Hammond C3 Organ
- Kurzweil MidiBoard - Kurzweil K-250RMX
- Roland JX10
- The Division Bell(1994)/The Endless River (2014)[35]
- Hammond C3 Organ
- Kurzweil K-2000
- Kurzweil K-250RMX
- Roland JD800
- Roland JX10
- AKAI S1100
- KORG CX3
- Rhodes MK 1 Suitcase Electric Piano
- Farfisa Compact Duo + Binson Echorec B1
- Piano
- P.U.L.S.E (1994 Tour)
- Hammond B3 Organ
- Kurzweil MidiBoard - Kurzweil K-250RMX 혹은 K-2000R
- Kurzweil K-2000
- Broken China (1996)
- Hammond XB5
- AKAI S1100
- Kurzweil K-2000
- E-MU Proteus 2
- Rhodes MK 1 Suitcase Electric Piano
- Alesis D4
- Bösendorfer Grand Piano
- Live 8 (2005)
- Kurzweil K-2600XS
- Hammond C3 Organ
- Live in Gdańsk(2006)
- Kurzweil K-2600XS
- Hammond C3 Organ
- Farfisa Compact Duo + Binson Echorec B1
4.3. 보컬
Echoes 스튜디오 녹음 현장 |
목소리 톤은 전반적으로 바렛이나 길모어, 워터스보다 비교적 부드러운 음색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Echoes에서 눈에 띄게 확인할 수 있다. 독특한 점이 있다면 특유의 끊어말하는 듯한 표현력을 꼽을 수 있으며, 이는 Time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확인할 수 있다. 본인은 스스로를 특출난 가수로 여기지는 않았다고.
5. 기타
- 초창기 핑크 플로이드의 리더였던 시드 배릿과 절친한 친구였다. 둘은 리치먼드에 있던 아파트에서 같이 살기도 했다. 1968년 바랫이 탈퇴할때 같이 탈퇴할까 고려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워터스처럼 거의 연락을 못하고 지냈고, 2006년 배릿의 장례식때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 총 3번 결혼 했다. 결혼한 아내와는 전부 이혼했다.
- 첫번째는 줄리엣 게일.[37] 딸 갈라와 아들 1명을 가졌으며,[38] 1964년에 결혼해서 1982년 이혼했다.
- 두번째는 1984년의 프랑카 라이트, 1994년에 이혼했다.
- 세번째는 1995년 밀리 라이트. 밀리는 우울증이 있었으며, 이는 라이트의 두번째 솔로음반 Broken China의 컨셉이 되었다. 아들 벤을 가졌고, 2007년 이혼했다.
- 세일링 요트를 좋아했다. 1984년에 세일링 요트를 구입해 그가 죽은 2008년까지 소유했었다. 여담으로 그 요트의 이름은 유레카(Evrika)로 이 이름은 라이트의 곡 Wearing the Inside Out의 초기 제목이기도 했었다.
- 그리스 섬를 좋아했다. 실제로 핑크 플로이드 활동 초에 휴가로 많이 갔었고, 거기서 받은 영감을 기반으로 Wet Dream을 썼다. 은퇴 시절에도 위에서 언급한 그 세일링 요트로 그리스 지중해 바다를 돌아다니며 생활를 했다.
- 조지 해리슨의 솔로 데뷔 음반인 All Things Must Pass의 오르간 연주를 맡았다는 설이 있는데 확실하지 않고, 관련 자료도 없는 것으로 보아 사실상 루머일 확률이 높다.
- 생전에는 상당한 미남이었다. 더군다나 키도 커서 187cm로 엄청난 거구로, 191cm인 로저 워터스 다음으로 키가 큰 멤버였다. 그런데 몇몇 핑크 플로이드의 팬들은 릭 라이트가 알파카(...)랑 비슷하게 생겼다고 놀린다.
[1] 같은 밴드 소속이었던 로저 워터스와는 생일이 2달 차이도 나지 않는다.[2] 現 잉글랜드 그레이터 런던 해로우구 해치엔드[3] 중간에 로저 워터스의 독재로 잠깐 밴드에서 쫓겨난적이 있었고, 1980년 - 81년과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세션 멤버로 활약 했었다. 물론 거의 정규멤버 취급을 받았지만.[4] 갈라의 남편, 즉 릭의 사위는 로저 워터스 탈퇴 후 핑크 플로이드의 베이스 세션을 맡은 가이 프랫이다.[5] 現 웨스트민스터 대학교[6] Eric Gilder(1911~2000) 영국의 음악교사, 작곡가. 오페라의 유령으로 유명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도 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7] 라이트는 The Division Bell 앨범을 좋아했지만, 본인이 앨범에 충분히 기여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걸 만회해보고자 솔로 작업에 임했다고.[8] 라이트의 사위이자(갈라 라이트의 남편) 핑크 플로이드 세션 베이시스트 였던 가이 프랫이 월슨을 갈라 라이트에게 소개 시켜줘 리믹스 작업에 참여 할수 있었다고 한다.[9] 초반 로큰롤 스타일 음반들은 별로 안좋아한다고 밝힌바 있으나, 이후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A Day in the Life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것으로 보아 비틀즈의 사이키델릭 스러운 음악은 좋아한 것으로 추정된다.[10] 이는 워터스의 독주 체제 앨범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주 꼽는 이유중 하나이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핑크 플로이드 스럽다고 말하지는 않는다.[11] 라이트는 이전까지 항상 음반 프로듀싱을 밴드 멤버 전원이 맡아온거 처럼 계속 밴드의 멤버들이 유대감을 가지고 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워터스는 이전 앨범들에서도 라이트와 메이슨의 영향력이 미미했고, 로저 본인과 길모어가 사실상 프로듀싱을 전담했다고 주장하며 이전처럼 프로듀서 권한을 나누는것을 거절했다.[12] Live in Gdansk에 수록된 Echoes(핑크 플로이드)의 하몬드 오르간 연주가 대표적인 예시.[S] 스튜디오 음반에서만 사용.[S] [S] [S] [S] [S] [S] [S] [S] [S] [23] Meddle에만 해당[S] [S] [S] [S] [S] [S] [S] [S] [S] [S] [34] 왼쪽부터 드럼/샘플러의 개리 월리스, 라이트, 키보드 세션의 존 카린[35] 1993년 녹음[36] 핑크 플로이드 초반에는 원래 보컬의 비중이 많은 편이였다. 후에 워터스와의 불화로 줄었기 때문.[37] 초창기 핑크 플로이드 활동을 도와주기도 했으며, 2015년 공개된 1965: Their First Recordings의 Walk with Me Sydney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다.[38] 딸 갈라는 이후 워터스 대신 핑크 플로이드 투어에서 베이스를 연주했던 가이 프랫의 부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