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7-27 13:51:20

그레고리오 성가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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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그레고리오 2.jpg
화려히 장식된 그레고리오 성가 악보
그레고리오 성가 소개

1. 개요2. 그레고리오 성가의 형성과 이름
2.1. 잘못 알려진 사실2.2. 전례 음악과 그레고리오 1세2.3. 고대 로마 성가의 형성2.4. 고대 로마 성가와 갈리아 성가의 만남2.5. 'Cantus Gregorianus'라는 이름이 붙다
3. 이 성가의 이름
3.1. '그레고리오 성가'와 '그레고리안 성가'
4. 음악적 특징
4.1. 선율 구성4.2. 선율 양식4.3. 리듬4.4. 교회 선법 사용
5. 부르는 방식6. 중요도
6.1. 전례에서의 위상6.2. 서양 음악사에서의 가치
7. 기타8. 여담

1. 개요

-그레고리오 성가로 봉헌되는 전통 라틴 미사

그레고리오 성가(Cantus Gregorianus)중세부터 가톨릭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단선율 전례 음악으로, 서기 800년 경에 갈리아 지방에서 형성되었다. 오늘날의 가톨릭 교회에서도 쓰이며, 모든 서양 음악의 기초라 할 만하다.

2. 그레고리오 성가의 형성과 이름

2.1. 잘못 알려진 사실

다음 두 문장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형성에 관한 대표적 오해이다.
  • "그레고리오 성가는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작곡하였다."
  •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당대의 성가를 집대성하여 오늘날의 그레고리오 성가가 되었다."

첫째,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작곡했다는 기록은 없다. 물론 학자들은 음악가로서의 명성이 있던 교황 그레고리오가 일부 곡을 썼으리라는 가능성은 열어 두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1][2] 더욱이 그가 설령 작곡을 하였더라도 오늘날 '그레고리오 성가'라는 이름이 붙은 곡들 중 극소수만이 그가 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교황 그레고리오가 당대의 성가를 수집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작업이 오늘날의 그레고리오 성가 형성으로 바로 이어졌다는 표현이 거짓이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재위 기간은 590년부터 604년까지이지만, 그레고리오 성가의 형성 시기는 750년부터 810년 사이[3]이다. 즉, 교황 재위 시기로부터 무려 200년이 지나서야 그레고리오 성가가 형성되었다. 이는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성가를 수집한 뒤로도 몇 단계를 거쳐서야 오늘날의 그레고리오 성가로 연결된다는 뜻이다.

2.2. 전례 음악과 그레고리오 1세

앞의 잘못 알려진 사실 문단에서 음악계에서 통용되는 몇 가지 오해를 지적했다. 그렇지만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가톨릭 교회의 전례 음악의 기틀을 잡기 위해 대단한 업적이 있었기에 특정 양식의 성가에 '그레고리오'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그레고리오 1세의 업적은 다음으로 정리할 수 있다.[4]

그레고리오 성가의 이론 정립을 유도함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사람들을 시켜서 그 시절 각 지역의 성가를 수집하였다. 이걸로 그치지 않고, 이렇게 모인 성가를 이론적으로 분석하였다. 물론 그렇게 해서 무엇이 진보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기는 어렵고, 따라서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음악 이론을 새로 창시하거나 발견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더라도 이러한 과정 덕분에 후대에 교회 선법이 형성되었으며, 이것이 오늘날 전해지는 그레고리오 성가는 물론 다성 음악에도 영향을 끼쳤다.

Antiphonarium의 편찬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지시에 따라 여러 지역의 성가가 수집되었으며, 교황이 이들을 모아 미사시간 전례 때 사용할 성가집을 만들었으니 그게 바로 『Antiphonarium』이다. 전례서로 기능하는 이 성가집은 오늘날의 『Missale Romanum』, 『Graduale Romanum』, 『Liturgia Horarum』 등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Schola Cantorum의 창설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성음악 학교인 Schola Cantorum을 설치하여 전례 음악을 보급할 인재를 양성토록 하였다. 비슷한 성격의 기관이 그보다 앞선 교황 실베스테르 1세힐라리오 때도 있었다는 짤막한 기록은 있지만, 교회 음악의 역사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다. 반면에 교황 그레고리오 1세에 의한 Schola Cantorum은 후대의 교회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2.3. 고대 로마 성가의 형성

