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통상적인 의미
대첩(大捷)은 전쟁 중 전투에서 아군이 적을 크게 이겼을 때 쓰는 말이다. 보통 <(전투 지역명) 대첩>이라 명명한다. 그냥 대결 구도가 형성되거나 전투가 벌어졌을 때는 그냥 '전투'라고만 하지, 대첩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패배자 입장에서 보자면 참패(慘敗)이며, 유사한 단어로 대승(大勝)이 있다.일반적인 전투보다 높은 단계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대전(大戰)과도 의미가 약간 겹치지만, 대전은 규모 자체가 거대한 전투를 이르고 대첩은 크게 이겼다에 중점을 두는 단어라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대첩으로 흔히 불리는 황산대첩, 행주대첩, 청산리 대첩의 경우 참여한 병력은 기록의 모호함을 감안해도 수천~5만 미만 정도로, 이 정도면 한국사 안에서만 따져봐도 손꼽히게 병력규모가 큰 전투라고 할 수는 없다. 때문에 이들은 대전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한국사에서 대첩으로 명명된 전투는 외세와의 전투에 한정되기에 한국사의 범주 내의 국가로 인정받는 삼국, 후삼국간의 전투나 내전의 경우 아무리 규모가 크거나, 크게 이겨도, 대첩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다. 따져보면 그걸 대첩이라고 할 경우, 대첩의 상대, 즉 패배한 측은 한국사의 관점에서 뭐가 되나? 이 연장선상에서 김유신은 아무리 뛰어난 명장이라도, 그 커리어의 대다수는 결국 신라 입장에서 고구려ㆍ백제를 상대한 것에서 온 것이라서, 이순신ㆍ강감찬 등의 '외적'을 막아낸 대첩을 이끈 인물들에 비해 저평가받는 면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 전쟁사를 통틀어 3대 대첩이라 불리는 살수대첩, 귀주대첩, 한산도 대첩은 외적을 상대로 크게 이긴 것 뿐만 아니라 그 승리로 인해 해당 전쟁의 전황을 크게 바꾸거나 당대 국제적인 정세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경우이다.
1.1. 나무위키에 등재한 전쟁사의 대첩
- 팽성 대첩(기원전 205년) - 초(서초(항우)) vs 한(전한(유방))
- 곤양 대첩(23년) - 현한 vs 신나라
- 비수 대첩(383년) - 전진 vs 동진
- 출하 대첩(1114년) - 요나라 vs 금나라
1.1.1. 한국사 속 대첩
※ 살수대첩과 귀주대첩을 제외하면 대부분 일본과 싸운 전투이다.
- 살수 대첩(612년)
- 귀주 대첩(1019년)
- 홍산 대첩(1376년)
- 진포 대첩(1380년)
- 황산 대첩(1380년)
- 임진왜란 삼대 대첩 : 한산도 대첩(1592년) / 진주 대첩(1592년) / 행주 대첩(1593년)
- 명량 대첩(1597년)
- 청산리 대첩(1920년) - 일단 '대첩'이란 단어로 많이 불리고 있으나 21세기 들어서는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문서 참조.
- 독도 대첩(1954년)
1.2. 스포츠의 명경기
같은 이유로 스포츠에서 명경기 끝에 시원한 승리를 거둔 경기를 xx대첩이라고 하며 반대로 패하면, ~의 참극, 참사, ~의 비극이 따라붙는다.- 도쿄 대첩 - 1998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B조 3차전 경기로 벌어진 한일전.
- 상하이 대첩 - 2005년 제 6회 농심신라면배에서 한국팀에서 혼자 남은 이창호가 5연승으로 대회를 끝내버림.
- 이스탄불 대첩 - 0:3 상황에서 3:3으로 따라잡고 승부차기 끝에 결국 승리한 경기.
- 6.20 황신대첩
- 카디프 대첩 - 2012 런던 올림픽에서의 남자축구 경기에서 한국과 일본이 동메달을 걸고 3위 결정전에서 맞붙은 역대급 한일전 경기.
- 도쿄 대첩(야구) - 2015 WBSC 준결승에서 펼쳐진 한일전.
- 1.21 대첩 - 한국프로농구에서 있던 경기로 5차 연장 승부를 펼쳤다.
- 카잔 대첩 - 한국이 아시아 국가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서 독일을 잡은 경기.