잘못 알려진 사실 문단에서 소개한 두 번째 오해는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당대의 성가를 집대성하여 오늘날의 그레고리오 성가가 되었다."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노력으로 형성된 성가는 바로 '고대 로마 성가'이지 그레고리오 성가가 아니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재위 전에도 다음과 같이 각 지역의 독자적인 성가가 있었다.
  • 비잔틴 성가: 동로마 제국의 예배에는 노래하는 성서 낭독과 시편, 그리고 찬미가가 있었고 선율들은 8선법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서방의 교회선법의 모델이 된다. 찬미가는 10세기부터 기보되기 시작했고 선교사들은 이러한 전통을 동유럽에 전하였다. 비잔틴 성가의 대부분은 선율 유형들을 결합해 새로운 선율을 만드는 기법으로 만들어졌다.
  • 암브로시오 성가: 로마뿐 아니라 밀라노에서도 그리스도교가 번성하고 있었다. 밀라노의 전례에 사용된 성가를 암브로시오의 이름을 따 암브로시오 성가로 알려졌다. 로마 성가와 비슷한데, 후에 교황들이 중앙집권화를 위해 성가들을 모으는 와중에 암브로시오 성가 또한 통합되었다.
  • 갈리아 성가: 갈리아 성가는 프랑스의 성가로 몇몇 곡은 그레고리오 성가로도 통합되었다.

앞 문단의 언급처럼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지시로 이러한 성가가 수집되고, 이들에 관한 이론이 차차 정립되며, 성가집으로 묶이고, 이를 보급할 성음악 인력이 양성되었다. 그런데 그 성과는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재임 시기인 600년 경에 형성된 '고대 로마 성가'이지 오늘날의 그레고리오 성가는 아니다. 아직 한 단계가 남았다.

2.4. 고대 로마 성가와 갈리아 성가의 만남

그레고리오 성가의 진정한 형성 시기와 장소는 서기 800년 경 갈리아 지방이다. 그레고리오 성가가 확립되는 과정은 프랑크 왕국카롤루스 왕조가 주도했다. 당시의 황제이자 카롤루스 왕조의 시조인 카롤루스 대제(742-814, 재위: 768-814)는 영토를 대거 확장 중이었으며, 로마 교회를 밀어주고 종교적 지배력으로 영토를 다스리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례를 로마식으로 표준화하도록 하였다.

전례 음악도 이때 변화를 겪는다. 바로 위 문장에 '로마식으로 표준화'라는 대목이 있다. 본래 갈리아 지방에는 갈리아 성가가 있었다. 그리고 카롤루스 대제는 고대 로마 성가 전문가들을 로마로부터 갈리아로 불러서 성가의 표준화를 지시한다. 비록 표준화가 이루어진 지역은 갈리아였지만, '로마식으로 표준화'한 결과 고대 로마 성가와 갈리아 성가가 혼합되어 비로소 오늘날의 그레고리오 성가가 형성되었다.[5] 이때부터 약 200년 동안 이 성가를 일컫는 말은 'Cantilena Romana'였다. 새로 형성된 성가가 '로마식으로 표준화'되었기에 붙은 이름이었다.

이렇듯 프랑크 왕국에서는 로마 전례가 점점 확대되고 성가들을 수정하고, 악보로 베끼는 과정을 수행하는 등 그레고리오 성가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하였지만 정작 로마 교회에서는 악보를 기보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2.5. 'Cantus Gregorianus'라는 이름이 붙다

새로운 성가에 비로소 'Cantus Gregorianus'(그레고리오 성가)라는 이름이 붙은 때는 1000년 경이다. 고대 로마 성가와 갈리아 성가가 만나고 200년 정도 지난 때이다. 200년 동안 잘 쓰던 'Cantilena Romana' 대신 'Cantus Gregorianus'라는 이름이 붙은 경위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로 그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다. 앞선 문단의 내용처럼 그레고리오 성가는 갈리아 지방에서 800년 경에 형성되었지만, 그 중심에 고대 로마 성가가 있고, 고대 로마 성가의 족보를 따라가다보면 그레고리오 1세가 나온다. 전례 음악과 그레고리오 1세 문단에서 언급하였듯, 그레고리오 1세가 고대 로마 성가에 직접적으로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서기 1000년 경의 사람들이 떠올릴 수 있는 유력 인물이 결국 그레고리오 1세가 된다.

둘째, '그레고리오'라는 이름의 다른 교황의 이름을 그레고리오 1세로 착각하여 붙였다는 설이다. 8세기 경에 출판된 전례서에 '그레고리오가 성가를 작곡했다.'라는 문구가 있다. 이 그레고리오가 실상은 그레고리오 2세그레고리오 3세인데 이를 프랑크 학자들과 사제들이 그레고리오 1세로 착각했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례서로 『Ordo Romanus』를 지목하는 문헌도 있고,[6] 『Liber Antiphonarius』를 지목하는 논문도 있다.[7] 설령 이 설이 맞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레고리오 성가'라는 이름은 '그레고리오 1세'를 의도한 셈이 된다.

3. 이 성가의 이름

3.1. '그레고리오 성가'와 '그레고리안 성가'

한국 천주교가 쓰는 모든 공식 전례서는 '그레고리 성가'라고 표기한다. 『가톨릭 성가』도 (비록 한때 '성가'라는 말을 빼고 '그레고리'이라고 표기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레고리오 성가'로 표기한다.

흔히 쓰는 '그레고리'이라는 말은 영어 단어 'Gregorian chant'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그레고리오 성가는 형성 시기인 서기 800년 경부터 지금까지 늘 라틴어권에서 라틴어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이 유구한 세월이 영어와는 별 관련이 없다. 더욱이 가톨릭 교회의 공식 언어는 예나 지금이나 라틴어이다. 한국어 전례서에서 이 성가를 가리키기 위해 굳이 영어식 수식어를 쓸 필요가 없다. 이에 한국어로 출판되는 모든 공식 전례서는 '그레고리 성가'라는 용어를 쓴다.

4. 음악적 특징

그레고리오 성가는 반주 없는 단성음악(모노포니)으로, 합창단이 부르거나 독창자와 합창자가 교대로 불렀다. 선율은 제한된 음역안에서 되도록 순차진행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교회 선법 체계를 사용한다. 이 시기에는 흔히 '가사가 음악을 지배' 하였기 때문에 자유로운 리듬을 사용하였다. 단, 현존하는 성가들은 음 높이만 쓰고 시가는 나타나지 않는 네우마(neuma)라는 기보체계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리듬 해석은 지금까지 불분명한 게 많다.

4.1. 선율 구성

그레고리오 성가의 가장 오래된 선율 구성방식은 짜깁기라 불리는 것으로 짧은 모티브를 기본으로 비슷한 선율적 형태들로 음악을 진행하는 것이다. 특히 각 악구의 시작이나 끝이 동일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동일한 선법의 곡들에 같은 모티브가 사용된 경우도 있다. 이러한 짜깁기 기법은 11세기부터 기보법이 발달함에 따라 쇠퇴했다.

4.2. 선율 양식

가사의 음절에 붙여지는 음표에 따라 단음적, 다음적, 과음적으로 분류한다. 단음적 선율은 가사의 각 음절에 한 음씩 붙이는 양식으로, 부속가나 같은 평신도들이 노래하는 음악에 사용하였고,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과 같은 긴 가사도 단음적 선율을 사용한다. 가사에 한 음절에 다른 음이 둘 또는 세 개가 붙으면 과음적이라고 하며 이것이 성가의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선율 양식이다. 또한 가사의 한 음절에 여러 음이 붙는 경우가 다음적선율이라고 하며 보통은 할렐루야에서 보이듯 찬미하는 가사에 사용되었다.