- 1903 대첩 - DWG가 G2를 상대로 승리하며 2017 이후 3년 만에 LCK 팀의 결승 진출에 성공했으며, 월즈 최단 경기 기록인 19분 3초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 경주 대첩: 중계진 한 명을 빼면 우승 후보로도 꼽히지 않았던 한화가 LCK 5-peat(5연패)를 노리던 젠지를 꺾고 기적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경주실내체육관에서 펼쳐진 경기였기 때문에 명명됐다.
2. 프로야구 용어
자세한 내용은 대첩(야구) 문서 참고하십시오.위의 1번이나 1.2번 문단과는 반어적인 의미로, 엄청난 졸전이 펼쳐졌을 때 야구 팬들이 조롱조로 말하는 단어다. 특히 수비 쪽의 경우 공격을 워낙 못해서 졸전이 나오면 해당한다.
3. 인터넷에서 벌어진 큰 사건
병욱 대첩, 이영도 대첩, 일오 대첩, 경인 대첩, 찌찌 대첩, 로이 대첩,4. 대학의 합격자 발표일 대학 사이트가 마비되는 현상
주로 수만휘, 독편사와 같은 입시 커뮤니티에서 사용된다. 각 대학의 발표일마다 사이트가 안 들어가지는 일이 생기면 그 대학 이름을 앞에 붙이고 xx대첩이라고 하기도… 누구는 대학 사이트를 욕하고 또 누구는 은근히 본인의 대학의 지원자가 많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그런데 사이트가 허술한 경우가 많은 국립 대학들이 대첩이 잘 일어나는 것을 보면 전자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에는 지원자도 더 많겠지만 보통은…5. 관객 반응이 열광적인 걸그룹 공연
2011년 5월# 즈음 회자되기 시작한 대첩의 또다른 의미. 넓은 야외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천지를 뒤흔드는 사자후"가 인상적인 걸그룹 공연을 지칭한다. 남성 관객들의기원은 2007년 "원더걸스 한양대학교 습격사건#". 주로 "원더걸스 한양대첩"으로 불린다. 원더걸스가 Tell Me 활동으로 인기 최고조에 올랐을 때 한양대 축제에 방문했었는데, 공연 당시의 엄청난 반응이 널리 회자되었었다. 한양대학교는 공대가 강세고, 남자 성비가 우세하다는 특징이 있는데, 한양대 노천극장은 공연 접근성이 매우 좋아서 다양한 가수들이 축제때 종종 방문하곤 한다. 이에 따라 이후로도 이 곳에서 몇 번의 걸그룹 대첩이 나온 바 있다(후술).
2009년, 소녀시대가 중앙대학교 축제 축하공연을 하면서 "중앙대첩#"을 일으켰다. 이 역시 남학생들의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기 때문에 널리 회자되었으며, 전술한 라이벌 "원더걸스 vs 소녀시대" 구도와 함께 "한양대첩 vs 중앙대첩" 구도도 만들어졌다.
2011년 5월, 소녀시대가 전술한 한양대학교에 방문하여 "소녀시대 한양대첩##"을 일으켰다. 이 때 본격적으로 "ㅇㅇ대첩"이란 신조어를 사용하기 시작하고, 과거에 있었던 대첩들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2011년 9월, 씨스타가 평택 군부대에서 위문공연을 하면서 학교와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는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내 "평택대첩#"을 만들어냈다. 이 기세로 씨스타는 확고한 군통령 지위에 오르게 된다.
2012년 6월, 헬로비너스가 "가평대첩#"을 이루었다.
여기까지가 대략 전형적인 대첩의 모습이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면서 차원이 다른 대첩이 발발한다(...)
2012년 9월, 싸이가 수원시 경기대학교의 축제 현장 무대 위로 등장해 강남스타일을 불러 축제에 참가한 모든 이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었고, 월드클래스 가수가 이끄는 "경기대첩#"의 위용을 과시하였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싸이는 서원대학교, 수원여대, 인천대 제물포캠퍼스 등에서 연이어
또한 동년 10월 4일, 강남스타일 열풍의 절정인 그 때, 싸이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서울광장 현장엔 경찰 추산 6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서 "시청대첩#"을 일으켰다. 그리고 쉬지 않고 곧이어 위문공연으로 춘천대첩#을 다시 한 번 마쳤다고.
2013년 11월, AOA가 "철원대첩#"을 일으켰다. 2년전의 걸그룹 대첩 대비 훨씬 업그레이드 된 함성소리를 들을 수 있다.
2016년, 트와이스가 연세대학교 축제 공연을 하면서 "연세대첩##"을 이끌었다. 핵심 포인트는 사나의 "칭구를 만나느라 샤샤샤!".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