4.3. 리듬

12세기부터 악보로 리듬 보는 법이 발전하였다. 이전의 성가들이 어떤 리듬 형태였는가는 의견이 분분하다.
  • 박자가 없고, 리듬이 다 똑같은 음가로 되어있고 가사의 악센트에 따라 강약조절하는 설.
  • 2:1 비율의 리듬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 리듬은 모두 똑같은 음가를 갖지만 가사의 흐름에 따라 음표 2, 3개로 그룹을 이룬다.

4.4. 교회 선법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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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오 성가 통일정책은 성가를 체계적으로 분류할 필요가 생겨 9세기부터 교회선법을 발전시키기 시작하였다. 고대 그리스 선법의 이름을 불려 둘씩 결합하여 옥타브 유형을 갖추었다. 하지만 이러한 교회선법은 완성되기까지 2세기가 더 걸렸는데, 성가 자체는 그리스가 아닌 레반트 지역과 동로마 제국의 성가에 기초하였기 때문이다. 이론 초기에는 그리스 선법보다는 비잔틴 선법을 고려하였다는 증거들도 있다.

5. 부르는 방식

두 그룹의 합창단이 교대로 부르는 경우는 교창식(antiphonal)이라고 하며 암브로시오가 처음 교회에 도입했다고 한다. 독창자가 앞서 노래하고 그 뒤를 합창단이 이어받는 경우를 응창식(responsorial)이라고 한다.

6. 중요도

6.1. 전례에서의 위상

노래는 똑같이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로마 전례에 고유한 그레고리오 성가가 첫자리를 차지한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41항.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가톨릭 교회의 전례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통하여 한층 더 거룩해질 수 있고, 그레고리오 성가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6.2. 서양 음악사에서의 가치

대표적인 단선음악이자 그리스도교 신앙이 제1의 가치였던 중세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이다. 서양음악사를 공부한다면 그 시작점을 그레고리오 성가로 잡아도 크게 문제가 없을 정도로 음악사적 가치가 매우 매우 막대하다. 특히 가톨릭 음악에서 그레고리오 성가는 팔레스트리나의 음악 이상으로 중요시되는 유일한 존재이며, 그 자체가 일종의 규칙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7. 기타

당시에는 악보 기보도 잘 되지 않아서 성가대원들은 성가 대부분을 외워서 불러야 했다. 악보가 있더라도 현대와는 형태가 많이 다른 네우마라는 표기법을 이용했다. 박자도 없고 (시대가 시대라) 남자만 부르는 음악이었다. 교황 실베스테르 1세는 교황청의 성가대원을 양성하기 위해 로마에 스콜라 칸토룸(scoola cantorum)이라는 교육기관을 창설하였고 이곳의 가수들은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였다.

8. 여담

  • 여기에서 각 요소 사운드를 조절하면서 들을 수 있다.
  • 수도복 차림을 하고서 솔렘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는 그레고리안(Gregorian)이라는 독일 그룹이 있다. 노래를 부르는 방법 자체는 그레고리오식이지만 가사는 성가가 아니라 팝송이다.
  • 1990년대 초 한국에서 여성으로 구성된 그레고리오 성가 합창단이 나온 적 있다. #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최초라 당시에 화제가 되었다. 현재는 더 이상 남성만 부를 수 있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여성/혼성 합창단이 부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 교회의 바뀐 규정과는 별개로, 변성기가 지난 중저음의 남성들로만 구성된 합창단이 주는 장중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그레고리안 찬트는 성인 남성 합창단이 부르는 버전이 여전히 인기가 높은 편이다.

[1] 이문근, 『교회 음악』.[2] 차인현, 『그레고리오 성가』, 가톨릭대학교출판부.[3] 이문근, 『가톨릭 교회 음악(최호영 엮음)』, 가톨릭대학교출판부.[4] 이문근, 『가톨릭 교회 음악(최호영 엮음)』, 가톨릭대학교출판부.[5] Daniel Saulnier, 『GREGORIAN CHANT - A Guide to the History and Liturgy』, Paraclete Press, 2003.[6] stanley sadie, Gregorius presul composuit junc libellum musicae artis,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2001) 중 'Gregorian Chant'[7] Willi Apel, The Central Problem of Gregorian Chant, Journal of the American Musicological Society 9(2), pp. 118-127, 1956, #1#2.